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꾸준함으로 샤프하게 재해석한 우리 도시의 모습

마이 홀릭 라이프
인터뷰 신영배
사진 김영민

매일의 꾸준함으로 샤프하게 재해석한 우리 도시의 모습
사진가 신병곤(Pluto Shin)

‘플루토신(@Pluto Shin)’이란 사진가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서 본 순간, 머릿속에 든 생각은 바로, ‘내 취향 저격’. 도시 풍경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기보다 돋보기를 들이댄 듯 빌딩의 면면을 의도적으로 자르고 분해해 촬영한 그의 사진은 원근(遠近)도 잘 구분이 되지 않는, 평평한 한 면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사진가의 이름은 신병곤 그리고 이 사진 작업의 이름은 ‘도시미분법’이라 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개발자의 삶을 살다가 스물아홉 늦은 나이에 사진가로 전향했다는 그의 사진은 건축 설계 도면을 보듯, 독창적이고 첨예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도시미분학’이 기존 도시 사진들의 궤에서 아주 크게 벗어난 작업이 아니었다면 그의 두 번째 작업, ‘도시천문학’은 그의 어릴 적 꿈이 천문학자였다는 걸 단번에 직감할 수 있듯, 도시 건물의 야경 속, 불빛들을 재배열해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는 듯한 어떤 환영을 경험하게 한다. 신병곤의 ‘도시 3부작’ 중, 그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도시통신학’ 사진 속 일정한 패턴을 지닌 듯한 데칼코마니 형태의 좌표축은 ‘우리의 미래 도시의 구조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뒤늦게 사진계로 전향해 이런 멋진 작업을 뚝딱 해내는 걸 보면 그는 분명 천재성을 지닌 사람임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돌아온 대답은 ‘성실함’과 ‘꾸준함’, ‘루틴’과도 같은 어찌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답변이었다. 왜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그의 작업물이 SNS를 통해 공개되는지가 그제야 이해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무언가를 꾸준하고 성실하게 해나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우리가 보는 그의 사진 속엔 체력을 위해 매일 빠짐없이 10km씩 달리는 ‘꾸준함’과 해가 질 때까지 서울 도시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성실함’, 그날의 작업물을 당일 마무리해 SNS 계정에 업로드하고 퇴근하는 ‘루틴’이 담겨 있는 것이다. 결국, 매일의 성실함이 플루토신의 독창적인 작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 그의 작업에 매료돼 이제 어느 반복된 패턴만 보더라도 그의 ‘도시 3부작’ 작업이 생각나니 이거 참 큰일이다.

 

도시의 서사를 빼고 찍다

작가님 사진을 저도 처음 인스타에서 만났는데, 작가님 사진이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정말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우선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도시미분법’, ‘도시천문학’, ‘도시통신학’ 등의 ‘도시 3부작’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사진가 신병곤이라고 합니다. 그 밖에 <스트리트 H>와 홍대 인디 매거진 <씬디매거진> 등에서 인터뷰 사진 등을 촬영하고 있어요. 늘 인터뷰이 촬영만 하다가 이렇게 인터뷰에 응하게 돼서 조금 어색하네요.(웃음)

 

작가님에게 2018년은 어떤 한 해였나요?

2017년에 첫 사진집 ‘도시미분법’을 텀블벅을 통해 발매하고 두 번째 사진집 ‘도시천문학’을 언제 발매할지는 기약이 없었어요. 텀블벅으로 ‘도시미분법’을 발매할 때 독립출판이어서 워낙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3년 동안 판매해보자는 생각으로 ‘도시미분법’을 400권 발매했는데, 감사하게도 10개월 만에 다 팔렸어요. 확실히 팔린 만큼 주변에 알려졌는지, ‘사진 위주 갤러리 류가헌’에서 사진집 지원 전시를 하자는 연락을 받았고 지난 3월에 전시장에선 처음으로 전시도 했어요. 그 전시에서 제 사진집이 팔린 걸 보고 한 출판사 대표님께서 ‘이 작업이 3부작으로 진행될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두 번째 사진집은 함께 발매하자고 제안을 하셨어요. 저야 무조건 환영이었죠. 그렇게 바로 두 번째 사진집 작업이 들어가서 지난 10월에 ‘도시천문학’ 사진집이 발매됐어요.

