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이 돼서도 교정지 담긴 에코백을 멘 할머니 편집자로 살고 싶다

마이 홀릭 라이프
인터뷰 장보영
사진 주민욱

백발이 돼서도 교정지 담긴 에코백을 멘 할머니 편집자로 살고 싶다
<문학동네> 편집자 이연실

서점에 가면 신간을 비롯한 흥미로운 책들이 가득하다. 표지를 훑어 ‘누가 썼는지’도 보지만 판권을 찾아 ‘누가 만들었는지’도 살펴보는 건 내 직업이 에디터여서일지도 모르겠다. 한 권의 책의 주역은 작가지만 그 책을 편집하는 편집자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요즘에는 훌륭한 기획자가 기획한 멋진 책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저런 멋진 책들을 둘러보던 중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 책 참신하다’, ‘이 책 참 재미있겠다’ 싶으면 책임 편집에 ‘이연실’이라는 이름 석 자가 으레 적혀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그녀의 이름을 자연스레 기억하게 됐고, 출판사에서 마련하는 북토크 자리에서 우연히 그녀와 만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책을 쓴 작가의 곁에 오랜 친구의 얼굴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은 SNS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시시각각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책과 작가 이야기를 공유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행복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문학동네> 편집부 국내5팀장. 2007년 <문학동네>에 입사해 오늘까지 장장 12년을 일하고 있는 이연실 편집자를 상수동의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작가들과 외부 미팅을 할 때 자주 오는 곳’이라며 인터뷰 장소로 그녀가 추천한 공간이었다. 약속 장소로 나오는 그 길에도 그녀의 손에는 교정지가 담긴 에코백이 들려 있었다.

 

12년차 편집자의 삶

오랜만이에요. <문학동네>에서만 편집자로 12년 동안 일한 걸로 알고 있어요. 요즘처럼 이직이 잦은 시대에 대단해요.

사실은요, 2009년인가. <문학동네>에서 일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 퇴사하고 다른 출판사에 잠시 다닌 적이 있어요. 그런데 2개월 만에 <문학동네>로 재입사했답니다(웃음). 잠시 다녔던 그곳은 당시 굉장히 매력적인 책들을 많이 내던, 그래서 제가 상당히 다녀보고 싶었던 출판사였어요. 좋은 점도, 배울 점도, 신기한 점도 많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사하게 됐죠. 처음 저에게 일 가르쳐주시며 정들었던 분들이 있는 <문학동네>에 다시 돌아오니 동료들이 엄청 놀리더라구요. ‘이연실이 <문학동네> 최단기 재입사자’라고.

 

그런 비화가 있었군요. <문학동네>에서 정말 여러 권의 히트작들을 담당하셨잖아요. 평소에도 궁금했는데, 연실 씨가 처음부터 기획해서 만든 책들을 좀 소개해주세요.

크게 제가 처음부터 기획해서 나온 책과, 회사 차원에서 작가와 계약을 하고 제가 책임 편집을 맡아 나온 책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김훈, 성석제, 김용택, 서명숙, 한창훈 작가님들의 책들이 후자에 속하구요.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와 <나의 친애하는 적>, 김모아․허남훈의 <여행하는 집, 밴 라이프>, 근간인 이슬아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의 경우가 전자에 속하죠. 저는 다방면으로 기획을 하는 편인데요. 에세이를 가장 많이 진행하지만 그 외에 육아서도 있고, 만화도 있어요. 또 국내 작가들 책만 진행하는 것도 아니구요. 우선 제가 보고 싶고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책을 기획하는 듯해요. 제가 기획한 책들 중에 저는 너무 좋은데, 출간 전에는 내부에서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던 책들도 있어요. 대표적으로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직접 참전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400페이지에 걸쳐 다룬 책인데요. 내용이 너무 무거워서 우리나라 시장에서 많이 팔릴까 싶어 초판을 적게 찍어 출간을 했어요. 그런데 그 책이 2015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거예요. 그 책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로 지금까지 중쇄를 거듭해 몇만 부가 팔린 에피소드가 있답니다.

 

그럴 땐 편집자로서 참 뿌듯하고 기분 좋을 것 같아요. 보통 책 기획을 위한 자료 조사는 어떻게 하나요?

