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극복 밥상

밀양댁 엄마 손 밥상
글과 사진 이미라

아토피 극복 밥상

임신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처음 접했을 때 그 두려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결혼 후 2년이 지나서 나는 첫째 아이를 가졌고, 먹는 것부터 걸어 다니는 것까지 조심하고 또 조심했었다. 하지만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첫째 아이를 키우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겸해 출산 유경험자로서의 느긋함으로 열 달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임신 기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둘째 호연이가 건강하게 태어났을 때 나는 녀석에게 무척 고마웠다. 유난히 하얀 얼굴의 순둥이 호연이는 먹고 자는 아기의 본분을 다하면서 엄마를 전혀 힘들게 하지 않았다.

백일이 지날 무렵 호연이의 이마에 빨간 태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작고 하얀 얼굴이 마치 두부 한 모 크기만 해서 ‘두부’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녀석은 그 뽀얀 피부 때문에 태열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병원에도 다녀보고 민간요법도 다양하게 써보았지만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점점 나아져서 자라는 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하원 시간에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막대사탕 하나씩을 들고 내렸는데, 그때 호연이는 처음으로 달콤한 사탕의 맛에 눈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달콤함은 잊고 있었던 태열의 쓴 기억을 소환했다. 이마에만 있던 발그레한 자국들이 눈 주위에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말로만 듣던 아토피 증상들이 호연이의 얼굴에 하나둘씩 나타났다. 그리고 10년이 넘도록 호연이와 아토피의 전쟁은 진행 중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된 호연이는 여전히 아토피로 고통받고 있다. 두부처럼 하얗던 얼굴이 얼룩덜룩해져 그 속상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시골 할머니 입맛을 가진 녀석은 청국장이며 시래기국, 콩비지, 나물을 좋아하고 인스턴트 음식도 거의 먹지 않는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환경이 점점 오염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세안과 보습마저도 스스로 잘 챙기는 녀석이다. 아토피가 심해질 때면 피부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오는데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때맞춰 약도 잘 챙겨 먹는다. 그런데도 아토피라는 녀석은 호연이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괴롭히고 있다. 하얀 각질들이 떨어져 있는 이불과 얼룩진 베개를 볼 때마다 잠잘 때마저도 편안하지 못한 녀석의 고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호연이의 꿈은 ‘트럼펫터’다. 트럼펫이라는 악기의 특성상 입술에 금속 재질의 피스를 갖다 대고 불어야 하니 입술이 성할 날이 없다. 음악이 좋고 트럼펫이 좋아서 스스로 꿈을 찾고 매진하는 녀석이 대견스러우면서도 하필이면 아토피와 천적인 악기를 선택했나 싶어서 안쓰럽다. 가만있어도 짓무르는 피부인데 트럼펫을 불고 나면 입술에서 진물이 나기도 한다. 연주 일정이 빡빡할 때는 진물이 마를 겨를이 없어서 호연이의 입술은 항상 상처투성이다. 그러다가 지난겨울에 결국 사단이 났다.

학교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를 준비하면서 연습이 과했는지 입술이 심하게 짓물렀다. 한번 악화된 입술의 상처가 도저히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다. 진물은 귀에서도 나기 시작했다. 귓바퀴에서 흘러나온 진물이 귀 안으로 흘러 들어가 외이도염이 생길 정도였다. 연고를 열심히 바르고 약을 꾸준히 먹어도 그다지 효과가 없자 평소 식습관을 강조하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알레르기 테스트를 권하셨다. 피검사를 통해 90가지 음식에 테스트 결과가 나왔고, 그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놀라웠다.

호연이에게 좋지 않은 음식은 계란, 우유, 밀가루, 파인애플, 바나나. 키위, 버섯, 토마토 등이었는데 대부분이 녀석이 즐기는 음식이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나와서 한 달 정도 피하면서 지켜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닭고기, 생선, 해조류, 콩과 두부, 쌀과 채소는 잘 맞아서 이를 중심으로 식단을 짰는데 평소 편식을 하지 않는 녀석인지라 거부감 없이 아토피 식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선 빵과 우유, 계란을 끊었다. 사실 이 세 가지를 없애고 나니 냉장고가 텅 빈 듯했다. 우유를 대신할 검은콩 두유와 빵을 대신할 떡을 준비하고 간식으로 먹을 연두부를 샀다. 밀가루를 먹을 수 없으니 대신 쌀국수를 준비하고 닭고기, 주꾸미, 새우와 조개류를 손질해서 쟁여뒀다. 시리얼과 빵을 먹는 대신 떡국이나 누룽지로 아침 식단을 바꾸고, 인절미와 떡볶이용 떡을 넉넉하게 준비해서 냉동시켰다. 간식으로 먹을 고구마, 오이, 당근도 준비했다.

호연이의 아토피 밥상 도전으로 온 가족이 함께 건강 식단에 동참하게 되었다. 예상대로 상차림이 두 배로 번거로워졌다. 해산물은 싱싱하게 먹어야 하므로 자주 사러 다녀야 했고, 떡을 사기 위해 재래시장을 드나들어야 했다. 고구마는 오븐에 굽고, 오이와 당근을 스틱으로 잘라서 간식을 만들었다. 라면이 먹고 싶으면 쌀국수로 해물 짬뽕이나 볶음면을 만들어줬다. 돼지고기를 넣는 대신 멸치로 국물을 진하게 우려내 김치찌개를 만들었고, 전을 부칠 때도 밀가루 대신 쌀가루와 감자전분을 이용했다. 감사하게도 텃밭의 쌈 채소들이 쑥쑥 자라주어 상추며 치커리, 쑥갓을 맘껏 먹을 수 있었다.

아토피 밥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흘렀다. 호연이의 몸에는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부어 있던 눈 주위가 가라앉고 진물이 나던 귀가 아물었다. 얼굴 전체의 붉은 기가 빠지면서 피부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간식으로 나온 꽈배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과감하게 세 개나 먹어치우고 온 다음 날 한 달 전의 얼굴로 순식간에 돌아가버렸다. 너무 허탈하고 화가 났지만 그동안 잘 참아준 녀석이 기특하기도 하고 자책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냥 웃고 넘겼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음식조절을 하니 예전보다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작은 변화로도 아토피 밥상을 위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에 안도할 수 있었다.

처음 알레르기 테스트 결과지를 받아들었을 때 “선생님, 도대체 뭘 먹고 살아야 합니까?” 하고 반문할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먹을 게 많다. 기본 요리법을 조금만 변형시키면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기에 새로운 요리에 대한 호기심이 금기에 대한 상실감을 잊게 한다. 내 몸에 맞는 음식이라는 믿음과 함께 먹는 밥상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허겁지겁 먹던 밥상과는 또 다른 만족감을 선사했다. 항상 집밥의 소중함을 강조하면서 살았지만 호연이를 위한 밥상을 준비하면서 나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병원을 전전하고 약에 의존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꼴이지만, 음식의 힘을 믿고 견뎌나가다 보면 반드시 호연이의 몸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계란은 6개월 피해야 하는 음식인데, 계란을 다시 먹을 수 있는 그때쯤이면 두부처럼 하얀 호연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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