 

올해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갔다가 수줍게 서 있는 작가님을 봤어요.(웃음) 독자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작가님에게도 유의미한 시간이었을 거 같아요.

네, 제가 이 도시 3부작에 관련한 작업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언리미티드에디션 때문이었어요.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처음 갔을 때 ‘아, 나는 ‘컨텐츠’가 없구나’란 생각이 확 들었어요. 당시에도 사진으로 먹고살고는 있었지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란 근본적인 두려움 같은 게 늘 제 안에 있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개인 작업 혹은 작업물이란 건 본질을 꿰뚫거나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좀 무겁게 여겼어요. 그런데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여러 사람들의 컨텐츠들을 보니 작업이란 게 굳이 그렇게 무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컨텐츠를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재밌게 전하고 함께할 수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서 그때부터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가하겠다는 생각으로 ‘도시미분법’ 사진집 작업부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당초 생각했던 계획보다 1년 앞당겨 사진집을 발매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2017년과 2018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가하게 됐죠. 그곳에서 기자님처럼 SNS를 통해 미리 제 작업을 보고 오신 분들을 만나면서 SNS의 위력을 많이 알게 됐어요. 대중을 만나는 일이란 게 즐겁지만 어려운 일이더라구요. 무엇보다 부끄럽구요.(웃음)

 

‘도시미분법’, ‘도시천문학’ 그리고 ‘도시통신학’까지 이름부터 신선한 이 작업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도시미분법’의 경우, 외부인이 서울을 바라보는 각자 다른 시선에 관한 이야기인 <플레이스/서울>이란 작업으로부터 시작됐어요. 이 작업을 주도한 분이 서울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하며 건축 디자인을 가르쳤던 피터 W. 페레토 영국인 교수님이셨는데요, 지인의 소개로 그 교수님의 건축 사진 모형을 촬영하게 됐고, 그때 제 작업물을 좋게 보셨는지 <플레이스/서울> 작업까지 함께하게 됐어요. 그때 2년간 작업을 했는데, 촬영한 사진들은 전형적인 서울의 도시 사진이었어요. 그 작업 내내 교수님께서 강조한 부분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서사’였어요. 안 찍은 서울의 모습을 찾는 게 빠를 정도로 정말 많은 서울의 모습을 찍었는데요, 물론 그 작업이 제게 즐거운 작업이었지만, 그때 약간의 반감도 갖게 됐어요.

 

반감이요?

일반 도시 사람들이 보는 도시의 모습이나 미디어를 통해 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은 피곤한 도시인의 일상과 같은 서사가 담겨 있죠. 이런 여러 가지 도시의 구조들이 쌓여 하나의 도시가 이루어지는 건데, 그것들을 본질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저 도시를 통해 말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반면 <플레이스/서울>을 통해 서울대학교 교수님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건축학과 학생들과 연이 닿았고 졸업 작품들을 촬영해주기도 했는데요, 학생들의 경우 순수하게 건축물 자체를 도형이나 도시의 구조물로써 바라보고 접근해요. 그러면서 단순하게 구조체로 도시를 관망하는 사진집이 있는지 고민하게 됐고,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 도시 3부작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분기점은 <플레이스/서울>을 통해 ‘프로파간다’ 출판사를 알게 됐어요. 마포구에 DPPA(마포디자인출판진흥지구협의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프로파간다’ 김광철 대표님께서 제게 ‘마포구에 있는 출판 건물을 촬영해보자’고 제안했고, 약 400여 개 정도 출판 건물을 짧은 시간 안에 촬영한 적이 있어요. 그 ‘프로파간다’라는 출판사에서 <그래픽>이란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데요, 어떤 형태로 도시의 모습을 보여줄지 고민하고 있던 제게, 매체 디자이너들과 협업이 큰 도움이 됐어요. 디자인적 요소들이나 패턴과 같은 것들이 건축가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렇다면 왜 ‘3부작’이죠?