요즘은 SNS를 통해 기획 아이디어를 많이 얻구요, 미디어도 자주 들여다보는데요. 그럼에도 제가 가장 열심히 보는 건 잡지예요. 잡지에 실린 인터뷰나 칼럼 등을 통해 좋은 작가님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요. 유명인이 아니라 특정 주제에 통달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 참 행복해요.

 

  

  

그럼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겠네요.

아주~ 많았죠. 잡지도 정말 해보고 싶은 분야인 건 분명하고, 굉장히 좋아하고 동경하고 궁금한 세계인 건 맞는데, 마감을 생각하면 윽! 단행본 마감할 때도 울며불며 하는 저인데 그 마감을 주 단위 내지 월 단위로 계속해야 하는 분들은 얼마나 더 울까 싶어요. 그걸 생각하면 차마 할 수가 없겠더라구요.(웃음) 하지만 나중에 때가 되면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요즘 편집자들은 작가들의 책을 편집하는 일보다 책을 기획하는 일에 더 집중하거나 열의를 쏟아야 하는 추세인 듯한데, <문학동네>에서는 초반의 기획 단계에서 제안하는 아이디어들이 대체로 수용되는 편인가요?

<문학동네>의 장점이기도 한데요. 젊은 편집자들이 하고 싶어 하고 해보려 하는 기획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고 지원해주는 편이에요. 물론 그 책이 단행본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판단은 냉정하게 하지만요. 직원이 150명이 넘는 큰 조직인데도 저는 지금도 제가 무언가 하고 싶은 기획이 생기면 대표님께 직접 가서 말씀드려요. 그럼 대표님께서도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대체로 해보라고 기회를 주시는 편이죠.

 

그런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책들은 어떤 것들인가요?

굉장히 많은데요. 대표적으로 <김이나의 작사법>을 꼽을 수 있어요. 평소 김이나 작사가님을 보면서 무척 흥미로운 분이라고 생각해서 에세이를 한번 써보자고 제안을 드렸고, 그렇게 해서 작사에 대한 책을 쓰게 됐죠. 그리고 이른바 ‘약 빤 그림’이라고 하죠? 양경수 작가님의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도 그렇구요.

 

주제를 먼저 구상한 뒤에 작가에게 ‘이러이러한 책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나요?

책의 주제와 구성을 다 해놓고 해당 내용에 관한 글을 잘 써줄 것 같은 작가를 섭외하는 기획자나 에디터들도 있지만, 저는 일단 작가를 도구처럼 이용하는 것 같은 그 방식에는 약간의 거부감이 있어요. 저는 특정 사람에게 흥미나 매력을 느낀 후에 그 사람과의 만남을 거듭한 끝에 책의 주제를 함께 정하는 편이죠. 저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끌어내는 일이 무척 재미있거든요.

 

꼭 내가 쓰지 않아도 충만한 세계

국문학도로 알고 있어요. 어렸을 때도 편집자가 되고 싶었나요?

제 꿈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소설가였어요. 대학 다닐 때도 소설창작학회에서 활동했구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저는 특별활동 같은 것을 선택할 때면 다른 건 고려해보지도 않고 으레 문예반이나 독서반 같은 것만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너무 좋아했고, 그래서 당연히 작가가 돼야겠다고 믿어왔죠.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 대학 졸업반이 됐는데 돈이 엄청 필요한 상황이 온 거예요. ‘망했다, 등단도 못하고 막말로 작가의 시다바리(?)나 해야 하는 출판사에 들어가게 생겼구나!’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농담처럼 건네며 ‘딱 1년만 해보자’고 다짐하고 <문학동네> 입사 시험을 봤죠. 당시 편집자 신입 연봉이 <문학동네>가 가장 높더라구요. 그렇게 합격하고 4학년 1학기에 편집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12년이 지났네요.(웃음)

처음에는 ‘1년만 참고 연봉 갖고 튀자’고 생각했는데요. 그런데 세상에나, 일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편집자들을 비롯해 디자이너와 마케터 등 각자의 자리에서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세상에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 너무 행복했어요. 한 권의 책 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오랜 꿈이었던 소설가에 대한 열망은 어떻게 됐나요?

