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환경과 평화를 고민하는 7박 8일의 특별한 항해

제13회 피스앤그린보트 항해 취재기
취재 신영배
사진 사이이다, 긴수염, <해피투데이> 편집부

지구의 환경과 평화를 고민하는 7박 8일의 특별한 항해

‘피스앤그린보트’라 명명되는 특별한 배를 타기 위해 사흘 낮밤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을 마무리한 후, 배에 오르기 위해 여수엑스포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곧이어 거대한 보트가 눈앞에 떡 버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순간 다이내믹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나로서는 네 번째 승선. 태양이 이글거리던 한여름의 승선이나, 오늘처럼 비가 섞인 거센 바람이 부는 날의 승선이나 늘 낯선 흥분감에 휩싸이는 건 똑같다. 보트에 오를 때마다 심장박동이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빨라지는 것도 똑같다.

아시아의 화합을 가로막는 환경․역사․사회․정치 등의 문제를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 대안을 찾고자 한국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한일 양국의 약 1,100명의 시민과 매년 의미 있는 항해를 떠나는 피스앤그린보트. 2014년, 처음 피스앤그린보트 항해를 체험한 후, 3년간 함께해 온 나는, 아쉽게도 지난 2년간은 산더미 같은 업무에 치여 함께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2019년 4월, 개인으로는 네 번째 항해이자, 열세 번째 피스앤그린보트 항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필요한 건 모두 갖추고 있어, 차라리 없는 게 무엇인지 찾는 게 빠를 정도의 35,000톤급 ‘오션드림호’가 늠름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또 햇수로 3년 만의 승선인데도 나를 기억해주고 상냥하게 맞이해주는 크루들과 배 안에서 새롭게 만난 한일 양국의 참가자들까지, 내가 기억하는 피스앤그린보트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환경과 평화를 생각하며 떠나는 항해

2019년 제13회 피스앤그린보트는 여수엑스포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해 7박 8일간의 항해 동안 임시정부가 설립됐던 중국 상하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이 투하되었던 일본 나가사키, 아름다운 자연과 비극의 역사가 공존하는 한국 제주도 등의 기항지를 방문했다(부산 도착). 또한, 선내에서는 최근 국내에서나 전 세계적으로 공통의 환경문제가 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플라스틱 프리 아시아’를 기획, 前 해양수산부 김영춘 장관과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의 <선상환경대담: 플라스틱 시대와 우리의 자세>를 필두로 <플라스틱 프리 존>, ‘플라스틱 프리 아시아’ 참가자 워크숍,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 상영 등의 프로그램을 밀도 높게 진행했다. 여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선상토크쇼: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100년>라는 이름으로 한일관계를 넘어 동아시아 역사 문제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그 해결 방안을 위해 환경재단 최열 이사장과 피스보트 공동대표 노히라 신사쿠 등 한일 게스트 6인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밖에도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쓰다>와 시인 박준의 <시 헤는 밤>, 만화 <아톰>의 작가 데즈카 오사무의 제자인 이시자카 케이가 전하는 <데즈카 오사무 만화의 비밀>, 김운성 조각가의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 요리연구가 에다모토 나호미의 <종자법 폐지와 앞으로의 음식에 대하여>,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제주 올레가 만들어낸 지속가능성>, 응급의학 전문의 남궁인의 <글 쓰는 의사가 전하는 삶의 의미>, 일본에서 활동하는 역사학자 이영채 교수의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역사학자 한성민 교수의 <나가사키 군함섬 이야기>, 뮤지션 이한철의 <삶은 여행, LIVE>까지, 심도 있고 함량 높은 선내 프로그램이 한일 양국 참가자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내가 조금 불편해진다는 것

피스앤그린보트 항해 중, 내가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를 꼽자면, 선내 신문을 통해 다음 날 펼쳐질 선내 프로그램을 찬찬히 살펴보는 일이다. 커다란 창을 통해 푸른 수평선이 보이는 소파에 반쯤 누워, 내가 듣고 싶은 강연을 고르고, 잠시 그 시간에 관해 상상해보는 일, 나는 이 시간이 특별히 좋다. 내게 이 선내 신문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강연을 통해 좁았던 시야와 생각의 확장을 경험하는 일,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간 은희경 작가의 강연을 듣고 평소 책에 큰 관심 없던 내가, 선내 책장 앞을 서성거리게 되는 일, 일반 참가자들의 자주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취미를 공유하고 친구가 되는 일은 어찌 보면 이 한 장의 특별한 선내 신문의 영향인 것이다.

