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오늘의 커피’ 같은 따뜻한 음악

따뜻한 인터뷰
인터뷰 신영배
사진 안선근

향긋한 ‘오늘의 커피’ 같은 따뜻한 음악
뮤지션 이아립

‘많은 사람들이 이아립의 음악적 변화나 다양한 시도보다 목소리만 기억할 때 가끔 섭섭하지 않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도리어, “저를 목소리로라도 기억하면 영광이죠”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렇다. 이아립은 많은 사람에게 목소리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무대 위를 통통 뛰며 상큼발랄하게 노래 부르던 스웨터 시절에도, 이후 ‘열두폭 병풍’이라는 개인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그녀의 개인 앨범들에서도, 사람들은 언제나 그녀의 속삭이는 듯 신비로운 목소리를 기억했고, 나 역시 그랬다.

이아립은 1999년 모던록 밴드 스웨터의 보컬로 데뷔해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녀는 ‘아직도 이 모양’이라며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그 음악 행보의 긴 시간과 무게가 잘 가늠되지 않는 걸 보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많은 음악가 중 지금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음악가를 쉽게 찾아보기 어려우니 말이다.

그런 그녀가 지난가을, 전하지 못한 그리운 마음을 담은 디지털 싱글 <짙어만 갑니다>를 발매했다. 그간 정규 앨범의 긴 호흡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전해오던 그녀였기에 이번 싱글은 내게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그녀는 2019년에도 1년에 네 번, 그 계절과 잘 어울리는 디지털 싱글을 발매할 예정이라고 내게 귀띔했다. 자신 역시 ‘다른 음악가의 정규 앨범을 세심히 듣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에게도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좋은 인스턴트 같은 음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그녀로부터 변화를 일으키게 한 것이다. 어찌 보면 그녀가 긴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음악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이런 꾸밈없는 솔직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말을 들으니 그녀의 오랜 팬으로서, 새로운 계절이 짙어갈 때마다 그녀의 음악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을 찾아올지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매일 처음인 것처럼 설레요

2018년도 저물어 가네요, 아립 님에게 2018년은 어떤 한 해였나요?

복잡다단했어요. 이사를 두 번이나 했거든요. 이전에 살던 곳 주변에 재개발 공사 소음이 심해서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로 첫 번째 이사를 했는데, 그 집은 기타를 똥~ 튕기거나 새벽에 의자를 끌기라도 하면 바로 문 앞에 주의해달라는 메모가 붙더라구요. 그게 너무 힘들어서 평창동으로 두 번째 이사를 했어요. 지금 사는 평창동 집은 상가 주택이어서 밤이 되면 건물이 전부 비어요. 그래서 요즘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고 있습니다.(웃음) 이런 이동이 있어서 조금 정신이 없었고, 함께 했던 소속 레이블에서 나와 다시 혼자 음악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얼마 전, 디지털 싱글 <짙어만 갑니다>를 발매했는데, 진행 과정이 새로웠던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사와 앨범 발매란 큰 일을 두 개나 했으니 되게 많은 일을 했네요?(웃음)

 

앨범 발매 과정에서 새로운 진행 과정이란 뭔가요?

이번 디지털 싱글은 레이블에서 저와 함께 나온 두 분의 도움이 컸어요. 뮤지션 강아솔 씨가 프로듀싱을 맡아줬고, 박정란 씨가 프로필 촬영과 홍보 전반을 담당해줬어요. 셋이 모여 회의하고, 녹음과 발매 일정을 조율했는데, 결과랑 상관없이 소통과 진행이 이렇게 잘 됐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미리 정한 일정대로 앨범을 발매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케미가 잘 맞는 세 사람의 힘을 느꼈고, 개인적으로 그게 너무 좋았어요.

 

2019년에는 정규 앨범을 기대해도 될까요?

