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들

김민정의 세상 어디에나 詩
글 김민정

애인들

1

함정이 땅속에 숨고

사슬이 바람에 뜨듯이, 그래

 

자물쇠가 열쇠에 녹듯이

바라보며 녹는 눈

 

2

네 발로 기고 싶으며

옷은 털과 같다

 

신발엔 피가 흐르고

길은 풀밭과 같다

 

사람이 사람을

저렇게 좋아한다!

 

시인 정현종

시집 <정현종 시전집1>

문학과지성사, 1999

6년 전쯤이었나. 중국 샤먼에서 열린 한중작가대회라는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국과 중국의 시인과 소설가들이 두 나라를 한 해씩 오가며 서로의 시와 소설을 한데 풀어놓는 자리인데, 운 좋게도 그해 나는 평소 좋아해 마지않았던 정현종 시인과 함께일 수 있었다. 해서 나는 틈만 나면 호시탐탐 시인의 뒤를 따라다녔다. 왜? 시인은 내가 아는 최고령의 호기심 천국이니까. 호기롭게 ‘저기 봐라’ 가리키는 손 끝에, 호탕하게 ‘여기 봐라’ 부라리는 눈매 끝에, 하여간에 뭐가 반짝하고 걸리는 순간의 동그라미 같은 것을 나는 손 안에 몰래 훔치기도 했거니와, 깊은 밤에 그걸 손아귀에서 싹 풀자면 글쎄 풀어놓는 족족 별이 되는 기적에 나는 절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게도 됐거니와, 아무렴 정현종의 시는 ‘자물쇠가 열쇠에 녹는’ 무시무시한 단순함, 이 어찌할 수 없는 명쾌함의 속수무책으로 나를 수차례 만세 삼창하게 하였으니까.

 

역시나 그의 칼날은 나에게만 예리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제 시 몇 편을 우렁찬 목소리로 낭독하였고 제 나라말로 번역된 그의 시 몇 편을 뻥 뚫린 귀로 경청하던 중국의 시인들이 시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산이 나오고 강이 나오고 비가 나오고 바람이 나오고 나무가 나오고 꽃이 나오고 새가 나오고 아침이 나오고 섬이 나오고 초록이 나오고…. 초급 한자 책자에 그것도 거의 맨 앞장에 나올 법한 단어들로 연이어지는 그의 시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이게 왜 좋지, 이게 왜 들릴까 하면 온전히 딱 이것들뿐이어서구나, 하는 자신이 마구 드는 것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그네들이 딱 간절한 그 자리에 깊숙이 움터 있어서였구나, 하는 확신이 마구 드는 것이었다. 날 때부터 모자람을 모르고 곧 죽어도 과함을 모르니 이 가벼움을 이 민첩함을 이 명랑을 이 날아오름을 그 무엇에 비유하리.

 

무엇보다 사랑. 특히나 사랑. 어쨌거나 사랑. 그 사랑이든 저 사랑이든 사랑으로 힘들 때마다 습관처럼 꺼내 읽는 것이 또한 정현종 시인의 시집이곤 했다. 사랑에 엄살을 떠는 꼴을 좀처럼 봐주지를 않으니 머쓱해서라도 내 스스로 툭툭 털고 일어나게 하는 데 묘한 재주가 있는 시인이 그이기도 한 까닭에서였다. 사랑에 있어 걸핏하면 변비인 나를 변기에 앉혔다가 콧소리를 내며 일어서게 하는 그만의 재주는 언제나 이런 대목에서 맥 짚게 됨을 내 모르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저렇게 좋아한다!’라니. 이렇게도 아니고 ‘저렇게’라니. 이 문장의 말 다 함. 이 문장의 더는 할 말 없음. 그래서 좋은가. 그러니 완벽하지.

 

겹눈과 홑눈으로 이루어진 잠자리의 눈. 겹눈으로는 움직이는 물체의 모양을 볼 수 있고 홑눈으로는 밝고 어두움을 구별할 수 있는 잠자리의 눈. 정현종 시인의 눈이 딱 잠자리의 눈, 딱 그 짝이라 한다면 내가 왜 여직 틈만 나면 그를 좇고 있는지 이해들 가실 거다. ‘애인들’은 고사하고 애인이라도 하나 꿰찬 채 방바닥을 네발로 기어 가려운 등이라도 긁던 때가 언제였는지 아주 그냥 가물가물한 요즘이다. 정 안 되면 핑계 삼아 털과 같은 옷부터 사고 볼 일이려나, 그래, 곧 눈 다 녹겠다.

ⓒ(주)혜인식품-네네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