 

내가 참여한 많은 선내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시간은 <선상환경대담: 플라스틱 시대와 우리의 자세>였다. 이날 대담에 참여한 김영춘 의원과 홍수열 소장의 공통 의견은 ‘결국,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은 우리 몸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김영춘 의원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멸치 한 마리의 몸에 약 다섯 개의 미세플라스틱이 들어 있고, 우리가 자주 먹는 고등어나 대구 등의 생선에는 더 많이 들어 있다’라며 힘주어 말했고, 이에 홍수열 소장은 ‘미세플라스틱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보고된 바가 없고, 현재 우리는 무지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간 자취를 핑계로,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시켜 먹으며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남용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아니었던가. 나로 인해 발생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 생물과 다른 사람 아니, 결국 나의 생명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또 홍수열 소장은 ‘물론 국가 정책과 산업 전반이 바뀌어야겠지만, 일반 사람들도 쓰레기가 될 만한 제품을 거부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소위 ‘싸가지 없는 소비자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요점이었다. 더불어 내 머릿속에 든 생각 하나, 당장 플라스틱 사용을 제로로 만들 순 없지만, 조금 불편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 조급해하거나 서두르면 금세 지칠 수 있으니, 차근히 그 불편함을 몸에 길들이고, 많은 사람이 이 불편함에 기꺼이 동참한다면 플라스틱 쓰레기는 점차 줄어들 것이고 바다와 자연은 본래의 푸름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제주의 이면에 서린 슬픔

나는 상하이에서 상해 전통문화 체험 코스를 선택해 중국 강남 6대 수향(水鄕)이자 ‘상하이의 베니스’라 불리는 ‘주가각’의 오랜 건물을 보며, 그에 묻어나는 전통의 고아한 운치를 경험했다. 이틀간 정박했던 나가사키에선 첫날, 일본 유일의 화산체험뮤지엄 ‘운젠다케재해기념관’에 들러 살아 있는 지구의 무시무시한 위력과 재해를 잘 극복한 일본인들의 지혜를 목도했고, 이튿날에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내용처럼, 초목이 없던 황무지에 40만 그루의 나무와 튤립 등의 꽃을 심어 자연 친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하우스텐보스의 길을 오롯하게 걸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기항지 코스는 제주도 ‘4.3 평화공원’과 공원 내에 있는 ‘4.3 평화기념관’이었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의 봉기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7년여에 걸쳐 지속된 이 사건은 한국전쟁 이후, 그 인명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으로 인한 인명 피해를 약 3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고,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 1가량의 수치라고 하니, 그 피해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막심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기항지 투어를 평화의 소녀상 조각가인 김서경․김운성 작가와 함께했고, 그들을 통해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내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김서경․김운성 조각가 부부는 ‘현재 제주 공항 활주로 주변이 4.3사건 유해 발굴지여서 그곳에서 많은 유해가 발굴되었고, 2014년 4월 16일,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 승객 304명의 희생자 모습까지 더해져 제주도에 올 때면 늘 마음이 무겁다’라고 말했다. 또 ‘제주 4.3사건 대량 학살로 인해 제주도에서는 매해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많고, 우리가 지금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제주도의 많은 곳이 당시 학살지였기 때문에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은 지금도 내 귀에 여전히 맴돌고 있다. 예정된 모든 기항지 투어를 마치고, 우리의 최종 도착지인 부산으로 가기 위해 다시 배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제주의 풍경을 바라보며, 4.3사건과 세월호 사태의 희생자들을 위해 제법 긴 묵념을 올렸다. ‘잊지 않겠다’는 말이 자꾸 속에서 맴돌았다.

이를 끝으로 나의 네 번째 항해이자, 열세 번째 피스앤그린보트의 항해는 그 막을 내렸다. 이번 항해로 우리 주변에 수북이 산재해 있는 환경과 평화 그리고 사회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렇기에 한일 양국 시민들의 의미 있는 교류와 이 아름다운 항해는 멈추지 않고 더 가열될 것이다. 나는 또 한 번 확신했다. 지구가 더 푸르러지는 길, 세상이 더 평화로워지는 길이 누군가로부터가 아닌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배는 닻을 내렸지만 자,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피스앤그린보트에서 만난 인연들
플라스틱 없이 살았던 배 위에서의 일주일
한국 참가자 / 신고운

우리 자주 보네요! 선상파티 때 인어공주처럼 멋진 칵테일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홍보대행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백수인, 음악과 환경과 동물을 좋아하는 지구인입니다. 환경재단에서 일하는 친구가 피스앤그린보트를 추천해줬는데 마침 제가 일을 그만둬서 타이밍이 맞아 참가하게 됐어요.

