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인연의 끈만으로도 멀리까지 갈 수 있는 사람

김남희의 여행의 일상
글과 사진 김남희

희미한 인연의 끈만으로도 멀리까지 갈 수 있는 사람

볼 수 없어서 더 보고 싶은 아빠에게.

아빠가 내 곁을 떠난 후에 습관이 하나 생겼어. 길 위에서 종종 아빠를 부르곤 하는 거지. 신실한 사람들이 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마음으로 나는 아빠를 불러. 사는 일이 새삼 만만치 않아서 어깨가 처지는 날에도, 좋은 일이라도 생겨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운 날에도, 저마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쓸쓸한 밤에도,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아빠를 불러. ‘아빠,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거지?’ 그렇게 물으면서.

카미노 포르투갈 길을 걷는 지난 스무날 동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빠를 부르곤 했어. 술 취한 사람처럼 주절주절 맥락도 없는 말들을 아빠에게 던지며 걷다가 자주 눈물이 글썽해지곤 했지. 그러다 오늘은 남의 집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빠를 부르며 대성통곡하고 말았어. 바보 같은 그 모습을 아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고 있었겠지? ‘괜찮아, 아빠. 나는 곧 씩씩해질 테니까.’

좀 지쳐 있었나 봐. 첫날부터 허리가 아팠고, 지난 며칠간 계속 비가 내렸고, 길 위에 순례자는 너무 드물었거든. 아무하고도 마음을 나누지 못하면서 혼자 걷다 보니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던 거야. 네루다의 시구(詩句)를 빌리자면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던 거지.

아빠, 등에 멘 배낭의 무게가 나를 짓누를 때면 종종 아빠의 등에 얹혀 있었을 우리 삼 남매의 무게를 생각해보곤 해. 나 하나 건사하고 사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아빠는 어떻게 고단한 삶을 버텼을까. 아빠에게 우리는 어떻게든 지켜내야만 하는 간절한 것들이었을까. 아빠는 도망치고 싶었던 날이 없었을까. 그럴 때면 아빠는 무엇으로 그 마음을 견뎠을까. 이제는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아빠에게 던지곤 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새삼 아빠가 고마워져. 우리를 낳아줘서, 잘 키워줘서, 성인이 되어서도 늘 지켜봐줘서. 무엇보다 아빠가 나를 낳아준 부모로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고마워. 나이가 들수록 나는 점점 아빠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존경하게 돼. 아빠가 살았던 외로운 삶, 최선을 다했지만 마지막까지 일을 해야 했던 삶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평생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던 아빠. 그런 아빠여서 고마웠어. 이제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미덕인지 아니까.

아빠, 나는 아직도 세상을 떠돌며 살고 있어. 그렇지만 나는 이제 한자리에서 붙박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뚝심을 좋아하게 되었어. 우리는 저마다 소중한 그 무엇을, 지켜야만 하는 가장 절실한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거라고 인정하게 되었어. 열몇 평 구멍가게에 갇힌 아빠의 세계는 좁았지만, 아빠에게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계였던 거겠지. 가족을 먹여 살리게 하는 공간이었으니까. ‘누가 누구를 먹여 살린다’ 이 말에 실린 무게를 생각하면 아빠, 나는 한숨이 나. 나는 고양이 한 마리조차 죽는 날까지 먹여 살릴 자신이 없어서 키우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아빠, 내가 더 넓은 세상을 보며 살겠다는 이유만으로 이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빠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이혼하면 너는 내 딸이 아니다’ 아빠는 그렇게 말했어.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지. 이혼을 하고 갈 곳 없어진 내가 아빠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아빠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나를 맞았어. 다정한 포옹 같은 건 없었지만 아빠는 나를 받아들였어.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결혼이나 이혼, 이런 문제에 관해 말을 꺼내지 않았어. 누구보다 내가 가는 길을 응원하고 믿어주고 격려해줬던 아빠, 정말 고마워. 내 책이 나올 때면 구멍가게에 책을 쌓아놓고 동네방네 자랑하던 아빠가 좀 창피하기도 했지만, 아빠가 제일 든든한 내 지지자였음을 알아.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한국에 알렸다는 공로상을 받으러 스페인에 와서도 나는 아빠 생각이 많이 났어. 아빠가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나보다 더 좋아했을 아빠에게 상을 보여줄 수 없어서 속상했어.

