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식구와 함께하는 흑돼지 바비큐

밀양댁 엄마 손 밥상
글과 사진 이미라

친정 식구와 함께하는 흑돼지 바비큐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가 만나 다름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결혼생활이라고 한다면 지난 17년의 세월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음악과 책을 좋아하는 공통점을 빼면 남편과 나는 너무 다르다. 개인의 성격이 그 가정의 분위기에서 기인한다면 내 가족들과 남편 가족들의 분위기도 사뭇 달랐는데, 나에게 다름을 극복해가는 방법은 내가 남편 쪽 가족들과 성향을 비슷하게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과정은 나의 부모님에게 의도치 않게 소홀해지는 시간이었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에게는 시집간 딸도 여전히 품 안의 자식이고 늘 걱정스러운 딸일 뿐이다.

나의 엄마는 무조건 퍼주기를 좋아하신다. 엄마는 마흔 중반을 넘긴 딸이 아직도 안쓰러워 국이나 반찬을 수시로 배달해주신다. 가정용 가스레인지는 성에 차지 않아서 아예 식당에서 쓰는 대형 가스레인지를 집에 들였다. 그 위에 큰 솥을 올려 국을 끓인다. 국이라는 것이 작은 양을 끓일 때보다 많은 양을 오래오래 끓여야 깊은 맛이 우러나는지라 엄마의 국은 항상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엄마가 끓인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은 숭덩숭덩 썰어 넣은 무가 푹 익고 고추기름이 둥둥 뜨는 것이 감히 내 집에서 흉내를 낼 수 없는 맛이다. 소고기뭇국뿐만 아니라 추어탕, 고둥국, 시래깃국 등을 끓여서 세 명의 자녀에게 골고루 배달해주신다. 소금물에 삭힌 고추를 멸치젓갈에 양념한 고추 장아찌나 다시마부각 같은 손 많이 가는 반찬들도 만들어주신다. 나의 집밥에 대한 애착은 바지런한 엄마가 긴 세월 동안 나에게 행동으로 보여준 교육의 산물이다.

내가 힘들까 봐 가까이 사는 딸 집도 자주 들르지 않으시는 부모님이다. 그런데 바비큐 파티를 핑계로 동생네가 들를 때 마지못해 따라오듯 함께 오신다. 지리산 흑돼지를 들고 오는 동생 뒤로 양손에 바리바리 보따리를 들고 오시는 엄마가 보인다. 고기와 함께 먹을 미나리와 된장찌개 끓일 재료, 찰밥에 추어탕까지 챙겨 오신 걸 보니 정말 못 말리는 바지런함이다.

여자들이 부엌에서 된장을 끓이고 상을 차리는 동안 남편과 동생은 베란다에서 고기를 굽는다. “신 서방이 준비한다꼬 제일 고생이 많았데이.” 엄마는 고기 굽는 사위가 안쓰럽고 미안해서 한마디 건네신다. 몇 번을 해도 여전히 어려운 바비큐다. 숯불의 세기를 가늠하면서 고기를 굽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 그리고 굽는 속도보다 빠르게 고기를 먹어대는 아들 녀석들 때문에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언제나 감질난다. 바비큐 할 때 고기를 굽는 사람의 희생이 있어야 함을 남편은 잘 알고 있고 항상 당연한 듯 그 희생을 감수한다. 고기를 먹으면서도 계속 사위가 신경 쓰이는 엄마는 “신 서방도 좀 먹으면서 구워라, 자! 한번 먹어봐라”라고 하시면서 고기를 미나리로 싸서 입에 넣어주신다. 17년간 사위와 장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아직 장모님이 쑥스럽고 장모님은 사위를 아직도 미안해한다.