주변에서 왜 3부작으로 사진집을 발매하려고 하느냐고 많이 묻는데, 그 이유는 온전히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때문이에요. 제가 20대 초반까지는 굉장히 문학 소년이었어요. 군대 가기 일주일 전까지 ‘<뉴욕 3부작>은 다 읽고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초조해하면서 책을 읽었거든요.(좌중 웃음) 오래된 일이라 줄거리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세 명의 주인공이 뉴욕이란 도시를 각자 다르게 탐문하고 구축한다는 내용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저도 ‘같은 도시라 할지라도 세 가지의 주제로 작가가 다르게 구축해보면 어떨까’라는 단순한 생각에 서울을 ‘도시 3부작’으로 어떻게 쪼개고 나누어 사람들에게 보여줄지 한 2년 정도 고민했던 거 같아요. 아직 ‘도시통신학’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도시 3부작 작업을 크게 아우르는 중요한 이야기는 안 하고 있지만, 짧게 말해 이 작업은 ‘과학자나 공학자들에 대한 연서(戀書)’ 같은 거예요. 당신들 덕에 이렇게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게 이 도시 3부작의 주제죠.

 

사진으로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여러 도시의 모습이 있었을 텐데 ‘왜 하필 빌딩이었을까?’가 가장 궁금했어요.

<플레이스/서울> 작업을 진행하면서 도시의 서사를 다 빼고 싶었어요. 마치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사진집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구요. ‘도시미분법’의 경우,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간판의 글자도 없어요. 이렇게 도시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빼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고층빌딩을 촬영하게 됐어요. 현실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공간을 가지고 놀고 싶었어요. 한국에서는 조금 낮은 건물을 찍으려고 하면 전깃줄이나 간판이 위력적으로 프레임 안에 들어오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서울이라는 도시 구조 자체를, 즉 건축물의 구조나 밀집된 도시 공간을 압축해 보여주거나 쪼개서 보여줄 수 있는 건 고층빌딩밖에 없다는 생각에 부득이 고층빌딩을 촬영하게 됐어요.

 

지금껏 촬영한 지역은 오롯이 서울에 국한돼 있나요?

네, 다른 지역의 도시는 일부러 배제했어요. ‘갖고 논다’는 건 그게 무엇이든 어느 정도 익숙함을 느낄 때 가능한 일이잖아요. 예를 들어 일본의 동경이나 미국의 뉴욕 같은 도시의 빌딩을 촬영한다면 갖고 논다기보다 감탄하기 바쁠 거 같아요.(웃음) 또 하나는 서울의 공간을 서울이 아닌 것처럼 보여주는 게 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가끔은 각 해외 도시들도 3부작으로 작업해보고 싶긴 해요.(웃음)

 

어느 지역을 주로 다니는 편이에요?

광화문 쪽과 중구 지역을 많이 다녀요. 그 지역들에 우리나라 1세대 빌딩들이 다 모여 있어요. 그 1세대 빌딩들은 ‘서울의 브랜드’라고 해서 최초 들어설 때 유명한 건축가들이 많이 참여하기도 했고, 건축물 각각의 특성이 다 존재해요. 강남권 같은 경우 한 번에 올라간 빌딩들이 많고, 그것들이 일렬로 배치돼 있는 편이라 빌딩으로서의 매력은 없었어요. 공간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강남권은 이미 통합 공간이 돼버려서 많이 실리지는 않았고, 보통 여의도 아니면 중구, 구로구나 공덕 주변을 많이 다니는 편이에요.

 

서울 이곳저곳 안 다닌 곳이 없을 것 같아요.

