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의 향기로 가득한 섬

박창현의 건축 공감 그 마지막 이야기
글과 사진 박창현

문화 예술의 향기로 가득한 섬
나오시마 & 테시마

나오시마는 예술의 섬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변모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로 인해 섬 전체는 문화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장소로 변화했다. 이번에 소개할 장소는 우리의 가파도 프로젝트보다 훨씬 이전에 섬 전체를 변화시켜 성공으로 이끈 문화 예술의 섬 나오시마 그리고 배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또 하나의 섬 테시마를 소개하려 한다.

나오시마는 예로부터 일본 본토와 배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가까운 섬으로, 구리 제련소와 폐기물 처리장 등이 있던 공업과 어업의 섬이었다. 1989년 출판기업인 베네세 그룹에서 섬의 중요한 지역을 사들이면서 시작된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나오시마는 문화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베네세 하우스>와 <지추 미술관> 그리고 미술작가 이우환을 위한 <이우환 미술관> 설계를 맡기면서 그 변화가 시작됐다. 현재 3년에 한 번씩 트리엔날레가 주변 섬과 나오시마 전체에서 열리는데, 이때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 섬은 축제의 장소가 된다. 지난 트리엔날레가 2016년도에 있었고, 올해 4월에 다시 트리엔날레가 열릴 예정이다. 내가 나오시마를 찾았을 때는 이 축제를 위해 이미 많은 미술관과 크고 작은 공간들에서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한국에서 나오시마에 가기 위해서는 ‘다카마츠’나 ‘오카야마’를 통해야 한다. 보통 다카마츠에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카마츠에도 유명 건축물 등, 볼거리가 많지만 이번에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오카야마를 통해 나오시마에 가게 됐다. 비가 내리는 나오시마의 미야노우라항은 어딘가 을씨년스러웠으나 나오시마의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페리 터미널이 나를 반겼다. 카즈요 시지마가 설계한 이 페리 터미널은 수평의 얇은 지붕 선, 사면의 통유리로 이뤄진 건물로서 건물의 육중한 볼륨감을 느낄 순 없었지만 그 디테일과 형태에서 전해지는 존재감은 확실했다. 페리 터미널에는 안내소와 매표소 그리고 작은 카페가 있었다. 외부의 지붕 처마가 길게 바다를 향해 뻗어 있어 날씨가 좋으면 야외에서의 활용도가 높아 보였다. 특히 처마 아래의 작은 벤치는 바다내음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페리 터미널 바로 앞에서는 나오시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작품과 최근 설치된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의 ‘파빌리온’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파빌리온은 낮에도 그 모습을 감상하기 좋으나 조명이 더해져 그 입체감을 더욱 느낄 수 있는 밤에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나오시마는 시작부터 여러 작가의 작품과 함께 시작되는데 이런 설치와 작업은 나오시마 섬 전체에서 계속 이어진다. 어쩌면 섬 전체가 문화와 예술을 위한 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섬 내(섬 둘레 16km)에서는 버스나 자전거가 흔한 이동 수단인데, 겨울이라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다만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날씨 좋을 때 나오시마를 방문할 예정이라면 자전거를 이용해도 무리 없이 섬의 내부를 둘러볼 수 있으니 자전거를 통해 나오시마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나오시마에 오면 꼭 보고 싶었던 장소 중 하나가 <베네세 하우스>였다. 이곳은 ‘베네세 하우스 호텔 파크’, ‘베네세 하우스 호텔 뮤지엄’, ‘베네세 하우스 호텔 오발’ 등 총 세 곳으로 나뉜 호텔인데 ‘베네세 하우스 호텔 오발’은 숙박 예약이 모두 완료된 상태라 나머지 두 곳에서 각각 하루씩 숙박을 했다. 이 세 곳 모두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로서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호텔은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며 설계됐고, 외부의 풍경이 객실과 맞닿게 설계됐다. 각 호텔 간 위치는 걸어서 10분 거리. 이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외부 조각품과 미술관으로 연결된다.

