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박물관이자 야생동물의 천국에서 만끽한 야영생활

옐로스톤 국립공원 여행기
글과 사진 긴수염

지구의 박물관이자
야생동물의 천국에서 만끽한 야영생활

캘거리에서 알게 된 친구와 함께 자동차를 빌려 2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우리의 목적지는 옐로스톤 국립공원. 마치 옐로카펫이 펼쳐진 것 같은 유채꽃이 만발한 들판을 따라 3시간 정도 달리자 미국으로 넘어가는 국경이 나온다. 몬태나주에 들어서서 5시간 정도를 더 달렸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옐로스톤 근처 마을에서 숙박을 했다.

이튿날,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서쪽으로 입장하면서 와이오밍주에 들어섰다. 옐로스톤 내부에는 도로가 8자 모양으로 나 있다. 방문자 센터에 들러 상세 지도를 챙기고, 늑대와 그리즐리 베어가 있는 야생동물 센터를 둘러봤다. 바로 옆에 좋은 야생이 있는데 그곳에 갇혀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직원이 설명하길 동물이 상처를 입었거나 야생에 적응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곳의 동물들은 생태 보전 교육의 목적으로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예약해둔 캠프그라운드로 향했다. 로드킬을 조심하며 찬찬히 도로를 달리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부랴부랴 친구의 텐트를 설치하고 장작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불이 잘 붙지를 않는다. 불쏘시개에 작은 불을 붙여 장작더미 아래에 넣어 불이 옮겨 붙기를 기다렸는데 자꾸만 꺼졌다. 나무를 쪼개서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가져온 신문지도, 상자도 사라져가고 점점 막막해졌다. 뭔가를 구워 먹기로 한 저녁인데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그때였다. 옆 사이트에 있던 사람이 조심스럽게 “도움이 필요하니?”라고 물으며 다가왔다. 그는 작은 손도끼를 이용해 나무를 더 잘게 쪼갰다. 그런 다음 캠핑용 기름을 조금 붓고 불쏘시개에 불을 붙여 나무 사이에 끼워 넣자 불이 활활 붙었다! 공원 입구에서 구입한 장작에 습기가 차서 잘 안 붙었던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그는 내일이면 미국을 떠난다며 우리에게 캠핑용품과 먹을 것을 넘겨줬다. 툭 던지는 과하지 않은 호의가 무척 고마웠다.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옐로스톤의 다양한 지형을 찾아다녔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먼저 올드 페이스풀 가이저(Old Faithful Geyser)에 갔다.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사람이 넓게 둘러앉아 국립공원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간헐천(間歇泉, 열수와 수증기 기타 가스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분출하는 온천)에서 무슨 일이든 벌어지길 기다렸다. 분화구는 칙칙거리며 시동을 걸더니 갑자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다가 간헐적으로 ‘촤-’ 하며 뜨거운 물을 뿜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환호했다. 지구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물기둥이 높이 치솟을 때마다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이어서 지정된 탐방로를 걸으며 다양한 작품(?)을 둘러봤다. 블루 스타 스프링의 파란 별 모양은 멋졌고, 사파이어 풀의 새파란 색상이 영롱했다. 그랜드 프리즈매틱 스프링은 엄청나게 커서 공중에서 봐야 제대로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이 고인 검붉은 바닥이 마치 대리석처럼 생겼는데 하늘과 구름이 그대로 반영돼 환상적이었다. 이외에도 수십 개의 간헐천(Geyser), 온천(Hot Spring), 웅덩이(Pool), 머드 팟(Mud Pot), 증기 구멍(Steam Vent) 등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놓은 직원들의 정성에 감탄했다.

그중에서도 무지개로 순간이동 하는 관문처럼 생긴 모닝글로리 풀(Pool)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색감을 지니고 있을 수가! 풍덩 빠져들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것만 같은 비주얼이었다. 색깔이 다른 이유는 온도에 따라 살고 있는 미생물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는 간헐천이었으나 관광객들이 던져 넣은 이물질로 인해 분출구가 막혀 물의 온도가 미지근해졌고, 노란색을 띤 미생물이 늘어나 이제는 푸른 나팔꽃이 아닌 빛이 바랜 나팔꽃(Faded Glory)으로 불린다고. 사연을 알고 나니 아름다운 무지개 풀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온종일 전투적으로 돌아다니다 푸른 저녁이 되어 캠프그라운드에 닿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임시 집을 짓고 저녁을 먹으며 맥주 한 병의 여유를 즐긴다. 친구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쏟아지는 별을 보다 텐트에 들어가면 바로 곯아떨어진다. 날이 환해지고 시끄러운 소리에 깨면, 까마귀와 비슷한 새들이 뭐든 주워 먹기 위해 우리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 땅다람쥐의 분주한 모습도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엘크는 지척에 널렸고, 바이슨(Bison, 야생 들소)이 길을 막고 서 있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멈춘 자동차 안의 사람들이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야생동물이 이곳의 주인이니 방문자는 그저 조신하게 기다려야 한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바이슨이 초원으로 이동했고, 차들이 엉금엉금 움직였다. 옆으로 지나갈 때 눈이 딱 마주쳤는데 로키에서 곰을 만났을 때처럼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서로 함부로 다가가지 않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저 멀리 코요테 두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어딘가에 늑대와 곰도 있으리라. 과거에 인간이 늑대를 몰살하는 바람에 그들이 사라진 뒤로, 옐로스톤의 생태계도 파괴됐다. 오랜 시간이 지나 늑대를 임의로 들여온 후 서서히 생태계가 회복됐지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인간의 접근이 통제되기 때문은 아닐는지. 이곳에 들어온 인간은 지정된 곳으로만 다니고, 동물에게 접근하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그래서 인간도 어쩌면 하나의 종(種)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서로 긴장하면서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곳은 완전한 야생은 아닐지언정 이곳의 동물들에겐 천국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북쪽을 돌면서 살아 있는 분화구와 진흙 괴물 같은 플라잉 머드를 구경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진흙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어떤 동굴에서는 마치 지구가 숨을 가쁘게 쉬듯이 ‘파아- 푸아-’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모습을 계속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지구를 자꾸 의인화하게 된다. ‘옐로스톤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아티스트 포인트를 갔더니 웅장한 계곡이 펼쳐졌고, 폭포에 무지개가 만발했다. 매머드 핫 스프링에서는 계단처럼 형성된 신기한 테라스 지형과 타 죽은 나무를 보면 다른 행성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어딜 가나 다채로운 구경거리가 있어 지루할 틈이 없고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마지막 야영을 마치고 북쪽으로 옐로스톤을 빠져나갔다. 해가 저무는 들판에 프롱혼(Pronghorn, 가지뿔영양)이 떼 지어 있었다. 특이한 생김새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아프리카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내 안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어서 글래시어 국립공원을 통과하며 국경을 넘었다. 깎아지른 절벽과 다양한 빙하의 모습에 매료됐다. 하지만 옐로스톤과 멀어질수록 옐로스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평소에 어둠을 헤매는 꿈을 자주 꿨는데 옐로스톤에 다녀온 뒤로 총천연색 꿈을 꾸기도 했다. 그만큼 강렬한 영감을 받았다. 지구의 박물관이자 야생동물의 천국에서 야영하는 야생생활에 대한 갈증도 일부 해소할 수 있었다. 야영을 좋아하고 감정이 풍부한 친구와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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