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양의 맛

김민정 시인의 세상 어디에나 詩
글과 사진 김민정

종양의 맛

거대한 물혹과 한쪽 난소를 떼어낸 후

고기를 먹을 때면 뒤적거렸어

동물의 아픈 부분을 씹을까 조심스러워

그게 내 몸 같아서

 

암센터 건너 늘어선 주택

큰 개 순하게 매여 있네

짖을 타이밍을 잊은 개는

긴 혀를 빼물고 헐떡인다

너의 몸 어디선가 고요하게

자라고 있을 거야

 

나는 혹부리 여자

계절마다 새로운 혹이 돋고

모르는 새 유행에 민감해졌네

환자복 입고 딸기 향 립글로스를 발랐지

향기는 소독되고

주택가를 떠도는 애드벌룬

종양은 부푼다

 

사람들이 태아를 걱정할 무렵

나는 세상의 작은 혹들이 애틋했네

그런 처녀였지

종양을 잉태한 줄 모르고

손자는 먼 훗날의 이야기

 

주렁주렁 열린 감자 겨울을 나고 좋은 씨감자 될 거야

품질이 좋고 맛좋아

 

퇴원을 축하하며

엄마는 오랫동안 고기를 삶았지

들통을 열어보면 작은 종양을 달고

열심히 꼴을 먹던 소가 떠올라

나는 오랫동안 식물이 되고

 

詩人 권민경

詩集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문학동네, 2018

1.

수술을 막 마치고 나온 네가 수술실 앞에서 졸다 깬 나를 보며 괜찮아? 손을 내밀었지. 일순 내게 건너온 그 손은 사랑이었지. 너보다 나라는 증거의 그 손, 하도 냉해서 뜨거운 내 잠을 일순 얼려버리기에 충분해서 나를 또 눈뜨게 했으니까 그 온도마저 사랑이려니 했지. 소맥처럼 말리는 게 소맥처럼 섞이는 게 소맥처럼 흔들리는 게 사랑이기도 하다는데 언제나 나는 내 사랑이 지금 건너오고 있구나, 내 사랑이 벌써 건너가고 있구나, 그 오고감의 보폭을 일일이 세고 있던 것 같아. 내 심장박동의 ‘울림’과 네 발소리의 ‘있음’, 그 둘의 기묘한 ‘들림’으로 나는 내 몸이 애드벌룬처럼 부풀어야 이거구나, 그 지경을 사랑이라 받아들였던 것도 같아.

 

미숙했지. 두려웠으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야말로 일순 끌어안아버리는 회오리. 바람이 아플까. 아니 바람은 나를 없애고 너를 모르게 하는 장님의 무사. 물처럼 아래로 흐르는 노인이 아니라 아무데서나 텀블링을 하는 서커스단의 막내. 불쑥불쑥 아무 때고 칼을 휘두르고 재주를 넘을 때 갈라진 그 바람의 틈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랑, 예컨대 이런 시의 풍경들.

 

2.

제 몸에 없었던 것과 제 몸에 있었던 것을 떼어낸 여자. 그게 저만의 일만은 아닐 거라는 걸 알아서 제 살 닮은 것들에게 눈보다 마음을 더 두던 여자. 그러고 보니 제 마음 안 가는 데가 없음을 알아버린 여자. 그리하여 제 혹에 유난스럽지 않고 제 혹에 무난해져버린 여자. 체내의 세포가 자율성을 가지고 과잉으로 발육한 것이 종양이라 이우는 종양이라는 표현은 시에서나 가능함을 아는 명쾌한 여자. 그러니 엄살을 모르고 그러니 모자람을 모르고 그러니 덤덤하고 그러니 ‘주렁주렁’, ‘좋은 씨감자가 될’ 거라고 당당히 말하는 유쾌한 여자. 제 동물을 다지기 위해 제가 먹어야 할 동물 앞에서 기어이 동물을 먹을 수 없어 식물이 되어버리는 여자. 대신 애틋함이라는 말을 우리와 함께 먹어보자 한 여자. 섭섭함이란 무엇인가. 안타까움이란 무엇인가. 정다움이란 무엇인가. 알뜰함이란 무엇인가. 그래놓고 생과 사에 또한 이 말들의 정의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딸기 향 립글로스’ 바른 입술로 세상 명랑하게 이 시를 읊조렸을 시인 권민경.

 

성숙하구나. 가지려고 안 하니까, 역지사지가 절로 되는구나. 그 어려운 걸 이 여자가 하는구나. 사랑을 아는 여자는 너보다 나라는 증거 따위의 손은 내밀게 하지도 않는구나. 나를 지우고 너를 보며 나를 잊고 너를 새기는구나. 순간 어떤 바람이 휙 하고 불어가며 냄새를 풍겼는데 사탕의 맛은 아니고 처음 맡은 맛이라 뭐라 형언할 길이 모자란데 여자는 종양의 맛이라 했고 다만 나는 무슨 맛이라 표현해야 하나 고민하던 끝에 에라 모르겠다, 치킨이나 시켰지. 치킨을 시키는 데 무슨 각오나 다짐이 필요하겠어. 입에서 절로 튀어나가니까 치킨, 그러는 거겠지. 내가 이 시로 배운 사랑이라 하면 그렇다는 말씀. 그렇다고 사랑의 맛이 곧 치킨의 맛이라는 등식은 성립시켜서는 안 되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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