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사용하는 장애인을 위한 내비게이터

따뜻한 인터뷰
인터뷰 신영배
사진 김영민

지하철을 사용하는 장애인을 위한 내비게이터
<어쩌다 장애인 함박TV> 유튜버 함정균

늦겨울의 어느 주말, 침대에 누워 유튜브 속 추천 영상을 살펴보던 중, 한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다 장애인 함박TV>란 채널의 영상이었다. 영상 속, 지체장애인 유튜버 함정균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환승역의 환승 정보를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었다. 2013년 3월,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척수 장애 판정을 받기 전, 그는 해외 대회에 참가해 입상할 정도로 소위 잘 나가는 마술사이기도 했다.

몸도 불편한 그는 굳이 왜 이런 영상을 촬영하게 된 것일까? 비장애인의 경우 1~2분이면 가능한 환승을, 그는 엘리베이터와 리프트를 이용해야 했고, 심지어 어느 역은 밖으로 나가 다른 출구를 통해야만 환승이 가능했다. 그마저도 장애인들의 환승을 돕는 엘리베이터와 리프트가 정상 구동 중일 때 가능한 일이 되었다. 행여나 엘리베이터나 리프트가 고장 나서 수리 중일 때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복잡한 역내를 돌고 돌아야 환승할 수 있었다.

그는 약 2년여의 시간 동안 유튜브 채널을 통해 수도권 전역 21개 지하철 노선, 약 100여 개의 환승역을 직접 돌며 교통약자들을 위한 환승 영상을 촬영해 업로드했고, 더불어 휠체어 여행 정보도 함께 공개하고 있다. 그의 영상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끄는 부모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였고, 함정균은 어려운 환승 방법 때문에 막막함을 느끼는 많은 이들의 내비게이션이 되어주었다.

그가 이 영상을 촬영하게 된 계기는 단순히 자신의 불편함을 감소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의 영상을 본 많은 사람이 그에게 응원과 관심을 전하기 시작했고, 그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유튜브 활동을 통해 자신의 중도장애를 힘차게 극복해나가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내게, “많은 장애인들이 사람들에게 장애인으로서 현실 생활의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야 본인의 자존감도 높아질 것이고, 일반 사람들의 장애인 인식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말도 함께 덧붙였다.

이 사회의 시스템이 장애인의 삶과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난 카페의 화장실이 2층에 있어 불가피하게 그는 지하철역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그날따라 하필이면 눈이 내려 미끄러운 길을 따라 화장실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간 내 눈에 보이지 않던 장애인의 이동권과 접근성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새삼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동영상 환승 지도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수도권 전역 21개 노선, 100여 곳의 지하철 환승역을 다니며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환승 정보 촬영을 모두 마쳤다고 들었어요.

네, 대략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어요. 공백 기간 포함하면 2년 2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공백 기간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그냥 하기 싫었어요. 동기부여도 없고, 이 영상 촬영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얻는 것도 아니거든요. 공백 기간을 갖기 전 한 매체가 제 활동을 좋게 봤는지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 동력으로 촬영을 이어갔는데, 연료가 떨어졌던 거죠.(웃음) 그렇게 공백 기간을 가진 지 한 4개월 정도 지났을 때 다른 매체가 인터뷰 요청을 했고, 다시 동력을 얻었어요.(웃음) 그때 속으로 ‘아, 내가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구나’란 확신이 들었고, 다시 촬영을 시작하게 됐어요.

 

선생님의 유튜브 채널 영상을 보면 응원의 댓글도 많은데 이런 부분도 큰 동력으로 작용하지 않나요?

그럼요, 그게 제 추진체라고 생각해요. 휠체어 장애인뿐만 아니라 몸이 불편한 비장애인, 유모차로 아이와 함께 이동해야 하는 부모들의 감사 인사나 응원의 댓글을 보면 정말 뿌듯해요.

 

불편한 몸으로 촬영을 하는 게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네, 제가 장애가 없을 때는 체력적인 부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움직였는데요, 오토바이 사고 후, 척수 장애 판정을 받고 거동이 불편하다 보니 체감 피로도가 엄청 높더라구요. 또 몸이 불편해 숙면을 못 취하니까 조금만 활동해도 금방 피곤해져요. 지속 가능한 몸 컨디션이 장애를 얻기 전보다 짧아졌고, 영상 편집을 할 때도, 예를 들어 5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라면 한 번에 집중해서 5시간을 편집하진 못해요. 중간에 반드시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하죠.