나는 둘째 날 일찍 아침 식사를 하고 <이우환 미술관>과 <지추 미술관>에 갔다. 1936년생인 이우환은 한국에서 조소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철학을 전공했다. 1960~1970년대 일본 미술계를 이끌며 ‘모노하(物派)’ 이론을 정립하고 주도한 미술작가인데, 이 이우환 작가를 위한 미술관을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것이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이우환의 이론을 좋아해 그와 관련된 거의 모든 책을 접했다. 그런 이우환을 위한 미술관이라 더 기대가 됐다. 도로에서 좁은 길을 내려가다 보면 왼쪽으로 콘크리트 벽이, 그 벽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평평한 평지 위 높이 10m가 넘는 8각 기둥의 얇고 긴 작품이 설치돼 있었다. 잔디로 된 마당에는 커다란 돌 두 개와 철판으로 이뤄진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이 작품 너머로 <이우환 미술관>의 벽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과 작품이 조화를 잘 이루는 듯했다. 그렇게 벽을 돌아 미술관의 입구로 향하다 보면 양쪽에 높이 5m가 넘는 콘크리트 벽을 거치게 된다. 벽의 끝으로 숲이 보였다. 매표소를 지나면 삼각형 형태의 큰 마당이 나오는데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 공간과 함께 설치돼 있다. 이곳을 지나 깜깜한 내부로 들어가면 다시 긴 복도를 통해 전시장이 시작된다. <점으로부터>, <조응> 등의 이우환 작가의 유명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을 천천히 둘러보니 자연과 이우환의 작품 그리고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한데 특색 있게 어우러져 있었다.

<이우환 미술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지추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땅을 파서 만든 미술관으로 유명한 이곳에는 클로드 모네, 빌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 등의 작품도 설치돼 있었다. 이곳 <지추 미술관>의 형태와 컨셉은 원주에 위치해 있는 <뮤지엄 산>과 비슷하다. <이우환 미술관>을 거쳐 <지추 미술관>을 천천히 둘러보고 카페테리아에서 나오시마의 외부 풍경을 보며 마신 따뜻한 커피 한 잔은 편안한 쉼을 주었다.

이밖에도 나오시마에는 ‘혼무라’라는 작고 오래된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도 여러 미술 작품과 미술관이 있다. 그중 나는 <안도 미술관>과 ‘이에 프로젝트’를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삼부이치 히로시가 최근 설계한 <나오시마 홀>로 향했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실제 사용하는 홀이라 개방돼 있지는 않았으나 외부에서 보는 것은 가능했다. 정갈한 정원과 건물 앞 공간은 정적이면서 단아했다. 특히 <나오시마 홀>은 형태로만 접근한 설계가 아니었다. 마을에 부는 바람의 흐름을 조사하고 그것을 잘 살릴 수 있는 배치와 형태로 디자인 및 설계돼 있었다. 삼각형 모양의 지붕은 구멍이 뚫려 있어 내부의 뜨거운 공기를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유도해 환기를 유도했다. 뿐만 아니라 자연의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었다. 환경에 대한 세심한 관심이 설계로 이어진 프로젝트처럼 보였다.

여행의 마지막 날,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테시마 미술관>을 위해 아침 일찍 배를 탔다. 나오시마와 테시마를 오가는 배는 하루 세 번이 전부다. 그렇기에 나오시마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첫 배를 타고 들어가 마지막 배를 타고 다시 나오시마로 오기 때문에 테시마에서는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게 된다. 나오시마에서 배를 타고 약 20분 정도 이동해 테시마에 도착했다. 나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테시마 미술관>으로 향했다. 테시마의 오전 공기는 상쾌했다. 아무래도 섬이기 때문에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개인적으로 테시마와 <테시마 미술관>은 바람이 조금 부는 맑은 날 관람하는 것이 그 정취를 느끼기에 좋을 듯했다. 게다가 관람객이 없는 시기라면 더 좋다. (다만 겨울 시즌에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휴관하기 때문에 미술관 오픈 시간과 날짜를 잘 확인하고 가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미술관으로 향하며 마주한 풍경은 우리나라 남해안의 풍경과 비슷했다. 이곳도 경사진 대지에 층층이 농사를 짓다 보니 다랭이논이 유명했다. 외부에서 보는 미술관은두 개의 납작한 타원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하나는 미술관이고, 나머지 하나는 카페 및 기념품숍이었다. 미술관 입구는 폭 2m 정도라 한 명씩 들어가야 했다. 미술관 바닥과 벽 그리고 지붕이 모두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건물 내부는 추상적이었다. 내부 공간이 주는 엄숙함 때문인지 관람객 중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개구부에 매달린 끈을 통해 바람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하나의 개구부를 통해서는 하늘을, 다른 하나의 개구부를 통해서는 숲을 볼 수 있었다. 개구부 사이로 바람과 빛과 풍경이 각각 다르게 연결되는 것이다. 관람객 모두는 숨을 죽이고 미술관 내부에서 전해지는 느낌을 기억 속에 저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을 느끼게 하는 건물은 살아 있는 물체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콘크리트라는 재료가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전해줄 수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됐다. 건축이 내게 이런 경험을 전달해줄 수 있다니….

건축의 역할은 다양해지고 있다. 자연과 사람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한 개인의 생각의 지평과 범위를 넓혀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오시마의 기억도 좋았지만, <테시마 미술관>의 압도적 공간을 통해 신세계를 경험했다. 나오시마에 가게 된다면 필히 시간을 내 <테시마 미술관>을 방문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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