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일에 힘이 있을까

꽃과 잎사귀와 문장들
글과 그림 박소언

기억하는 일에 힘이 있을까

기억하는 일에 힘이 있을까? 야금야금 나이를 먹으면서, 잊어버리는 것이 기억하는 것을 훨씬 앞질러나간다. 그러는 와중에 어떤 기억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파편만 남거나 한 부분이 커다랗게 부풀려지기도,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몇 가지 일만은 가능한 온전한 그 모습대로 남아 있어 주기를, 그것이 안 되면 파편이더라도 그저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다 어떤 계절이 올 때, 바람의 냄새를 맡을 때,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때, ‘문득’ 기억이 내 쪽으로 온다. 기억하고 싶었던 일과 잊으려고 애쓴 일이 순서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것이다.

노란 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나는 말갛게 웃는 소녀의 얼굴을 떠올린다. 고등학생 시절, 이따금 복도에서 마주치면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던 키가 크고 유난히 하얗던 아이. 5년 전 4월, 동료의 웨딩 촬영을 도우러 갔던 제주에서 아주 오랜만에 그 아이의 소식을 들었다. 교사로 일하고 있던 학교의 수학여행 길에 사고가 났다는 것과 아직은 구조 여부를 알 수 없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친구를 통해 전해졌다. 식사를 하려고 들어간 식당 TV에는 계속해서 속보가 이어졌다. 마주 앉은 사람이 사고에 관한 얘기를 꺼내도 나는 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하고 앞에 놓인 반찬만 자꾸 입안에 넣었다. 뉴스를 듣다가 눈물이 나려고 하면 눈을 끔뻑이고 실수를 한 것처럼 재빨리 닦아냈다. 슬퍼하는 얼굴을 하는 것과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표정과 말, 손으로 하는 일들이 너무 가벼운 일인 것만 같았다.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바다를 지날 때, 까맣고 먼 그곳을 오래 보았다. 자주 쓰는 백팩을 등에 멜 때나 내려놓을 때, 지퍼고리에 매달아 놓은 작고 노란 리본을 그때의 바다를 보듯 오래 본다. ‘잊고 싶지 않아’ 정도의 말을 겨우 속으로 웅얼거리면서. 그것 외에 내가 해도 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기억하는 일에 힘이 있을까. 누구에게 소리 내어 말하거나 몸짓하지 않고, 그저 내 안에 품고 있는 것도 힘이 있을까. 그게 아무런 힘이 없더라도 잊고 싶지 않다. 매년 노란 꽃이 필 때마다 그 얼굴을 떠올리고 싶어서, 나는 지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손가락을 움직여 ‘잊고 싶지 않아’라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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