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바라스와 뉴욕 플라멩코 페스티벌

현경의 뉴욕 스토리
글과 사진 현경

사라 바라스와 뉴욕 플라멩코 페스티벌

사라 바라스(Sara baras)가 뉴욕에 온다.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지난 1월 북아프리카 스페인령 멜리야에 유네스코 실크로드 프로젝트 전문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그녀가 그곳에 와서 공연을 했었다. 멜리야 문화재청이 우리 전문위원들을 모두 그녀의 공연에 초대해주었다. 공연장은 만원이었고 관객들의 열기와 기대는 뜨거웠다. 사라 바라스라는 플라멩코 댄서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극장의 공기 안에 가득했다. 그녀는 누구일까? 그녀의 춤의 어떤 면이 이토록 대중의 사랑을 받도록 했을까? 일생을 유네스코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스페인 발렌시아에 정착한 브라질 출신 흑인 여성 아니카에게 물어보니 금방 답이 나왔다.

“사라 바라스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통합한 플라멩코 댄서예요. 그녀는 여성적으로도 너무 섹시하고 아름답지만, 남성의 옷을 입고 남성 스텝을 밟으며 플라멩코 춤의 경계를 무너뜨린 혁명가지요. 그녀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어요. 그녀는 플라멩코 춤을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시킨 예술가예요.”

플라멩코의 혁명가라…. 붓다와 예수, 체게바라와 전봉준, 로자 룩셈부르크와 나혜석. 모든 혁명가를 사랑하는 나는 공연 전부터 그녀에 대한 따뜻함이 가슴으로부터 흘러나오며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공연은 황홀했다. 사라 바라스는 붉은 플라멩코 드레스를 입고 치마를 걷어 올리며 힘차고 빠른 남성의 스텝을 밟았다. 그녀의 몰두와 열정이 발코니에서 멀리 쳐다보는 내게도 전달되었다. 공연이 끝나자 몇 분에 걸친 기립박수가 있었고 관객들은 11시가 다 돼가는 시간, 차마 그 열정을 안고 집에 갈 수 없어 공연장 근처의 술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음 날 새벽에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는 우리 팀들도 자리도 없는 술집에 만원 버스 타듯이 서서 함께 술을 마시며 사라 바라스의 공연에 대해 찬양했다. 황홀을 경험한 즉석 공동체가 이뤄진 것이다. 술집에 큰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중년여성 친구 그룹에게 물어보았다. 그녀의 춤이 왜 좋냐고. 여성들이 대답했다.

“사라 바라스의 공연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줘요. 여성이라서 무엇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느낌. 우리의 한계를 우리 모두가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플라멩코를 통해 보여주지요. 우리는 공연 후 흥분해서 다 이리로 왔어요. 우리가 함께 경험한 그것을 함께 이야기하며 나누지 않으면 집에 가도 잠이 안 올 것 같아요.”

예술의 힘은 이런 것이다. 우리에게 엑스터시를 느끼게 하고 우리의 일상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높고 경계 없는 삶과 세상을 꿈꾸게 하는 힘. 그녀는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삶과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의 뚫고나오는 창조력을 선물한다. 그녀가 자신의 무용단, ‘발레 플라멩코’와 함께 오늘 ‘뉴욕 시티센터’의 플라멩코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한다. 뉴욕 시티센터는 해마다 3월이 되면 뉴욕 플라멩코 페스티벌을 개최해 전 세계 플라멩코 댄서들을 초대한다. 뉴욕에 많은 공연장이 있지만 나는 뉴욕 시티센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이슬람 사원식으로 건축된 실내가 아름답기 때문이고, 그곳에서 하는 공연의 내용들이 혁신적이고 영성적이기 때문이다. 이 센터는 1923년에 ‘신비한 사원의 고대 아랍질서를 지키는 귀족들’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남성 단체에서 지은 건물이다. 이 집단을 뉴욕에 만든 미국인은 이집트와 시리아에 가서 이 전통을 계승해왔고, 뉴욕 남성 사이의 친교와 놀이를 위해 이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실내 장식들이 복고풍 무리쉬 스타일이다. 현재의 눈으로 보면 동양을 선망하는 미국 백인 남자들의 ‘오리엔탈리즘’으로 가득한 장소지만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이런 이슬람 스타일 공연장이 명망 있는 극장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문화 다양성과 문명과의 대화라는 점에서 보면 건질 만한 선물이다.

이 남성 단체가 힘을 잃어 이 건물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뉴욕시에서 사들여 예술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공공성 때문인지 흑인들의 춤 전통에 근거한 엘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컴퍼니, 맨해튼 연극 클럽, 마샤 그래함 댄스 컴퍼니, 폴 포 댄스페스티벌, 플라멩코 페스티벌 등이 이 극장을 자신들의 공연장으로 사용한다. 이 극장은 죠지 발렌친이나 크리스토퍼 휠든 같은 안무가를 키워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간간이 힌두 챈팅(Chantingm, 성가 및 구호)이나 영성적 공연 모임들이 이곳에서 열린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는 공연의 내용들이나 극장 자체의 에너지가 기분 좋은 곳이기도 하다.

