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의 폐해

서민의 세상時 나침반
글 서민

오지랖의 폐해

일전에 밝힌 것처럼 일이 많아 힘들 때마다 난 혼자 고기를 먹었다. 열심히 일한 나한테 주는 선물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고깃집에서는 날 그리 반기지 않았다. 숯불, 밑반찬 등 준비해야 할 것은 많은데, 노력에 비해 매상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시선을 의식해 난 좀 무리했다. 3인분만 먹어도 충분할 텐데 기어이 4인분을 먹어치웠다. 덕분에 내가 나갈 때 사장님의 시선은 매우 부드럽게 바뀌었지만, 이는 커다란 대가를 수반했다. 배가 이전보다 훨씬 나온 것이다. 원래 날씬했다면 조금 살찌는 게 큰 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문제는 내가 이전에도 제법 살이 찐 편이었다는 점이다. 안 되겠다 싶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저녁을 굶어보기도 했고, 4층에 위치한 집까지 계단을 이용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꾸준함이 없었기에 내 다이어트는 죄다 실패하고 만다.

나를 본 이들은 다들 내가 살찐 것에 대해 한마디씩 하곤 했다. 예컨대 오랜만에 날 본 누나의 말. “아니, 민아. 너 왜 이렇게 살쪘냐? 정말 끝내준다.” 나한테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나는 친절하게도 어머니한테도 전화를 걸어 자신의 놀라움을 전했고, 그래서 난 어머니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너 살 좀 빼라. 배 나온 게 그렇게 건강에 안 좋단다.” 사람 눈이란 다 비슷하기에 다른 이들도 똑같은 말을 한다. 오랜만에 나간 테니스 모임 회원의 말이다. “아니, 왜 이렇게 살쪘어? 운동 안 하니까 그런 거야. 자주 좀 나와.”

그리 기분 좋은 말도 아닌데 자주 듣기까지 하니,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난다. 그래서 요즘엔 다른 이를 만나면 미리 자수하는 전략을 쓰곤 했다. “요즘 사정이 안 좋아서 살이 엄청 쪘어. 나도 빼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렇게 날 타박했다. “진짜 너 너무 살쪘네. 좀 빼라.”

10년쯤 전의 일이 생각난다. 지하철을 타려다 여성인 지인을 만났다. 대략 6년여 만에 만나는데, 그녀의 몸이 너무 불어 있어서 놀랐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아니, 왜 이렇게 살이 쪘어?” 그녀의 낯빛이 변했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2분쯤 이야기하는 동안 왜 살이 쪘냐는 얘기를 세 번가량 했다. 그녀와 헤어진 뒤 얼마 안 지나서 문자가 왔다.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는데 살쪘다는 얘기만 그리 하면 내가 기분이 좋겠냐? 넌 왜 그리 배려심이 없냐?’ 문자를 보고서야 내가 큰 결례를 범했음을 알았다. 사과하고 싶어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지금의 나처럼, 그녀 역시 누군가를 만났을 때마다 살이 쪘다는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녀도 살이 찌고 싶어서 찐 것은 아니었을 테고, 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었겠지. 지금의 내가 그렇듯, 그녀는 그 사실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 괴로워했을 것이다. 조그만 상처야 가려질 수 있지만, 살이 찐 것을 가릴 방법은 세상에 없다. 내 말이 그랬던 것처럼, 걱정을 가장해 그녀에게 건네졌던 ‘살쪘다’는 말들은 그녀의 상처를 덧나게 만든 소금이었다.

움베르트 에코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메아리네?’라며 놀려대곤 한다. 그는 자신이 뭔가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 말은 날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죄다 했던 얘기다.” 살이 찐 것이 무슨 큰 결함처럼 여겨지는 사회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살찐 사람을 만나면 뭐라도 한마디하고 싶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래도, 그러지 말자. 그 대신 그가 반가워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시간을 되돌려 위에서 언급했던 지인을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말을 건넬 것이다. “아니, 이게 얼마 만이야? 요즘도 책 많이 읽어? 주량도 여전하지? 너랑 술 마시고 놀 때가 참 즐거웠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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