Y를 위하여

김민정의 세상 어디에나 詩
글 김민정
시인 최승자

Y를 위하여

너는 날 버렸지,

이젠 헤어지자고

너는 날 버렸지,

산속에서 바닷가에서

나는 날 버렸지.

 

수술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웠을 때

시멘트 지붕을 뚫고 하늘이 보이고

날아가는 새들의 폐벽에 가득 찬 공기도 보였어.

 

하나 둘 셋 넷 다섯도 못 넘기고

지붕도 하늘도 새도 보이잖고

그러나 난 죽으면서 보았어.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가던 것을.

그때부터야.

나는 이 지상에 한 무덤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고

나의 아이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나쁜 놈, 난 널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널 내 속에서 다시 낳고야 말 거야

내 아이는 드센 바람에 불려 지상에 떨어지면

내 무덤 속에서 몇 달간 따스하게 지내다

또다시 떠나가지 저 차가운 하늘 바다로,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오 개새끼

못 잊어!

 

– <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사, 1984

 

1등을 하면 기쁜가. 아니. 나는 쫓기는 기분에 불안하기만 했던 것 같아. 2등을 하면 슬픈가. 아니. 나는 좇는 기분에 여유롭기만 했던 것 같아. 그게 아마 나란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었을 텐데, 그래서일까, 등수에 연연해야 하고 성적표에 몸살을 앓아야 하는 학창 시절이 내겐 굴러서 건너가야 하는 가시덤불 늪만 같았어.

한복 만들기를 주 테마로 하던 가사 시간, 바느질 솜씨를 테스트한다며 선생님이 선착순으로 나와 서라고 할 때 나는 한 땀도 뜨지 않은 채 차렷 자세로 앉아 손놀림에 미친 아이들을 둘러보고만 있었지. 왜? 진짜 예쁜 한복을 만들고 싶었으니까. 정물화 그리기를 주 테마로 하던 미술 시간, 정교한 밑그림 실력을 테스트한다며 선생님이 선착순으로 스케치한 스케치북을 걷을 때 나는 연필도 쥐지 않은 채 정물과 빈 스케치북을 번갈아 노려보기만을 반복하고 있었지. 왜? 진짜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니까.

그런 버팀의 결과는 실기 0점. 필기를 더해봤자 양이나 가였을걸 아마. 연타석의 따귀는 내게 홍당무 여사라는 별명을 붙여줬지. 스케치북으로 얻어맞을 때 그 스프링에 그만 내 머리카락이 끼었을 때는 나보다 선생님이 더 당황해서 가위, 가위, 그 무시무시한 도구를 막 불러 찾더라고. 내 짝꿍이 교탁 앞으로 나와 차분히 그 엉킴을 풀어줬는데 손끝이 여간 여문 것이 아닌 친구임에도 가닥가닥 뽑힌 머리카락은 어쩌지를 못해 백지장처럼 하얘진 얼굴로 내 새끼손가락이나 만지작거려댔던 것 같아. 그렇지 않았겠어? 걔가 뭘 할 수 있었겠어, 교탁 옆에서 나는 구토라도 해댔다만.

안 되면 안 할 수도 있고 못 하면 못 할 수도 있는 그런 나름의 탄력적인 긴장의 일은 그리하여 세상에 없는가. 그 호흡에 따를 수 없다고 공포를 외투처럼 껴입고 모멸을 모자처럼 눌러쓴 채 매를 맞아야 한다면 세상 더 살아본들 무엇하리. 일기에 썼더니 엄마가 그걸 훔쳐보고는 날 병원에 데려갔지. “우리 애가 좀 예민한 편이긴 한데요, 이러다 뭔 일이라도 저지를까 가슴이 철렁해서요”, “어머니 별거 아니에요, 공부하기 싫어 부리는 투정이지.”

개 새 끼. 병원 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내가 뱉은 그 욕도 아닌 혼잣말을 나는 그때로부터 근 1년 뒤인 대학 1학년 교양수업 시간에 읽고 있던 시집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어. 얼굴 가리고 몸 숨기기 좋으니까 ROTC들이 떼를 지어 차지한 자리 뒤를 꼭 꿰차고 앉아 학점이고 나발이고 시집이나 눈 빠지게 읽어대던 시절이었는데 글쎄 그 개새끼라는 말 뒤에 이 구절이 붙어 있는 거야. 그러니까 ‘못 잊어’라는 거야. “오 개새끼 못 잊어”라는 거야.

전공이니까 시론 책은 들춰본다지만 무슨 개론 같은 책이야말로 어떤 ‘논’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해서 시에 막막하기가 그지없을 때였는데 이거구나, 이거 아니겠나, 쉬는 시간에 자판기 커피를 뽑는데 컵을 드는 그 손이 부들부들 막 떨려. 작심하지 않은 즉흥적인 몸의 반응, 바로 그 시라는 있음의 증거. 개새끼인데 못 잊겠다잖아. 줄곧 사랑해왔고 곧 죽어도 변치 않을 사랑의 의리를 맹세하는 말이잖아. 시에 욕을 써도 되는가 보네, 하는 순진한 자유, 순정한 팁. 아 시하고 싶다……. 그 시 내가 좀 하고 싶다…….

순전히 내가 좋아서 뛰어든 시의 세계는 뉴스의 세계와는 달랐지. 밥을 씹다 밥맛이 좋으면 물고 잠들어도 이 닦고 자라고 잔소리할 그 누구도 없는 세계였어. 그 밥맛의 음미라는 와중만으로도 충분히 말이 되는 세계였어. 계주 경기를 뛰다 문득 내가 지금 왜 뛰고 있나 경주마처럼 열심히 달려나가는 타 선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트랙 위에 우뚝 설 때 그 정지라는 멈춰봄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세계였지. 내키는 대로 내가 그려볼 수 있는 세계, 그러나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비현실적일 만큼 현실적이어야 하는 세계, 무시무시한 논리의 세계, 그러나 그 논리를 아이들이 갖고 노는 공처럼 말랑말랑하게 단순하게 부풀려야 하는 세계.

짐작하셨겠지만 그런 시의 세계와 꼭 닮고 똑 닮은 세계가 있으니 바로 사랑의 세계. 시작과 끝이 있겠는가. 승자와 패자가 있겠는가. 그 무게에 경중이 있겠는가. 다만 있고가 있고, 였고가 였고였음을 둘이 잡은 손으로, 둘이 놓은 손으로 정의하고 정리할 수 있는 둘만의 개봉과 둘만의 밀봉의 세계가 사랑의 세계이자 시의 세계인 것을. 말이 많다고? 그러기에 외롭다는 말을 내게 왜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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