“역시 흑돼지는 그 쫀득거림이 다르네, 맛있다”, “삼겹살에는 역시 미나리가 딱 어울린다, 한재 미나리는 하나도 안 질기네”, “신 서방 고기 굽는 기술이 늘었다, 노릇노릇하게 잘 꾸벘다!” 경상도 사람들이 여럿 모이면 싸우는 것 같이 목소리가 높아진다. 말도 많고 목소리도 큰 우리 가족의 모임은 오죽할까. 성격까지 급해서 먹는 속도도 빠르다. 느긋하게 바비큐 파티를 즐기면 좋으련만 가족 중 가장 성격이 급하고 능동적인 아빠가 또 한마디 하신다. “어이 신 서방, 고기도 다 묵었는데 그 맛있는 커피 한 잔 줘봐라. 묵고 집에 갈란다.” 고기 굽기에 열중하다가 이제 막 고기를 먹던 남편은 또 벌떡 일어나서 핸드드립 커피를 준비한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내린 신 서방의 커피를 아빠는 무지 좋아하신다. 가끔 커피숍에 가서 핸드드립 커피를 찾으면 없다고 하더라며 신 서방의 핸드드립 커피가 평소에 먹기 힘든 귀하고 맛있는 커피라고 인정해주신다. 너무 진하지 않게 내린 에티오피아 예가체프가 입에 딱 맞았는지 아빠가 또 한마디 하신다. “어이 신 서방, 내 쫌 더 마시도 되나?”

커피타임까지 불과 두어 시간 만에 바비큐 파티가 끝났다. 후다닥 뒷정리까지 도와주시고 배불러서 한숨 자야겠다는 말을 인사로 나누며 각자의 집으로 갔다. 다른 부모님들은 자식들 집에 들러서 며칠씩 머물다 가신다는데 우리 부모님은 항상 집에 가기 바쁘시다. 게다가 우리 가족이 부모님 댁에 들를 때도 불편하니 잠은 집에 가서 자라고 저녁때가 되면 돌려보내신다. 내가 남편의 가족들에 적응하듯 남편도 그런 우리 부모님에 적응해서 그런 부산하면서 짧은 만남을 이제는 편안해한다.

짧은 가족 모임 후 소화도 시킬 겸 잠깐 뒷산을 오르기로 했다. 이사를 온 후 뒷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꼭 한 번 가보리라 다짐했었는데 벌써 1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신발장에서 잠자고 있던 등산화도 꺼내 신고 물통도 하나 챙겨서 거의 10여 년 만에 등산이라는 걸 했다. 날씨도 따뜻해지고 하늘도 맑아서 처음에는 그리 힘들지 않았으나 평소 운동과 담을 쌓고 사는 나는 금세 뒤처지기 시작했다. 앞집 사시는 아주머니가 ‘20분이면 올라가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하셨는데 점점 가팔라지는 지형이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한고비 넘기고 나니 편안한 오솔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산성의 흔적이 나타났다. 이곳 추화산성 성곽을 따라가니 봉수대가 보였는데 임진왜란 때 부산에서 시작한 봉수가 한양까지 전해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산 아래로 밀양의 오밀조밀한 전경과 우리 집으로 갈 때마다 넘어 다니는 동문 고개가 보였다. 남편이 임진왜란 당시 저기 보이는 동문을 격파하고 왜군들이 쳐들어왔다고 했다. 순간 그 모습들이 눈앞에 그려져서 생생함에 소름이 돋았다.

낮이 길어지는 계절인 탓도 있지만, 오늘 하루는 유난히 바빴다. 가족들과의 바비큐 파티도 즐거웠고 등산도 유쾌했다. 산성에서 바라보는 밀양의 풍경도 아름다웠고 내가 매일 다니는 길이 가진 역사적인 이야기를 가족들과 나누는 시간도 소중했다. 맛있는 음식과 상쾌한 공기가 있어서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종일 내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이었기에 오늘 하루가 더 값지다. 흑돼지 바비큐가 아니더라도 부모님이 더 자주 놀러 오시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그때는 함께 식사하고 추화산 봉수대에 올라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따뜻한 커피도 나누어 마셔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빠, 다음에는 같이 등산도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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