 

처음 지하철 환승 이용 영상을 촬영하게 된 건 선생님 본인이 불편함을 느껴 시작했다고 알고 있어요. 이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환승 정보를 공개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영상을 공유하기 시작한 시기가, 2016년 5월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그해 11월 14일에 첫 영상을 올렸어요. 이후 한두 개씩 영상을 올리는 과정에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죠. 그중, 제가 촬영하지 않은 다른 지하철 환승역 정보를 문의하는 댓글을 보고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누군가에게도 이 환승 정보가 꼭 필요한 정보였던 거죠. 처음에는 서울 지역의 환승역만 촬영하려고 했는데, 촬영을 마치고 확인해보니 경기․인천 지역은 환승역이 몇 곳 안 되더라구요.(웃음) 그래서 전부 촬영하게 된 거예요.

 

촬영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아요.

다른 부분보다 영상 퀄리티 부분에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지금은 액션캠과 마이크를 휠체어에 장착해 촬영하는데요, 예전에는 자바라 거치대에 핸드폰을 설치해 촬영하다 보니 초반 영상은 흔들림이 심하고, 화질도 좋지 않아요.(웃음) 그런 역들은 다시 찾아가 재촬영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사실 지하철역에 리프트가 설치돼 있으니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도 쉽게 환승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영상을 통해 리프트 탑승 자체를 두려워하는 장애인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계단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때는 뒤를 볼 수 없으니 그나마 나은 편인데요,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 특히 신길역이나 충무로역은 워낙 계단이 가파르기 때문에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주저하게 돼요. 안 타본 사람은 절대 그 공포감을 모를 거예요. 또 제가 직접 확인해본 결과, 충무로역의 경우 일반인이라면 1~2분이면 충분히 계단을 오르는 반면, 리프트를 탑승하면 올라가는 데만 약 5분 넘게 소요돼요. 역무원을 부르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리구요. 이런 걸 다 떠나서 맨몸으로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안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니 리프트를 기피하는 장애인들이 많아요.

 

그런 불편함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는 장애인들도 많을 거 같아요.

그런 부분도 있지만, 어르신들과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를 함께 탑승했을 때 종종 마찰이 있는 경우가 있어요. ‘휠체어 때문에 사람이 더 못 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속상해요. 휠체어는 거동이 어려운 사람의 이동을 돕는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에, 혹 차에 치이면 인사사고로 분류돼요. 휠체어를 신체의 일부로 보거든요. 그런데 어르신들은 그런 개념이 조금 부족하고, 휠체어를 차와 같은 하나의 이동수단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부평역 환승 정보 영상에서 리프트가 점검 중이라 역 안의 상가 엘리베이터를 통해 환승이 가능한데, 마침 그날 상가가 쉬는 날이라 역 밖에 있는 다른 상가의 엘리베이터를 통해 환승하는 영상을 봤어요. 이럴 경우, 초행자들은 정말 막막할 것 같아요.

네, 환승을 위해 이동해야 하는 해당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때가 가장 막막해요. 한번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4호선 환승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고장이 난 거예요. 집이 미아사거리역 근처라 4호선 환승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한 정거장을 더 가 동대문에서 환승하려고 내렸는데, 엘리베이터가 또 고장이 나 있더라구요.(웃음) 결국 혜화역까지 직접 이동해 지하철을 타고 간 적이 있어요. 이럴 때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각 지하철역 내에는 안내 도움 전화가 설치돼 있는데, 그걸 통해 문의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느끼는 공공서비스의 가장 큰 불편함은 소위 ‘말만 하는 거’예요. 제가 한번은 역무원에게 환승역까지 함께 이동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어요. 사실 저 혼자 가도 됐지만, 이들이 장애인을 어떻게 대응하나 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복잡한 환승 방법을 끝까지 말로만 설명해주려고 하더라구요.

