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단순한 고결함과 겸손한 생명력을 가진 도시

김남희의 여행의 일상
글과 사진 김남희

스톡홀름,
단순한 고결함과 겸손한 생명력을 가진 도시

지난해 봄, 긴 여행의 귀퉁이에 스톡홀름에서의 사흘을 끼워 넣었다. 물가가 하늘을 찌르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는 저예산 여행자인 나에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인생 역전이라도 하기 전에는 피하자주의’였는데, 이번에도 호기심이 내 얄팍한 통장을 이겼다. 스웨덴 건축가 군나르 아스플룬드의 스톡홀름 시립도서관과 숲의 묘지가 보고 싶었다. 물가에 대한 공포와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을 동시에 안고 스톡홀름으로 날아갔다.

5월 말의 스톡홀름은 새벽 4시가 되기 전에 해가 떴다. 일몰은 밤 10시. 하루에 18시간 이상 해가 떠 있는 셈이었다. 겨울이면 반대가 되는 곳이니 열렬한 태양숭배교도인 나는 살기 힘든 곳이었다. 스톡홀름은 부유함이 넘쳐흐르는 도시였다.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운하의 도시에는 빈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스웨덴 정부는 스톡홀름에는 빈민가가 없다고 자랑한다고 했다.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의 옷차림도 세련되고 깔끔했다. 어디를 가나 부드럽게 일 처리가 이뤄지고 다들 매너가 좋고 친절했다. 모국어도 아닌 영어를 완벽할 정도로 구사했다. 카페든 서점이든 들어가는 공간마다 디자인과 인테리어가 빼어났다. 녹음이 무성한 운하와 다리가 운치를 더하는 풍경조차 그림 같았다. 평화롭고 안정적이고 깨끗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무균 실험실에 들어온 기분이 살짝 들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질투의 감정이었다. 나는 영국 언론 가디언이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회’라고 칭찬한 나라에 와 있었으니. 인류가 구현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복지와 평등을 이룩한 나라가 스웨덴이었다.

언론인 마이클 부스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관해 쓴 책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을 좀 인용해보자면, 스웨덴은 이런 나라다. 엄마들이 아기를 유모차에 재운 채 가게 밖에 세워두는 나라이자 교외 지역 주민들이 현관문을 닫지 않는 나라. 세계에서 육아 휴가 일수가 가장 많은 나라이자, 남자들이 집안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이며, 교육 기회가 가장 평등한 나라다.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2위)이고, 엄마들이 살기 좋은 나라(3위)인 동시에 아이들 복지 또한 놓치지 않는 나라(1위)다. 한마디로 세상의 좋은 타이틀이란 타이틀은 다 차지한 곳이었다. 영국인 저자가 ‘샘날 정도로 부유하고 평화롭고 화목하고 진보적인 나라’라고 단언했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리. 그러니 OECD 회원국 중 나쁜 분야의 타이틀을 잔뜩 보유한 나라에서 온 내 눈에 스웨덴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인류 전체의 역사를 놓고 보자면 이런 나라가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없던 인류애를 마구 발현시키며 진정해야 했다. 그런 시샘은 시립도서관을 찾아갔을 때 절정에 달했다.

   

   

