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엄마로 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녀의 행복한 도전
글 장보영
사진 문수현

그림 그리는 엄마로 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브랜드 비주얼 머천다이저,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 문수현

<엄마인 당신, 안녕한가요?>는 전직 의류 브랜드 비주얼 머천다이저였던 문수현 씨가 육아를 하던 2년 동안의 에피소드를 풀어내 묶은 육아 일러스트 에세이집이다. 책을 통해 수많은 엄마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줬던 그녀는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육아 관련 다양한 컨텐츠의 일러스트 작업을 진행했으며 책 출간 이후에도 인스타그램(instagram.com/moontion)에 자신의 육아 이야기를 꾸준히 업로드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최근 브랜딩 디자이너로 재취업해 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문수현 씨의 삶을 다섯 개의 맥락으로 정리해봤다.

 

# 의류 브랜드 비주얼 머천다이저로서 보낸 12년

문수현 씨는 의류 브랜드 비주얼 머천다이저(visual merchandiser)로 12년을 일했다.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과 이미지에 맞게 제품을 특정 공간에 어떻게 전시해야 보다 제품이 효과적으로 돋보일지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이었다. 대학에서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기도 했고 평소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남성복, 여성복, 아동복 브랜드까지 풍부한 브랜딩 경험이 있어 매사 일에 있어서만큼은 자신감이 넘쳤다. 현장에서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경우도 많아 육체적으로 고되기도 했지만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늘 자신감을 갖고 일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일을 향한 애정과 열정의 소산으로 그녀는 서른두 살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사내 최연소 팀장에 오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완전했다. 그동안 잘해왔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를 갖기 전까지는. 최연소 승진에 임신까지, 겹경사에 그저 감사하고 행복했을 뿐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회사 생활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다. 배가 점점 불러오고 몸이 힘들어져도 아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다.

 

# 출산 후 복직한 회사에서 유리 천장에 부딪히다

출산 휴가 동안 아기를 낳고 3개월 뒤 복직한 회사는 예전 같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예전처럼 똑같이 일했을 뿐인데 사내에서의 입지가 많이 달라져 있음을 직감했다. 당시 근무처가 아동복 브랜드라 회사 이미지 차원에서 사내 복지를 강조하던 곳이었음에도 출산 여성에 대한 배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직장 생활 더 하라’는 친정 엄마의 배려로 친정 근처로 집을 이사, 평일에는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금요일 밤에 아이를 찾아와 세 가족이 주말을 보내는 이산가족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회사가 야근도, 철야도, 출장도 잦았고 아침 일찍 회의가 잡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니 좌불안석이었다. 평일에 아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라도 들으면 회사에 있으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윗선에 이야기해 월차라도 내고 싶지만 가뜩이나 ‘아이 낳고 얼마나 다니겠느냐’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상사들의 눈치에 눌려 번번이 속앓이로 그쳤다. ‘남자 직원들은 아빠가 되면 도리어 축하를 받는데 왜 여자 직원들은 위태로운 회사 생활을 이어가야 할까….’ 사회가 말하는 유리 천장을 실감했다.

 

# 엄마 인턴? 인생 휴직?

결국 회사 생활의 버거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수현 씨는 육아휴직을 했다. 서류상 육아휴직이지만 퇴사나 다름없었다. 또 나이 들어 점점 몸이 쇠약해지는 친정엄마에게 기약 없는 육아를 부탁하는 것은 무리라 판단했다. 너무도 간단하고 신속한 퇴사 처리 과정에 그동안 직장인으로 보낸 12년은 꿈인 듯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서우와 3년 터울로 둘째 승우를 낳았다. 본격적으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는 친정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날 만큼 그녀의 모든 감각은 ‘엄마’의 자리에 열려 있었다. 나의 엄마 그리고 엄마인 나에게로. 그녀에게 육아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숙제였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자신감이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일을 안 하면 육아라도 잘해야 할 텐데 항상 서툴고 부족하고 미안하고. 더욱이 몸매도 망가지고 스스로를 꾸밀 수 있는 수입도 없으니 자존감도 뚝뚝 낮아지더라구요.” 승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나가는 날이면 승우도 밖에 나가는 게 신이 나는지 유모차 밖으로 항상 빼꼼 맨발을 내밀더란다. 그 장면을 보니 문득 꽃단장하고 매일 아침 출근하던 자신이 떠올라 서글퍼졌다고.

 

# 어릴 적 꿈,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 그녀는 아이들이 잠든 시간을 틈타 매일 밤 아이패드를 이용해 그날의 인상적인 순간을 그림으로 그렸다. 주인공은 물론 하루 종일을 함께한 서우와 승우. 초등학교 때부터 그녀는 그림 그리는 걸 즐겼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잡아내 재치 있게 그리는 캐리커처에 일가견이 있었다. “10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육아만 하게 되면 약간 심심하거든요. 물론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기 에도 모자란 시간일 수도 있는데 정신적으로는 상당히 외롭고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간절해지죠. 그렇게 2년 정도 꾸준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네이버 그라폴리오 공모전’에 도전을 해봤어요. 일러스트레이터들이들이 본인의 작품을 부담 없이 올리고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인데요, 그때 제가 그린 그림이 한 번 네이버 메인에서 이슈가 되면서 좋은 기회들과 연결이 됐어요.” 그라폴리오를 타고 인스타그램으로 유입된 사람들이 그녀의 다른 육아 그림에도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었고, 그녀의 그림과 글을 모은 육아 일러스트 에세이를 내자는 출판사의 제안도 받게 됐다. <엄마인 당신, 안녕한가요?>는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 브랜딩 디자이너로서 다시 세상으로

몇몇 굵직한 기업 등에서 육아 관련 주제의 일러스트 작업 제안들이 들어오며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경력도 쌓고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자존감도 되찾을 수 있었지만 프리랜서다 보니 작업이나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은 데에서 오는 무력함이 있었다. 또 의뢰를 받은 작업들이다 보니 자신의 그림 세계를 자유롭게 펼칠 수 없는 점, 그녀 스스로 크리에이터로서 ‘무엇을 새롭게 더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에 부딪혔다. “소재의 고갈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회에서 일할 때는 트렌디하고 화려한 것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다 보니 끊임없이 새로운 걸 기획하게 되고 만들게 되는데 당시 제 일상의 범주가 한정적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슬럼프를 보내던 그녀에게 또 한 번의 빛이 찾아왔으니,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선배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브랜딩 디자이너로 일해보자고 제안한 것. “재미있어요. 어딘가로 출근을 하고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다양한 사회 경험을 통해 그림 소재도 늘어날 테구요.” 한때는 육아로 인해 포기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육아를 하면서 시작된 작고도 큰 변화들이 자신의 인생을 더 풍요롭고 깊이 있게 만들어줬다는 그녀의 다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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