하루에 한 지역을 선정해 돌아다녔어요. 제가 촬영 전 매일 아침 10km씩 뛰거든요.(웃음) 달리기를 마치고 보통 오후 12시에 촬영할 지역에 도착해 걸어 다니며 촬영하고 해가 지기 전인, 6시까지 촬영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사무실로 복귀해 ‘마감’을 하죠. 제게 마감이란 건, 일종의 루틴인데요, 그날 촬영한 건 당일 작업을 마무리해 인스타그램 등 SNS에 다섯 장이면 다섯 장 업로드하고 퇴근하는 게 제 하루 루틴이에요. 주변에선 ‘뭐 그렇게까지 정해놓은 룰을 꼭 지켜야 하는 거냐’고 반문하는데 저는 그 반복이 꾸준하게 뭔가를 계속해 나가는 저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작가님의 작업물을 보면서 결벽증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기본적으로 열 맞추는 걸 좋아하긴 해요.(좌중 웃음) 제가 전자공학과를 나왔는데요, 기판을 만들 때 일면 ‘빵판(브레드보드)’이라고 하죠. 다른 친구들은 그 빵판에 대충 회로를 만드는데, 저는 색깔별로 다 맞춰서 회로를 만들곤 했어요.(웃음) 그런 강박은 좀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SNS에서 누군가 저를 ‘공대 변태의 완성판’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인정했죠, 뭐.(좌중 웃음) 무엇이든 강박적으로 오와 열을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도시 3부작의 경우 어쩔 수 없이 그런 부분을 신경 써서 촬영해야 하는데, 인물 사진을 촬영할 때도 배경을 너무 정확하게 찍으려고 집착하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웃음)

 

‘도시천문학’이나 ‘도시통신학’의 경우 기본 촬영 이외에도 그래픽작업 같은 후 작업이 많아 보여요. 종종 이 작업을 두고 사진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많죠. ‘도시미분법’ 작업부터 이미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 류가헌에서 처음 전시했을 때, ‘2018년에 열린 전시 중 가장 파격적인 전시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유는 류가헌이라는 갤러리가 임종진 선생님의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같은 다큐멘터리 사진전을 많이 진행하는 곳이잖아요. 물론 응원해주는 분들이 더 많이 있었지만, 유명 갤러리에서 제가 전시를 하게 되다 보니 안 좋은 평가를 하는 분들이 있었고, ‘이게 진짜 사진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제게 묻는 분들도 많이 있었어요. 류가헌 전시가 끝나고 나서부터는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집요하게 제 사진을 두고 이렇다저렇다 말하고 묻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픽디자이너 그룹 중에는 그래픽작업이 너무 과하다는 걸 문제 삼으며 ‘사진가의 범주에서 나오라’고까지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말들과 메시지에 하나하나 답변할 수 없어서 무시하고 있었는데, 어느 한 사람이 결혼해서 분가해 잘 살고 있는 여동생의 집 주소를 어떻게 찾아냈는지 제 인스타그램 DM에다가 ‘이런데도 내 질문에 답변 안 할 거냐?’ 하고 협박 아닌 협박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니까요.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과,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 자신의 에너지를 비상식적으로까지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어요.

 

와… 만약 저 같으면 그런 상황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은 이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잖아요.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나요?

저는 ‘성실함’도 재능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그럼 어떻게 그 성실함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스스로 찾은 방법이 부끄러움에 기대는 것이었어요. 아까 루틴 이야기를 하면서 그날 촬영한 작업은 당일 어떻게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퇴근한다고 했는데요, 처음에는 그렇게 꾸준하게 올리는 일조차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중간에 업로드를 멈추기도 했고, 그런 나태해진 제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다시 열심히 업로드를 했어요. 어떤 꾸준하지 못했던 작업 패턴의 유격을 점차 줄여나가면서 마음을 다잡았고, 이게 결국 하나의 루틴이 된 것이죠. 어찌 보면 부끄러움을 더 느끼기 위해 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어요.(웃음) 또 하나는 매일 10km씩 달리기를 하면서 생긴 확신인데요, 처음 10km를 뛸 때 제 체력을 100이라고 치고 결승점에 들어왔더니 제 체력 중 70%밖에 사용하지 않았더라구요. 10km라는 거리가 익숙하지 않으니까 혹 완주하지 못할까 봐 체력을 아낀 거죠. 저는 무엇이든 꾸준히 한다는 건 이렇듯 자신의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낼 수 있는 페이스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즉 자신의 에너지를 온전히 방전시킬 수 있는 경험치를 조금씩 쌓아 나가는 것이죠.

