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코요테가 던져준 메시지

꿈인지 생신지 미서부 여행기 1
글과 사진 긴수염

길 위의 코요테가 던져준 메시지

한때 미드나 영화에 나오는 미서부 지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광활한 야생에 끌리는 나와, 화려한 도시가 궁금한 동행은 일주일 동안 두 가지 모두를 볼 수 있는 지역을 찾아 지도를 탐색했다. 고심 끝에 샌프란시스코 인(in), 라스베이거스 아웃(out)으로 루트를 정하고 자동차를 대여했다.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달리다가 내륙으로 방향을 틀어 데스밸리를 통과해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는 것이 큰 그림이었다. 데스밸리라는 지명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저녁에 도착한 트윈픽스에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는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서 확 트인 느낌이었다. 1월에 선선한 바람이라니, 비현실적이다. 반짝이는 금문교와 야경을 보면서 살짝 들뜨는 기분에 취하다 꼬르륵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피셔맨스 와프로 이동했다. 메뉴판 사진 속 클램차우더가 신기해서 주문했다. 이윽고 잘 구워진 커다란 빵그릇에 부드러운 스프가 담겨 나왔다. 우리는 빵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이튿날 피어39에 들러 산책을 하는데 여기저기서 “우엉- 우엉-” 하는 소리가 들린다. 부두 위에 바다사자 수십 마리가 활동 중이다. 놀라운 풍경에 입이 떡 벌어진다. 어찌된 사연인지 궁금해 안내문을 읽어봤다. 1989년 지진 이후 바다사자가 하나둘 오더니 사람들이 정착하게 도와주자 숫자가 늘어났다고 한다. 야생동물과 함께 사는 도시 사람들, 이거야말로 비현실적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든 말든 그들은 자기 할 일을 하느라 바쁘다.

샌프란시스코를 등지고 해안선을 따라 쭉 달리자 엄청난 풍경들이 펼쳐졌다. 영화 <인셉션>이 떠오르는 광활한 해변, 아슬아슬한 교각, 수평선이 모호한 바다. 어느 절벽에 멈춰 숨고르기를 하는데 사슴 세 마리가 우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눈이 마주치자 짜릿했다. 풀로 덮인 평지에서는 각양각색의 소들이 한가로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목에 작은 벨을 달고 있는 소가 이끄는 무리가 줄지어 어디론가 퇴근하는 모습도 신기했다. 이곳의 동물들은 대체로 인간을 피하지 않는다.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거나 각자 할 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 속을 계속 달렸으나 숙박을 할 만한 곳이 없다. 그러다 가드레일을 박고 서 있는 차량을 발견했다. 운전자는 큰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으나 전파가 터지지 않아 신고를 못하는 상황. 나는 2차 사고를 막기 위해 헤드램프를 깜박거리며 지나가는 차들을 서행시켰다. 사고자는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타고 우리가 지나왔던 방향으로 갔다. 그런데 누군가 신고를 했는지 그가 사라진 뒤 얼마 되지 않아 경찰과 구급차가 왔다. 그를 데리러 마을로 달려가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사고 현장으로 돌아오자 그가 다른 차를 얻어 타고 돌아와 있었다. 사고가 수습되는 모습을 지켜보다 현장을 떠났다. 지친 우리는 가장 먼저 보이는 숙소에 들어가 뻗었다. 지나가면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튿날, 고양이들이 시끄럽게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런데 소리의 출처는 다름 아닌 숙소 밖 전신주에 앉아 있는 커다란 갈매기들이었다. 조식을 먹고 근처에 있는 코끼리물범 서식지로 향했다. 해변을 가득 메운 그들은 대체로 눈을 지그시 감고 엎드리거나 발라당 누워 있거나.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연신 지느러미와 꼬리로 모래를 끼얹는 모습이 재밌었다. 한쪽에서는 코가 큰 녀석들이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한쪽에서는 새끼를 낳는 개체 주변에 갈매기들이 모여들어 한바탕 난리가 나고 있었다. 부산물을 먹기 위해서인지 그들은 연신 새끼를 쪼아댔다. 이러다 새끼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지금 막 출산을 마친 어미가 다들 썩 꺼지라며 화를 냈다. 그 옆에는 얼마 전에 세상에 나왔음직한 새끼가 어미와 함께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겨울은 이들에게 출산의 계절이다. 야생의 코끼리물범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다니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다.

