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에서 지은 버섯밥과 고등어구이

밀양댁 엄마 손 밥상
글과 사진 이미라

아궁이에서 지은 버섯밥과 고등어구이

평소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남편이 유일하게 찾아보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오지에 사는 사람들과 며칠 동안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을 체험해보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다. 내 눈에는 불편함을 자처하고 산속에 들어가서 사는 그들의 모습이 의아스럽기만 한데, 남편에게는 그들의 모습이 마냥 행복하고 좋아 보이나 보다. 처음엔 무슨 재미로 저런 걸 보고 있나 싶어서 곁눈질하다가 어느새 나도 남편과 함께 열렬한 애청자가 되고 말았다. 방방곡곡 산속에 저렇게나 많은 사람이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또한, 불편한 생활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편안해 보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생활의 고단함은 마음의 고단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 타인에 의해 상처받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과의 싸움만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집을 짓고 나름의 법칙을 따르며 살고 있는 그들의 공통점은 자연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으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사는 것이다. 특히 직접 채취한 재료를 간단한 조리법으로 요리해 먹는 모습이 어설퍼 보이면서도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산이 주는 약초, 버섯, 나물, 과일들로 만드는 투박한 밥상 중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밥이다. 전기밥솥이 아닌 장작불에 지은 밥은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것처럼 맛있어 보인다. 둥굴레 뿌리를 캐오면 둥굴레밥을 짓고, 버섯을 따면 버섯을 올려서 짓는 그들의 밥은 산의 기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끔 장작이 타고 남은 잔불에다 굽는 더덕이나 버섯, 말린 생선 등은 우리에게 익숙한 맛임이 분명한데도 너무나 특별해 보인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자연인 밥상을 따라 해보기로 했다.

일찍부터 자연인들의 추종자였던 남편은 벽돌을 쌓아 부실하지만 형태를 갖춘 아궁이를 두 개나 만들어뒀다. 장작으로 불을 지피는 것조차 어설퍼서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눈으로 익힌 경험을 실행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마른 풀들이 지천이라 불쏘시개는 충분하다. 몇 년 전에 사두고 제대로 사용해본 적도 없던 손도끼로 참나무 장작까지 준비하고 나니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마음이 설렌다.

우리가 준비한 자연인 밥상은 무와 표고버섯을 넣고 지은 버섯밥, 된장 그리고 고등어구이다. 겨울 무는 물이 많고 달아서 어디에 넣어도 맛있지만 굴밥, 홍합밥, 버섯밥 할 것 없이 밥을 지을 때 넣으면 다른 재료와 아주 잘 어우러진다. 버섯밥은 양념간장을 만들어 비벼 먹는데 파를 송송 썰어 넣고 들기름을 듬뿍 넣어 만든다. 뚝배기 된장은 자연의 맛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 손질한 멸치와 파, 매운 고추만 넣어 짭짤하게 끓이기로 한다. 석쇠에 올린 고등어를 잔불로 은근하게 구워내면 ‘밀양댁 자연인 밥상’이 완성된다.

장작으로 불을 지피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평소에는 버튼 하나 누르면 1초 만에 준비되던 연료인데 10분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마른 풀과 잔가지들로 불을 지피고 작게 잘라둔 참나무 장작으로 불이 옮겨 붙게 만든다. 밥상을 차리기 전에 연기로 배가 부를 지경이다. 장작이 불길을 머금기 시작할 즈음이면 연기가 잦아들면서 요리하기 적당한 불길이 준비된다. 우리 집 아궁이는 폭이 좁고 길어 그런지 앞뒤로 뚝배기와 냄비를 나란히 올릴 수 있다. 불린 쌀에 채 썬 무와 표고버섯을 넣어 버섯밥을 준비한다. 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버섯이 소중한 식재료일 뿐 아니라 단백질 공급원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에는 상황버섯, 말굽버섯, 잔나비의자버섯, 싸리버섯 등 이름도 생소한 버섯들이 등장했지만 나에게 가장 친근하고 맛있는 버섯은 표고버섯이다.

버섯은 요리를 하면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생각보다 넉넉하게 넣을 필요가 있다. 채 썬 무도 듬뿍 넣었더니 냄비가 가득 차올랐는데 은근히 밥 욕심을 부린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뚝배기 된장은 머리와 내장을 뗀 멸치를 통째로 넣고 파와 고추를 다져 넣어 칼칼하게 준비한다. 어느새 힘이 붙은 장작불이 밥도 된장도 속도를 내어 끓여주는데, 불을 줄여야 할 때는 장작불을 슬그머니 끄집어내거나 다른 쪽으로 밀어두면 되기에 조리대에 서서 요리를 할 때보다 훨씬 능동성을 요한다. 작은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장작의 불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끓고 있는 냄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묘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밥 한 그릇을 준비하는 번거로운 과정들이 마치 의식을 준비하는 특별한 시간처럼 느껴지다니 이렇게 눈 맞춤을 하면서 만든 밥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맛보기 전부터 이미 그 밥은 특별하다.

밥과 된장을 순식간에 끓여낸 참나무 장작은 어느새 그 세력을 다하고 숯으로 변했다. 벽돌을 쌓아 만든 아궁이의 높이를 낮게 만들기 위해 벽돌 몇 장을 덜어낸다. 석쇠에 고등어를 넣어 아궁이에 걸쳐두니 숯의 열기가 고등어의 기름을 쏙 빨아들이고 담백함만 남긴다. 뜸이 잘 든 버섯밥을 주걱으로 뒤적여보니 밥의 찰기가 다르다. 투명하게 변한 무와 쫄깃한 버섯을 고루 섞어서 대접에 밥을 푸고 나니 냄비 바닥에 누룽지가 노릇노릇 두껍게 눌어붙어 있다. 밥을 먹는 동안 누룽지를 끓이기 위해 물을 붓고 잔불에 뭉근히 끓도록 아궁이에 올려두고 상을 차린다.

아궁이 옆에 상을 차렸더니 밥을 먹는 동안에도 불의 기운이 전해져 몸이 따뜻하다. 반찬은 익은 김치와 고등어가 전부다. 하지만 들기름향 가득한 양념장을 뿌려 비벼 먹는 버섯밥은 칠첩반상 부럽지 않은 풍부한 맛을 전한다. 숯검정이 묻은 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대박’을 외치며 음식을 먹는 남편과, 냄비에서 누룽지를 긁어 퍼 담고 있는 내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불과 1년 전에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다. 삶의 터전이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달라졌다. 예쁘게 차린 밥상에서 고급지게 먹는 식사를 좋아했었는데, 틈만 나면 마당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궁리 중이다. 아무렇게나 대충 차려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마당을 누비고 다니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스스로도 참 정겹게 느껴진다.

한 끼의 식사를 준비하는 반나절 동안 나는 자연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사회에서 다친 몸과 마음을 스스로 치유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에 그 치유 정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루의 삶을 결정짓고 온전히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다 보면 쓸데없는 걱정은 줄고 스트레스도 사라진다. 시간에 쫓기며 사는 사람은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은 그 자체로 약이 돼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스린다. 추운 날씨를 탓하고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탓하면서 자꾸 미루기만 했었는데, 막상 불을 지피고 밥을 지어 먹고 나니 자주 자연인 놀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 살든 누구와 살든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누릴 용기만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자연인이 될 수 있다. 분망한 생활 속에서도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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