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카나베제에 사는 테레지나의 달걀 보관법

살아 있는 부엌
글과 사진 류지현

이탈리아 카나베제에 사는 테레지나의 달걀 보관법

온 가족이 모이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식탁에 둘러앉아 테레지나의 엄마 안젤로네가 건넨 와인을 손에 쥐고 주변을 둘러본다. 이탈리아 카나베제 지방의 널찍하면서도 소박하게 정리된 부엌. 민트색 벽에는 세월의 더께가 그대로 보이는 벽시계가 오늘도 소임을 다하고 있다. 손주 얼굴이 커다랗게 인쇄된 달력이나 부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장난감을 보면 여느 할머니 할아버지 집과 다르지 않다.

점심 설거지를 막 마친 안젤로네가 벌써 저녁 준비를 하는 걸까. 부엌 한쪽에 있는 진녹색 나무 오븐 위에서 냄비가 조용히 끓고 있다. 그 오븐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아버지 마조리노를 보고 있자니 꼭 오래된 그림엽서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두리번거리고 있는 내가 마음 쓰였는지, 마조리노는 ‘찬물을 줄까, 탄산수도 있는데, 와인은 마시느냐’면서 이런저런 말을 건다. 식사 후 꿀잠을 방해한 불청객일 텐데 멀리서 온 손님이 혹여나 불편해할까 봐 살피는 마음이 그저 고맙다.

그릇장 옆으로 나 있는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테레지나가 달걀 몇 알을 손에 들고 들어온다. 아버지 마조리노를 꼭 빼닮은 그녀의 동그란 눈에 반가움과 놀라움이 가득하다. ‘벌써 왔냐’며 마요네즈를 만들려고 달걀을 가지러 갔었단다. 냉장고가 부엌에 있는데 달걀을 어디서 들고 오는 걸까. ‘닭이 막 알을 낳았냐’고 물었더니 살포시 웃으며 ‘달걀은 옆방에 두고 쓴다’고 알려준다.

닭은 아침에 알을 낳는다는 걸 언젠가 배우기는 했는데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릴 적 오빠가 학교 앞 노란 병아리를 사다가 집에서 기른 적이 있긴 하다. 그 병아리가 중닭이 될 때까지 오빠 방에서 겨울을 나는데 그 냄새가 어찌나 지독하던지, 1분이 멀다 하고 가던 오빠 방을 그때만큼은 꺼렸었다. 봄을 맞아 드디어 밖에 내어놓은 닭은 동네의 사나운 고양이에게 그날 잡아 먹혔다. 옆집 고양이의 소행이라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던 오빠는 며칠을 울었다. 닭에 관한 나의 추억은 딱 여기까지다.

오빠의 중닭이 알을 낳을 리는 만무하고 그 후로도 닭을 길러본 적이 없으니 닭에 관한 얄팍한 지식은 그저 기억 저편에 머무르기만 했다. 도시 ‘촌티’를 내버려 얼굴은 빨개졌지만, 달걀을 보관하는 방이라니. 안 그래도 집의 입구가 거실이 아니라 부엌인 게 특이했는데 테레지나가 들어선 문 안쪽이 궁금해진다.

테레지나를 따라나서며 문을 여니, 왼쪽으로는 안젤로네와 마조리노의 침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정면에는 화장실, 오른쪽에는 문 없는 문틀과 그 옆으로는 작은 문이 하나 있다. 이 작은 문 너머가 안젤로네의, 이제는 테레지나의 식료품 창고다. 창도 없고 도장도 하지 않은 맨 벽과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서너 평쯤 되는 방. 벽은 모두 나무 선반으로 둘러져 있는데, 선반마다 소토 올리오, 소토 아체토, 파사타 등을 보관하는 유리병이 가득하다. 이걸 누가 언제 다 먹나 싶어 입이 떡 벌어졌는데 테레지나는 이것도 부족하단다. 두 아들네에게도 나눠줘야 하니까.