푸르고 눈부신 해변을 따라 계속 달렸다. 해가 쨍한 시간에는 신나는 음악, 해가 저무는 시간에는 운치 있는 음악을 재생했다. 장거리 운전의 피로를 떨치기 위해 내린 한적한 어느 해변에 사람 셋과 개 둘이 놀고 있었다. 그게 왜 그렇게 좋아 보였는지. 하지만 LA로 들어서자 그런 풍경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마이클 잭슨, 트랜스포머, 자유의 여신상이 흩어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을 마주치며 30분 정도 돌아다니자 피로가 확 몰려왔다. 도시가 궁금했던 동행조차 LA는 이 정도면 됐다며 부리나케 숙소로 향했다.

대망의 데스밸리를 통과하는 날이다. 내륙 쪽으로 한참 달리자 서부영화의 배경 같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인적 드문 황야에서 누군가 말을 타고 나타날 것만 같다. 점점 건조해짐을 느끼며 달리는데 도로공사가 길을 막고 있었다. 뾰족한 수가 없어 돌아 나오는 길에 아까는 보지 못했던 십자가와 의자가 빙 둘러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얼핏 유령들이 앉아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아마도 밤에 주민들이 모여 모닥불을 피워놓고 기도를 하는 곳인 것 같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대화와 어떤 생각을 나눌까. 사람 없는 공간에서 문득 사람이 궁금해졌다.

   

   

겨우 데스밸리에 진입하자 이번에는 코요테 둘이 길을 막는다. 끝도 없이 펼쳐진 길 위에서 앞뒤로 우리 차를 포위하더니 우리가 슬슬 달리자 옆에서 같이 달리는 게 아닌가! 이들은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 관광객들이 지나가면서 음식을 던져준 것은 아니었을지. 야생에서 스스로 먹이를 구하기를 바라며 단호하게 그들 곁을 떠났다. 그렇지만 길 위를 장악하고 있던 코요테와 눈이 마주치던 순간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묘했다. 생명체가 없을 것 같은 죽음의 골짜기에 생명체가 있다는 걸 알리는 느낌이랄까. 내가 이 땅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모습. 통행세라도 받겠다는 것처럼 차를 포위하던 모습.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먹을 것을 던져줬던 건 아니었을지. 그 코요테의 잔상이 며칠이고 길 위에 서 있었다.

데스밸리에는 다양한 지형이 박물관처럼 펼쳐져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다양한 무늬와 색채의 지층, 소금으로 된 평원 등. 우회하느라 늦게 도착해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지만 어둠이 밀려오기 전에 데스밸리를 빠져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 마음이 평온했던 이유는 황량한 벌판에 인간이 하나도 없어서 마치 다른 행성에 떨어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평온한 이질감은 어둠이 내리면서 약간의 공포로 바뀌었다. 지도를 따라 달리지만 이게 맞는 길인지, 문명의 흔적이라곤 하나도 없는 길을 계속 달렸다. 차를 세우고 쉬고 싶은데 혹시나 굶주린 코요테 무리가 달려오지는 않을까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그래서 쉬지도 못하고 로봇처럼 운전했다. 드디어 도시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사막 위에 지어진 라스베이거스는 본격적인 향락의 도시였다. <스타워즈>의 촬영지였다는 데스밸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이곳 역시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였다.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릴 것 같은, 영화가 끝나면 해체될 것 같은, 사막의 신기루 같은 도시. 동행은 화려한 것을 무척 좋아했으나 나는 그 화려함 이면에 있는 것들이 자꾸만 보여 마냥 즐거울 수는 없었다. 반짝이는 다리 위에 앉아 지나가는 이들에게 구걸하는 사람이 보인다. 그 옆에는 개도 한 마리 있었다. 문득 데스밸리의 코요테가 오버랩됐다. 아마도 이 땅의 원주민이었을, 거대 자본에 의해 삶이 점점 무너지고 밀려나는 사람과 동물들…. 마음이 착잡해졌다. 하지만 동행의 즐거운 마음을 깨고 싶지 않아 내 마음의 모드를 전환하고 나머지 날들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미서부 여행은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의 야생과 문명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해 더욱 궁금해지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그리하여 이듬해에 우리는 미국을 크게 한 바퀴 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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