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간에서

농부 이재관의 자연일기
글과 그림과 글씨 이재관

시골로 와 집 짓고 살면서 처음 2년 동안은 화장실 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일 보고 레버만 제끼면 물이 촤르르 돌면서 정화조로 밀어 넣는 좌변기. 그 똥오줌은 다 어디로 갈까? 몹시 찜찜했지요. 그래, 생태뒷간을 짓자. 내 어렸을 적 푸세식 뒷간은 발효가 되지 않아 냄새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건식으로 지었고 그 뒷간을 쓴 지 14년째네요. 똥오줌을 분리할까도 싶었는데 왕겨나 톱밥 그리고 난로에서 나오는 재를 뿌려주니 냄새도 거의 나지 않습니다. 손님들도 뒷간에 다녀온 뒤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놀라죠. 제대로 발효되면 밭으로 내서 거름으로 씁니다. 자연스럽게 순환농사가 이뤄지는 셈이지요. 그나저나 나를 비롯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참 먹는 것에 너무나도 지나친 공을 들이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맛나다며 먹고, 몸에 좋다며 먹고. 그럼 비우는 것은 어떨까요?

‘제대로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지 않겠는가.’ 뒷간에서도 이렇게 깨달음을 얻는구나 싶네요. 뒷간을 짓고 나니 똥 누는 데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어쩌다 도시에 나가면 좌변기에 앉는 일이 어색해 하루 정도는 참게 되더라고요.

똥 살리고 땅 살리고. 나는 아침마다 뒷간으로 갑니다.

 

봄이면 집 뒤 산기슭 키 껑충한 두릅나무 가지 끝에서 통통한 순이 올라옵니다.

아무리 한 철 별미라지만 애써 틔워 올린 순을 툭 하고 분지르는 것은 나무에게 상당히 미안한 일이죠. 그래서 일부러 순 몇 개는 잎이 커지도록 놔둡니다. 두릅을 닮았으나 두릅보다 가시가 더 발달한 엄나무. 개두릅이라고도 하는데 두릅보다 향이 더 강하고 장아찌를 담가 내 입맛으로 보면 더 야생스러운 맛이 납니다. 게다가 단단한 가시로 무장하고 있지요.

화천 돌쑥아우님 집 들머리에는 꽤 큰 엄나무 한 그루 서 있는데 어린 나무들과는 달리 몸통에 가시가 없더군요. 든든하게 덩치를 키우면 가시를 내서 보호하지 않더라도 안심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구지뽕나무도 어린 묘목일 때는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하지만 제법 굵어지면 가시가 사라집니다.

예로부터 귀신이 들어오지 말라고 집 앞에 심었다는 엄나무. 우리 집 보초 임무도 좋지만, 세금 거덜 내고 국민들 좌절하게 만드는 몹쓸 무리들도 눈 부릅뜨고 지켜봐주길. 부탁하마!

 

이재관
20년 동안 노동자로 살다가 2002년 시골로 왔다. 다섯 식구가 제철농사를 짓는다. <항꾸네협동조합>을 꾸려 에너지적정기술 활동과 젊은이들 정착을 돕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 <이야기가 있는 산골>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농부 이재관의 그림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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