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페의 ‘음식 저장 프로젝트’를 찾아 쿠바로 떠나다

살아 있는 부엌
글과 사진 류지현

페페의 ‘음식 저장 프로젝트’를 찾아 쿠바로 떠나다

남미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쿠바에 있는 페페의 연구소는 필수 방문지 중 하나였다. 국제 슬로푸드 협회에서 2년마다 개최하는 농부들의 모임인 테라마드레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페페는 그의 음식 저장 방식을 소개하는 수많은 책과 자료를 소개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다른 나라의 부스와는 달리 페페의 부스는 단출했지만 그의 에너지는 어느 곳에 뒤지지 않았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을 배경으로 한 그의 호탕한 웃음은 지나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쿠바로 불러들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쿠바행 비행기에 오르기 일주일 전, 페페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의 명함 속 전화번호는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고 이메일에는 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만나지 못한다 해도 여행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허탕칠 것을 두려워했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여행이 그간 어디 한두 개였나. 일단 쿠바에 발을 들여놓은 것만으로도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쿠바인들의 여유로운 활기, 카리브해의 반짝이는 햇살, 알록달록한 아바나의 빛, 그 사이로 들려올 쿠바 기타 소리. 이 모든 낭만은 현실에 부딪혀 도착한 지 얼마 가지 않아 부서져버렸다. 50년대에 멈춘 것 같은 아바나는 물자 부족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칫솔, 치약, 화장품 같은 공산품은 물론이고 버터나 치즈 같은 가공식품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동네 바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화려하고 현란한 엠티비 영상을 보며 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주머니 사정도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현금이 많지 않은 데다가 환전도 쉽지 않았다. 신용카드도 지정된 것만 사용할 수 있어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아바나의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우리에게 주어진 일주일을 최대한 누려야 하기에 과감한 결정을 했다. 가지고 있던 돈을 다 털어 소형 오토바이를 하나 빌렸다. 택시를 이용해 다니기에는 아바나는 넓었고 우리는 돈이 부족했다. 그리고 남은 돈은 현지인 통화로 바꿨다. 25CUP 현지인 통화가 1CUC 관광객 통화와 같았다. 다른 관광객들이 20CUC을 내고 제대로 된 밥을 먹는다면 우리는 쿠바인들과 함께 줄을 서 8CUP하는 피자를 서서 먹고는 했다.

   

아바나 외곽에 있는 페페의 연구소는 스쿠터로도 한참을 달려야 했다. 스쿠터를 타고 해안도로 말레콩을 따라 달리자 바닷바람에 온갖 근심이 다 날아가는 듯했다. 말레콩을 뒤로하고 작은 언덕을 넘어 아름드리나무들로 가득한 골목을 지나갔다. 젊은 체 게바라의 얼굴이 포스터와 조형물 등으로 여기저기에서 인사를 했다. 텅텅 빈 가게 안 진열대 앞의 판매원과 손님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했는데 지나가는 자전거 위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환하게 피었다. 점심시간, 나무 그늘에 세워둔 픽업 자동차에 누워 담소를 나누는 두 남자의 새까만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부족함 속에서도 잃지 않는 매일의 행복, 이게 바로 쿠바의 진정한 낭만이고 삶의 원동력인 듯했다.

도심을 벗어나니 곳곳에 있는 텃밭이 먼저 눈에 띄었다. 건물이 없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텃밭을 볼 수 있었다. 1990년대 오일 쇼크로 어려움을 겪던 쿠바가 생존 전략으로 택한 도시 농업은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 끝에 도시 농업의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자리를 잡았다. 특수 기간(Período Especial)이라고 불리던 그 시절, 많은 쿠바인은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다. 구소련에서 공급받던 석유가 끊겨 개인적으로는 당장 자동차를 사용할 수 없거나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고, 국가적으로는 기본적인 산업 자체가 돌아가지 못했다. 모든 공장과 농장이 멈췄고, 돌아간다 한들 공산품이든 식재료든 운송이 어려웠다.

농약이나 화학비료 수입이 중단된 탓에 쿠바의 텃밭은 어쩔 수 없이 혹은 자연스럽게 유기농으로 변모해왔다. 화학비료를 쓰던 이전과 비교할 때 노동량은 늘었지만 더는 배가 고프지 않으며 내 식탁의 먹거리는 내가 알아서 챙길 수 있다. 다시 한 번 고난이 찾아와도 또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동안 공동체적으로 쌓아온 유기농법에 관한 지식도 마음이 든든한 이유 중 하나다.

이제 유기농 도시 텃밭인 오르가노포니코스(Organoponicos)는 아바나 면적의 40% 이상에 이르며, 쿠바의 식량 자급률은 80%가 넘는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이 20%대인 것을 고려하면 20년 전만 해도 배고픔에 시달리던 쿠바가 이룬 식량 혁명은 매우 놀랍다. 쿠바인들에게 도시는 이제 텃밭이고 부엌이다.

페페가 ‘공동체를 위한 음식 저장 프로젝트(Proyecto Comunitario Conservacion de Alimentos)’를 시작한 것도 1996년이다. 직접 수확한 작물을 잘 보관하기만 해도 적어도 배고픔에 시달리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그는 아내 아날레나와 함께 음식 저장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쿠바는 11월부터 4월까지 건기로 작물이 풍부하지만 5월부터 10월 사이에는 비와 폭풍, 잦은 허리케인으로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한국에서 겨울나기를 대비하는 것처럼, 쿠바에서는 여름나기를 대비해야 한다.

일흔을 바라보는 페페는 지금도 여러 학교를 찾아다니며 청소년을 위한 저장 음식 워크숍을 열기도 하고, 라디오에 고정적으로 출연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 있다. 직접 손으로 해보면서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쿠바 음식이나 식재료 보관 경연대회도 열고, 연구실에서 정기적으로 워크숍도 운영한다.

   

어렵게 물어 페페의 연구실 앞에 도착했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페페는 어디서 누구에게 음식 저장법을 전수하고 있을까. 이웃집 청년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페페의 집을 함께 찾아갔다. 굳게 닫힌 대문 앞에서 페페를 꼭 만나야 한다며 이웃집 청년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혹시 몰라 연락처를 적은 쪽지도 대문 사이에 남겼다. 과연 그를 만나고 갈 수 있을까. 해가 저물고 말레콩으로 쏟아져 나온 쿠바인들의 노랫소리를 함께 흥얼거리며 그의 연락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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