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날로부터 오늘까지

꽃과 잎사귀와 문장들
글과 사진 박소언

태어난 날로부터 오늘까지

언젠가 일터에서 시무룩한 얼굴로 앉아 있는 동료 언니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지난 밤 절친한 친구와 다퉜다고 했다. 나중에 환갑파티를 열 때 부르기로 마음먹은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걔를 부르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환갑파티요?’라고 내가 되묻자 60이 되면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신나게 놀 거라고 언니는 말했다. ‘환갑파티.’ 잔치를 파티로 바꿔 말했을 뿐인데 새롭게 생긴 날처럼 전혀 다른 모습들을 떠올리게 된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60이 된 언니를 상상해보다가, 60이 된 나도 한번 그려본다. 그러고 있자니 그날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정말로 조금 가슴이 떨렸다.

그날까지 내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 셈해봤다. 만약 내가 다행히도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시간, 정확히는 내 머릿속에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꼭 그만큼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엄마의 마른 등에 업혀 있던 장면이나 국민학교 입학식, 처음으로 내 짐을 꾸려 새로 살 곳으로 옮기던 날, 말도 안 되게 취해서 떡 혹은 건어물이 돼 운반된 새벽, 미워하고 좋아했던 여러 얼굴들. 어떤 걸 생각하면 연결된 다른 일이 떠오르고, 곳곳의 틈새마다 이야기들이 부지런히 숨어 있다. 긴 시간이구나. 여러 일들과 많은 사람과 촘촘한 순간들이 있었다. 시간의 길이를 가늠해보고 나니 아껴둔 긴 휴가를 내고 여행을 앞둔 사람의 마음이 됐다. 설레었던 마음에 의욕이 덧붙여졌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여행을 하면 좋을지 고민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여행 일정을 세세히 계획하는 일에 흥미가 없지만 배낭을 멜지, 캐리어를 끌지, 어디로 갈지 정도는 정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중 하나로 요즘엔 운동을 한다. 먹는 일이나 잠드는 일에도 관심이 늘었다. 지금까지의 시간과는 다르게 점점 몸이 둔하고 약해지는 일만 남았으니, 내가 타고 다닐 내 몸을 살뜰히 챙겨보기로 한 것이다. 어제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오늘의 앉은 자리에서 자주 나는 나를 상상한다. 하얀 백발을 하고 자박자박 걷는 나를, 여행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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