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스탕스 마담 내 친구 엘리즈

마고의 매직 라이프
글과 사진 마고

레지스탕스 마담 내 친구 엘리즈

한국 사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가족 사이에 다양한 호칭들이 존재한다. 그에 비해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아이들이 부모를 부를 때조차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보며 남녀노소 구분 없이 서로를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 같아서 그 모습이 좋게 보였다. 또 10대의 딸이 엄마와 함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처음 봤을 당시에는 그것을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은근히 부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가 됐다. 내가 옆집 할머니의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는 것, 아이들 친구들이 내 이름을 자연스레 부르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선생님의 이름을 거리낌 없이 부르는 모습들에 익숙해지니 호칭이 전해주는 그 무언가의 따듯함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문화 차이로 인한 소소한 에피소드

엄마와는 한국어로 소통하고 나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접하는 아이들은 내가 종종 아이 친구들의 엄마를 ‘00엄마’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는 어른들에게 그렇게도 호칭을 붙인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래미가 자기 친구에게 “너는 친구 엄마에게 이름을 부르면 어떡하니? ‘00엄마’ 아니면 ‘이모’라고 불러”라고 말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자신의 이모에게도 이모라는 호칭을 안 하는 이곳에서, 모르는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이모라고 부르는 한국의 문화를 딸래미의 친구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

‘존경’이라는 단어가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고리타분한 단어가 되고 점차 사라지고 있는 요즘, 서구 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나는 종종 문화 차이로 인해 답답할 때가 있다. 답답함이야 어느 사회나 존재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고정화된 시각과 입장에 갇혀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다른 어른들이 집에 놀러왔을 때, 방에서 자기 할일을 하던 아이들을 불러내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게 한 후, 다시 하던 일을 하도록 꼰대(?)처럼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

사실 학창시절 나는 잔소리하는 어른들을 정말 싫어했고, 공부하기 싫어 꾀를 부렸다. 그때 속으로 훗날 내 자식들에게는 잔소리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게 하고, 먹고 싶은 것 먹게 하면서 키우겠다고 상상하곤 했다. 또 한국의 지긋지긋한 입시지옥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한국의 아이들에 비해 입시와 교육의 지옥 속에서 생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곳의 교육 문화도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통의 부재, 본인의 이익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 또 오롯이 낭비를 위한 소비자로 살아가는 선진국의 사람들은 어찌 보면 심장의 온기가 멈춘, 영혼 없는 좀비같이 보이기도 한다.

네 살 많은 친구 마담 엘리즈

내 친구 엘리즈는 마흔넷이다. 나보다 네 살 많은 언니지만, 이곳 스타일대로 쿨하게 이름을 부르며 지낸다. 처음에 이곳에 와서 동네 할머니들과 이야기할 때, 나는 내가 자란 곳에서 배운 대로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마담’이라는 존칭을 붙여 부르곤 했다. 보통 상점이나 공적인 일로 만나게 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호칭을 붙이고 존댓말을 사용하지만, 안면이 있거나 친한 사이는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반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곳의 존댓말은 존중의 의미보다는 어색한 사이에, 혹은 거리를 두거나 서로 자신을 과시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용되곤 한다. 엘리즈와 처음 만난 이후 서로 공감하는 부분도 커지면서 그녀는 내가 사용하는 존칭과 존댓말의 의도를 이해했고, 때로는 서로 마담 호칭을 붙이며 존댓말로 농담을 하곤 한다.

그녀의 가족사 또한 프랑스의 식민지사에 의해 아주 복잡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타히티 원주민과 일본계 혼혈로, 프랑스에 공부하러 왔다가 그녀의 엄마를 만나게 됐고, 그렇게 그녀가 태어났다. 프랑스령인 타히티 지역에도 동양인들이 뿌리내린 역사가 있어서인지 엘리즈는 동양 문화에 관해 이곳의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잘 이해하고 친근하게 여겼다. 그녀의 막내딸과 내 딸이 제일 친한 친구가 되면서 우리는 종종 그녀의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열어 함께 바느질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한국의 샤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엘리즈는 그녀가 타히티에서 보고 겪은 토속 샤머니즘의 경험을 들려줬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곳에선 아무하고도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없다’며 아이들처럼 좋아하곤 했다.

