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뮤지엄,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들의 위대한 예술이 시작되는 곳

현경의 뉴욕 스토리
글과 사진 현경

브루클린 뮤지엄,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들의 위대한 예술이 시작되는 곳

뉴욕 맨해튼에서 교수로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뉴욕시의 다른 구에는 잘 안 가게 된다. 거리 문제도 있고 각 구마다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과 공연을 사랑하는 나는 거의 맨해튼 안에서 지난 28년을 살았다. 뉴욕시는 5개의 구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는 구를 버러(Borough, 자치구)라고 부른다. 뉴욕의 5개 버러는 맨해튼, 브루클린, 퀸즈, 브롱스, 스테이튼 아일랜드이다. 각 구에는 독특한 인종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저마다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맨해튼의 부동산값이 살인적으로 오르면서 맨해튼 남부의 월세가 싼 지역에 살던 예술가들은 대거 브루클린으로 이사를 갔다. 요사이는 브루클린에 정말 쿨(Cool)하고 힙(Hip)한 아티스트들이 모인다고 한다. 자본과 예술 권력이 지배하는 맨해튼의 화랑과 뮤지엄 정치에 실망과 환멸을 느낀 많은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들이 맨해튼을 떠났다. 극단적 신자유주의 자본의 힘은 예술 세계에도 깊이 스며들어 많은 예술가들이 ‘잘나가는’ 화랑의 식민지 피지배자처럼 살아야 성공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모든 창조적 에너지는 결국 ‘진짜’를 찾아가게 돼 있다. 나의 참 예술가들에 대한 흠모가 나를 브루클린에 관심 갖게 할 무렵, 두 가지 계기가 나를 <브루클린 뮤지엄>과 관계를 맺게 했다. 어느 날 <브루클린 뮤지엄>의 여성 디렉터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예술과 영성 그리고 사회 변혁에 대한 심포지엄을 진행하기 위해 구글 리서치를 하다가 나를 찾았다고 했다. 이 문제는 내가 가장 관심이 있고 정열을 쏟아온 문제이기에 나는 그녀의 강연 요청을 그 자리에서 아무 조건도 묻지 않고 수락했다. 그래서 <브루클린 뮤지엄>에 처음으로 가게 됐다. <브루클린 뮤지엄>은 미국에서 가장 큰 뮤지엄 중 하나다. 엘리자베스 A. 색클러(Elizabeth A. Sackler)라는 여성 사업가가 큰 기부를 해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모으며 그들의 작품을 영구 전시하는 전시장도 갖고 있다. 사회 변혁과 인종, 젠더, 계급, 문화 다양성을 고려하는 ‘인터섹셔날리티(Intersectionality)’가 이곳 뮤지엄의 비전이다. 유색인종 여성 학자인 내게는 들어서는 순간 기분 좋아지는 곳이다.

한번 물꼬가 터지면 에너지가 흐르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 강연 후 미국 페미니스트 퍼포먼스 아티스트 수잔 레이시(Suzanne Lacy)가 ‘문과 길 사이(Between the Door and the Street)’라는, 400명의 뉴욕 여성 액티비스트와 함께하는 길거리 퍼포먼스에 브레인스토밍 팀으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이 퍼포먼스는 브루클린의 길고 큰 한 주택가 골목의 계단에 앉아 여러 계층의 다양한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를 함께 토론하면서 노래하고 연주도 듣고 춤추면서 먹고 마시는 거리 축제였다. 이 토론 축제에 <브루클린 뮤지엄>이 크게 서포트를 했다. 우리는 주최 측에서 제공한 노란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계단에 앉아 여성들이 겪는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 이민, 빈곤, 인종차별 문제 등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힘과 저항의 보고에 대해 대화했다. 우리는 어떻게 가부장제를 퇴치하며 평등하고 자유로운 문명을 만들어갈지 종일 이야기하며 함께 놀았다. 이런 프로그램은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나 <뉴욕현대미술관(MOMA)> 같은 곳에서는 아마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미션이 다르기 때문이다.

<브루클린 뮤지엄>의 미션 스테이트먼트(Mission Statement)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만남을 통해 우리 자신과 세계의 가능성을 보는 길들을 확장시키려 한다. 우리는 위대한 예술과 용감한 대화를 통해, 더욱 연결되고, 서로를 배려하며, 공감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촉매 역할을 하려 한다.” 그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할 때, 다른 관점들에서 오는 불편함과 반대 의견들에 마음을 열고 대화와 토론을 하고 배우려 한다는 입장을 뮤지엄 홈페이지에 천명한 것을 보고 나는 <브루클린 뮤지엄>을 사랑하기로 결정했다.

