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생일 선물로 받은 장작 조리 난로

마고의 매직 라이프
글과 사진 마고

마흔 생일 선물로 받은 장작 조리 난로

지난해 11월, 시베리아 한파가 일주일 정도 이곳을 지나갔다. 급속히 떨어진 기온에 우리 가족이 사는 모빌홈(컨테이너)은 아침이면 난롯불이 꺼져 있어 실내 온도가 바깥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번 한파는 한국의 겨울처럼 기온이 낮아 무척이나 추웠는데 이상하게도 햇살은 가득했다. 이곳 겨울의 평소 모습은 기온은 크게 떨어지진 않지만, 햇볕이 들지 않아 우중충하고 무거운 습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어 늘 곤욕스러웠는데, 햇살 덕에 마음까지 보송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튼 급작스럽게 시작된 추위 덕에 우리는 예년보다 조금 일찍 벽난로를 피우기 시작했다. 지난여름 한 이웃 아저씨가 동네 교회 옆, 나무로 지은 오래된 오두막을 허물었는데, 그때 그 안에 있던 다양한 물건들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급작스런 한파가 몰려와 벽난로에 불을 지피다

그 고물(이라 쓰고 보물이라 하겠다)들에는 천 년을 넘게 산다는 떡갈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들부터 미사를 드릴 때 입는 성복을 보관하던 아주 두툼하고 묵직한 옷걸이도 한가득 있었고, 여러 사람이 둘러앉을 수 있는 기다란 벤치며 모두 족히 백 년은 넘은 듯한 희귀한 물건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튼튼한 물건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남편은 그곳에서 온 나무들로 텃밭을 가꿀 때 쓰는 연장들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와 자전거 보관소를 만들었다. 처음엔 어설프던 남편의 목공 솜씨도 이곳의 삶이 늘어갈수록 함께 늘어 이제는 필요한 가구나 물건들을 제법 잘 만들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물건을 고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남은 나무들은 벽난로의 땔감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거기에다 지난봄, 어느 아침에는 남편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한 노인이 길을 막고 나무를 옮기고 있었는데, 남편이 그 노인을 도와드리고 소나무를 한 트럭 얻어오게 되었다. 장작에 불을 지펴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밤나무나 떡갈나무, 참나무, 도토리나무 등에 비해 소나무는 진액이 많아 좋은 땔감은 아니다. 하지만 장작이 부족할 때는 이마저도 고마운 존재이니 얻은 김에 짐 마당 끝에 차곡차곡 쌓아 비닐을 덮어두고 한 2년 정도 잘 말리면 장작으로 사용하기 좋을 것이다.

목공소 자투리 나무를 태우며

주변에 목공 일을 하는 친구 중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친구들 중에는 자신이 일하는 목공소에서 쓰다 남은 자투리 나무들을 태우는 친구들도 있는데, 그런 것들도 알뜰히 쟁여두면 뜻밖에 찾아온 친구들과 장작불을 지피고 밤이라도 구워 먹을 수 있으니 신경 써서 챙기는 편이다. 대신 ‘가공이 많이 된 나무일수록 태울 때 안 좋은 성분이 공기 중에 흩어져 우리 몸으로 들어오니 조심하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경이 쓰이기도 하지만, 대문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오래된 나무문을 한겨울에도 자주 열고 환기시키는 편이니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가끔 페인트가 묻어 있는 장작을 벽난로에 태울 때면 찝찝한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해 바다가 오염이 됐고, 그 바닷물은 어디로든 흘러갈 것이니 일본의 지구 반대편 이곳의 바다라고 해서 사실 더 나을 것도 없다. 또 쓰레기 가득한 바닷속에서 태어나 작은 플라스틱 음료수병에 몸통이 낀 상태로 자라나 불구가 된 거북이도 불쌍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만든 공해를 그 어디에서도 피할 수 없게 된 인간의 삶도 딱하긴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마시는 락스 냄새 진한 수돗물도 그렇고,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도, 과도한 화학 처리로 타지도 썩지도 않는 나무도, 우리가 먹는 음식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 편히 취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더 없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나무에 묻어 있는 화학 페인트를 마시지 않기 위해 난로의 문을 닫으며 우리 집 근처에 집을 짓고 있는 이브 씨가 말한 ‘석유 전쟁’도 떠올렸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원료 중 하나인 석유가 바닥나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세상은 종말한다는 말을 믿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이브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 말이 터무니없다고 느끼다가도 논리적인 이브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듯하다.