엘리즈의 아빠는 대통령

취업하지 않고 평생 주부로 살고 있는 마담 프랑소와즈나 마담 엘리즈는 여기서도 정말 흔치 않은 경우이다. 하지만 돈을 벌지 않는다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담 프랑소와즈는 학교 수학 선생님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아저씨보다 훨씬 많은 시간 동안 요리를 하거나 채소를 키우고 동물들을 돌보는 데 시간을 보낸다. 엘리즈 또한 말은 주부이지만 하는 일이 참 많다. 건강한 빵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에게 적당한 가격에 공급하기도 하고 틈나는 대로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그녀의 그림은 동네 친구들 집 벽에 빠지지 않고 걸려 있다. 나름 이 동네 인기 화가다. 엘리즈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이곳에는 불법이 된) 물물교환 직거래 마켓을 조용히 열기도 하는 ‘레지스탕스(résistance, 권력이나 침략자에 대한 저항이나 저항 운동)’다. 그녀의 남편 또한 글을 쓰고 본인이 쓴 절절한 가사로 음악을 만드는 동네 인기 레지스탕스 가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슈퍼에 간단히 장을 보러 들렸다가 우연히 마주친 엘리즈는 평소와는 다르게 기운이 없어 보였고 독감까지 겹쳐 초췌한 얼굴로 돈 걱정을 하고 있다. 나는 농담으로 ‘대통령인 아버지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냐’고 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대통령이고, 그녀의 시아버지이며 아이들의 친할아버지 또한 여러 개의 공장을 가지고 전 세계에 대량의 그림과 이미지를 판매하는 잘 나가는 비즈니스맨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농담을 듣고 정색하며 ‘우리 아빠는 부자도 아니고, 나는 아빠 돈에는 한 푼 관심도 없어’라고 내게 말했다.

그녀 아이들의 친할아버지 또한 ‘우리 아이들은 내 사업과 재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하곤 했었다. 보통 부모의 재산에 관심이 많고, 부모의 사업을 이어나가고 싶어 하는 자식들은 이곳 프랑스나 한국에도 많이 있지만, 확실히 엘리즈와 그의 남편은 보기 드문 사람 중 하나임이 확실했다. 그렇지 않다면 굴러가는 게 용한 오래된 자동차와 허름하고 오래된 집을 손수 고쳐 사는 수고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큰 이윤도 남지 않는 <리파이>라는 이름의 가정식 레스토랑을 열어 건강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갈 곳 없는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따뜻하고 정겨운 잔치를 꾸준히 벌이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방종과 자유는 다르다

엘리즈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니 청와대나 백악관 같은 웅장한 곳에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총각 때 손수 지은 방갈로에서 산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가 떠올라 그에 관해 이야기하자 그녀는 아버지에 대해 ‘대통령은 대통령일 뿐’이라고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방갈로를 짓고 사는 폴리네시아의 보라보라섬은 많은 사람에게 초호화 리조트가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폴리네시아는 유럽인들에게 강제로 개발당했고, 그곳의 사람들은 실험실의 쥐 신세가 됐다. 엘리즈는 프랑스인들이 시행하려고 하는 어마어마하고 잔혹한 원자력 관련 실험에 관해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또 그로 인해 조만간 세계지도에서 폴리네시아는 사라질 수도 있다고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끔찍한 소식들에 무덤덤해진 내게 엘리즈의 눈물은 그녀의 고향과 그곳에 사는 가족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끔직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 밖에도 엘리즈와 나는 종종 ‘위아래도 없는 방종은 자유와 다르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엘리즈의 둘째 아들은 어느덧 훌쩍 성장해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부모 몰래 담배도 피우며 제법 어른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프랑스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자격지심이 들 때가 많았고, 인종차별 발언을 들으면 발끈하곤 했지만 화도 대화가 가능해야 낼 수 있는 일이라 속으로 울분을 삼킬 때가 많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릇된 행동을 할 때나 살면서 부조리한 상황을 맞닥트렸을 때마다 엘리즈의 명철하고도 단호하고도 시원한 한마디와 명철한 모습은 ‘리스펙트’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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