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저질체력의 출판 에디터가 강철체력의 운동 애호가로 거듭난 사연

마이 홀릭 라이프
인터뷰 장보영
사진 주민욱

마흔 살 저질체력의 출판 에디터가 강철체력의 운동 애호가로 거듭난 사연
트라이애슬릿, <마녀체력> 저자 이영미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 부부들과 10여 년 만에 합심해 지리산 여행을 갔을 때였다. 몇 명은 천왕봉으로 향했고 몇 명은 아래 남아 차밭을 구경했다. 비가 오던 날이었다.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숙소에 들어와 창밖을 내다보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어쩌다가 나는 지금 천왕봉도 못 가는 사람이 됐을까. 젊어서 같이 설악산 대청봉도 오르며 즐거워했던 친구들과 나 사이에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천왕봉에 오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기분을 느끼며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박해졌다. 그 뒤로 서울에 돌아와 집 앞 수영장을 다녔고, 달밤의 공터를 달렸고, 슈퍼에 갈 땐 자전거를 탔다. 그렇게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녀는 ‘철인’이 됐다. 트라이애슬론, 즉 수영․사이클․마라톤의 세 종목을 연이어 완주하는 철인3종경기 선수 ‘트라이애슬릿’ 이영미 씨에게 10여 년 전 일어난 일이다.

사실 운동하는 주부는 많다. 이영미 씨의 행보가 눈길을 끄는 건 그녀가 25년 동안 책상에 앉아 책만 파고들었던 저질체력의 출판 에디터였다는 점이다. 최근 그녀는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를 주장하며 <마녀체력>을 출간했다. 그녀는 당당하게 말한다. 정신과 육체는 하나라고. 운동이 곧 미래라고. 마흔 살 저질체력의 출판 에디터는 어쩌다가 철인이 됐을까? 변화의 역동으로 물든 그 10여 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약한 정신 노동자에서
강철체력의 운동 애호가로

작가님,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우선은 25년 동안 책을 만들어온 출판 에디터라고 소개할 수 있겠네요. 마흔 살까지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만들던 사람이었는데 10여 년 전 어떤 깨달음을 얻고부터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후로 트라이애슬릿으로 저를 소개하고 있어요. 왜 내가 그동안 머리만 쓰고 살았는지, 어쩌다 이토록 비루한(?) 몸뚱이가 됐는지 처음으로 회의가 들면서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 있었죠.

 

‘지리산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웃음)

20대 후반부터 알고 지낸 친한 친구들 부부가 열 쌍 있어요. 연애할 때부터 만났다가 결혼하고 아이 키우랴 한동안 왕래가 뜸했는데,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자 해서 거의 10여 년 만에 합심해 지리산 부부동반 여행을 가게 됐죠. 그때 몇 명은 천왕봉에 갔고 몇 명은 아래 남아 보성 차밭에 갔어요. 저는 체력이 안 되니 고민의 여지도 없이 당연히 보성 차밭에 갔죠. 비가 오던 날이었어요.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일찌감치 숙소로 들어와 천왕봉 일행을 기다리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저 사실 천왕봉에 되게 가고 싶었거든요.(웃음) ‘어쩌다가 나는 지금 천왕봉도 못 가는 사람이 됐을까? 젊었을 때는 다 같이 설악산도 가고 여기저기 실컷 함께 많이 다녔는데, 10여 년 사이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갈라질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죠.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겠어요.

아마 천왕봉에 간 사람들이 전부 남자고, 보성 차밭에 간 사람들이 전부 여자였으면 큰 느낌이 들지 않았을 거예요. ‘뭐 남자들이니까’ 하고 말았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거든요.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배 나온 남자 둘에 허약체질 여자 셋. 게다가 저녁에 비를 쫄딱 맞고 숙소로 돌아온 천왕봉 일행이 그렇게 고생을 했음에도 너무 즐거워하면서 무용담을 신나게 들려주는 거예요. 다 함께 지리산자락에 왔지만 같은 경험과 추억을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어요.