비판을 통한 개선도 중요하지만, 매사 모든 일을 비판하고 반박하는 삶도 피곤하고 그리 만족스러운 삶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느 순간 내 머릿속의 잡념과 망상 또한 오염된 영혼 같았다. 쓸데없고 한심하기도 한 것들에 연연해 속을 끓이는 내가 부질없어 보였다. 결국 내 머릿속의 공해를 정리하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일 수도 있다. ‘머릿속을 싹 청소하는 날이 오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도 다 자기의 자리를 찾아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까.’ 나는 난로의 문을 닫으며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특별한 생일 선물, 조리 난로

요즘은 시골에서도 집주인이 싫어하면 마당에서 불을 지필 수 없지만, 불을 지피는 일은 내가 이곳에 와서 찾은 가장 신나는 놀이 중 하나이다. 그런 엄마 곁에서 자라서인지 아이들도 불을 참 좋아하는데, 특히 둘째는 불을 유난히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아기 바구니를 난로 곁에 두고 재워서인지 만 다섯 살이 된 요즘도 한참 불을 들여다보며 좋아한다. 그러다 엄마 몰래 작은 가지를 불꽃 사이에 넣어보다가는 금세 뜨거워 손을 빼곤 한다. 한창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녀석들은 이내 서로의 얼굴에 식은 숯으로 그림을 그린다.

   

또 여름에는 햇살에 빨래를 말리지만 겨울에는 난로 옆에서 빨래를 널고 말린다. 지난여름엔 남편이 나의 40세 생일을 맞아 특별히 장작 조리 난로를 선물해주었다. 안 쓰는 물건을 사고파는 중고사이트에서 찾은 오래된 조리 난로였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장 할아버지가 내 조리 난로를 보고는 당신의 할머니가 사용하시던 난로와 같은 모델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런 이야기를 듣자 나는 내심, 이 조리 난로로 빵을 다시 만들어보고 싶고 이래저래 성능도 확인하고 싶어 더운 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남편은 조리 난로의 연통을 겨우겨우 찾아 주문했다. 조리 난로의 연통은 기존의 동그란 원통과는 다른 타원형의 연통이었다. 조리 난로를 구입한 후, 남편이 금속 용접을 하는 친구 기에나 씨에게 연통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지만,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에서 겨우 연통을 구한 것이다. 그렇게 연통을 주문하고 계산까지 다 했는데, 연통은 결재 후 두 달 넘게 도착할 생각이 없었다. 남편이 전화를 한 번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기다리라는 답변뿐이었다. 기다리라는 말에 내가 투덜거리자 남편은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면서 “당신도 프랑스사람 다 됐네. 자본주의 시스템이 더 발전한 이곳 사회의 사람들은 이렇게 정신적으로 더 팍팍해진 것 같아. 한국 사회에는 아직 정(情)이라고 하는 따듯한 마음이 남아 있지만, 이곳 사람들의 마음은 더 얼어붙어 있어 모두 불평과 비판하기에만 바쁘지”라고 내게 말했다. 남편의 말을 들으니 ‘각자 스스로의 에고에 갇혀 머리로 재고 판단하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잘 버리는 일과 잘 사용하는 일

그리고 지난가을 일요일 아침, 남편은 친구에게 ‘전기 오븐과 식기 세척기 그리고 가스레인지가 필요하면 가지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세 가전제품 모두 거의 새것으로 잘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장작 조리 난로가 있긴 했지만, 가스레인지가 작년부터 잘 작동을 안 했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남편에게 찾아오라고 했다. 단, 전기 오븐과 식기 세척기는 자리만 차지하니 가지고 오지 말라고 했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은 수레에 가스레인지와 함께 전기 오븐과 식기 세척기 모두를 한가득 실어 왔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 다섯 가족이 옹기종기 지내고 있는 판에 커다란 기계들까지 들어차니 딸내미도 ‘자리를 많이 차지하긴 하네’ 하고 한마디 거들었다. ‘요즘은 심플라이프가 대세라 다 버려야 한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이 ‘그것도 잘 사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지, 우리처럼 잘 안 사고 잘 안 버리는 가족은, 저절로 우리 품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잘 써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밥은 내가 만드는데 자기 마음대로 가전제품을 가져온 남편이 얄미워서 한 푸념이었다.

   

사실 나도 아이들에게 집 안 정리를 하라고 시킬 때는 집 안 가득 이렇게나 물건이 많으니 정리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 역시 최근 헌 물건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재미에 빠지면서 점점 더 버리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 실비 언니에게 재봉질을 배운 후로는 여기저기서 얻은 헌 옷이나 식탁보, 커튼 등에서 예쁜 무늬나 자수가 있는 것들을 잘라 자투리 시간에 뭐라도 바지런히 만들어야겠다고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들이 태반이다. 그것들은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필히 잘 사용하겠다고 마음먹고 끝까지 바리바리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었다. 그렇게 남편에게 불평을 늘어놓은 후부터는 남편의 눈치도 보이고 해서 정말 잘 사용할 수 있는 것들만 추려 정리해놓았고, 그 외 것들도 부지런히 재봉질을 해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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