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구겐하임 뮤지엄과 힐마 아프 클린트의 ‘미래에서 온 그림’

현경의 뉴욕 스토리
글과 사진 현경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과 힐마 아프 클린트의 ‘미래에서 온 그림’

뉴욕 5번가와 89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 하얀 소라 모양의 솔로몬 구겐하임 뮤지엄(Solomon Guggenheim Museum)이 있다. 나선형으로 돌아 올라가는 이 건물은 마치 탑이나 신전 같은 느낌을 준다. 1959년에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에 의해 지어졌다.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이 1943년 건축가에게 ‘영혼의 신전(A Temple of Spirit)’이나 ‘기념비(A Monument)’처럼 디자인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그 바람을 실현시켰다. 안타깝게도 건축가는 구겐하임 뮤지엄을 개장하기 6개월 전 세상을 떠났다. 뉴욕인들의 사랑을 흠뻑 받고 있는 이 뮤지엄이 올해로 60주년을 맞는다. 환갑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환갑이 육십갑자를 다 끝내고 새롭게 삶을 세팅하는 큰 의미가 있듯이, 구겐하임 뮤지엄도 이제 세계 최고의 뮤지엄 중 하나로 자신의 위치를 확립했고 새로운 도약을 할 단계다. 60주년을 기념하며 그들은 스웨덴 출신 예술가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특별전’을 열었다. 나는 그녀에 대한 아무 사전 지식 없이,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출신 여성 큐레이터인 아이리스 문의 인도로 힐마의 작품 전시회에 가게 됐다. “교수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은 작품들이에요.” 아이리스는 내가 참 좋아할 작품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했고 나는 작품을 만나자마자 그녀의 예감이 적중했음을 알았다.

 

힐마의 작품에는 이상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그녀는 르누아르가 살던 시대, 그러니까 인상파시대의 작가였을 텐데 소녀나 꽃, 풍경의 모습은 하나도 없고 유전자 모양이나 피라미드, 원 같은 추상적 상징과 알지 못할 수학적 기호가 가득한 작품들을 그렸다. 마치 우주인의 암호 같은 그림들. 그녀의 연대기를 보니 1862년 10월 26일에 태어나 1944년 10월 21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82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57년 전에 태어난 여성의 작품이 오늘 구겐하임 뮤지엄에 걸려 있다. 그녀에 대해 알아갈수록 내 가슴은 설레어 뛰다 나중에는 터질 것 같았다. 그녀의 작품은 그녀가 죽은 뒤 42년 만에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그녀는 죽을 때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작품을 20년 동안은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무엇이 그녀에게 이런 유언을 남기게 했을까? 아마도 그녀의 그림들이 ‘미래에서 온 그림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힐마는 스위덴에서 군인의 딸로 태어난다. 아버지가 해군 제독이어서 그 당시의 다른 여성들과 달리 미술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녀도 그 당시의 화가들처럼 풍경화나 인물화를 그리는 법을 배웠고 그런 그림들을 그려 독신여성으로서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일생을 살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그녀는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 신으로부터 온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힐마는 20년간 매주 금요일마다 5명의 여성과 기도 모임을 가졌다. 5명의 여성들은 깊은 기도, 명상 상태에서 천상의 목소리를 들었고 다른 세계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를 봤다. 그리고 영이 시키는 대로 손을 움직여 그림을 그렸다. 그녀들의 그림은 ‘다섯(the Five)’이라는 작가명으로 구겐하임에 전시됐다. 밑그림 없이 그냥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렸다 한다. 마치 유전자 지도나 현미경 속에서 보는, 물리학 문제를 푸는 듯한 그림들이 그녀들의 기도 모임을 통해 세상으로 왔다.

 

 

힐마는 신지학(Theosophy)에 심취해 있었으며 깊이 기도하고 명상하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이러한 수련을 통해 영의 세계와 만나게 됐고 그들의 메시지를 받는 영매가 됐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20년이 지나 40대 중반이 됐을 때 그녀는 ‘신전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라’는 영의 소리를 듣는다. 그녀는 그 목소리에 복종하며 거의 10년간 신전에 들어갈 그림들을 그렸다. 그녀는 그리는 과정에 대해 쉽고 행복했다고 한다. 구겐하임의 가장 큰 전시장을 차지하고 있던 인생의 여러 계절을 나타내는 거대한 작품 10개를 40일 만에 그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4일에 1편씩 그려 10개의 대작을 완성한 것이다. ‘신들려서 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사람 키의 2배 씩이나 되는 대작 10개를 40일 만에 완성 시킬 수 있었을까? 그 작품들은 모양, 색깔, 구성에서 기가 막힌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녀는 이런 영매로서의 그림 작품을 우리에게 1,000개나 남겼다. 그녀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고양되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따뜻하고 신비롭고 아름답다.

 

나는 힐마의 작품을 보며 시대보다 너무 일찍 온 여성 아티스트의 삶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된다. 그리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나보다 한 세기를 빨리 왔던 위대한 영혼과 영혼의 차원에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의 용기, 지혜, 창조력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나는 나보다 100년 전에 온 여성 예술가 선배인 힐마 아프 클린트에게 무엇을 배우는가? 그녀의 삶의 무엇이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가?

