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늑대, 야성의 부름을 찾아서

캐나디안 로키 야생 탐험기
글과 사진 긴수염

내 안의 늑대, 야성의 부름을 찾아서

깊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는 꿈을 자주 꾼다. 네 발로 걷고 뛰어 도착한 호수의 물을 마시려 고개를 숙이면 수면에 검은 늑대가 일렁인다. 가까운 곳에서 큰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멀리서 늑대 무리의 하울링이 울려 퍼진다. 보름달이 뜨거나 오로라가 펼쳐지면 꿈에서 깨고 싶지 않을 정도다. 애니메이션을 많이 봐서 그런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니다 묵었던 여관에서 우연히 로키산맥의 늑대 무리와 홀로 지내는 검은 늑대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내가 꾸는 꿈에서 보던 장면과 많은 부분이 겹쳤다. 그날부터 막연히 북미로 떠나야겠다는 열망이 나를 사로잡았고, 결국 늑대를 만나기 위해 워킹홀리데이를 캐나다로 선택하게 됐다. 장거리 이동 끝에 로키 근처의 캘거리에 자리를 잡았고 틈나는 대로 로키에 갔다.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늑대와 어떻게든 조우하기 위해서였다.

로키산맥을 누비면서 기시감을 수없이 느꼈다. 처음 가보는 곳마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여긴 꿈에서 와봤던 곳이고, 이건 꿈에서 맡아본 냄새다.’ 가파른 절벽이든 평지든 네 발로 한참 동안 돌아다니며 그 자세가 그리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전생이란 게 있다면 나는 아마도 로키산맥의 늑대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로키 안에서 나는 인간이 아닌 한 마리의 야생동물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었다. 이것을 인간의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1년 반의 캐나다 생활을 슬슬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로키를 만끽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로키 깊은 곳에 영원히 살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비자가 만료되고 있었다. 모든 연락을 끊고 불법체류를 할지 생각해볼 정도로 그곳에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이 땅을 떠나야 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점점 초조해졌다. 국경이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없는 현실이 씁쓸하지만 일주일 동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기로 한다.

지도를 보며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로 동선을 잡았다. 야생동물, 특히 늑대와 큰까마귀를 몇 시간이고 지그시 관찰하기 위해 혼자 가려고 했으나 대중교통에 한계가 있었다. 렌트카는 성수기라 재정적으로 부담스러웠다. 고민 끝에 여행자를 찾는 커뮤니티에 동선을 공유하고 난이도를 제시하면서 사람을 모았다. 순식간에 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중 한 명에게 밴이 있어서 이동이 수월해졌다. 그도 혼자서 로키에 자주 다닌다고 했다.

밴이 있는 A와 내가 먼저 재스퍼에 가고, 다른 두 사람은 나중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틀 동안 우리는 재스퍼 주변의 산과 호수를 돌아다녔다. 숲에 취해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토요일 밤 호수(Saturday Night Lake)’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이름 때문인지 토요일 밤에만 나타나는 마법의 호수처럼 느껴졌다. 야생동물을 관찰하며 우리도 야생동물이 되어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커다란 지도를 펼쳐놓고 내일은 어디를 가고 어디서 묵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주변의 나무에 선명하게 새겨진 곰의 발톱 흔적을 발견하면서 바로 오늘의 생존에 집중해야 했다.

호수 옆에 야영장도 있었지만 곰의 공격이 우려되어 밤에는 밴으로 돌아와 밴 뒤를 평평하게 펴놓고 각자의 침낭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지내는데 마음은 오히려 충만했다. A도 혼자 산을 다니는 생활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같이 다니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휴식을 취할 때 함께 시간을 보내는 패턴으로 서로 편안했다. 기다려주는 그로 인해 나는 마음껏 야생동물을 관찰할 수 있었고, 그도 야생동물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됐다.

두 사람이 더 합류해 우리는 네 마리의 늑대 무리처럼 로키를 돌아다녔다. 저마다 체격과 체력이 다르고 날마다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을 따로 또 같이 다녔다. 꼭 가보고 싶은데 너무 험한 곳에는 양해를 구하고 혼자 다녀오거나 주로 B와 함께 다녔다. B도 호기심이 많고 체력에 구애받지 않는 상태였다. 우리는 네 발로 잘도 다녔다. 한참을 기어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면 B가 씩 웃는다. 야생동물을 만날 때마다 천천히 다가가며 광대가 승천하는 B의 몸짓에 나도 덩달아 웃었다. 어느새 야생동물을 소중하게 대하는 B를 지그시 관찰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항상 동물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간혹 사람에게도 팔린다.

   

   

로키에는 큰 개들과 하이킹하는 사람, 아기가 든 배낭을 메고 하이킹하는 사람, 휠체어를 타고 평탄한 코스를 하이킹하는 사람, 산악자전거를 타고 숲길을 달리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모두가 저마다 다른 상태에서도 하이킹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동안 나는 불편이 없었기에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휠체어를 타고 하이킹이 가능하다는 표지판을 보면서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다양한 코스가 조성되는 것이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한편, 점점 줄어들고 있는 순록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구역은 개의 출입을 통제한다. 국립공원 직원이 캠페인을 하며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사람들은 수긍한다. 재스퍼에서는 마을 중심부에 엘크 무리가 나타날 때마다 직원들이 그들을 밖으로 몰았다. 캔모어에서는 사슴들이 나타나 교회의 장미를 우걱우걱 해치우고 악동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러려니 한다. 인간이 동물과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공존하려고 노력하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주로 야생 호스텔(Wilderness Hostel)에서 묵었다. 전기나 수도 없이 나무로 된 침대만 있는 숙박시설이다. 장작을 피우고 뭔가를 구워 먹을 수는 있다. 요즘에는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도 사용하고, 와이파이도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기에 들여오게 됐다는 주인장의 표정이 씁쓸해 보였다. 와이파이 시설을 만들기 위해 꽤 넓은 규모의 숲이 벌목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숲과 함께 완전한 고립감을 누릴 기회도 사라지고 있다.

8월 말의 로키는 하루에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푸른 저녁이 매일 기다려졌다. 차갑고 청량한 겨울 느낌에 중독된 것처럼. 로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였다. 우리는 그 속에서 다른 동물과 식물처럼 하나의 생명체로 동등했다. 모든 감각이 새롭게 자라났고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몸짓과 마음으로 통하는 것 같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것처럼. 실은 점점 여러 겹이 되어 갔다.

   

   

일주일 동안 쌍무지개를 두 번이나 봤다. 평생 볼 무지개를 다 보는 것 아니냐며 우리는 마치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즐거워했다. 다람쥐, 땅다람쥐, 우는 토끼(Pika), 마못(Marmot) 등 수많은 야생동물을 만나며 기쁨을 만끽했다. 아무리 만나도 질리지 않았다. 그러나 늑대는 끝내 만나지 못했다. 지난번에 길 위에서 스친 늑대로 만족해야 할 모양이다. 이렇게 돌아다녔는데도 늑대 보기가 어렵다니,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묵었던 야생 호스텔 벽에 곰과 늑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주인장이 겨울에 필드를 돌아다니다 찍은 사진이란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늑대를 바라보다가 문득, 늑대를 만나기 위해 온 로키에서 만난 건 그동안 나도 잘 몰랐던 야성의 감각이 충만한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비로소 내 안의 늑대를 찾은 것이다. 나는 그것에 ‘긴수염늑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언젠가 야성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로키에 돌아오게 될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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