 

세상을 바라보는 유쾌한 시선

수입 부분은 어때요? 현재 오롯이 도시 3부작 작업만 진행하고 있는 상황인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근래 출간된 사진집 중 제 사진집이 가장 수익률이 높다고 생각해요.(웃음) 제 컨텐츠가 사진집 하나의 형태로만 나온 게 아니잖아요. 처음부터 컨텐츠는 하나의 형태로만 존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메인이 사진집이라고 하면 그 외 부가적인 컨텐츠들이 주변을 감싸면서 많은 사람을 포괄할 수 있는 다양한 컨텐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그래픽디자이너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해 포스터를 제작했어요. 저는 포스터도 한 장의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도시미분법’ 관련 포스터도 마치 아이폰처럼 첫 번째 전시했을 때 만든 포스터가 1세대이고, 책이 출간했을 때 만든 포스터가 2세대, 류가헌 전시 때 만든 포스터가 3세대 버전, 이런 식으로 보통 시즌을 세 개로 나눠서 그때마다 포스터를 제작했어요. 엽서 같은 경우도 따로 제작했구요. 이렇게 작업의 외연을 확장해서 컨텐츠를 꾸준히 만들어냈는데 포스터의 경우 유포지라는 플라스틱 용지로 제작했기 때문에 수익이 크게 늘진 않았어요.(웃음) 또 류가헌 전시 때 안 좋은 평가도 많이 들었지만, 작품을 처음 팔아보는 경험도 했어요. 한 컬렉터분이 ‘벽면의 세 작품이 한 세트 아니냐’며 한 번에 구입하셔서 그때 90도로 인사를 드리고 문까지 열어드렸죠.(좌중 웃음) 앞서 이야기했지만 크게 수익을 올리진 못했지만, 지금까지 돌아보면 투자 대비 세 배 정도의 수익을 본 것 같아요.

 

와~ 그럼 다른 촬영은 안 해도 되는 상황인 거네요.

아니에요. 도시 3부작 작업 이외에 잡지 촬영이나 인터뷰 촬영 등 이런 것들은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어서.(좌중 웃음) 함께 사진하는 친구 중엔 이런 부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친구도 있는데요, 저는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 전공자도 아니었고, 개발자로서 어느 정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스물아홉 살 때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그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것’이 유일한 제 목표였어요. 그래서 돈 되는 촬영 예를 들어 제품, 인터뷰, 공간, 행사 촬영 심지어 영상 촬영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어요. 이미지적으로 접근하는 일들이 제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스트레스 안 받고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웃음) 이런 작업이 제 생활의 바운더리를 만들어주고, 이로 인해 좀 더 도시 3부작 작업에 집중할 수 있구요.

 

옳고 그름을 떠나 예술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사람에게는 작가님의 다면적인 활동이 어느 면에서 불편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 많이 듣죠. 그런데 우리 모두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하는 행위 자체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평범한 일반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행위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산다는 건 결국 돈을 소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인데, 사람들이 번 돈으로 예술가들의 작품을 사줘야 예술가 역시 생활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결국 예술가들은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걸 ‘존중’이라고 보는데요, 이런 것들에 관해 고민하지 않고 예술가들이 예술의 순수성만 강조하고 세상과 대중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대중을 외면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예술가들도 좀 더 터프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간혹 제가 ‘도시 3부작’ 작업을 컨텐츠라는 용어로 사용했을 때 화들짝 놀라는 예술가들도 있었는데요,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작업을 컨텐츠로 만들고 열심히 팔 것이다’라고 처음부터 표방했어요. 저는 팔아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건 투자이기도 하면서 제 생활의 기반이 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Pluto Shin’이라는 활동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Pluto가 명왕성이란 뜻이잖아요. 이렇게 활동명을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요즘은 ‘신병곤’이라는 본명을 쓰고 있는데, 예전에 싸이월드에서 제 이름을 치면 같은 이름을 가지 사람이 3명뿐이었을 정도로 흔하지 않은 이름이고, 살면서 지금껏 제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어요. Pluto, 즉, 명왕성이라는 이름을 생각한 건, 예명을 지을 때만 하더라도 지구에서 보낸 탐사선이 한 번도 그 실체를 보지 못한 행성이란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주변 지인들이 ‘명왕성으로 예명을 지어서 지금 네가 그 모양이다’라고 농담을 하곤 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Sun, 태양으로 예명을 지을 걸 그랬어요.(웃음)