 

 

첫째, 그녀의 신과 자신에 대한 깊은 믿음이다. 그녀에게 들리는 신의 목소리, 천사와 성자의 목소리를 그녀는 세상사에 짓눌리거나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 목소리와 비전들을 온전히 받았고, 기록했고,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녀가 영과 나눈 대화, 받은 계시를 기록하고 그림으로 그린 그녀의 일기장은 150권이 넘는다. 그녀는 그것을 잘 보관해 자신의 조카에게 물려줬다. 힐마는 기도와 명상 속에서 나타나는 목소리들과 이미지들을 의심하지 않았고, 목소리의 권고에 순종했고, 자기를 비워 높은 세계의 지혜를 표현하는 도구가 됐다.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렸고 글을 썼다. 그녀의 삶은 신비로움 자체였다. 힐더가르드 폰 빙엔, 아빌라의 테레사 수녀처럼 그녀는 빈 그릇이 돼 신의 보물을 받았다. 힐마는 일생 딱 한 번의 전시를 했는데 그것은 영적인 그림 전시가 아닌 풍경화, 꽃그림 전시였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일반인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가 심취했던 신지학(Theosophy) 그리고 인지학(Anthrosophy)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스승인 인지학의 대가 루돌프 슈타이너와의 에피소드는 뛰어난 여성 제자 그리고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남성 스승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힐마는 스승 루돌프 슈타이너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래서 그를 믿고 자신의 그림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녀의 스승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그녀의 그림에 대해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선 그는 그녀가 누구도 거치지 않고 영들과 직접 소통한다는 것을 위험하게 보면서 그녀가 경험하는 신과의 관계를 격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림에 남녀가 동등하게 진화되는 모습을 그린 것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 그림의 바탕이 칠흑 같은 검정색인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했다. 힐마는 스승의 부정적 평가를 듣고 4년이란 세월 동안 어떤 그림도 그릴 수 없었다. 고민하던 그녀는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편지를 써서 질문했다. “이 그림들이 스승의 마음에 그토록 들지 않는다면 태워버릴까요?” 하고. 그녀의 스승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 그녀의 스승이 “당신은 부정한 영들과 소통해서 그 그림들을 그렸으니 정화하는 의미에서 태워버리라”고 했다면, 그래서 그녀가 스승에 대한 존경 때문에 그 귀한 작품들을 전부 태워버렸다면, 우리는 이 천재적 예술가의 작품을 볼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렸을 것이다. 힐마가 그녀를 이해 못 하는 스승과 세상보다 신과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더 믿은 것이 너무도 감사하다.

 

 

둘째, 그녀는 현대 미술사에서 추상화를 처음 시작하는 역사적 족적을 남겼다. 현대 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을 시작한 사람을 지금까지는 칸딘스키로 보았다. 힐마는 칸딘스키보다 2년 전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추상화를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모든 추상미술의 어머니가 됐다. 그녀가 이토록 오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여성이라 누구도 그녀의 작품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점도 있다. 그녀가 죽은 후 20년이 훌쩍 넘은 1970년에 그녀가 그림을 남긴 조카가 힐마의 작품을 스웨덴 현대 미술관에 기증하려 했었다. 그러나 미술관은 그녀의 작품을 거부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녀의 그림을 발견한 미술사가 아케 판트(Ake Fant)가 그녀의 작품을 1980년에 국제 대회에 소개했고, 1986년 처음으로 그녀의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그녀가 태어난 지 124년 만에, 그녀가 영적인 그림을 그린 지 거의 80년 만에, 그녀의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그녀는 영적 세계의 가이드가 그녀에게 해준 말을 믿었다. “당신은 새 시대의 맨 앞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 힐마는 기존 종교와 예술의 틀을 깨는 새 시대를 열었다.

 

 

셋째, 그녀는 영들에 의한 그림들을 그리며 참 행복했을 것 같다. 그녀의 영들과의 대화는 그녀의 일상 그 무엇보다도 그녀를 행복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그녀는 왜 결혼하지 않고 일생을 혼자 기도하며 그림만 그리고 살았을까? 아마 그러한 삶이 세상의 그 어떤 삶보다도 귀하게 느껴져서 그랬을 것이다. 그 경험이 주는 기쁨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기에 힐마는 그렇게 비밀스럽고 고독한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이 미래를 위한 그림, 미래에서 너무 일찍 온 그림이라는 것을 분명히 잘 알았기에 누구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어미 닭이 알을 품듯 일생 동안 몰래 품고 보호했을 것이다. 그녀는 반 고흐처럼 아무도 자기의 그림을 알아주지도, 사주지도 않는 세상에 좌절해 불행해하지도, 광인이 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기에 흔들리지 않고 지혜로운 ‘힐마의 이중생활’을 했다. 그 당시 보통 미술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하듯 초상화를 그려주고 생물도감에 꽃그림을 그려주며 경제적으로 독립적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녀만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100년 후에나 알아줄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긴 시간에 대한 안목에서 삶의 비밀을 배운다.

 

힐마의 생전에 영들이 그녀에게 나선형으로 생긴 신전에 그녀의 그림들을 걸으라고 했다. 그녀는 살아생전 그런 신전을 찾지도, 짓지도 못했다. 그런데 100년 후 초종교시대에 영적인 사원의 이미지로 만든 나선형의 구겐하임 뮤지엄에 자신의 작품을 걸었다. 신을 잃어버린 시대의 신전인 아트 뮤지엄 구겐하임. 힐마가 구겐하임 신전에 걸린 자신의 그림들을 미소 띤 얼굴로 보며 뮤지엄을 천천히 거닐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갑자기 내 눈에 눈물이 봄비처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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