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한순간

행복의 한순간

말 없는 친구, ‘심코’의 다정함

내 친구 ‘심코’(정확히 말하면 내 친구의 반려견, 풀네임은 ‘무심코’)는 아마도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동물 친구일 것이다.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으니 산책을 함께하고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거나 여행을 갈 때도 그가 함께 있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지난여름, 부모님 집에 내려간 친구가 궂은 날씨로 인해 부득이 하룻밤을 더 자고 올라오게 돼 갑작스레 내게 심코의 물과 식사를 부탁했다. 때마침 나는 어떤 일 때문에 매우 불안한 상태로 안절부절 있던 차였으니 그것이 부탁이 아니라 구원처럼 느껴졌다.

대충 입을 옷을 챙겨 심코네 집으로 갔는데, 단둘이 있을 때의 심코는 여럿이 있을 때와는 또 달라 보였다. (전에 친구 고양이를 돌봐줬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는데 동물 친구와 단둘이 있을 때 그들은 평소보다도 훨씬 더 다정하고 보드라운 눈으로 사람을 바라본다.)

 

심코가 물었다.

‘누나, 괜찮아?’

 

검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착하고 예쁘고 따뜻한 아이를 안지 않을 수 없었다. 장난감을 던지고 가져오곤 하며 한참을 놀다가 나는 이내 거실에 넓게 펼쳐져 있는 소파 침대에 몸을 뉘었다. 친구는 안방의 침대에서 자라고 했지만 왠지 심코가 있는 거실에서 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한쪽으로 둥글게 몸을 말고 누웠는데 그 안쪽으로 심코가 파고들어 자리를 잡는다. 잠이 들려고 하면 내 코를 핥고, 또다시 잠이 들려 하면 머리로 내 턱을 민다. 내가 몇 번 쓰다듬으면 다시 작은 몸을 부풀렸다 가라앉혔다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심코가, 내 몸집의 5분의 1쯤 되는 그 다정한 친구가 내게 나눠준 체온이 이따금 찾아오는 내 불면의 밤에 숙면을 가져다준다. 말없이 스르륵 파고드는 다정한 심코, 사슴 같은 심코의 예쁜 눈과 고무 같은 코를 떠올리면 나는 잠깐이지만 분명히 오늘도 행복하다.

글과 사진 박윤혜 / 회사원

 

아빠의 행복 찾기

기억 최초의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내려 바다 위 떠오르는 빨간 동그라미를 보며 아빠는 그것을 ‘햄’이라 알려줬다.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해’를 ‘햄’이라 불렀다. 그다음아빠는 알지도 못하는 친구들과 재밌는 곳에 놀러 가는 거라며 인생 첫 핸드폰을 사주고는 나를 영어 마을에 보내버렸다.

 

이렇게 나는 가끔, 아니 꽤 자주 기억을 되감아 버린다. 방금 전에 핸드폰을 어디에 뒀는지 찾지도 못하는 주제에 아빠와 관련된 어릴 적 일들은 불쑥 튀어나온다. 아마 그때의 아빠가 너무 거대하고 얄미워 생각을 부수고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아빠가 제2의 인생을 외친다. 어릴 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손을 잡고 뛰어가고선, 이제는 잡은 손을 놓고 천천히 걸어가며 두 번째 행복을 찾아 나서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당신이 ‘무얼 좋아하고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말하니, 이건 날 울리려고 하는 말이 분명하다.

 

차라리 이렇게 된 이상 아빠가 본인의 행복을 발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빨리 찾아버려서 ‘이제 세 번째, 네 번째, 그 이상을 찾으러 떠나야겠어’라고 말하는 매 순간이 다가와 나는 지금처럼 담담하게 홍삼팩을 챙겨주고 ‘잘 갔다 와’라고 말하는 날이 반복됐으면 좋겠다.

 

언젠가 가족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밤길, 집에 가기 아쉽다는 큰딸의 한마디에 차를 돌려 딸이 제일 좋아하는 홍천강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던 어릴 적처럼, 이제는 아빠의 행복 찾기를 위해 내가 손을 잡고 평생을 뛰어갈 차례다.

글과 사진 신제헌 / <해피투데이> 디자이너

 

날마다 1,000원씩 할부로 지불하는 나의 행복

노량진 3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그렇게 또 나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다. 그 바쁜 월요일 오후 2시에 잠을 자고 있어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니까. 어떨 때는 말 한마디하지 않은 날도 있다. 내 하루를 다큐멘터리로 만든다면 다들 음성 장치가 고장 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고시를 준비한 지 3년 차,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그렇다고 빠져나가지도 못하는 이 늪. 가끔 너무 지쳐서 나갈 구멍을 찾아 고개를 내밀면 밖은 더 험하고 춥다. 책과 나 단둘, 이 외로운 적막이 지금 나의 최선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의 하루는 이렇듯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남들은 나에게 있어 행복이 ‘시험 합격’일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나에게 있어 행복은 그런 대단한 ‘사건’이 아니다. 행복의 기준을 바꾼 건 수많은 황새 속에서 평범한 뱁새인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를 지키기 위해 찾아야만 했다. 몇 년을 걸쳐야만 찾아오는 그런 불확실한 행복이 아닌,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내 발로 찾아 만날 수 있는 분명한 행복. ‘코인 노래방’에 나의 행복이 있다.

 

공부가 끝난 밤, 10시 반, 방음이 잘 안 되는 탓에 11시까지는 무조건 샤워를 끝마쳐달라는 고시원 총무의 문자가 도착했지만, 그날의 피로를 풀기 위해 오늘도 나는 코인 노래방을 향해 신나게 달린다. 샤워쯤이야 포기. 씻지 못해도 좋다. 저 구석의 빈방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지나가는 방들의 유리에 비친 얼굴들은 외로워 보인다. 코인 노래방을 가득 메우는 소리는 노래가 아닌 어쩌면 비명이나 절규일 수도 있겠다. 일단 ‘점수 제거’부터 누르고 시작한다. 시험 점수로부터 도망친 이곳에서까지 점수를 매길 필요가 뭐가 있을까. 이렇게 나는 행복에 대한 대가를 날마다 1,000원씩 할부로 지불하고 있다.

글과 사진 장도하 / 고시생

ⓒ(주)혜인식품-네네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