 

학창 시절 내내 천문학자가 꿈이었다고 알고 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천문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예전의 천문학은 실제 별을 관측하는 게 일이었다면 이제 관측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상상력’을 증명하고 있는 시대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실제 블랙홀은 보이지 않는데 블랙홀을 상상하며 그 세계를 만들어내고, 실재한다는 걸 증명해내는 작업을 하는 거죠. 그래서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완성형 인간이 천문학자라고 생각해요. 과학적 지식과 문학적 지식을 모두 겸비해야 하니까요. 최근 몇 년 전까지 명왕성의 실체를 직접 본 사람이 없다고 했잖아요. 2015년은 천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축제와 같은 해였어요.(웃음) 뉴 호라이즌스호라고 미국 나사에서 보낸 탐사선이 10년 동안 비행해 실제 명왕성 표면을 촬영했거든요. 명왕성은 미국에서 발견한 유일한 행성이었고, 처음 명왕성의 존재를 발견한 미국의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라는 사람의 유골을 뉴 호라이즌스호와 함께 명왕성으로 보냈어요. 천문학자들의 낭만이 실현된 거죠.(웃음)

 

천체 사진 같은 것도 종종 찍는 편인가요?

지금도 간혹 달이나 밤하늘을 촬영하곤 해요. ‘도시천문학’ 프로토타입 같은 경우는 이미 7년 전에 나왔었거든요. 이번에 ‘도시천문학’ 작업을 하면서 모든 원을 다 이뤘어요. 천문학자가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늘 있었거든요. 꿈꿨던 걸 나만의 방식으로 이뤘다는 자기만족?(웃음)

 

스물아홉 살 때 사진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했는데, 개발자에서 직업을 바꾼 계기는 뭐였나요?

회사를 나오게 된 결정적 순간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제가 개발자로 회사생활을 할 때 프리랜서로 사진 일을 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어요.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의 고민이 너무 다르더라구요. 저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였고, 프리랜서 친구들은 어떻게 먹고살지를 고민했죠. 그때 함께 술을 먹던 친구 중 프리랜서 친구가 갑자기 옆 테이블 회식 자리에 있던 회사원들을 가리키면서 ‘회사생활을 계속한다는 게 미련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분들의 나이가 대략 40대인데, 10년 후에는 회사를 나와야 한다. 그땐 20대 때와 같은 모습으로 다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프리랜서를 처음 시작했을 때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 자부심 있는 건, 직접 세상과 부딪히면서 스스로 내 페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거다’라고 제게 말한 게 크게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렇게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내가 계속 개발자로 회사생활을 하다가 50대 무렵 세상에 나오게 됐을 때 그간 내가 해온 일에 대한 가치를 바랄 수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좀 섬뜩했어요. 고민 끝에 회사를 나오게 됐고, 이후 프리랜스 사진가로서 소소하게 세상과 부딪혀 나가는 게 힘들었지만 나름 재미있었어요. 회사생활을 해오면서 쌓아왔던 걸 꾸준히 잃는 시기도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서 무언가가 계속 쌓여가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실제로 부딪히면서 수업료를 낸 기분이랄까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가 마냥 힘들기만 한 시기는 아니었던 거 같아요.

 

사진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수학자들도 각자 자신이 가설을 세우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잖아요. 이처럼 저도 사진을 통해 제가 재밌는 사람이란 걸 증명하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 ‘신병곤이란 사람은 호기심 있는 시선으로 유쾌하게 세상을 바라봤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제 사진을 보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신병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진가 이동훈, 임다윤과 함께 조직한 사진가 그룹 ‘소셜 포토’의 멤버이다. 2018년 류가헌 갤러리에서 도시 3부작 PART 1 ‘도시미분법: 도시 분리 및 재구성’을 전시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매체와 기관에서 활동 중이며 주로 문화 잡지와 건축 사진 분야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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