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의 푸른 용을 찾아서

옐로나이프 오로라 헌팅
글과 사진 긴수염

북녘의 푸른 용을 찾아서

로키를 탐험하며 가까워진 K는 캘거리 북쪽 방향 비행기로 3시간여 걸리는 옐로나이프의 투어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사장이 웹사이트를 리뉴얼하고 관리할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왕복 비행편과 투어 비용 및 숙식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업무량이 파악되지 않았지만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기대와 K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덥석 수락했다. 캘거리에서 희미하게 만났던 푸른 용을 언젠가 선명하게 만나러 가겠다던 꿈은 그렇게 불쑥 이뤄지게 됐다.

 

사장 J는 옐로나이프 원주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투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밤마다 관광객을 대형 봉고차에 싣고 오로라를 찾으러 다녔다. 그는 자신을 ‘오로라 헌터’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말하니 오로라가 살아 있는 생명처럼 느껴졌다. 가을은 대체로 흐리고, 구름이 관건이었다. 첫날에는 잔뜩 찌푸린 하늘이 열리길 한참 기다린 끝에 희미한 초록빛이 너울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로라를 볼 수 없을 때는 모두가 무지개 야광봉을 흔들며 달빛 별빛 아래 춤을 췄다.

 

닷새째 밤이었나, 약간의 구름이 있었지만 강력한 오로라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으어 흐어’ 하며 알 수 없는 신음을 내뱉다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막상 오로라가 다가오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처음 보는 커다란 야생동물을 만날 때의 감정과 비슷했다. 마치 푸른 용이 머리 위를 지나가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말로 너울너울 S자로 날아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웅- 웅-’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갑자기 악상이 떠오르는 등 엄청난 영감을 받았다. 푸른 용의 몸짓이 나를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것 같았다.

 

오로라는 정지된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는 이어지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게 훨씬 실감 날 것 같다는 생각에 영상으로 담아보려 했지만 똑딱이 카메라로는 한계가 있었다. 영상은 포기하고 사진을 연신 찍으며 셔터가 열려 있는 동안 흘러가는 오로라가 사라지기 전에 내 마음에 퍼 담았다. 가슴이 초록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문득 랭보가 마시던 에메랄드빛 압생트 한 잔이 간절해졌다. 자연에 맛이 있다면 오로라는 바로 그 맛일 테다. 오로라 뒤로는 반짝이는 별사탕들. 배가 고픈가 보다.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커피와 메이플 쿠키를 나눠 먹었다.

오로라 지수가 최고일 때는 분홍빛 오로라가 나타났다. 청룡과 적룡이 같이 나타나는 날도 있었다. 핏빛의 적룡이 나타날 때는 세기말적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사도와 <카우보이 비밥>의 레드드래곤이 겹치기도 했다. 때로는 검은 장막 같은 하늘에 무지갯빛 오로라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언젠가 꿈에서 봤던 장면과 너무 흡사해 지금 이 순간이 꿈인지 생신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아주 먼 곳에서 늑대들이 하울링을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J에 따르면 옐로나이프 주변에 늑대무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 곰, 여우, 무스, 순록, 독수리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도심이든 야생이든 어디에나 까마귀와 큰까마귀가 있었고 그들의 소리가 들렸다. 이 땅의 원주민이 예로부터 숭배했고, 이제는 마스코트로 지정됐다. 마을의 암벽에는 까마귀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고, 기념품 가게에는 큰까마귀를 소재로 한 작품이 즐비했다. 지구상에 몇 명 되지 않을 까마귀 마니아들에게 이곳을 알려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J는 독수리를 볼 때마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마더!!”라고 외쳤다. 우리 모두는 자연의 자식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과 동물과 child라는 단어가 조합된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어떤 동물의 자식을 할까. 늑대? 큰까마귀? 즐거운 고민이 시작됐다. 이미 로키에서 스스로 ‘긴수염늑대’라는 이름을 지었으니 뒤에 child만 붙여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럼 늑대 자식인 걸로. 점점 길어지는 이름이 재밌다. 한국식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는 그에게 ‘청룡’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는 ‘푸른 용’이라는 뜻에 흡족해하면서 한국에 가서 그 이름을 쓰겠다며 껄껄 웃었다.

 

J의 집에서 지내면서 가끔 그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누나부트주의 어딘가가 고향인 Y는 자연과 동물을 아끼는 나에게 관심이 많았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나중에 자기의 고향에 꼭 놀러 오라고 했다. 공수표가 아니었다. 서서히 급격하게 사라져가는 것들, 나에게 보여줄 게 너무 많다고, 기후변화로 점점 녹아내리는 북녘에 아직도 이글루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기후변화로 점점 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지구 파괴적 체제에 별 저항 없이 살고 있는 나에 대한 죄책감 등이 동시에 일렁였다.

자본주의에 저항하며 이윤을 추구하지 않고 야생에서 자급자족하고 싶은 나의 거창한 이상과는 다르게, 현실은 밤에 투어를 시작해 오로라를 쫓아다니며 손님들을 안내하다가 몇 시간 뒤 숙소에 돌아오면 바로 사진을 정리하고 로고를 박아서 손님들에게 각자의 사진을 전송해주는 패턴이었다. K가 손님과 일정 관리를 하는 동안 나는 웹사이트를 리뉴얼했다. 케케묵은 앨범을 열어 먼지를 털고 새로운 사진을 채워 넣는 기분이 들었다. 새벽 무렵 비로소 일이 끝나고 같이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업무량이 가중됐고, J가 업무 외의 요구를 하자 아무리 오로라를 봐도 즐겁지 않았고 몸과 마음이 고단해졌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우리를 세뇌하려는 모습이 안타깝다 못해 불쾌했다. 얼핏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긴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업체를 운영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면에서는 기본이 없는 사람이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부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J와 우리의 마음 사이에 굵직한 경계가 생겨났다.

문득 기울어져 있는 지형에서 모두를 위한 평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됐다. 신분이 불안정한 외국인으로서, 노동 조건이 모호한 상황에서 K와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서로의 일상을 지켜낸 시간들이 나에게는 작은 평화였다. 문제를 제기하고, 균형을 맞추려 진통할 때, 내 마음은 오히려 평온해진다는 걸 알았다. K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눈 뒤 두꺼운 구름을 뚫고 올라간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상에는 오로라가 반영되던 호수들이 저무는 태양에 반사돼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옐로나이프라는 지명이 그제야 와닿았다. 검은 장막이 드리워지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딘가에서 헤엄치고 있을 북녘의 푸른 용에게 지구와 모두의 평화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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