 

천왕봉 일행에 남편 분도 있었나요?(웃음)

네, 그래서 더 자존심이 상했어요.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앞으로 나는 이 남자와 계속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겠구나’ 싶더라구요. 작은 에피소드로 넘길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지만 머릿속에는 지식을 꽉꽉 채우고 늘 책과 함께하는 프로 워킹우먼으로서의 자의식에 균열이 벌어진 일생일대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죠. 그날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지식인으로서 세상 똑똑한 사람인 척하면서 살고 있었을 거예요. 저희 남편은 어느새 울트라 마라토너가 됐어요. 최근에는 저와 같이 배드민턴에 빠져 살고 있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운동을 하게 된 이후로는 새벽형 인간으로 살고 있는데요. 웬만하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실내 배드민턴을 배운 지 3년 정도 됐어요. 그 외에 틈틈이 앞산을 오르거나 자유 수영을 하는데, 자주 하기는 쉽지 않구요. 배드민턴이 무릎을 많이 쓰는 운동이라 요즘 마라톤은 조금 쉬고 있어요. 주말에는 자전거를 길게 타구요. 따로 운동을 하지 않는 날은 만 보 이상 걸으려고 노력하죠. 오늘 인터뷰 장소까지 역에서부터 걸어왔어요. 그 외에 생활 속에 세운 규칙들이 있는데 내려갈 땐 엘리베이터를 타더라도 올라갈 땐 무조건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기, TV 볼 때는 스쿼트하기 같은 것이요. 그럼 운동이 조금 쉬워져요.

 

철인3종만 하는 줄 알았는데 배드민턴도 하신다니 의외네요.

배드민턴 한번 시작해보세요. 아마 헤어 나오질 못할 걸요. 철인3종도 정말 좋아하는데 훈련하기에 따라 그룹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 대부분 혼자 해왔거든요. 혼자 해내는 종목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배드민턴은 공을 넘겨주는 상대방이 있어야 즐길 수 있잖아요. 상대방에 따라 매번 경기가 달라져요. 4명의 남녀가 혼복을 치는데 그게 너무 재밌어요. 제 안에 이토록 게임을 즐기는 유전자가 있는 줄 몰랐어요.(웃음) 철인3종의 경우 제가 워낙 체구도 작고 나이도 있고 시작도 늦게 해서 완주는 해도 거의 꼴찌에 가까운데, 배드민턴은 마음먹고 연습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저보다 신체 조건이 좋은 남자들에게 스매싱을 날릴 수 있어요. 그래서 젊은 여자 후배들에게 저는 배드민턴을 해보라고 권해요.

 

운동을 통해 바뀐 인생의 가치들

마흔 살에 철인3종을 시작하셨어요. 워킹맘으로서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한창 바빴을 시기였을 텐데 운동할 시간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우선 철인3종 중 저는 수영을 먼저 시작했어요. 잠을 줄이고 새벽 시간을 할애해 집 앞 동네 수영장에서 수영 강좌를 듣고 수영 연습을 했죠. 저녁에는 갑자기 미팅이 생길 수도 있고 업무가 지연될 수도 있잖아요. 새벽만이 유일하게 제가 가질 수 있는 온전한 제 시간이었죠. 저는 뭔가 얻는 게 있으면, 뭔가 다른 하나는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 가지려고 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죠. 저를 지금의 마녀체력으로 만들어주신 일등공신은 시어머니이신데요. 저는 아이를 낳자마자 시댁 바로 옆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육아와 일을 모두 다 잘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애초부터 하지 않았어요. 퇴근 후 시어머니댁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오전에 맡아둔 아이를 데려오는 생활을 했어요. 덕분에 육아나 살림에 들어가는 많은 시간을 비축하고 커리어를 쌓으며 일을 병행할 수 있었죠.

 

출근 전에는 아침잠을 줄여 운동을 하고, 퇴근 전까지는 출판 에디터로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에는 아이를 돌보는 1인 3역을 해낸 거로군요.