생각해보면 4학년 1학기 때 저는 저를 미워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나도 돈을 벌어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데, 글 쓰는 일로는 빨리 돈을 못 벌겠고, 글로써 그럴듯한 사람이 못 되니까 외로워지더라구요. 그래서 자꾸 나를 구박하게 되고…. 그런데 <문학동네>에 들어오니까 월급도 주지, 내가 고통스럽게 안 써도 되지, 심지어 내가 보고 싶은 책을 훌륭한 작가님들이 써주시니 너무 좋은 거예요.(웃음) 몇 개월도 안 돼 ‘1년만 참고 연봉 갖고 튀자’는 마음은 없어졌어요.

 

살짝 허무한데요.(웃음)

대학 다닐 때 김언수 작가님, 손보미 작가님 같은 분들과 소설창작학회 활동을 함께했는데 가끔 만나면 저에게 ‘소설 쓰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보세요. 그런데 저는 의외로 그런 욕구는 들지는 않더라구요. 언젠가 어떤 형태의 책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편집자가 작가로 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도, 편집자가 작가의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편집은 엄연한 하나의 독립적인 업(業)이고, 책을 이루는 커다란 부분이니까요. 저는 그 일이 무척 잘 맞고, 그 일을 통해 결핍감보다는 충만함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나는 작가보다는 편집자가 더 맞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은 일을 하면 할수록 더 견고해졌어요.

 

함께 책 작업을 한 작가님들 한 분 한 분이 소중할 것 같아요.

물론이죠. 한 사람의 작가님을 만날 때마다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아요. 작가님들이 원고를 쓸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다는 것도 좋구요, 작가들의 글을 가장 처음 읽는 사람이라는 것도 좋아요. 이런 직업은 흔하지 않겠죠. 책 작업을 통해 제 삶에 영향을 끼친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특히 허지웅 작가님은 <필름 2.0> 기자 시절부터 좋아했는데요, 그분의 삶을 듣고 ‘이렇게 힘들게 사는 분도 있구나. 내가 제일 힘든 게 아니었구나’라는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정말 감사한 분인데 현재 암 투병 중이시잖아요. 문득 ‘이 분이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오랜 시간을 봐왔고 함께 투닥거리며 책도 세 권이나 만들었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웃으면서 원고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조급해졌어요. 허 작가님을 통해 내가 단순히 일로 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완쾌할 거라 믿고 많이 기도하고 있어요.

 

애틋하네요. 함께 작업하는 동안 책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정말 많은 걸 느끼고 배울 것 같아요.

섬진강가에 집 짓고 사시는 김용택 작가님도 특별한데요, 작가님은 엉뚱하게도 가끔씩 전화 주셔서 저에게 ‘연실아, 나 통닭 먹는다~’라고 안부를 전하세요.(웃음) 굳이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좋은 거 볼 때, 맛있는 거 먹을 때 떠올라서 연락하는 일이 참 좋아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 권의 책이 나오는 과정

편집자로서 하루 일과가 어떤지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생각보다 편집자가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굉장히 적어요. 어떤 날은 시장 조사, 디자이너 미팅, 저자 미팅으로 원고를 한 쪽도 못 보는 날도 있으니까요. 그런 날은 에코백에 가지고 온 교정지를 집으로 가져가서 보는 거죠.

 

교정, 교열은 어떻게 보나요?

먼저 PC 교정이라고 해서 <문학동네> 교정 원칙에 의거한 작업을 한 차례 거친 뒤에 원고를 출력해 종이 교정을 3~4차례에 걸쳐 봐요. 개고를 해야 한다거나 보완이 필요한 경우에는 작가님께 추가로 요청을 드리지만, 완고라는 판단이 들면 바로 종이 출력을 하죠. <문학동네>는 교정 교열의 원칙이 뚜렷한 편이라 한 글자를 고쳤을 때 자다 깨워 물어봐도 왜 이걸 고쳤는지 근거가 분명해야 해요. 종이 교정을 보면 그 근거가 남으니까요. 편집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꿨다는 걸 저자나 역자에게 보여드리고, 그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인 거죠. 그 근거 자료를 가지고 어떤 것이 최선의 표현이고 문장인지 작가와 편집자가 마주앉아 계속해서 의견을 주고받는 거예요. 교정된 부분은 조판 디자이너들이 고치고, 그 고친 원고를 다시 출력해 저희 편집자가 대조 교정을 본답니다.

