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부엉이 극장
글 전영석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영화 <로마>

<로마>는 이상한 영화다. 제목을 보고 이탈리아 로마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로마 근처엔 가지도 않는다. 1970년대 초반 멕시코시티의 ‘콜로니아 로마’가 배경이다. 화면은 흑백이고 별다른 이야기도 없다. 영화는 유복한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며 살아가는 어린 가정부(이지만 인디오 혼혈의 하녀에 가깝다) 클레오의 평범해 보이는 삶을 잔잔하게 따라갈 뿐이다. 그런데 그 별것 아닌 것 같은 클레오의 자잘한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작고 하찮은 조각들이 모이고 쌓여 거대한 이야기가 돼 출렁인다. 그 거대함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평범함에서 비롯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조각나 흩어져 있던 파편들을 짜 맞춰 큰 그림으로 완성되는 퍼즐처럼, 내 주변에 있을 것 같은 누군가의 조각난 일상이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로 완성되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전작 <칠드런 오브 맨>(2006)과 <그래비티>(2013)에서 그랬듯, 신작 <로마>에서도 관객들을 특정한 시공간에 던져놓는다. 그리고 현실을 완벽하게 모사한 시청각적 재현의 경험을 겪게 함으로써 그저 ‘지켜보는 타자’에서 극 중 인물과 함께 ‘체험하는 주체’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다. 그의 영화는 이번에도 ‘영화 한 편을 보았다’가 아니라, 내가 ‘그곳에 있었다’라는 실감을 선물한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프레임 바깥의 것들이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뒤죽박죽 겹치고 화면 속 비전문 배우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산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관객들은 1970년부터 2년 동안 멕시코시티에 있는 안토니오 선생의 집에서 클레오와 함께 살게 된다. 클레오와 함께 그 모든 것들을 겪으면서 클레오의 인생에 우리네 삶이 겹치는 순간을 체험하게 된다.

2년이란 시간에 농축된 클레오의 삶은 태평양 건너 멀리 떨어진 우리 인생의 단면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1970~1980년대 사당동과 봉천동 산동네에서 보낸 생활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침마다 공중변소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골목으로 도망치던 아이들, 집집마다 있던 시멘트 쓰레기통, 옥상 볕 바른 곳에서 펄럭이던 빨래, 등하굣길에 우리를 유혹하던 길거리 불량식품들, 머리가 굵어지면서 들락거리던 동시상영관, 아침마다 마을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던 새마을 노래의 멜로디, 오후 5시면 어김없이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던 그 시절이 고스란히 멕시코시티 콜로니아 로마에 사는 클레오의 일상과 포개졌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어린 시절 자전적 이야기의 뼈대에 놀라운 시청각적 체험을 입혀 그 당시 시대의 공기까지 재현해낸다. 아름다운 흑백 화면의 파노라마 위로 유려한 이미지와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지면서, 영화를 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갑남을녀의 이야기도 얼마든지 소설이나 영화처럼 극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준다. 우리 인생은 <로마>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수챗구멍의 비누거품 가득한 구정물이나 개똥천지의 안토니오 씨네 좁은 차고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구정물의 물웅덩이에 비치는 희망과 소망하는 것들의 상징적 이미지(맑고 높은 하늘, 어딘가로 끝없이 날아가는 비행기)를 어딘가에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챗구멍(지상)과 구정물에 비친 하늘(천상)의 대비처럼 인생은 아이러니와 역설로 가득 차 있다. 촬영 당시 감독은 비전문 배우들에게 시나리오 한 줄이나 간단한 상황만 알려주었고, 배우들이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연기를 하느냐며 당황스러워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 역시 현실에서 그런 상황을 끊임없이 마주하지 않느냐.”

삶의 때를 씻어낸 구정물은 좁은 시궁창을 지나 언젠가 넓은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구김 없이 살다가 시련의 파도(임신 후 남자친구에게 버림받고 아기를 사산함)를 만난 클레오는 영화의 마지막 바다 장면의 통과제의를 거치며 새롭게 태어난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그녀가 거대한 파도에 맞서 자기 배로 낳지 않은 (주인집) 아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장면은, 모성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랑의 위대함을 시각적으로 상징화한 것으로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는 주제를 완성한다.

한순간 쾌락을 위해 섹스에 골몰했던 남자친구 페르민과, 바람 난 가장 안토니오는 자기 핏줄을 쉽게 버리지만, 클레오의 위대한 모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도 가족의 테두리 안에 불러 모은다.

우리 인생은 늘 ‘환상과 환멸 사이’ 어디쯤에서 진자 운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삶은 지리멸렬한 궁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한 편의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 영화 <로마>는 오디세우스의 영웅적 모험담이 아니더라도 당신의 평범한 이야기 역시 아름다운 한 편의 서사시가 될 수 있다고, 세상이 그대를 속이거나 감당할 수 없는 파도가 밀려오더라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알폰소 쿠아론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마음 깊은 긍정을 담아 고혹적인 흑백 화면에 ‘살아 있다는 기쁨’의 색을 입힌다. 그리하여 <로마>는 허밍으로 나지막이 읊조리는 삶의 찬가가 된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 <로마>는 미디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넷플릭스 영화 최초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진정한 감동은 화면 크기나 미디어의 종류에 구애받지 않는다. 시련도 그렇지만 한계는 늘 뛰어넘으라고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영화 <로마>가 스크린의 안과 밖에서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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