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 일상의 힘이 살아 있는 마을에서

김남희의 여행의 일상
글과 사진 김남희

가마쿠라, 일상의 힘이 살아 있는 마을에서

11월 중순의 가마쿠라는 푸르렀다. 서울은 이미 겨울의 기운이 느껴지는 날들이었는데, 가마쿠라에는 여전히 초록이 무성했다. 가는 비가 흩뿌리고 있었지만 시린 추위도 없었다. 늦가을 바다에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도에 몸을 싣는 청춘들이 있었다. 끝없이 무너지면서도 중력을 거슬러 파도 위에 서고자 하는 이들의 몸에 실린 의지를 지켜보며 나는 검은 모래 해변을 걸었다. 이 바다 앞에서 이별을 하고, 우정을 나누고,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던 여자들을 떠올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네 자매를. 그들의 흔적을 좇아 가마쿠라에 온 터였다. 가마쿠라는 세 번째였지만 혼자는 처음이었다. 영화와 만화의 배경지를 찾아온 것도 처음이었다. 초록색 열차 에노덴을 타거나 걸어서 가마쿠라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두세 량짜리 협궤열차는 마을과 마을을 가로질렀다. 열차 안에서 바깥으로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집들이 가까웠다. 집과 집 사이를, 골목과 골목 사이를, 신사나 바다를 옆에 두고 열차는 느릿느릿 달렸다. 가마쿠라 역에 열차가 들어서고 플랫폼에 내려선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오랜 친구 마미코였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21년 전, 베트남 북부 사파에서 만났다. 아무거나 잘 먹고, 무엇이든 하자고 하면 좋다고 하는 순한 친구였다. 그녀를 끌고 길도 없는 산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민가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놀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내가 그 집을 잊어버렸을 때, 그녀는 주소조차 불분명한 그 집으로 아이들 학용품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냈던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 후, 우리는 인도의 자이살메르에서 열흘을 함께 지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여전히 배낭을 메고 세계를 떠도는 동안 그녀는 늦은 결혼을 했다. 저를 꼭 닮은 순한 남자였다. 얼마 후 쌍둥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여행 중이던 파리에서 듣고 작은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나는 세계를 떠도느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언제나 내 마음에 있었다. 그녀로 인해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졌고, 그녀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픈 마음에 일본어를 배우기도 했었다.

오랜만에 듣는 마미코의 목소리는 여전히 앳됐다. 서로의 지난 세월을 묻던 와중에 망설이며 말을 고르던 그녀가 결심한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3년 전, 남편 켄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고, 여전히 병원에 있는데 말을 하지 못하고,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라고. 그녀는 담담한 듯 말을 이었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생생히 전해졌다. “이제는 괜찮아, 익숙해졌어. 익숙해졌다는 말이 참 우습지만 말이야. 널 보러 가고 싶지만, 병원에 가는 날이라….” 그 사이에도 계속 전차는 들어왔고, 전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플랫폼으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3년간 그녀가 감당해야 했을 삶의 무게가 나를 강타했다.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 쌍둥이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안아주지도 못하게 돼버린 아빠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일상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그날부터 애써 담담한 목소리를 흉내라도 낼 수 있게 된 지금까지, 그녀는 얼마나 많은 날을 혼자서 울며 견뎌냈을까. 아무것도 책임지는 것 없이 자유롭게 살아온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의 무게였다. 나는 바보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힘들었겠구나, 그런 말조차도. 그녀를 전화기 건너편에 두고 눈물을 쏟고 말았을 뿐. 봄에 다시 올 테니 그때 꼭 만나자는 그 말밖에 건네지 못했다.

   

마미코와의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정처 없이 걸었다. 전차가 신사의 토오리 앞을 지나는 고료 진자에서 흰 동백을 들여다봤고,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며 부서지던 바닷가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비장의 잔멸치 고로케를 꺼내자마자 솔개에게 빼앗겨 황망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영화에서 둘째 요시노가 남자친구와 저녁을 먹는 장면에 등장한 카페에서 가마쿠라의 특산 잔멸치 덮밥인 시라스동을 먹기도 했다. 생 멸치와 찐 멸치가 반씩 올라간 덮밥은 해초와 시소(차조기잎)의 향이 어우러져 놀랍도록 맛있었다. 바로 앞바다에서 잡아 더없이 싱싱하다고 주인장이 자랑할 만했다. 히피 내음이 물씬 풍기는 주인과 가게 분위기도, 커피나 음식의 맛도 마음에 들었다. 일상의 공간이 주는 평화로움이 깃든 소박한 공간이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공간은 전부 일상적인 공간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공간들. 집과 일터를 오가다 보면 지나치게 되는 곳. 슬리퍼를 신고 집에서 입던 옷차림 그대로 가도 되는 식당과 카페들이었다. 영화나 원작만화 덕분에 꽤나 유명세를 타게 된 가게들도 여상한 태도로 손님을 받고 보냈다. 음식도 화려하거나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가장 흔한 건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잔멸치였다. 그걸로 덮밥이나 토스트를 만들었다. 전갱이가 흔한 철에는 전갱이 튀김과 구이였다. 가마쿠라에는 일상의 힘이 살아 있었다. 무너지지 않은 그 든든한 일상의 힘이 나는 고마웠다. 내 친구 마미코가 어떻게든 끌어안고 버텨낸 그 일상이었다. 여행보다 일상은 힘이 세다. 여행보다 일상은 끈질기다. 나는 점점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무너진 삶을 살아가지만, 일상의 소중함은 나날이 커져간다.

   

마미코의 일상을 지지하는 힘이 어린 쌍둥이라면, 내 일상을 버티게 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내가 아니면 누구도 나를 챙기지 않으니까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 되는 삶이라고 그렇게 믿고 살아왔지만, 실은 아니었다. 나 아닌 누군가가 늘 곁에 있었다. 내 삶의 위기는 대부분 경제적인 상황 때문이었다. 3년 전에도, 올해도 나를 쓰러뜨린 건 치솟는 전세금이었다. 5천만 원 넘게 전세자금을 올려달라는 통지를 듣고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던 올해 봄, 나는 자주 눈물을 쏟았다. 사람 없는 알베르게에서 혼자 뒤척이던 밤, 내 삶의 모든 것이 부질없고 쓸쓸해 보였다. 걷다가 지친 마음을 토로할 때면 친한 언니가, 친구가, 얼굴도 모르는 페이스북 친구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응원을 건넸다. 모자라는 전세자금을 묻기도 전에 선뜻 빌려준 이들도 여자 친구와 여자 선배였다. 연애가 끝나고 마지막 사랑이 지나간 듯 우울해할 때도, 스스로 선택한 길임에도 잘 살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도, 언제까지 여행하며 글 쓰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문득 불안해질 때도, 다정하거나 용감한 그녀들 덕분에 고비를 넘어갈 수 있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자매애에 기대어 나는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제 삶의 무게를 껴안고 살아간다. 가끔은 절벽 끝에 혼자 서 있는 듯 느껴져 삶이 버거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찰나의 희열에 젖기도 하지만, 일상의 대부분을 우리는 무기력해하거나 고통스러워하며 흘려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것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자매들처럼 누구의 탓도 하지 않으며 매 순간을 충실히.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온기에 기대어, 그렇게. 봄이 와 마미코를 만나러 가면 그녀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말 같은 건 함부로 하지 않고,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아줄 수 있기를. 영화 속 스즈의 아버지처럼 우리 또한 어떤 순간에도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끝내 남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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