 

환승 문제 이외에도 출근 중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 때문에 휠체어 바퀴가 빠져 위험에 처한 장애인을 본 적 있어요.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죠.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 기준은 5cm예요. 저 역시 얼마 전 충무로역에서 휠체어 바퀴가 빠져 앞으로 고꾸라진 적이 있어요.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할 수 있었죠.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이 넓은 역들이 꽤 있어요. 특히, 성신여대입구역 당고개 방향의 경우, 휠체어 바퀴는 물론 어린아이가 통으로 빠질 수 있을 정도로 간격이 넓어요. 그 역은 휠체어가 탈 수 있는 곳이 10-4번, 10-3번, 10-2번, 10-1번, 9-4번 그리고 1-1번 칸 정도예요. 그 외의 열차 칸은 간격이 넓어 엄청 위험하죠. 또 승강장과 열차의 높이가 다른 곳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영등포구청역이에요. 이런 역의 경우 휠체어 벨트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고꾸라져 부상당할 위험이 아주 커요.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지하철역 내를 넘어 일반 길에도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나 장애인의 이동권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어요.

밖으로 나가 환승을 해야 하는 경우, 역 주변이 공사 중이거나 정비 중이면 길이 울퉁불퉁해 충격이 심해요. 또 경사가 급한 길의 경우 휠체어 브레이크가 있어도 매우 위험하고, 오늘같이 눈이 오는 날에는 더욱 위험해요.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에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구요. 사실 저와 같은 장애인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이면 비장애인들은 정말 편하게 이동할 수 있어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경우, 4호선에서 2호선으로 이동하는 구간 중 좌측에는 계단이 있고, 우측엔 긴 경사로가 있는데요, 노인, 유모차를 끄는 부모, 짐이 많은 사람 등 많은 사람이 계단보다는 그 경사로를 통해 편하게 이동해요. 이렇듯 휠체어나 유모차가 이동할 수 있는 그 길 하나가 많은 사람의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세심함이 늘어날수록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촬영 이후, 환승역을 재방문했을 때 개선된 점을 발견한 적도 있나요?

보통 지하철의 1-4번, 4-4번, 7-1번, 10-1번 칸에 장애인 전용 탑승 칸이 있어요. 몇 곳의 역은 장애인 전용 탑승 칸에서 내리면 정면에 엘리베이터 위치 안내판이 휠체어에 앉은 사람의 눈높이에 딱 있더라구요. 그 안내판이 있으니까 환승하기가 훨씬 편리하고 수월하더라구요.

 

신길역 리프트 추락 사망 사고, 독립문역 장애인 골절 사고, 방배역 선로 추락 사고 등 끊이지 않고 장애인의 지하철역 사고가 이어지고 있는데, 지하철과 연계된 이런 사고들의 개선에는 소극적인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제가 이런 사고들이 발생할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사람이 죽어 나가야 개선된다’예요. 이렇게 사람이 죽거나, 장애인들의 치열한 투쟁이 이어져야 겨우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하나 생기고 스크린도어가 생기는 거니까요.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죠. 올해부터 시범 서비스로 휠체어 탑승 고속시외버스가 운행돼요. 그런 것도 전부 장애인들이 투쟁을 통해 얻은 것들이죠.

 

다른 교통수단은 어떤 편인가요?

최근 한 방송사와 함께 시흥 갯골의 버스 노선 탑승 영상을 촬영했어요. 그 노선의 경우, 배차가 많은 편이었지만,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는 5대 중 1대꼴로 운행됐어요. 그날 갯골에서 지하철역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영상을 촬영했는데, 당시 안내판에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저상버스를 탈 수 있다고 나오더라구요. 갯골에서 지하철역까지의 이동 소요 시간이 걸어가도 50분이면 가는 거리였는데 말이죠.(웃음) 그래서 그냥 전동 휠체어로 역까지 이동했는데, 어휴~ 정말 위험하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휠체어를 타고 버스에 탑승하는 장애인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만큼 불편사항이 많아서겠죠?