 

프로그램 중에 어떤 게 인상적이었나요?

오키나와 사람들이 미 해군기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선거를 통해 미 해군기지 반대를 주장하는 후보를 당선시켰다는 내용의 강연을 들었는데요, 우리나라도 미군기지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정부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고만 있는 것과 달리 이들은 평범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직접 정치에 참여해 이룬 결과라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참가한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는 어땠나요?

두 번 실패했어요. 나가사키 시내의 어느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다행히 점원이 “플라스틱 잔에 드릴까요? 유리잔에 드릴까요?” 묻더라구요. 그런데 유리잔에 빨대를 딱 꽂아 주는 거예요(웃음)! 상하이에서 지도가 그려진 스카프를 샀을 때는 비닐커버가 씌워져 있었죠. 또 있네요. 군함도에 갔을 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어쩔 수 없이 우비를 입었어요. 진짜 안 입으려 했는데 너무 추운 거예요. 플라스틱 없이 살기가 정말 쉽지 않았어요.

 

기억에 남는 기항지도 궁금해요.

군함도에서 충격을 크게 받았어요. 강제 징용된 사람들의 인권이 말살되고, 심지어 그곳으로 돈을 벌러 간 일본인들조차 국가와 기업의 전략에 세뇌당한 어두운 역사를 일본 정부는 인정하기는커녕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어 당시의 산업 기술력을 포장하느라 급급하잖아요. 슬프고 화가 났지만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에 분명 잘못한 것들이 있으니, 이렇게 서로 연결된 문제들을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피스앤그린보트는 ㅇㅇ다.’

‘또 하나의 세상!’ 기항지든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의 추억과 인연들은 이 배 안에서밖에 만들 수 없잖아요. 우리만의 커뮤니티 속에서 교류할 수 있어 참 좋았어요. 인생에 있어 잊지 못할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개설되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와 사진 긴수염
사랑하는 오키나와를 지키겠습니다!
일본 게스트 / 오키나와 에이트(Okinawa Eight)

 

반갑습니다. 오키나와에서 왔다고 들었어요.

네, 오키나와는 현재 미 해군기지 문제로 오랜 시간 속앓이를 하고 있는데요. 저희는 미 해군기지가 지어질 지역에 ‘평화마을’을 만드는 일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 문제를 한국 사람들은 물론 일본 본토의 사람들과도 공유하기 위해 저를 포함한 여덟 명의 친구들이 피스앤그린보트에 탑승했습니다.

 

평화마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세요.

오키나와에 들어설 미 해군기지 건설 문제 역시 찬반이 명확하게 나뉘어요. 찬성 쪽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로 찬성하죠. 저희를 포함해 많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저희는 이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하려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기지 자체가 세워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될 수 있을지. 영토, 목숨, 자본 등 이 세상은 지금 빼앗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빼앗는 사회가 됐기에 이렇게 기지가 세워질 수밖에 없고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의식주, 외교, 에너지 이 다섯 가지가 자체적으로 해결된다면 더 이상 빼앗거나 빼앗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키나와 미 해군기지 문제는 환경 문제와도 직결되죠.

환경 파괴는 미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죠. 해노코 앞바다를 매립해 미 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하는데요, 이곳은 산호초와 해양 포유류 듀공을 비롯한 귀한 바다 생물들이 다종 살아가고 있는 매우 중요한 환경 구역이에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외에 인상적으로 참여한 프로그램이 있나요?

게스트로 참여하신 자이니치 이영채 선생님(케센여학원대학 국제사회학과)과 기항지인 여수를 함께 돌았어요. 선생님께서 전남 출신이라 하시더라구요. 그곳에서 이순신 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오키나와도 한국처럼 무구한 침략과 약탈의 아픈 역사가 있거든요. 한국을 이해하고 오키나와를 들여다보는 데 더없이 소중한 교류의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와 사진 장보영

ⓒ(주)혜인식품-네네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