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 가득한 서점을 만들어가는 나날들

밀양댁 엄마 손 밥상
글과 사진 이미라


커피 향 가득한 서점을 만들어가는 나날들

 

나에게 서점 안주인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준 <청학서점>은 1961년 시아버님께서 창업하신 후 남편이 2대에 걸쳐 58년째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밀양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러본 추억이 있을 것이고, 현재는 시내버스에서 ‘다음 내리실 곳은 <청학서점> 앞입니다’라고 방송할 만큼 밀양의 랜드마크가 됐다. 그런데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추억 내지 역사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신시가지가 생기면서 중심 상권이 이동하고 체감 경기마저 무겁게 가라앉은 현재의 상황에서 애쓰고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음을 실감한다. 사실 그동안 신시가지 쪽으로의 이사를 심각하게 고려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2대에 걸쳐 자리를 지켜온 이곳을 떠난다는 생각을 쉽사리 할 수가 없었다. 주변 점포들이 하나둘씩 비어갈 때도 우리가 잘해나가면 당연히 사람들이 여전히 발걸음을 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황량해지는 거리를 보면서 우리가 버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결단을 내렸다. 신시가지에 2호점을 짓고, 구도심에서 그나마 활기찬 밀양고등학교 앞쪽 거리로 본점을 이전하기로 말이다. 14년 전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날 멀쩡하던 간판이 땅에 툭 떨어지는 기이한 경험을 했었는데, 그 일을 기점으로 대대적 리모델링을 진행했던 기억이 있다. 서점의 하드웨어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시던 아버님의 고집으로 당시 서점을 운영하던 남편은 낡은 간판과 책장 등을 바꿀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런 부분에서 아버님과 마찰이 있던 차였다. 그런데 아버님은 떠나시는 그날에 ‘간판을 내리고 리모델링 하라’는 무언의 허락을 아들에게 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마치 소설 속 이야기처럼 강풍이 불어와 우리 서점의 간판만 바닥에 내려놓고 갔다. 남편은 서점에 있던 모든 책을 직접 옮겼고, 당시에는 생소했던 북까페를 함께 접목시키며 기분 좋은 모험을 감행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서점을 쉬면서 진행한 리모델링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주었다.

어쩌면 요즘 나는 내 인생 일대의 가장 힘들고 복잡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벚꽃이 만개하던 지난 봄날 그 탐스럽고 고운 꽃들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 스트레스 때문인지 늑간신경통이 발병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놀라듯 벌떡 일어나는 버릇도 생겼다. 좋은 일, 나쁜 일 가릴 것 없이 내가 처리해야만 하는 일들이 한꺼번에 터진 느낌이랄까? 과부하가 걸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이 있다. 남편이 직접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이다. 비록 작은 양의 로스팅기지만 매일 커피를 볶는 수고 덕분에 늘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게다가 14년 전 북까페를 준비하면서 대구의 유명한 커피 명인에게 전수받은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 이제 다시 새롭게 태어날 북까페를 위해 남편은 14년 전 그때처럼 매일 커피 내리는 연습을 하고, 나는 다양한 메뉴를 함께 정리하면서 <청학서점> 북까페의 새 출발을 준비 중이다.

북까페에서 가장 공들여 준비하는 메뉴는 핸드드립 커피다. 한 잔 한 잔 정성스럽게 내려서 멋스럽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가끔 핸드드립을 거창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 핸드드립을 배울 때 온도계로 물 온도가 93~94도가 되는지 확인하고, 타이머로 3분의 시간을 재어가면서 커피를 내리라고 배웠다. 드립용 커피 필터를 접는 방법이 따로 있고 원두도 저울에 무게를 체크하면서 기준을 정했다. 한 잔의 커피를 준비하더라도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다소 귀찮은 과정으로 느껴졌다. 음식을 만들 때 눈대중으로 후다닥 만드는 스타일이라 마치 소꿉놀이하듯 아기자기한 드립의 과정이 성미 급한 내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우리만의 방식으로 좀 더 편하고 맛있게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메뉴얼화하고 있다. 핸드드립 커피는 원두의 원산지, 로스팅 정도, 바리스타의 노련함 등을 떠나 신선한 원두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내릴 수 있고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2005년 12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in books’라는 이름으로 서점 3층에 북까페를 처음 열었을 때 우리는 밀양에서 가장 비싼 커피를 팔았다. 커피잔부터 원두에 이르기까지 최고급을 지향했고 진정으로 책과 커피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즐기길 원했었다. 어쩌면 거만했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 애초에 마음가짐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를 계기로 마니아층도 생겨나고 북까페가 흔치 않던 시절 밀양의 핫플레이스가 되기는 했지만 3층에 위치한 북까페를 1, 2층에 있는 서점과 함께 운영한다는 일이 쉽지 않았다. 물론 예약제로만 문을 여는 방식으로 운영했지만 말이다.

 

우리 서점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오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사러 와서 커피도 마시고, 커피를 마시러 와서 책을 살 수 있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하는 중에 새로 준비하고 있는 2호점에 <청학서점> 북까페 ‘in books’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서점이 단순하게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공유하는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고 사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큰 행복이었던 때가 있었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그때는 봉투에 담긴 돈을 직접 받았다), 급여 봉투를 들고 가장 먼저 간 곳이 <청학서점>이었다. 내가 첫 월급으로 샀던 책이 뭔지 아쉽게도 기억나지 않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었던 것 같다. 매달 월급을 받을 때마다 한 권씩 사던 책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었는지 모른다. 요즘은 로컬 서점에서 책을 사는 사람들보다 온라인으로 구매하고 택배로 배달 오는 책을 받아보는 행복으로 바뀌고 있지만, 그 시절 나와 같은 추억을 간직한 이들은 아직도 서점 앞을 지날 때마다 기분 좋은 설렘으로 미소 지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청학서점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찾는 서점이 아니라 언제나 놀러가듯 들를 수 있는 서점이 되길 원한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슬리퍼 질질 끌면서 들러 편하게 모닝커피 한 잔 마셔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길 원한다. 동네 한 바퀴를 걷다가도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가서 <해피투데이> 한 권 사 들고 나올 수 있는 곳이길 원한다. 서점에서 함께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음악회도 즐기고, 수다도 떨고 싶다. 누구나 가장 쉽게 발걸음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서점이 되고 싶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밀양 사람들이 문화의 향기를 나누는 곳으로 차근차근 준비해나가야겠다. 1961년 8월 27일, 처음 <청학서점>의 문을 열던 아버님의 긴장 어린 마음이 어렴풋하게 헤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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