내 외할머니도 일곱 자식에게 나눠주겠다고 마당 한쪽에 고추밭을 가꾸셨다. 엄마는 본인 드실 것이나 소일거리로 기를 것이지 힘들게 고추 농사를 짓느냐고 괜한 핀잔을 하면서도 매번 명절 때면 햇볕에 빨갛게 말린 고추 한 포대를 차에 싣고 올라오시고는 했다. 물론, 따로 준비해놓은 막내딸이 좋아하는 토란대 한 꾸러미와 함께. 어느 곳이나 엄마의 마음은 한결같다. 아, 엄마가 그리워져 순식간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밀려오는 그리움은 헛기침으로 감추고 다시 테레지나의 곳간 수색에 나선다. 닭 모양의 바구니 안에 달걀이 가득 담겨 있다. 달걀을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아도 괜찮으냐고 물어보니 테레지나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달걀을 왜 냉장고에 보관해요? 그렇게 해본 적 없는데. 달걀이 차가우면 케이크 하나도 제대로 구울 수 없어요.”

사실 달걀은 냉장 보관하지 않아도 쉽게 상하지 않는 식재료다. 하지만 나라마다 위생 기준이 달라 유통 판매 시 보관법이 다르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달걀을 반드시 냉장고에, 한국 농림축산식품부는 15도 이하에 보관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살모넬라균 때문이다. 반면 유럽 식품정보위원회에서는 냉장고 안에서 살모넬라균의 번식이 느려지기는 하나 달걀을 만진 후 손을 깨끗이 씻고 잘 익혀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보관 온도를 따로 명시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유럽에서는 시장뿐 아니라 슈퍼마켓에서도 달걀은 선반 판매를 한다. 하지만 다른 곳과 다름없이 많은 유럽인이 실온 판매하는 달걀을 굳이 냉장고 안에 넣어 보관한다. 어떤 이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고 하고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넣는다고도 한다. 또 다른 이는 냉장고 안에 달걀 놓는 자리가 있어서라고도 한다. 유럽에서 방문했던 모든 농장에서 달걀은 실온에 보관되고 있었지만 현대의 습관이 자리 잡은 도시의 부엌에서는 오랜 지식의 자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래 두고 먹을 만큼 달걀이 남지 않죠. 오래 뒀다 해도 2주 정도면 다 먹는걸요. 그래도 언제 적 달걀인지 의심되면 물에 달걀을 넣어보면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쉽게 알 수 있어요. 달걀이 물에 가라앉으면 신선한 거예요. 물 위로 뜨면 안 먹는 게 좋고요.”

달걀은 채소나 과일과는 다르게 겉으로 보기에 신선도를 확인할 수 없지만 테레지나가 전해주는 신선도 확인법이라면 걱정을 덜 수 있다. 더욱 꼼꼼히 신선도를 확인하고 싶다면 소금물을 사용하면 된다. 부력이 높아 달걀이 떠오르기 쉽기 때문이다.

달걀은 주변 온도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실온, 즉, 20도 안팎에서는 냉장고 밖에서도 한 달 정도는 문제없이 보관할 수 있다. 다만 살모넬라균은 70도 이상에서 가열하면 죽기 때문에 실제 달걀 내부의 감염보다는 달걀을 만진 손에 남아 있는 균에 직접적으로 감염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 깨지거나 금이 간 달걀은 균들이 달걀 내부로 침투했을지 모르니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농장의 한구석 식료품 창고에 발을 디뎠을 뿐인데 달걀 하나만으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달걀 바구니 뒤편 선반에는 파프리카와 가지가 기름에 재워져 있고, 오이는 식초에, 시금치 같은 잎채소가 가득 든 병조림이 보인다. 그 아래쪽에는 천에 싸인 유리병들이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담겨 있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유리병들 사이로 테라코타(Terra cotta) 단지도 눈에 띈다.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무래도 그녀의 단골손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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