아무래도 살림을 잘하지는 못했어요. 우선 쇼핑을 하거나 집에 뭘 사서 쌓아두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구요. 지난 14년 동안 이사를 한 번도 안 하고 살았어요. 그러니 인테리어나 가구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죠. 자녀 교육관도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아이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 잘 사는 건가? 저는 그렇게 보지 않거든요. 미술을 하는 아들에게 ‘꼭 대학 가서 취직할 필요 없다, 원한다면 필리핀 호숫가에 오두막 지어 살고 그림 그리며 살아도 된다’고 말해왔죠. 심지어 재수하는 아들 수능 접수일까지 엄마인 제가 까먹었을 정도였으니까.(좌중 웃음) 저는 그저 부모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게 제일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저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바뀐 건 모두 운동을 하고부터예요.

 

단순히 체력만 강해진 게 아니군요.

단언컨대 아마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등장하는 부모들처럼 찡찡대고 낑낑대며 살았을 거예요. 운동하기 전에는 늘 ‘돈 벌어야 해. 강남에 아파트 사야 해. 회사에서 승진해야 해’ 같은 고민과 걱정을 껴안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야근하고 주말에도 집에 일 가지고 와서 했구요. 그런데 마흔 살 넘어 운동을 하면서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때부터 우선순위가 바뀌었어요. 어느 대학을 나왔든, 어느 회사를 다니든, 그곳에서 지금 자기 위치가 어떻든, 사람의 처지는 계속해서 바뀌거든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올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점점 다음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작가님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사람들과 서로 기를 주고받으며 운동하는 것도 좋은 동력이 되구요, 오래 즐길 수 있는 힘이 돼요. 저보다 늦게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강해져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자극이 돼요. 무엇보다 저 스스로가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멈출 수가 없어요. 마치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는 줄 모르고 살아왔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것을 발견한 사람처럼요. 자신의 초능력으로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는 걸 직접 체험했는데 그 이전으로 돌아가 살 수 있겠어요?

 

좀 더 젊었을 때 운동을 시작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아쉬움이 있나요?

물론 없지는 않죠. 하지만 만약 30대 때 운동을 시작했다면 지금만큼 열심히 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그때는 운동보다 중요한 게 일이었고, 지금처럼 집도 없었고, 돈도 벌어야 했고, 커리어도 쌓아야 해서 항상 바빴죠. 저보다 훨씬 젊었을 때 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안 하는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지금보다는 아무래도 젊었을 때 신체 조건이 훨씬 뛰어났겠지만 아마 40대 때의 절박함은 없었을 거예요.

 

나이가 들어 운동을 하게 되면서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경기 중 불가피하게 거칠 수밖에 없는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었나요?

늦은 나이에 운동을 시작해서 그런지 경쟁을 해서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별로 없구요. 저는 예전에는 절대 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었어요. 남보다 못하면 열 받고 분해서 잠도 못 자고.(웃음)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 그 부분이 많이 중화됐어요. 내가 질 수도 있다는 걸,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됐죠.

 

출판 에디터로 걸어온 길

에디터로 살아온 이영미의 25년도 듣고 싶습니다. 행복했나요?

저는 책을 만들고 사람 만나는 일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책 만드는 에디터’라는 명함만 있으면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교도소의 죄수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죠. 책 만드는 과정은 늘 힘들고 괴로워도 뭔가 해내고 결과물이 나오면 정말 뿌듯했거든요. 한 권 한 권 애정을 가지고 만들다 보니 2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네요.

 

지난해 5월에 출판사 ‘남해의 봄날’에서 첫 책 <마녀체력>이 나왔는데요, 운동을 10여 년 전에 시작한 것에 비해 책 출간은 다소 늦은 감이 있어요. 좀 더 일찍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려줬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운동 이야기를 개인 블로그에 조금씩 올리긴 했지만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제 블로그 포스팅을 보고 한 후배가 ‘마흔 살 아줌마의 좌충우돌 철인 도전기’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써보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고, 그때 막연히 ‘내가 만약 책이라는 걸 내면 그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구나’ 하고 그림을 그리긴 했었죠. 막상 쓰게 됐을 때는 걱정이 앞섰는데 또 시작해보니 술술 풀리더라구요. 책을 쓰면서는 정말 행복했어요. 제 인생의 결정적 순간들을 되짚어볼 수 있었으니까요. ‘남해의 봄날’은 통영에 있는 작지만 단단한 출판사로, 예전에 디자인하우스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가 대표로 있어요. 믿음이 가서 그곳에서 제 첫 책을 내게 됐습니다.

