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찢고 목욕탕으로 달려가는 세계

어서 오세요! 동화의 숲
글 변왕중
그림 변다인

입을 찢고 목욕탕으로 달려가는 세계
– 개구리에 관한 이야기와 동화들

어릴 때는 가끔 우주의 끝은 어떨까? ‘여기는 우주의 끝’ 표지판이라도 있나 궁금했었다. 끝이 있지만 다다를 수 없다는 걸 대체로 이해하게 된 이후로는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을까?’라는 질문에 봉착했다.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과학적이든 비과학적이든 틀린 건 아직 없다. 우주는 게임과 다름없는 프로그램일 수도 있고, 무지막지하게 큰 거인의 뇌이거나, 분열된 세포 하나일지도 모른다. 다만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있는 것은 빅뱅 이론이다. 약 137억 년 정도의 과거에, 특이점의 팽창으로 시작돼 1초 동안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이라는 우주를 지배하는 힘들이 생겨나고, 3분 동안 우주에 존재할 물질의 98%가 생성됐다는 것이다. 그럼, 특이점 이전에는?

어느 해,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게 됐다. 이 우주는 이전에 존재했던 우주가 수축해서 생겼을 수도 있으며, 무로부터 창조됐을 수도 있고, 수많은 다른 차원의 우주 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으며, 대폭발은 어느 곳에서 늘 일어나는 평범한 일이거나,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 형태(시공간이)가 너무 낯설어 상상할 수 없었는데, 대폭발로 인해 이해의 범주 속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고 말해줬다. 그때부터 때때로 우리 우주 이전에 대해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것도 없음, 낡은 우주, 이해할 수 없는 시공간, 구슬들처럼 와그르르 굴러다니는 우주들…. 상상하다 보면 즐거워진다. 기분이 비 갠 여름 아침처럼 상쾌해지고, 머리 위로 미세먼지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가는 것만 같다. 현 우주를 만든 가능성들이 꼭 나와 당신들의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나 이전에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당신들은 지금의 당신 이후에 무엇이든 가능하다.

어린 시절, 깔깔대던 입 큰 개구리 이야기가 있었다.

동물 친구들에게 입이 크다고 놀림을 받는 입 큰 개구리의 동네에 목욕탕이 개업한다. 오오! 목욕탕은 입 작은 동물이 입 큰 동물의 등을 밀어줘야 한다! 입 큰 개구리는 목욕비를 치르고, 바지와 셔츠를 벗고, 뻐기면서 탕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 목욕탕 의자에 착석하고, 눈을 감고 등을 쭉 편다. 마침 누군가 개구리의 등을 툭툭 친다. “등 좀 밀어보시지?” 아니, 감히 어느 놈이…. 고개를 돌리자 하마가 큰 입을 벌리며 웃고 있다. 입 하나만은 누구보다 크다고 믿어온 개구리는 의사 선생을 찾아가 하마보다 더 많이 입을 찢어달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수술일지 시술일지 모를 집도를 마치고 다시 목욕탕을 찾아가자 이번엔 악어가 기다리고 있다. 자존심이 상한 개구리는 또 의사 선생을 찾아간다. 의사 선생은 마스크 줄을 귀에 걸고, 반짝반짝 빛나는 메스를 손에 쥐면서, 형식적으로 대꾸한다. “악어보다 많이 찢어버리면 오로지 하루밖에 살지 못해요. 딱 하루입니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은 하루를 살아도 떵떵거리면서 살고 싶다. 그것이 입 큰 개구리로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유일한 길이기도 하고. “예스! 오케이! 찢어주세요~!” 병원을 나와 목욕탕으로 부리나케 달려간 개구리가 맞닥뜨린 결과는 ‘금일휴업.’ 참혹하고 슬프지만, 배꼽을 쥐고 웃던 이야기다.

개구리에 관한 두 편의 동화가 있다. 하나는 한국 전래동화 ‘청개구리의 울음’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 말을 듣지 않는 무척이나 자주적인 청개구리가 있다. 일단 울음부터가 삐딱하다. ‘개굴개굴’이 아니라 ‘굴개굴개’ 울어버린다. 이리 가라면 저리 가고, 눈을 감고 자라고 하면 한사코 눈알을 부릅뜬다. 엄마는 죽기 전, 청개구리에게 자신을 산에 묻지 말고 냇가에 묻어달라고 유언한다. 청개구리가 거꾸로 안전한 산에 묻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청개구리는 하필이면 막판에 효심이 발동해 냇가에 엄마의 무덤을 만든다. 그래서 비만 오면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개굴개굴 우는 것이다.

