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노인이 되어간다는 것

최민석의 뭐든지 쓱쓱
글 최민석

남자 노인이 되어간다는 것

이런 글을 쓰면 주도면밀하게 사는 게 아닐까 싶겠지만, 그럴 리가. 단지 주변인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일 뿐이다. 깨달음을 제공한 이를 뚜렷이 밝힐 수 없어 미안하다. 일가친척이니, 이해해주기 바란다. 사업가 A씨(73세)는 매일 술을 마신다. 육체노동자 B씨(59세)도 매일 마신다. 둘은 학력도, 가정환경도, 성장배경도 다르지만, 매일 술에 기댄다는 사실엔 다를 바 없다. 술을 마시면 A씨는 짜증을 내고 폭언을 하고, B씨는 주변에서 알아서 피한다. 그러다 보니 혼자 사는 A씨는 물론, 가족과 함께 사는 B씨에게도 진정 곁에 있는 존재는 우주의 생물체와 무생물체를 통틀어 TV밖에 없다. 이들과의 시간에 휘말리며, 위기감에 젖었다. ‘과연 한국에서 건강한 남자 노인이 되어간다’는 건 무엇일까, 하고.

 

관찰 영역을 식당으로, 공원으로, TV로 확대해도, 이들이 즐기는 대상은 고작해야 소주다. 계급에 따라, 소주가 위스키로 바뀔 뿐 위무수단이 알코올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일부 유산계급이 골프를 즐기지만, 한국 사회의 골프는 다분히 정치적 행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몸과 정신의 위로를 알코올에 위탁하고 있는 셈이다. 나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고, 언젠가 노인이 될 것이 빤하기에 자문했다. 윗세대는 노인이 되면서 갑자기 저리 된 걸까. 중년부터 쌓아온 일상의 결이 결국 저 삶을 만든 것일까. 자명했다. 명백히 후자다. 우리는 세대 갈등, 성별 갈등을 겪는 중이고, 산술적으로 나누자면 이 갈등을 겪고 유발하는 구성원의 4분의 1은 남자 노인이다. 따라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지는 못할망정,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작은 결심 세 가지를 했다.

 

첫째, 매일 걷기로 했다. 적게는 2시간, 길게는 3시간, 평균 2시간 반은 걸었다. 걸으니 그날 쌓인 생활의 노폐물이 빠졌다. 비단 몸에 쌓인 생리적 노폐물뿐 아니라, 정신적 독소도 빠졌다. 물론 걷는다 해서 나를 괴롭히는 모든 고민이 일소되는 건 아니었지만, 걷지 않을 때보다 걸을 때의 몸과 마음이 훨씬 건강해졌다. 몸을 과격하게 쓰지 않는데도 2~3시간 걷다 보니, 나를 억누르고 스스로 괴롭히던 대부분의 정신적 독소가 빠져나갔다.

 

둘째, 소설을 쓰기로 했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기로 했다는 건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할지 모르겠다. 맞다. 본분에 더 충실해지기로 했다는 뜻이다. 소설가로 살다 보면 잿밥에 관심이 갈 때가 온다. 소설은 쓰지 않고, 과거에 쓴 소설을 팔아먹으며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미사여구를 동원한 말을 잔뜩 늘어놓으며 살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랬기에, 소설 쓰기와 상관없는 일을 올 초에 다 정리했다. 글쓰기가 본분이기도 하거니와, 소설 쓰기가 정신 건강 유지에 가장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소설을 쓸 때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하지만, 매일 원하는 원고를 써냈을 때의 정신적 쾌감은 그 스트레스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아울러 장편소설은 몸과 정신의 집중력을 동시에 요하기에 생활이 단출해질 수밖에 없다. 적게 먹고, 해가 떴을 때 글을 쓰고, 해가 지면 걷는 일상이다. 그래서 예순이 넘었을 때에도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그 외에는 바라지 않기로 했다.

 

셋째, 공부를 하기로 했다. 헤밍웨이는 타인을 무시하고 거친 발언을 일삼는 작가였는데, 그가 남긴 말 중에 쓸 만한 것도 있다. 바로 ‘작가는 사회적 안테나가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노엘레 노이만이 표현한 대로 ‘의견기후 감지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지고 보니, 지난 10년은 세상 공부를 한 셈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문학을 둘러싼 세계, 즉 고작 문학계를 얼핏 이해한 셈이다. 그러니 이제껏 쓴 것은 사실 습작인 셈이다. 하지만, 세상 공부가 끝날 리 없다. 그건 사는 동안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니, 줄곧 공부하며 쓸 생각이다.

 

어떻게 늙어가는 게 건강한 것인지, 조금씩 되새긴다. 물론, 매일 이런 생각만 하며 걷는 건 아니지만, 이 결심을 하게 한 이유를 잊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걷고, 쓰고, 공부하며 일상을 보내다 보면, 건강한 노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뭐라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겠지. 물론, 이 노력이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방향이 틀려도 목적지가 맞으면, 다시 자세를 고쳐 계속할 수 있으니까, 일단은 이리 지내려 한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언제 또 생각이 바뀔지 모르니, 가능한 한 가장 적은 수의 사람만 이 글을 읽는 것이다. 미안해요. 편집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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