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달에 한 번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의자에 앉는다

꽃과 잎사귀와 문장들
글과 그림 박소언
나는 한 달에 한 번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의자에 앉는다

얼마 전부터 나는 한 달에 한 번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의자에 앉는다. 정해진 얼마간의 시간 대부분을 내 쪽에서 써야 하는데, 보통의 내 대화방식과는 다른 것이어서 처음에는 좀 애를 먹었다. (나는 주로 듣는 일이 더 쉬운 쪽의 사람이다.) 하려고 하는 이야기들이 형체가 없는 채로 명치 안쪽에서 한 번, 문장을 만들며 머릿속에서 한 번 덜컹 제동이 걸린다. 간신히 목젖까지 끌어와도 그걸 내뱉지 않고 입안에서만 굴리다가 다시 삼켜버리는 일이 많았다. 마주 앉은 사람은 메모를 하거나 내 눈을 바라보거나 망설이는 나를 기다려주면서 몇 가지의 질문들로 이야기의 방향을 틀기도, 더 안쪽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첫날의 나는 거의 아무런 얘기를 하지 못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 마나 한 이야기들만을 질문에 맞춰 꾸역꾸역 답하는 정도였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도, 적당한 점심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별 게 없네’라고 속으로 낮게 말했다. 거실에 앉아 사 온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거기 의자에 앉아서 자꾸만 덜컹거리던 단어들이 오는 동안 액체로 변해버린 것처럼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샌드위치를 입에 문 채로 그냥 울어버렸다. 그날 내가 울어버려서, 나는 다시 한 번 더 의자에 앉기로 마음먹었다.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나를 보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잘 안 보던 나의 한 부위를 들춰 보거나, 때로는 내 뼈나 장기를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쪽으로 오지도 않은 질문과 또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내 말 안에서 동시에 생겨난다. 이제 나는 내가 좀 한심하게 여겨지는 대답이어도 그 말이 일단 안에서 만들어지면 막지 않고 한번 밖으로 뱉어본다. 그렇게 하면 안이 아니라 밖으로 뱉어진 것, 지금은 밖에 있지만 줄곧 내 안에 있던 것, 여전히 어떤 구석에 남아 있는 그걸 바깥에서 볼 수 있다. 어떤 건 연기처럼 흩어져버리고, 어떤 건 더 또렷해진다. 어떤 건 너무 차갑고, 어떤 건 참 무르고 하얗다. 어떤 나는 가엽고, 어떤 나는 날카롭다. 어떤 나는 모두와 함께이고 어떤 나는 홀로 서 있다. 열두 살의 나와 스물의 나, 서른하나의 내가 불쑥 나를 만나러 온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의자에 앉아서 내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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