 

보통 한 사람의 편집자가 몇 권 정도의 책을 동시에 진행하나요?

늘 조금씩 끊이지 않고 돌아간다고 보시면 되요. 저의 경우 현재 5권쯤 진행하고 있어요. 요새는 김훈 작가님을 자주 뵙고 있는데요, 작가님께서 지금 연재를 하고 계시거든요. 작가님께서 마감을 하시면 원고를 받으러 제가 작업실에 가요. 작가님은 종이에 연필로 원고를 쓰시는 걸로 유명하시잖아요. 원고를 주시면 제가 작가님 작업실에서 타이핑을 해요. 제가 타이핑을 할 때 김훈 작가님은 책상에 산을 이룬 지우개 가루를 청소하시구요.(웃음) 어떤 책을 만들고 있느냐에 따라 매번 편집자로서의 일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일정한 패턴은 없어요.

 

<문학동네>의 장점이 참 많지만 반면 대형 출판그룹이다 보니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문학동네>에서만 한 해 400~500종의 책이 나와요. 신인 작가님들의 경우 <문학동네>에서 책을 내면 무조건 엄청 잘 팔릴 거라 기대하시지만 사실 다 그런 건 아니거든요. <문학동네>의 경우 워낙 출간되는 종이 많다 보니 내부 경쟁이 엄청 치열해요. 내부 경쟁에서 먼저 선택받아야 홍보나 노출면에서 더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되죠.

 

어떤 책들이 이른바 그 ‘내부 경쟁’에서 살아남나요?

재미있는 책들은 출간 전에 이미 사내에 소문이 쫙 돌아요. 디자이너들이 조판 작업 중에 원고를 읽고 ‘그 책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말하는 책들은 확실히 잘되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 책들은 마케터들도 신이 나서 자발적으로 판을 짜구요. 그러면 회사에서는 그 책에 조금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지원에 힘을 실어주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선택과 감이 굉장히 중요해요.

 

책 만들면서 언제 스트레스를 제일 많이 받나요?

사람들이 저에게 ‘이연실은 작가 복도 많다’고들 말씀하시는데, 물론 사실이지만 외부에는 말하지 않는 힘든 일들도 그만큼 많아요. 그럴 때는 회사에 있는 제가 ‘눈물의 계단’이라고 부르는 곳에 가서 폭풍 눈물을 흘리죠.(웃음) 기대보다 책이 잘 안돼서 저자와 사이가 어색해졌을 때도 괴롭구요. 작가가 글을 쓸 때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편집자이고, 가까운 사이에서는 힘든 일들이 보통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노력은 하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어떤 동료 편집자가 외서만 만들다가 국내 작가들의 책을 만들면서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는데,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그 말에 참 공감했어요.

 

보통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제 사무실 책상 벽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저에게 주신 쪽지, 사진들이 잔뜩 붙어 있는데 그거 보면서 그냥 울어요.(웃음) 그렇게 울고, 그러다가 집에 가서 엄마 밥 먹고 힘내고, 또 좋아하는 작가님의 말들 생각하고. 아, 그리고 서점에 가요. 서점에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풍경만 봐도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재작년부터 세계 서점 기행을 다니기 시작했는데요. 유럽 서점 기행, 중국 서점 기행을 다녀왔고, 그리고 작년에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글로벌 출판전문인력 양성 과정을 통해 뉴욕 서점 기행을 다녀왔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영감을 받고 돌아왔죠. 특히 중국 가서 굉장히 놀랐는데요, 문화재 내부 정자에 지은 서점, 지하 벙커를 고쳐 지은 서점 등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멋진 곳들이 많더라구요.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대형 서점들은 공간 그 자체로 감동을 주기엔 조금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간절한 인생이 담긴 책들을 만들고 싶다

최근 대한민국 베스트셀러 점유율을 보면 소설보다 에세이가 많은데, 왜 그럴까요?