사라 바라스의 뉴욕 시티센터 공연에서 나는 북아프리카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라 바라스가 보여주는 자신의 무용단 멤버들에 대한 사랑이다. 그녀의 단장으로서의 리더십은 ‘모성적 리더십’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그 작품에 참여한 가수, 기타리스트, 드러머, 무용수들을 엄마처럼 힘차게 껴안고 그들에게 키스했다. 자기 자식들이 자랑스럽고 예뻐 어쩔 줄 모르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사라 바라스는 39세에 외아들을 낳았는데 그 후 자신의 작품 세계가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영국의 예술 잡지 <아트 데일리(Art Daily)>와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엄마가 된 후 변화된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엄마가 되기 전의 제 춤은 기술적 완벽성과 속도에 집중했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기르며 침묵, 하나의 몸짓, 따뜻하게 가슴이 열리는 순간, 고요함 속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으면서 하는 표현들…. 이런 것들에 집중하게 돼요. 제게 춤이란 삶을 사는 하나의 길이에요. 저는 춤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춤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을 흘러가게 할 수 있고 모든 것과 소통할 수 있어요.”

사라 바라스의 삶과 작품에서 내가 제일 감동하는 부분은 그녀가 플라멩코를 통해 삶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졌고, 그 눈빛으로 예술을 만들어가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녀의 시선이 따뜻하고 투명해 그녀에게 신뢰가 간다. 그녀는 플라멩코로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표현하려 하고 자신의 작은 예술적 혁명을 만들어간다. 1971년 4월 25일 스페인 남부 카디즈에서 플라멩코 댄서의 딸로 태어나 일곱 살부터 플라멩코를 배운 그녀도 이제 지천명의 나이 50을 바라본다. 어린이 플라멩코 무용단으로 시작해 일생 춤을 춘 그녀는 용감하게도 스물여섯 살에 자신의 무용단을 만든다. 그리고 많은 예술적 실험을 한다. 자신이 단장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자신의 예술적 실험과 무용단에 대해 사라 바라스는 이렇게 말한다.

“플라멩코의 전통에서 남성은 엉덩이를 흔들 수 없었고 여성은 스텝핑을 과격하게 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저는 남자도 자신의 엉덩이를 아름답게 흔들 수 있다고 봐요. 그렇다고 남성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여성도 마찬가지지요. 열정적인 스텝핑을 한다고 여성성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고요. 플라멩코는 누구나 출 수 있고 경계가 없는 춤이에요. 플라멩코는 자유지요.”

모든 새로운 예술 운동이 그렇듯이 구태의연한 형식과 전통에 사로잡혀 있으면 새로운 창조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라고 하지 않았나. 스물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기 무용단을 만든 그녀의 지혜가 놀랍다.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비전, 깊은 존재의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우리는 그곳을 벗어나 가장 자기다운 새 술을 빚고 새 부대를 만들어 소중한 새 술을 보관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 에너지니까. 그렇지 않으면 새 술은 헌 부대를 견디지 못해 터져버린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은 써보지도 못하고 낭비된다.

사라 바라스는 모험을 사랑한다고 했다. 모험이 그녀를 성장하게 했고 용감하게 만들었다. 여성으로서 플라멩코 남성 무용수의 딱 달라붙는 까만 바지와 셔츠를 입고 남성의 춤인 파루카(Farruca)를 추며 그녀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그 춤을 사랑한다고 했다. 진실만이 나타나는 춤이 그녀의 비전이다. 그녀는 춤에서 가슴(Heart)의 자리를 강조한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으면 플라멩코는 출 수 없어요.” 가슴에서 직접 쏟아져 나오는 그녀의 춤은 관객을 향한 그녀 영혼의 제례이다.

“나의 모든 스텝은 내 영혼의 리듬이에요. 나는 공연할 때 가장 살아 있어요. 나는 관객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이 오는 걸 느껴요. 나는 내 영혼을 다 바쳐 집중하고 춤을 춰요. 그러면서 제 자신도 변해요. 나는 플라멩코 무용 신을 신고 춤을 추기 시작하면 어딘가로 비상하지요.”

그녀의 춤 속에서 나는 인도 북부 불가촉천민으로 살다가 더 나은 삶을 찾아 서쪽으로 몇백 년 동안 이동해 스페인에 정착한 집시들의 생명력과 용기와 자유를 본다. 가장 천대받고 고통받던 집시들, 강제로 기독교로 개종당한 무슬림 음악가들, 도망자들. 쓸쓸한 사람들이 한을 풀며 만들어진 놀이마당에서 플라멩코는 태어났다. 천민들과 왕따당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플라멩코. 지금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국민춤이 되었다. 그러나 플라멩코, 아직도 너의 이름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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