도서관은 느슨한 경사로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둥근 케이크 모양의 밝은 주황색 건물이었다. 정문을 열고 들어서니 부조가 새겨진 벽 사이로 어두운 통로가 이어졌다. 통로 끝의 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원형의 대열람실. 잠시 말을 잃은 채 서 있었다. 높이 32m의 천장 아래 채광창으로부터 환한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3층의 개가식 책꽂이가 흰 벽토를 바른 벽 아래로 빈틈없이 이어져 있었다. 밝게 빛나는 높고 넓은 공간이었다. 평생 책과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라 해도 머물고 싶을 것 같았다. 개가식 서고의 열린 공간과 대조적으로 서고 안쪽으로는 낮고 아늑한 공간이 숨어 있었다. 조명이나 의자, 소파와 열람실 테이블 같은 가구도 공간마다 조금씩 달라 개성적이었다. 나는 스웨덴 복지의 현실을 이 공공 도서관 한 곳에서 사무치게 깨달았다. 어떤 제한도 없이, 자격이나 증명도 필요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완벽한 개방성, 1928년에 지어진 건축물인데도 구태의연하지 않으며 군더더기 없는 세련됨, 조명과 의자 하나까지 심미적이면서도 기능적인 디자인. 이민자가 많은 다문화 사회답게 100여 개의 언어로 된 책을 소장하는 국제관과 100년 전 건축 당시 이미 어린이를 위한 서가와 낭독의 방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로 앞선 안목과 배려. 오가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없는 표정. 질문을 하면 미소부터 지으며 대답해주는 여유와 친절. 우리가 아직 갖추지 못한 이 모든 것들이 부러워 배가 슬쩍 아파왔다. 나는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으며 오후를 보냈다. 현지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5월 말 스톡홀름의 날씨는 찬란했다.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햇살을 받은 강물이 반짝반짝 빛나고, 여름옷을 차려입은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온 도시의 사람들이 전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처럼 어디든 자전거의 물결이었다. 북유럽의 여름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빛의 세례를 받으며 군나르 아스플룬드의 또 다른 대표작 ‘숲의 묘지’를 찾아갔다. 스톡홀름 시내에서 지하철을 타고 20분쯤 가니 묘지의 입구였다. 숲의 묘지로 들어선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째서 묘지이자 화장터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는지, 어째서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서 이 장소를 그토록 오래 묘사했는지, 어째서 이 묘지가 유럽 여러 나라의 화장터 모델이 됐는지를. 그때까지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기독교 문화로 인해 화장에 대한 완고한 선입견을 지닌 상태였다. 아스플룬드는 죽은 후에 숲으로 되돌아간다는 스웨덴 사람들의 오랜 무의식에 호소해 화장에 대한 심리적 저항을 줄였다. 드넓은 소나무 숲을 그대로 활용한 묘지는 건축가의 삶과도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녔다. 아스플룬드 장남의 죽음을 전후해 설계에 들어갔고, 아스플룬드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됐으며, 아스플룬드가 묻힌 곳이었다. 숲의 묘지가 완성된 직후 그는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이곳 화장터에서 화장된 후 이곳에 묻혔다.

입구에 서니 정면으로 검은 십자가가 멀리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완만하고 부드러운 구릉, 그 너머로 소나무 숲이 펼쳐졌다. 왼편의 나지막한 흰 담장 안쪽은 가족 묘지였다. 그 담장을 따라 흰 포석이 깔린 길이 이어졌다. 걸어갈수록 정면의 검푸른 화강암 십자가가 크기를 키워갔다. 곧 정원이 딸린 작은 집처럼 보이는 화장시설이, 그다음으로 군상 조각 ‘부활’이 자리한 열린 예배당이 나타났다. 이곳 너머는 전부 묘역이었다. 구릉과 소나무와 참나무 숲에 둘러싸인 묘지는 고요했다. 초록의 성성한 기운 덕분에 이곳은 차갑고 어두운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생명력이 살아 있는 공간이 됐다. 들뜨고 요란한 기운이 아닌 차분하고 맑은 기운의 생명력이었다. 삶과 죽음이 외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가만히 증언하는 것 같았다. 화장시설조차 평범한 주택으로 보일 정도로 튀지 않았고, 장례 미사가 열리는 ‘부활 예배당’도 멀리서 보면 나무들 사이에 가려져 있었다. 부활 예배당은 단순하면서도 장엄한 고전주의 양식이었다. 문에는 ‘오늘은 당신, 내일은 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장식 없는 흰 화강암 벽 앞에 검은 의자들이 놓인 내부는 단아하면서 엄숙했다.

예배당을 나와 드넓은 묘지를 따라 산책하듯 걸었다. 소나무와 잣나무, 참나무 사이로 활짝 피어난 로더댄더론과 라일락이 보였다. 어둑한 숲에 햇살이 비쳐들면 보라색 라일락이, 진분홍 로더댄더론이 생기를 띄곤 했다. 대부분의 묘석은 장식 없이 작고 단순했다. 오래돼 돌보는 이가 없어 기울어진 십자가나 쓰러진 묘석조차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화롭게 보일 뿐. 이곳에 들어선 이후 나는 일체의 어수선한 감정들이 다 사라진 상태였다. 자연스레 말을 거둬가는 공간이었다. 죽은 이들에게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고인 차분하고 평화로운 공기가 일체의 말을 무용의 것으로 되돌렸다. 단순한 고결함과 겸손한 생명력의 공간. 인간은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이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묵묵히 증명하는 공간이었다. 아스플룬드가 ‘명상의 숲’이라 명명한 구릉 위에 오르니 화장터와 묘지가 드넓게 펼쳐졌다. 초여름 햇살에 몸을 맡긴 채 나는 오래도록 소나무 숲을 응시했다. 나 또한 이대로 자연으로 돌아가도 좋겠다는 생각은 잠시, 살아서는 인류 최고의 복지를 누리다가 영면조차 이런 곳에서 맞이하는 스톡홀름 시민들에게 다시 시샘이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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