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의 작은 마을 락치에서 만난 따뜻한 식탁

살아 있는 부엌
글과 사진 류지현

안데스의 작은 마을
락치에서 만난 따뜻한 식탁

꼬오꼬꼬, 꼬오꼬꼬. 반쯤 열린 나무문을 여니 닭 한 마리가 우리보다 먼저 들어와 방을 탐사 중이다. 쓱. 내디딘 발이 바로 미끄러진다. 이 닭님께서 탐사만 하신 게 아니라 실례도 하셨나 보다. 어르고 달래서 닭을 내보내고 있는데 건너편 부엌에 있던 막시밀리아나가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와 단번에 닭을 쫓아낸다. 까무잡잡한 작은 얼굴에 커다란 눈, 양 갈래로 딴 동아줄처럼 굵고 검은 머리, 가지런하면서 커다란 이가 훤히 드러나는 환한 웃음이 인상적인 막시밀리아나 여사의 집에서 난 오늘 하루를 묵고 있다.

막시밀리아나의 가족은 티티카카 호수와 옛 잉카의 수도 쿠스코(Cuzco, 현재는 페루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 락치(Raqch’i)에 살고 있다. 오래됐지만 정갈한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을 여느 곳처럼 단정한 흙길이 보인다. 그 왼쪽으로는 작은 축사가 있고, 오른쪽에는 부엌과 곳간이 보인다. 현관 위층은 막시밀리아나가 딸 베로니카와 아들 루초와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마당의 한쪽에는 수돗가가, 반대편에는 성모 마리아를 모셔놓은 작은 제단이 무성한 푸른 잎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마당 끝 쪽에 보이는 건넛방이 손님이 머무는 공간이다.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작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의 외갓집에 와 있는 것만 같다. 커다란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별채가 보였고, 오른쪽에 있던 외양간에서는 황소가 고개를 내밀어 커다란 눈으로 인사를 하고는 했다. 낯선 소가 무서워 조심해서 살금살금 마당으로 들어가면 한복을 입고 쪽을 진 외할머니가 대청마루에서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셨다. 처음 보는 막시밀리아나가 낯설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녀의 큰 미소가 외할머니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가 타고 있는 부엌 아궁이 위 테라코타 냄비에서 김이 솔솔 올라온다. 막시밀리아나는 그 앞에 앉아 조용히 식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인기척을 느낀 막시밀리아나와 눈웃음을 나누고 조심스럽게 부엌 구경에 나선다. 집 안의 다른 건물처럼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아도베 점토로 만든 부엌은 안팎의 벽뿐만 아니라 바닥까지도 모두 흙으로 되어 있다. 다만 물을 쓰는 곳은 현대식으로 타일을 붙였다. 이제 물 튀는 걸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서 여간 편리한 게 아니란다.

집에서 쓰는 도자기 그릇과 냄비는 모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든 것들이다. 쿠스코에 내다 팔 정도로 락치는 도자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이제 부엌에 타일 싱크대가 들어서 씻은 그릇을 그 위에 포개놓고 말리기도 하지만 볕이 좋은 날이면 마당에 들고 나가 햇볕에 말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시계는커녕 작은 전구 외에 전기시설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 부엌에 냉장고를 위해 내줄 자리는 없다. 볕이 직접적으로 닿지 않는 탁자 밑에는 오랫동안 두고 쓰는 식재료를 주로 보관한다. 한쪽에 잘 여며져 있는 자루에는 감자가 잔뜩 들어 있다. 감자를 보관할 때 햇빛에 노출되면 그 맛이 쌉쌀해진다며 감자 자루는 잘 덮어 놔야 한단다. 반면 올루코(Olluco, 안데스 산지가 원산지로 감자와 유사하다. 길쭉한 모양에 노란빛을 띠고, 군데군데 빨간 점이 보인다)나 막 따온 옥수수, 양파 등은 통풍이 잘되는 곳에 먹을 만큼씩만 보관한다. 나머지 식재료들은 그때그때 밭에서 따거나 부엌 옆 창고에 두고 쓴다고 한다.

부엌 앞 작은 축사에는 꾸이(Guinea pig, 퀘차어로 Cuy)가 자라고 있다. 꾸이는 안데스에서 전통적으로 먹어온 동물이다. 큰 햄스터 정도 되는 동물인데 ‘꾸이, 꾸이’라는 소리를 낸다고 꾸이라고 부른단다. 얼마 전 방문했던 안데스의 다른 부엌에서는 꾸이 여러 마리가 부엌 안에서 살고 있었다. 흙바닥에 동물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부엌이 낯설었지만, 안데스에서는 전통적으로 꾸이를 부엌 안에서 키워왔다고 한다. 부엌이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막시밀리아나가 오후 내내 음식을 준비해 차려낸 저녁 식탁에 모두가 둘러앉았다. 이제 곧 결혼한다는 큰딸 베로니카와 쿠스코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막내아들 루초, 막시밀리아나, 나와 다비드, 이렇게 다섯은 오늘 하루 가족이 되어 스페인어, 퀘차어, 영어를 섞어가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식탁 위에는 맑은 닭고기국과 삶은 초클로(Choclo, 알이 큰 옥수수로 안데스 지역의 주요 작물)가 올랐다. 소박하고 단출한 식사이지만 막시밀리아나의 정성과 환대가 깃들어 풍요롭다.

오래전 친구와 남도 배낭여행을 갔었다. 배낭에 달린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남도 해안도로 위를 종일 걸었다. 해가 저물 때 즈음 작은 트럭 하나가 우리 옆에 섰다. 어린 두 여자애가 큰 배낭을 짊어지고 오르막길을 걸어가는 게 안쓰러웠는지 동네 농부 아저씨가 집에 가던 길을 멈췄다. 우리는 우리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아저씨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저씨의 트럭에 냉큼 올라탔다. 어디까지 가는지, 잘 곳은 있는지 등등을 묻던 아저씨가 자기가 아는 민박집을 제안하셨다. 알 수 없는 어딘가로 간다는 생각에 우리는 마치 보물섬 여행이라도 가는 듯 신이 나서 좋다며 아저씨 옆에서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굽이굽이 해안 길을 돌아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은 농지들을 달려 바다가 마당인 집에 도착했다.

겨울이라 민박을 하는 옆 건물은 춥다며 본인들이 지내시는 안채의 건넛방을 내어주신 노부부는 우리 방에 불을 열심히 때주셨다. 피곤함과 따듯함에 몸과 마음이 녹아버린 우리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노크 소리에 눈을 떠보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저녁도 건너뛰고 잠이 들어버린 우리를 위한 고봉밥과 함께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할머니는 민박철이 아니라 찬이 없다며 그냥 본인들 먹는 데 수저랑 밥만 놓았다고 하셨다. 하지만 고봉밥에 장어찌개, 한 상 가득한 각종 찬까지 우리는 그날,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던 고봉밥의 마지막 한 알까지 몽땅 비웠다.

다시 길을 나설 때 그 농부 아저씨께서 트럭을 타고 다시 오셔서 큰 길가로 데려다주셨다. 이제는 아무리 생각하고 찾아봐도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시 찾아가지 못할 그곳에서 평생 안고 살 수 있는 정겨움을 만났다. 그리고 페루의 안데스 산맥에서, 해발 3,000m 고지가 넘는 수많은 산봉우리 속 작은 마을 락치에서 그날을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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