버스 탑승의 가장 큰 문제는 정류장에 불법 주차한 차들이에요. 그날 영상 촬영할 때도 승용차들이 정류장에 불법 주차된 상태였어요. 이런 부분도 문제지만 하차할 때도 황당한 경우가 많아요. 문이 열리고 버스에서 경사판을 내려야 하는데, 그 중간에 가로등이 있었어요, 그걸 피해 버스가 뒤로 조금 이동했는데, 이번에는 가로수가 서 있었죠.(웃음) 가로수나 가로등의 경우 행정 문제 때문에 개선이 쉽지 않겠지만, 정류장 구역 불법 주차의 경우 과태료를 크게 물어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버스나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안에 탑승한 일반인들도 장애인이 승하차하는 그 잠깐의 시간을 잘 못 견디는 것 같아요.

장애인도 승하차에 걸리는 시간을 다른 승객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고, 승객 역시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 화를 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아직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부족하고, ‘빨리빨리’ 문화가 한국 사회에 너무 팽만하다 보니 일반인들이 그 조금의 시간을 못 기다리는 것 같아요. 지하철 엘리베이터의 경우, 한번은 강남에서 퇴근 시간과 맞물려 네 번을 기다린 후에 겨우 탑승한 적이 있어요. 솔직히 이런 부분들 때문에 출퇴근 시간엔 외출할 엄두가 잘 안 나요.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 영상도 봤어요. 앞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떠나는 여행 영상도 자주 올릴 예정인가요?

서울의 웬만한 곳은 아이들과 함께 다녀봤는데요, 갈 수 있는 곳들이 제한적이라 박물관을 자주 갔더니 이제는 박물관이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요.(웃음) 사고 후, 아직 한 번도 비행기 탑승을 안 해봤는데, 가능하다면 가족과 제주도나 일본 여행을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유튜브를 통해 얻는 수익이 많지 않다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런 활동을 지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작년에 ‘1인 방송 대상’에 참가해 대상을 받아 상금 1,000만 원을 수상했어요. 또 CSR 필름페스티벌에 참가해 ‘꿈을 이루는 사회’ 부분에서 대상을 받았구요. 이렇듯 장애 인식 개선, 여행 관련 영상 공모전에 참가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데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응원도 제게 큰 원동력이지만 솔직히 이런 공모전을 통해 얻는 상금 또한 제게는 큰 동력이에요. 촬영 장비를 하나 구입해야 할 때마다 아내에게 계속 손을 벌릴 순 없으니까요. 제가 노력해서 수익이 생기면 필요한 장비를 구입할 수 있고, 그런 부분이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죠. 솔직히 아무리 가족이고 남편이라도 돈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하고 있으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어요.(웃음)

 

사고 이후, 가장 크게 체감한 불편함은 뭔가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데요, 한번은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점심때가 돼서 음식점을 찾는데, 전부 계단이 있거나, 턱이 있어서 식당 출입 자체가 어렵더라구요. 그렇게 한동안 헤매다가 눈에 들어온 게 바로 편의점이었어요. 주린 배를 움켜쥐고 편의점으로 가 빵과 우유를 사서 길거리에서 먹었던 아픈 기억이 있어요.(웃음) 그 후로 배고픔을 참는 데 익숙해졌고, 비상식량으로 견과류와 같은 간식을 항상 챙겨 다녀요. ‘이동권’만큼 ‘접급성’ 또한 취약한 편이죠. 계단이나 턱의 높이가 20~30cm만 되도 장애인에게 체감 높이는 절벽과 같이 어마어마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장애 인식 개선

사고 전, 10여 년 넘게 마술사로 활동했어요. 해외 대회 입상 경험도 있구요. 마술사의 삶은 어땠나요?

당시 마술사로 활동하며 학생들에게 마술을 가르치기도 했거든요. 동전과 카드로 하는 클로즈업 마술부터 큰 무대장치 마술까지 섭렵해야 했어요. 클로즈업 마술의 경우 대회에 참가할 정도는 아니고, 무대장치 마술의 경우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수준의 마술사였어요. 제가 활동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마술을 손기술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요즘 활동하는 마술사들은 정말 ‘마법’을 부리더라구요.(웃음)

 

마술사로 활동하던 시절이 그립진 않나요?