 

운동에 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에디터로서 힘들었던 고난(?)의 이야기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승승장구하던 에디터 생활에서 결국 피할 수 없었던 인생 최대의 위기들, 베테랑 에디터가 경험한 뼈아픈 패배와 낙차의 사연들이 책 속에 깊이 녹아 있죠. 그 당시 남편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인데요.(웃음) 사람들은 제가 큰 고생 없이 탄탄대로를 걸었을 거라 보시는데 결코 그렇지 않았어요. 저로서는 단지에 밀봉해 바다 깊숙이 던져버리고 싶은 극심한 통증이었지만 마녀체력으로 이겨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책을 쓰는 사람의 절절함이 담기지 않으면 그 책은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지 않아요. 운동으로 변한 제 삶의 좋은 이야기, 멋진 이야기만 했으면 <마녀체력>은 완성되지 못했을 뿐더러 지금의 반응을 얻지도 못했을 거예요.

 

25년 동안 정말 많은 책들을 만들었는데, 어떤 책들인가요?

‘문학사상사’에서 편집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철학과 인생이 녹아들어간 문학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디자인하우스’에 다니면서 책에 대한 개념이 확장됐죠. 특히 이미지와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좋아졌어요.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개를 위한 스테이크>, <이우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 등이 그때 나온 책들입니다. ‘웅진지식하우스’에 다니면서는 반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를테면 이적은 가수인데 소설을 참 잘 쓰고, 손미나는 아나운서인데 멋진 여행가잖아요. 구혜선은 얼굴 예쁜 배우인데 영화감독으로서 소질이 있구요. 그런 매력 있는 사람들이 쓰는 논픽션 에세이가 제 기획서들의 주류를 이뤘죠.

 

현재 출판 에이전트로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요?

앞서 간단히 언급했지만 오래전부터 저와 계속 관계를 맺어왔던 저자들이 제가 출판사를 퇴사한 뒤로 갈 길(?)을 잃었잖아요. 제가 직접 출판하지는 않아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들의 출판 관련 일들을 도와주고 있어요. 또 새롭게 기획한 저자들의 책도 준비하고 있구요. 그리고 오디오북 플랫폼 관련 일도 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미래다

10여 년 넘게 꾸준히 운동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제가 하루하루 나아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워요. 마흔 살 이전에 체력이 약해서 쉽게 좌절하고 힘들어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그런 과거와 작별하고 지금 내가 이렇게 조금씩 날마다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죠. 제가 지금 쉰세 살이에요. 그런데 오히려 마흔 살 때보다 지구력이라든지 폐활량이라든지 몸 상태가 훨씬 좋아요. 예전에는 여자 나이 마흔 살이 정점이고 이후에는 그래프가 점점 하강 곡선을 그릴 거라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쉰 살이 되도 정점이 아니더라구요. 점점 좋아지는 걸 느껴요. 그걸 알면, 그걸 경험해보면, 정말 놀라울 거예요.

 

나이가 들면서 드는 조급함이나 불안함이 있나요? 여자 나이 40대가 넘어가면 자신감도 떨어지고 위축도 많이 된다고 들었는데.

운동을 안 하고 살았으면 제가 지금 어떻게 살았을지 눈에 훤히 그려져요. 등도 굽고, 눈도 안 보이고, 머릿속에는 뭔가가 잔뜩 들었겠지만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살아가고 있었겠죠. 갱년기 우울증이라고 하잖아요. 또 제가 대단한 부자도 아니니 끊임없이 누군가와 경제적으로 비교하며 불행한 감정 속에 휩싸여 있었겠죠. 저는 14년 동안 집 한 번 옮기지 않았고, 사회생활은 오래 했지만 큰돈도 벌지 못했어요. 하지만 저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잖아요. 저는 그저 ‘마녀체력 이영미’잖아요. 10년 이상을 부단히 노력해서 길러온 체력이 지금의 저를 말해주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 자신에게 자부심이 있어요. 누군가를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아요. 이 자부심은 제가 에디터로서 25년을 살아오면서 얻은 자부심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해요.