‘개구리 왕자 이야기’는 서양의 전래동화다. 옛날 옛날에 한 공주님이, 공주님답게도 ‘금(金) 공’을 가지고 놀다 연못에 빠뜨린다. ‘금 공만 되찾을 수 있다면 뭐든 주겠다’며 슬피 우는 공주에게 개구리가 나타나 궁에서 지내게 해주고, 공주의 침대에서 재워준다는 조건으로 금 공을 찾아준다. 하지만 공주는 개구리를 모른 척하고, 개구리는 집요하게 공주를 찾아온다. 어찌어찌하다 개구리는 공주의 방까지 들어오고, 혐오감과 분노가 폭발한 공주는 개구리를 벽에다 죽일 기세로 냅다 집어 던진다. 그런데 벽에 철썩 부딪힌 개구리는 아름다운 왕자로 변하고, 공주와 행복하게 살게 된다. 그동안 마법에 걸려 개구리로 변해 있었음을 왕자가 말하자 반성의 눈물을 흘리는 공주의 퍼포먼스가 참으로 돋보이는 동화다. 이 ‘개구리 왕자’는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러시아 동화 ‘개구리 공주’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더 길고 다채롭다. 이 말고도 ‘개구리와 황소’라는 이솝 우화도 있다. 친구들에게 뻐기기 위해, 숨을 계속 들이마셔서 황소보다 더 크게 몸을 부풀리다 펑 터져버린 불쌍한 개구리 ‘그리니시’ 이야기다. 또, 개구리라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속담도 빼놓을 수 없다.

동화나 아이들이 듣는 이야기는 우리가 무엇이든 가능한 존재라고 말해준다. 뉴욕 맨해튼의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제복 차림의 운전사를 가진 부잣집 아이에게나 뗏목에 떠밀려와 구사일생한 쿠르드 난민 아이에게나, 동화가 펼쳐주는 이 가능성은 똑같다. 누구나 왕자가 되거나 왕자를 만날 수도 있고, 임금님이나 여왕이 될 수 있으며, 용을 무찌르고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강남의 평당 5,000만 원 아파트에 살거나, 평당 363원인 경남 산청군 삼장면에 사는 아이나 동화의 가능성 안에서 살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능성의 세계 안에서 성장하고, 어른이라는 무지막지한 현실에 도착한다. 물론 어른이라고 해서 세계가 만만해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무섭고 편협하고 두렵고 외롭다. 우리가 이 세계를 견뎌내는 것은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능성은 세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개구리가 있다. 그 개구리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자신의 실타래를 풀어 그 길을 따라간다. 어떤 개구리는 왕자나 공주가 될 수 있고, 어떤 개구리는 비딱한 짓만 하다가 부모님 무덤 앞에서 통곡할 수도 있다. 어떤 개구리는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어떤 개구리는 명예나 자존심을 위해 목숨을 걸 수도 있다. 현실은 다만 가능성의 입구일 뿐이다. 동화의 제일 큰 매력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 터무니없는 가능성이다. 동화를 읽고 듣는 아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가능성의 세계 안에서 숨쉬기 때문이다.

자, 연못에서 비를 맞는 한 마리 개구리가 있다.

왕자님이나 공주님으로 변신할까?

황소처럼 몸을 부풀리다 빵 터질까?

누가 던진 돌에 맞아 죽을까?

거짓말만 하다가 비만 오면 개굴개굴 울까?

입을 찢고 ‘금일휴업’이란 알림판 앞에 서게 될까?

가능성은 무궁무진, 비로소 현실은 의미를 가진다.

만약 당신이 가능성의 세계 안에 있다면 누군가에게 행복하다고 고백해도 된다. 사람만이 아니다. 사회와 국가, 세계가 그렇다. 예컨대 큰 화제가 됐던 드라마 <SKY 캐슬>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이 없음을 말해준다. 뭐,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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