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시민들의 지식의 심장 혹은 혈관

부엉이 극장
글 전영석

뉴욕 시민들의 지식의 심장 혹은 혈관
다큐멘터리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분가를 결심하고 이사할 집을 물색할 때였다. 집값 싸고 살기 편한 곳이라는 지인의 말을 듣고 지금 사는 동네 근처로 집을 보러 다녔다. 지하철역이 있는 사거리 오르막길 야트막한 둔덕에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을 보자마자 나는 무턱대고 이 동네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30년을 살았던 동네에도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었다. 카네기는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길 바랐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집 가까이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이 무작정 좋아서 지금 사는 집을 구해 자리를 잡았다.​

군 제대 후에는 정체 모를 갈증을 채우기 위해 날마다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살았다. 하루 종일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행복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오랜 허기 끝에 미친 듯 폭식을 한 포만감 같은 것으로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그 몇 개월 동안의 섭식을 통해 얻은 지식은 내 평생의 양식이 됐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도록에서 <키스>를 보고, 벨베데르 궁전과 오르세 미술관에 가보고 싶다는 평생의 꿈을 갖게 된 것도 학교 도서관 서가의 한 모퉁이에서였다. ​

‘도서관은 어떤 곳일까?’, ‘어떤 곳이 돼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프레데릭 와이즈만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조용히 뉴욕 공립도서관의 공기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전작 <내셔널 갤러리>(2014)도 그랬지만, 프레데릭 와이즈만의 카메라는 뉴욕 공립도서관이라는 소우주를 그저 묵묵히 지켜본다. 3시간 26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2017)는 함부로 그 세계에 난입하거나,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섣불리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관객들은 카메라에 찍힌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다큐멘터리에 으레 등장하는 소개 자막 한 줄 없고 그 흔한 인터뷰 장면도 없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시간이 흐르는 대로 지켜보며 그 광대한 소우주의 틈새로 녹아들어갈 뿐이다. 사계절 동안 공들여 촬영한 쇼트들은 최소한의 편집을 거쳐 간결한 씬(장면)이 되고, 그 씬들이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구축한다. 도서관은 ‘책으로 이뤄놓은 지식의 성’이다. 추상적 가치로 가득 찬 비가시(非可視)의 세계를 밀도 있는 이미지와 편집으로 구체화해서 보여주는 감독의 솜씨가 옹골차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의 주인공은 공간과 시간이다. 도서관에 방대한 자료를 축적한 123년의 역사와 92개 분관의 개성 넘치는 공간 속에 뉴욕 시민들의 삶이 녹아 있다. 도서관의 ‘오래된 미래’는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고 열정과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따뜻하고 열린 공간을 목표로 오늘도 진화하고 있다.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다. 지식을 얻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놀이터나 인큐베이터가 되려고 한다. 건축가 프란신 하우벤은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가까운 미래에 도서관이 사라질 것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을 일축한다.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뉴욕 공립도서관은 정보 불균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소외 계층에게 인터넷 공유기 ‘핫스팟’을 무상으로 대여해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평생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정보 통합과 디지털 허브 구축 작업을 하는 등 치열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도서관은 이제 책만 보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죽은 공간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다. 영화는 객관적 시선으로 뉴욕 공립도서관이 얼마나 뉴욕 시민의 생활 속에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브루노 월터 강당’에서 피아노 독주회가 열리고, ‘정오의 책’ 북토크에서 시인 유세프 코무나카가 독자들과 만난다. 독서 모임에서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한 토론이 뜨겁고, ‘앤드루 하이스켈 점자와 음성 도서관’에서는 점자를 읽고 쓰는 교육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스튜디오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나보코프의 소설 <어둠 속의 웃음소리>를 녹음하는가 하면,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공연 통역사’의 열띤 강의가 이어진다. 자료 복원과 디지털화 작업이 조용히 진행되는 한편으로 ‘웨스트체스터 스퀘어 분관 혁신 연구소’는 로봇을 만드는 아이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도서관의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들 사이로 스태프들의 회의 장면이 반복 삽입되는데, 수뇌부 이하 직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디지털 허브 사업과 예산 문제, 소외 계층의 정보 격차 해소 문제 등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토니 모리슨은 ‘도서관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라 말했고, 미야 안젤루는 도서관을 ‘구름 속의 무지개’에 비유했다. 그러나 결국,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책과 자료가 아니라 그곳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의 열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막바지 ‘머콤스브리지 분관’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92개 분관 중 가장 작은 그곳에 할렘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주민들이 모여 지역 도서관이 자기들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증언한다. “난 영화 학교 갈 돈이 없어서 도서관에서 (모든 것을) 배웠어요”라는 한 흑인 남성의 고백은 도서관의 효용과 사명을 뜨겁게 역설한다. 지역사회 시민의 참여와 열망이 가장 작은 분관을 ‘뉴욕 공립도서관의 숨은 진주’로 만드는 진정한 힘으로 작용한 것이다.

현실적 문제들 속에서 지속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며 오늘도 진화하고 있는 뉴욕 공립도서관은 뉴욕 지역사회의 심장이고 혈관이자 근육이다.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도서관이 왜 필요한가?’, ‘도서관이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웅숭깊은 울림으로 답하고 있다. 그 울림은 소리 없이, 그러나 멈추지 않고 내 마음속에 메아리쳤다. 밀도 있는 영상과 편집 덕분에 3시간 30분이 금세 지나갔다. 나는 이 영화 속에서 공공부문 사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본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맞이할 미래에도, 도보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무너지지 않는 바벨탑처럼 도서관이 굳건하게 서 있기를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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