참 놀라운 질문이에요. 사실 제가 출판계에 처음 발을 디뎠던 2007년만 해도 매출 규모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에세이보다 소설이 훨씬 압도적이었거든요. 그런데 불과 10년 만에 이렇게 판도가 바뀐 걸 보니 엄청난 변화인 듯해요. 요즘의 사람들은 꽉 짜인 긴 이야기보다는 수다 떨 듯 편안한 이야기,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고 이런 현상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는 보지 않구요. 좋은 작품이 나오면 저는 언제든 판도는 바뀔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에세이가 가진 힘은 무엇일까요?

김훈 작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산문은 노인의 장르다’라구요. 에세이란 누군가가 자기 삶을 한번 살아본 다음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삶을 다시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지나온 삶의 궤적을 같이 걸을 수 있는 에세이를, 그래서 저도 참 좋아하죠.

 

최근에 좋다고 생각한 책으로 무엇이 있나요?

김은성 작가님의 <내 어머니 이야기>라는 만화책이에요. 작가가 함경도 출신의 어머니를 인터뷰한 책인데 아쉽게도 절판됐었거든요. 그런데 김영하 작가님이 <알쓸신잡>에서 ‘세상에 사라져서는 안 될 책’이라 언급해주셔서 다시금 주목받았죠. 저희 회사에서 복간을 준비하면서 출간 전부터 재미있다고 소문이 자자했어요. <내 어머니 이야기>는 평범한 누군가의 삶, 그의 말과 생각이 엄청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에요. 저는 어떤 한 사람이 몸으로 겪어낸 것들과 몸으로 쓴 이야기는 이길 수 없다고 믿어요. 작가란 흘러가는 역사 속의 사람들을 붙잡아 책으로 데려오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구요.

 

반면 연실 씨에게 좋지 않은 책은 어떤 책인가요?

금방 사라져도 조금도 아깝지 않은 책이요. 금방 없어지고 금방 읽히는 책. 시류에 따라 나오는 책. 그런 책은 안 만들어봤고, 앞으로도 만들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어떤 책을 만들고 싶나요?

정말 간절하게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분들은 만나면 그 마음이 느껴져요. 이 이야기가 얼마나 간절하고 이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지. 금방 써버리거나 흘려버리지 않고 오래 묵혀둬서 무르익었을 때 결국 써내고야 마는 작가님들의 책을 만들고 싶어요.

 

스스로 생각했을 때 편집자로서 갖고 있는 좋은 자질은 무엇인가요? 반면 보완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함께 말해주세요.

제가 갖고 있는 자질 중 좋은 점은 인연이 된 작가님과 그분의 책을 정말 좋아하고, 그 마음으로 책 출간 이후에도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려는 태도랄까요? 그 열정으로 너무 앞만 보며 달려가다 보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돌아보지 못한 적도 있는 것 같아요. 그 부분이 곧 저에게 부족한 점이겠죠. 올해는 함께하는 후배들에게 좀 더 좋은 선배, 좋은 동료가 되고 싶어요.

 

올해 어떤 계획들을 갖고 있나요?

올해는 저에게 무척이나 의미 있는 해가 될 것 같은데요. 중요한 책들이 많이 나올 예정이구요. 그중 몇 권을 소개해드리면 박상규 기자님의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화제가 된 여러 사건들을 결정적으로 터뜨린 기자님이신데 제가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분이거든요. 또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제가 무려 8년을 쫓아다닌 작가님의 원고를 올해 드디어 받기로 했어요. 어쩌면 편집자 인생에서 대작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선물처럼 다가온 그 책을 반드시 잘 만들고 싶구요. 제가 사랑하는 작가님들과 올해도 재미있게 신나게 책을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부 국내5팀장. 2007년 <문학동네>에 편집자로 입사해 오늘까지 일하고 있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와 <나의 친애하는 적>, 양경수의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김난도의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등 다수의 히트작들을 기획 및 책임 편집하며 지난 12년 동안 ‘북 디렉터’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져가고 있다. instgram.com/promun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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