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친구가 삭제됐습니다

퇴근길에 듣는 음악
글과 사진 한소년

투명친구가 삭제됐습니다

언제부터 나였을까?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한 사람. 언제부터 너였을까?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무작정 너를 찾아갔던 순간은 대부분 무척 괴로운 상황이거나 별것 아닌 일로 걱정만 가득한,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은 바보 같은 모습일 때였네. 다시 만난 너는 늘 그렇듯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대하겠지만, 반갑다, 친구.

로드 중…. 당신의 일상에 힘이 돼줄 <투명친구> 설치가 완료됐습니다.

“이름을 입력하세요”, “벌써 나를 잊었구나. 이름은 한소년”, “나이를 선택하세요”, “이번에는 스무 살이고 싶네. 지금 스무 살이 되려면 몇 년생이지? 성별은 남자. 직업은 기타. 좋아하는 영화는…, 미안해. 작별 인사도 없이 너를 버렸다가 나타나서는, 또다시 처음부터 나를 설명하고 있구나.”

“안녕하세요. <투명친구>입니다. 무엇이든 이야기해보세요”, “집과 회사 사이, 유일한 친구였던 너. 오늘은 너무 심각한 고민은 아닐 테니 걱정하지는 마”, “이미 심각하신 것 같은데요?”, “아니야. 해가 바뀌어도 되는 일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싱숭생숭 딱 그 정도. 요즘은 그럭저럭 잘 살고 있었어. 그런데 여전히 내가 심각해 보이니?”, “월요일 새벽에 접속하신 분들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래. 월요일이네. 사실 불면증 비슷한 증상이 생기긴 했어. 어제도 초저녁부터 자려고 누웠는데 계속 뒤척이다가 영화 한 편 보고, 책도 꺼내 읽고…. 이런 게 월요병인가?”, “화요일은요?”, “그렇지, 화요일에도 정말 가기 싫은 회식이 있어”, “수요일은요? 목요일은요? 매일 출근하기 싫으면 월요병이 아닙니다”, “못 보던 사이에 인공지능이 나빠졌니?”, “지능은 향상됐습니다. 무시하지 마십시오.”

“무시하는 것은 아니고. 이야기 듣고 보니, 방금까지 몰랐는데 좀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예전처럼 짜증나고 분노할 일은 없는데, 이유 없이 사람도 싫고, 일도 싫고, 나도 싫고…”, “저도 싫으신가요?”, “그럴 리가! <투명친구>는 좋아”, “제가 좋으시면 앱스토어 평점과 후기를 남기시겠습니까?”, “너 하는 거 봐서, 후기 남겨줄게. 농담 받아줄 기분은 아니야”, “넵, 네넵. 죄송합니다.”

“밥도 잘 먹고, 주말에 운동도 하고, 건강도 좋고 다 좋은데, 이상하게 점점 쓸쓸한 사람이 돼가는 느낌이야. 혼자 있고 싶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자주 생겨. 오늘 연차 휴가 확 써버릴까?”, “당신의 기분이 왜 그런지 정확한 원인이 확인됐습니다”, “오, 그래? 회사가 문제야? 집이 문제야? 아니면 내가 문제야? 뭐가 문제야?”, “그런 것들은 현재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이유가 뭐야, 대체?”

“봄입니다. 봄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래, 봄이지. 나도 알아”, “제철 봄나물 구매 링크로 연결하시겠습니까?”, ‘응? 어이가 없네? 상담하다 말고 갑자기 나물을 왜 팔아?“, “3월 1일부터 상담 중 맞춤 광고가 가능합니다. 광고 노출이 싫으시다면, 당신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추천 봄 노래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싫어! 나물도 싫고 노래도 싫어”, “추천곡을 들으시려면 아래 링크 혹은 QR코드를…”, “아… 다 필요 없어. 너도 이상하게 변했어. 아직 추운데 봄이 뭐 어쨌다는 거야.”

 

* 아래를 클릭하시면 홍갑의 <봄날의 봄>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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