 

인생 계획이나 목표가 있나요?

운동 계획은 쭉 세워져 있어요. 40대에는 철인을 시작했고, 50대에는 배트민턴을 시작했으니, 60대에는 탁구를 시도할 계획이에요.(웃음) 자전거는 곧 전기 자전거로 바꿀 예정이에요. 그래서 미시령 같은 데도 자전거로 휙 올라가고 싶구요. 끊임없이 운동해서 언제 어디서든 멀리 갈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겠죠. 예를 들어 저는 내일 당장이라도 히말라야에 갈 기회가 온다면 그 기회를 체력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못 갈 거 아니에요. 살면서 어떤 기회가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데 그걸 놓치며 살고 싶지 않아요. 해보고 싶었던 거, 남들이 재미있다는 건 다 해보고 싶어요. 스킨 스쿠버도 그중 하나예요. 그리고 올해 해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바로 ‘혼자 살아보기’예요.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자취도 한 번 안 해봤더라구요. 올해는 한 달이지만 서서히 두 달, 세 달…. 그 기간을 쭉쭉 늘릴 거예요.

 

가족분들하고는 협의가 된 거예요?(웃음)

일을 병행하기 위해 살림과 육아의 짐을 덜었더니 어마어마한 장점을 얻었어요. 제 남편과 아들은 비록 불편하겠지만 아주 근사하고 독립적인 인간들로 성장했다는 것! 의식주를 손수 해결할 수 있는 멋진 남자들이 됐다는 것!(웃음)

 

어떻게 나이 들고 싶나요?

어떤 관념이나 틀에 갇히고 싶지 않아요. 이를테면 세상을 살면 ‘저 사람은 저 정도 됐으니 이래야 하는 거 아니야? 혹은 저래야 하는 거 아니야?’ 같은 기대가 있잖아요. 그런 기대에 저를 가두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나이 들어서 ‘난 50대니까, 난 60대니까’ 같은 이야기도 굳이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나이를 잘 생각 안 하고 쉽게 까먹거든요.(웃음) 나이가 드니 젊었을 때보다 자유로워진 부분이 있어 좋아요. 저는 60세가 되면 지금보다 더 좋을 거 같고, 70세가 돼도 좋을 것 같아요. 기대돼요. 그리고 몸과 머리를 같이 쓸 때 인간은 완벽한 존재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자극을 주는 중간자 역할을 지금처럼 계속하고 싶어요. 책상에 앉아 머리를 쓰며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몸 써도 돼, 몸 안에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고, 몸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몸 튼튼하니까 이제 머리를 튼튼하게 하자’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당장 내년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 같아요?

흥미로운 게 뭐냐면,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막연해하고 불안해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저는 ‘지금 내가 집중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내 미래’라고 생각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플러스 1년, 10년, 20년을 하는 게 바로 미래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저는 제 미래가 이렇게 될지 마흔 살 때부터 안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에요.

 

작가님에게 운동은?

그러니까 저에게 운동은, 미래죠.

 

이영미
1967년생. 25년 동안 ‘문학사상사’, ‘디자인하우스’, ‘웅진지식하우스’, ‘펭귄클래식’ 등 유수의 출판사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200여 권의 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됐을 무렵 저질체력의 나약한 정신 노동자로 살아왔던 것에 충격을 받고 운동을 시작해 마라톤 풀코스는 물론 철인3종경기를 완주해내는 강철체력으로 거듭났다.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를 주장하며 지난해 5월 <마녀체력>을 펴냈다. 2015년 출판사를 퇴사하고 현재는 ‘인생학교 서울’ 교감이자 출판 에이전트를 운영하고 있다. blog.naver.com/mingil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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