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안데르탈인은 왜 멸종했나?

어서 오세요! 동화의 숲
글 변왕중
그림 변다인

 

네안데르탈인은 왜 멸종했나?

하야시 아키코 <달님 안녕>

‘까꿍 놀이’라고 있다. 다들 알겠지만, 혹시 모르는 사람을 위해 방법을 설명한다. 우선 아기가 필요하다. 아기가 준비되었으면 두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가린다(아기의 얼굴을 가리면 운다). 그런 다음, 두 손을 펼치고 얼굴을 보이면서 즐겁게 외친다. “까꿍~” 다시 얼굴을 가렸다가 보이면서 외친다. “까꿍~” 아마도 아기는 좋아서 깔깔깔 자지러질 것이다. ‘까꿍 놀이’를 너무 많이 반복하면 아기의 배꼽이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하도록.

 

지구상에는 인류의 직계조상인 호모사피엔스 말고도 최소한 24종의 인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호모사피엔스와 마지막 빙하기를 오랜 시간 함께했던 네안데르탈인이 있다. 소규모의 집단을 이루었던 이 인류는 호모사피엔스보다 체격도 더 좋고, 뇌도 더 컸다. 그뿐인가. 저희만의 언어로 소통을 하면서, 야생의 적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식량을 구했다. 심지어는 동족의 상실을 슬퍼해 주검에 예쁜 꽃을 바치면서, 삶 너머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네안데르탈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그들보다 신체적으로 약하고 뇌도 작은 호모사피엔스는 살아남았을까?

 

<달님 안녕>은 어두운 밤, 고운 달님이 점차 환하게 떠오르다가 구름에 가려지고 다시 달님이 나타나는 모습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그림책이다. 덧붙이자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20여 년 전 나도 딸에게 이 책을 읽혔고, 지금의 부모도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힌다. 그 당시 “달이 떴어요”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20개월 된 딸은 통통한 두 손을 짝 부딪치며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쪽빛하늘 밑에 어두운 집과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감청빛으로 변한 하늘과 불이 켜진 집으로 밤을 알리며 어디선가 나타난 고양이가 함께 움직인다. 작은 집 뒤로 환한 빛을 발하며 아주 조금 달님이 떠오른다. 쑥스러운 듯 조심스레 달님은 고운 얼굴을 드러내고 두 마리 고양이는 달님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만 무심한 구름 아저씨가 나타나 고운 달님 얼굴을 가려버리고 달님은 슬퍼진다. 금세 구름은 미안하다며 비켜나고 방긋 웃는 달님 얼굴이 나타난다. 달님, 안녕!

 

<달님 안녕>의 줄거리다. 아니, 그림책이 위 줄거리보다 더 단순 명확하니 줄거리라기보다는 풀어 설명한 글이다.

 

학자들은 호모사피엔스의 긴 유소년기에서 해답을 찾는다. 인류는 우리가 아는 종 중에서 가장 유소년기가 길다. 생각해보면 인류는 다른 동물에 비해서 굉장히 미숙한 상태로, 또 너무 비효율적으로 기나긴 유소년기를 보낸다. 사실 자연계에서 유소년기는 짧을수록 좋다. 길어질수록 종의 생존은 불리하다. 하루빨리 성인이 되어 가족이나 집단에 도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략 30세 안팎의 수명을 가졌던 네안데르탈인은 신속히 유소년기를 통과해 어른으로서 한 사람의 몫을 다했다. 이 강하고 진화된 신체를 가진 인류에게 육체적 능력이 곧 생존능력이었다. 성년기에 도달하기 위해 허겁지겁 몸집을 불린 네안데르탈 집단의 총합은 개개인의 육체적 능력의 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멸종되거나 호모사피엔스에 흡수되었다.

반면에 호모사피엔스는 끝끝내 살아남아 현재의 인류로 진화했다. 얼른얼른 몸을 불려 성인이 되는 대신 긴 유소년기를 택했다. 십수 년의 시간 동안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사회성을 습득했다. 그렇게 꿈꾸는 존재로 더 크고 넓은 집단을 만들어갔다. 더 나아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물들을 받아들이는 기품 있는 존재가 되었다. 꿈꾸는 개인의 행복과 더불어 사는 공동의 행복을 이해했다. 그리하여 얼굴이 있는 노란 달님과 사과하는 구름과 예민한 행동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두 마리 고양이가 등장하는 그림책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달님과 구름과 고양이의 친구가 되었다.

 

<달님 안녕>은 ‘까꿍 놀이’다. 빈 하늘에 달님이 등장하고, 구름 아저씨가 달님을 숨기고, 다시 달님이 나타난다. 그런 순간마다 고양이들의 모습이 변한다. 누구나 한 번쯤 ‘까꿍 놀이’의 경험이 있다. 이 간단한 놀이는 자연스럽게 존재란 나타나고 사라진다는 것을, 또 반대로 사라졌다 나타난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 책은, 사람은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들과 더불어 살아간다고 알려준다. 우리도 언젠가 사라지고 나타날 것이며,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존재할 거라고 속삭인다. 사람이란 달과 구름과 고양이에게 언어를 부여하고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고, 이 모든 것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고, 이 모든 것을 책으로 표현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준다. 왜 아니겠는가?

사람은 다 함께 있어 행복한 존재다. 모든 사물에 언어를 부여하는 꿈꾸는 존재다. 그 사물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존재다. 달님에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할 수 있고, 달님의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존재다. 지구상에서 가장 긴 유소년기를 가진 존재이며, 그것을 통해 현재에 도달한 존재다. 어서 빨리 어른이 되길 거부했기에 살아남은 존재다.

 

그 옛날의 전쟁터가 자연환경이었다면, 지금의 전쟁터는 우리가 만들어낸 사회다. 우리는 자연이 아니라 사회적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그런데 이 사회는 아이들에게 한시바삐 어른이 되라고 강요한다. 어서어서 배우고, 어서어서 커서 현대 사회를 굴려 가라고 명령한다. 한시바삐 어른이 되어 아버지와 삼촌의 손을 잡고 사냥을 나가야 했던 네안데르탈인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거꾸로 네안데르탈인의 세계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고 강하고 당장의 이익과 생존에 매달리는 존재가 될 때,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가 끝이 없어 보이는 수십만 년의 혹독한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더 잘 싸우는 자가 되기보다는 저마다 색다른 행복을 꿈꾸고, 이것을 위해 서로의 손을 잡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것이 우리 인류가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다. <달님 안녕>, 여기에 인류의 모든 것이 있다.

ⓒ(주)혜인식품-네네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