맨해튼에 있는 대형 뮤지엄들에 대해 페미니스트 게릴라 아티스트들이 누드로 고릴라 가면을 쓰고 모델처럼 누워 찍은 포스터를 돌리며 저항했던 아트 퍼포먼스를 기억한다. 그 포스터의 누드 여성은 이렇게 질문한다.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들어가기 위해선 옷을 벗어야 하나?” 이것은 남성 중심 아트 세계의 권력 체계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을 패러디로 표현한 것이다. 유명한 뮤지엄에는 벗은 여성들의 그림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성들은 예술의 역사 속에서 남성들의 시선을 통해 미적 대상으로 소비됐다. 여신이나 요정처럼 누드거나 아니면 알몸이 다 비치는 가운을 입고 나타났고, 르네상스 이후로는 더욱더 과감한 누드로 뮤지엄 벽에 걸렸다. 그리고 한국의 ‘장자연 사건’처럼, 할리우드의 여배우들 성상납 사건처럼, 아트 세계에서도 예술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젊은 여성 아티스트들의 성을 요구하는 관례가 빈번하게 있어 페미니스트 게릴라 아티스트들도 하여금 저항 퍼포먼스를 하게 했다.

   

최근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본 가장 인상 깊었던 세 개의 전시를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는 페미니스트 아트 운동을 일으킨 <쥬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 전시>다. 이것은 1970년대 작품인데 많은 여성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에게 영감을 줬다. 쥬디 시카고는 인류 역사상 여성의 삶을 바꾼 39명의 여성들의 성기를 39개의 접시에 상징적으로 그리고 그 접시들로 아름다운 잔칫상을 차렸다. 세모난 긴 테이블 위에 세팅돼 있는 39개의 접시들은 ‘디너 파티’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의 창조성, 힘, 투쟁을 축하한다. 그녀의 작품은 <브루클린 뮤지엄>에 영구적으로 전시된다. 쥬디 시카고는 여성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의 전통은 우리의 힘이다. 여성들은 폄하되고 지워져왔던 자신들의 전통을 다시 살려내 그것을 우리의 힘의 근원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조상 여성들의 삶의 투쟁과 초월의 전통 속에서 우리는 태어났고 그 힘에 기대 오늘도 살아간다. 공적인 공간에서 39개 다른 모습의 여성 성기를 마음 놓고 본다는 것 자체가 혁명이다.

두 번째 전시는 블랙 페미니즘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혁명을 원한다: 급진적 흑인 여성 1965~1985>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흑인 여성들의 삶 속에서 아방가르드 예술 세계, 급진적 정치 운동, 근본적 사회 변혁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보여줬다. 나는 오프닝 세레모니에 참석했는데 흑인 여성들이 모두 붉은색 옷을 입고 억압과 해방에 대한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을 울렁거리는 가슴으로 보았다. 흑인 여성들의 투쟁 역사를 귀하게 여기고 그 속에서 나온 흑인 여성들이 만든 예술 작품들을 큐레이트한다는 것 자체가 뮤지엄 세계에서는 이미 급진전 정치적 행위다.

세 번째 전시는 며칠 전에 봤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성 아티스트, 프리다 칼로의 삶과 예술에 대한 전시다. <프리다 칼로: 외모는 속일 수 있다>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했는데 그녀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녀의 옷, 신발, 부러져 고장 난 척추를 지탱해주던 석고, 가죽 코르셋, 그녀의 잘린 다리를 대신해주던 의족, 장신구, 화장품, 향수들이 다 전시돼 있었다. 1907년에 태어나 1954년 47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그녀는 그 짧았던 생애 동안 보통 여성의 10배는 넘는 삶을 살고 간 것 같다. 아티스트로, 사회운동가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친구와 연인으로 불꽃처럼 살다가 갔다.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끊임없던 외도, 소아마비와 교통사고로 망가진 다리와 척추 때문에 계속됐던 수술과 고통…. 그 속에서도 그녀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노동자 농민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매일 아름다운 옷을 입고 화장을 했고 향수를 뿌렸고 머리에 한가득 꽃을 꽂았다. 그녀 자신이 걸어 다니는 설치 미술이었다. 그녀는 의족 신발에 아름다운 수를 놓고 그 위에 방울까지 달았다.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아름다운 방울 소리를 남겼다. 그 많은 전시물 중 내 심장에 와서 꽂힌 프리다의 작품은 그녀의 미술 작품이 아닌, 부러지고 구부러진 척추 교정을 위해 입어야 했던 석고 코르셋에 그린 그림, 의족 신발 위에 달아둔 방울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창조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했던 그녀, 프리다 칼로는 삶의 모든 것을 예술로 만들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 프리다 칼로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나오니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프리다의 절뚝거리는 걸음 속에서 나오는 방울 소리와 신음 소리, 그녀의 눈물과 웃음이 눈보라가 돼 춤춘다.

“나는 이제 남은 인생은 예술가로 살 거야. 나도 그녀처럼 내 인생 자체를 예술로 만들 거야. 그리고 미친 듯이 모든 걸 사랑할 거야.” 나는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으며 하늘을 향해 팔을 올렸다. 그리고 꼼짝 않고 <브루클린 뮤지엄> 앞에 서서 조용히 눈을 맞았다. 프리다 칼로의 영이 다운로드되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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