   

아빠, 내가 좋은 일로 유럽에 왔으면서도 걷는 동안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알아? 돈 때문이었어.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 부자로 살겠다고, 평생 가난해도 괜찮다고 했으면서 돈 때문이라니. 아빠, 나 좀 웃기지? 서울로 돌아가면 내가 사랑하는 집을 떠나야 할 상황이 될지도 모르거든. 아빠는 내가 사는 부암동 집에 한 번도 못 와봤지. 어쩌다 엄마가 놀러 올 때도 아빠는 가게를 지켜야 했으니까. 아빠, 나는 열아홉 평짜리 그 작은 집을 정말 사랑해. 그 집이 있어서 나는 떠날 수 있었고, 돌아올 수 있었어. 그 집은 어른이 되어 엄마아빠의 집을 떠난 이후, 내가 처음으로 ‘내 집’이라고 마음 붙이고 산 공간이었거든. 누가 전셋집에 제 돈 들여 수리를 하냐고 비웃음을 사면서도 나는 그 집을 고쳤고, 옥상에 텃밭을 만들었고, 쓸고 닦으며 집을 가꿨어. 내가 서울에 사는 한, 그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어. 옥상의 해먹에 누워 인왕산의 이마를 바라볼 때, 햇살이 깊이 들어오는 거실에 앉아 손발톱을 깎을 때, 책을 읽으며 반신욕을 할 때, 찬바람 부는 밤에 뜨거운 차를 우려 침대에 기대어 앉을 때, 나는 그걸로 충분했어. 낯선 도시의 도미토리에서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에도 돌아갈 내 집을 생각하면 기운이 나곤 했어. 그 집은 나에게 교회였고, 사원이었고, 병원이었고, 쉼터였어. 그런 집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던 거야. 여기까지 와서도 머릿속에는 집 생각이 가득했어. 세상 천지에 나만 집이 없는 사람 같았어. ‘이럴 때가 아닌데, 돈을 구해야 하는데, 언제 떠날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더 집에 있어야 하는데…’ 뭐 이런 생각들 말이야. 어리석지? 여기서 지금 걱정을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알면서도 집 생각에 매여서 나는 카미노를 조금도 누리지 못했어. ‘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더는 안 되는 건가’ 싶어서 길거리에서 울었던 거야, 오늘.

아빠, 그렇게 눈물 콧물 쏟다가 순례자 숙소를 벗어나 호텔로 왔어. 욕조가 있는 방을 얻고, 제일 먼저 뜨거운 물을 받아 반신욕을 했어. 좁은 이층침대가 아닌 넓은 침대에 누워 기절하듯 1시간쯤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으러 나갔어. 해산물 수프에 생선구이를 시켜서 잔뜩 먹었어. ‘먹고 힘내자, 푹 쉬고 다시 걷자’ 중얼거리면서. 마이너스이던 내 통장도 조금 빵빵해졌어. 다정한 사람들 덕분에 나는 몇 번쯤 괜찮은 숙소에서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걸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를 또 울게 만든 그들의 마음에 기대어 다시 가보려고, 아빠.

   

아빠, 나는 혼자 걷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혼자는 아니었던 거야. 지켜봐주는 이들의 응원이 있었고,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손들이 있었어. 아빠 딸이 그래도 인생을 나쁘게 살진 않았나 봐. 갚을 수 없는 그 빚이 조금 무겁고 무섭기도 하지만, 걸으면서 만나는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어. 그리고 돌아가면 내가 사랑하는 그 집에 더 머물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려고. 그랬는데도 안 되면, 그때는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거지! 그게 내 삶이었잖아. 배낭 하나만 메고 어디로든 가면서 살아왔으니까. 어디에도 집을 짓지 않은 대신 세상 전부가 내 집인 삶이었잖아. 그걸 기억하는 한 어디에서든 난 괜찮을 거야.

아빠, 고마워. 내 넋두리를 다 들어주고, 내게 힘을 줘서. 무엇보다, 나로 하여금 무언가 쓰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줘서.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내게 그랬어. 나는 희미한 인연의 끈만으로도 아주 멀리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 가느다란 끈을 붙잡고 다시 가보려고.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봐줘, 아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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