오늘처럼 새로운 사람과 만났을 때 금방 친해질 수 있는 매개체가 마술인데요, 그걸 알면서도 이제는 할 수 없으니까, 이럴 때 정말 답답하고 아쉬워요. 무대가 그립진 않아요. 마술가로 활동하는 동안 정말 열정을 불태워서 활동했고,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이미 다 울었기 때문에 마술사의 삶에 대한 아쉬움은 그때 함께 떨쳐냈어요.

 

재활의 고통도 정말 심했을 것 같아요.

신체적인 고통도 많았지만, 좋아진다는 보장 없는 재활이어서 많이 답답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걸을 수 있어요?’, ‘일상생활이 가능할까요?’라고 재활치료진한테 자주 물었는데, 시간이 1년, 2년 지나면서 그 물음에 관한 답을 스스로 알겠더라구요. 지금보다 더 열심히 재활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죠.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가장 안타까웠을 때가 제가 병원에서 입원 생활할 때 쌍둥이 자녀들이 주말마다 저를 보러 왔는데요,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울음바다가 됐어요. 저 역시 처음 2~3개월은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구요. 사고 당시, 쌍둥이의 나이가 7세였고,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됐는데요, 아빠가 몸이 불편하다는 걸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지금은 무언가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기꺼이 잘 도와줘요. 아내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미안하고 고맙죠. 앞으로도 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살 예정이에요.(웃음) 마지막으로 아내는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평일에는 저희 부모님이 제 간병을 해주셨어요. 그때 생각하면 자식으로서 부모님에게 가장 죄송스럽죠.

 

힘들겠지만, 사고 당시의 기억에 관해 들을 수 있을까요?

제가 오토바이를 좋아해서 주말이면 동료들과 국내 여러 곳을 오토바이로 다녔는데요, 사고 당시의 기억은 전혀 없어요. 미시령 고개를 넘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휴게소와 주유소를 들렀던 것만 기억나고 사고 순간과 병원으로 이동하는 동안의 기억은 없어요. 그리고 기억나는 건 중환자실에서 갈증을 호소하는 제게 누군가 거즈에다 물을 적셔 입에 놔줬는데요, 그 젖은 거즈가 세상 달았어요. 다른 곳은 안전장비 때문에 타박상 정도의 부상이었는데, 목 골절 때문에 중추신경이 손상됐고, 그로 인해 척수 장애 판정을 받게 됐죠.

 

몸을 회복하고 처음 외출했을 당시의 기분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잠깐 병원 정문 밖에서 만끽한 바람과 태양 빛은 정말 감동이었죠. 창살 없는 감옥에 있다가 빛을 본 느낌이랄까요?(웃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기립성저혈압 때문에 곧장 기절했지만 제가 누워만 있다가 처음 앉았을 때도 너무 행복했어요.(웃음) 기립성저혈압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웃음)

 

유년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초등학교 때 후문을 타 넘다가 후문을 무너뜨린 적도 있었을 만큼 개구쟁이였어요.(웃음) 그러다 중학생 때 사고를 한 번 쳤죠. 당시에는 학교에서 월마다 저축을 하게 했거든요. 그 돈을 고등학교 입학금으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오토바이를 샀어요.(웃음) 그러다 아버지에게 걸려서 크게 혼이 났었죠.

 

앞으로의 계획은?

먼저 유튜버로서의 계획은 촬영 상태가 안 좋은 환승 정보 영상이나, 촬영 당시엔 리프트를 이용해 환승이 가능했던 역에 엘리베이터가 신설된 역들이 있어요. 그런 역들을 돌며 재촬영할 예정이고, 틈틈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찾아간 여행지를 소개하는 영상도 촬영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제 개인의 목표는 올해 중 장애 인식 개선 강사 교육을 받아서 내년부터는 장애 인식 개선 강사로 활동하는 게 1차 목표예요. 저도 제 장애에 관해서만 잘 알지 다른 발달장애나 뇌병변장애, 시각․청각 장애에 관해서는 잘 모르거든요.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통해 그런 부분을 공부하고, 강사로 활동하며 사회 인식 개선을 도모함과 함께 경제활동의 기반을 구축하고 싶어요.

 

함정균
2003년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척수 장애 판정을 받기 전, 10여 년 넘게 마술사로 활동했다. 사고 후, 현재는 <어쩌다 장애인 함박TV>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동휠체어 환승 정보, 휠체어 여행 정보 등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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