2019년에도 계절마다 디지털 싱글을 발매할 예정이에요. 이제는 긴 호흡이 필요한 정규 앨범은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들어요. 예전엔 저도 긴 호흡으로 작업하는 걸 좋아했고, 정규 앨범을 통해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길 원했는데, 제 음악 소비 형태를 봐도 스트리밍을 통해 한 곡씩 선택해 듣더라구요. 저는 너무나 가벼운 사람이거든요.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좋은 인스턴트’ 같은 걸 취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웃음) 이런 저를 돌아봤을 때 ‘지속적인 디지털 싱글 작업이 나한테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작업해봤는데, 제 안에 쌓인 것들을 다 털어낸 것처럼 후련하더라구요. 뮤지션들이 정규 앨범을 만들 때 트랙의 순서까지도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앨범을 만들거든요. 그런데 저부터도 그 정도의 세심함으로 음악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솔직하게 음악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이든 글이든 어떤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을 땐 최적기가 분명 있는 거 같아요. 반면 긴 호흡으로 정규 앨범을 준비하다 보면 시기와 타이밍에 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그걸 이번 디지털 싱글로 풀었던 것 같아요. 지난 9월에 이번 앨범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었거든요. 앨범 작업을 함께한 저희 셋은 이번 앨범을 ‘란쏘공’이라고 불러요. ‘정란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구요.(웃음) 제가 작곡해둔 <짙어만 갑니다>라는 곡이 가을에 디지털 싱글로 나오면 적절할 것 같다고 정란 씨가 이야기한 게 이번 디지털 싱글의 시작이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완벽하지 않은 곡이라서 조금 걱정했지만, 눈 딱 감고 낙엽이 거리에 남아 있을 때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는 게 목표였는데 결국 해냈죠.(웃음) 사람이 정말 간사해서, 옛날 그 당시의 내 감정도 너무 소중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년 발매할 봄 노래까지는 미리 써뒀던 음악을 발매한다고 하더라도 그 뒤부턴 그 시기에 맞는 노래를 새로 만들 것 같아요.

 

1999년 모던록 밴드 스웨터로 데뷔했고, 2019년에 데뷔 20주년이네요. 알고 있었나요?

제가 그렇게 오래 활동했나요? 1999년도에 태어나도 부족할 판인데. 우리 동네에 있는 테이블 다섯 개짜리 고깃집에서라도 디너쇼를 할까 봐요.(좌중 웃음) 지난 데뷔 10주년 때도 ‘아직도 이 모양이면 어떡하냐’며 주위 사람들에게 저의 10주년에 관해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웃음) 20년이라니…. 정말 아무 생각이 없이 활동해야 가능한 시간인 거 같아요. 매 순간 음악에 집착하고 매달렸다면 할 수 없었을 거 같구요. 제가 디자인 작업도 병행하고 있지만, 마스터의 느낌으로 임하진 않았거든요. 제 주변에 열정 가득한 많은 아티스트를 보며 항상 배우고 반성해요. 아마 그래서 지금껏 활동할 수 있었나 봐요. 아직도 매일 처음인 것처럼 설레고 떨려요.

 

최근 활동을 시작한 뮤지션 중에는 아립 님을 어려워하는 후배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뮤지션 강아솔 씨랑 친한데, 아솔 씨가 저를 보고 ‘우리 아립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장난삼아 ‘이아립은 네가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 혹은 ‘네가 입에 함부로 올릴 수 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제가 워낙 권위가 없어서 격이 없어요.(웃음) 저를 어려워하는 분들은 제게 말도 안 걸겠지만,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좋더라구요. 아! 종종 ‘이아립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선생님 아니구요, 저는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해요.(웃음)

 

20년의 활동 소감을 짧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신념이나 원동력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제 안에 반짝반짝하는 순간들이 있어요. 저는 어떤 문장들에서 음악적 영감이나 느낌을 받거든요. 그런 문장들을 봤을 때, 한마디로 노랫말인데 그런 문장이나 단어들에 음률을 붙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어찌 보면 음악을 만들고 싶다기보다는 어떤 노랫말, 단어, 문장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빌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장에 관련된 일을 앞으로도 하고 싶거든요. 음률을 붙이고 싶은 문장을 만났을 때 제 안에 반짝였던 순간들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또 하나는 음악을 통해 어떤 목표에 도달하고 싶다는 마음은 음악가 모두에게 있을 텐데, 음악가를 넘어 제 인생 목표는 커피예요.(웃음)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일을 하니까요. 큰 야망 없이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음악을 했기 때문에 지금껏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멘탈이 굉장히 소탈한? 혹은 건강한 편인 것 같아요.(웃음)

어떤 일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 편이에요. 혹 음악이 나오지 않아서 우울하다면 ‘산책을 해서 정리하면 되지’라고 단순히 생각해요. 음악에서 전해지거나 느껴지는 이아립의 모습과 실제 제 모습은 많이 달라요.(웃음) 제 음악에 사랑이나 시련에 관한 이야기가 많잖아요. 사실 저는 힘든 시련이 있어도 커피 한 잔 마시면 끝이거든요.(웃음) 유일하게 제 멘탈을 공격할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지만, 그것조차도 저를 크게 괴롭히는 일은 아니에요. 오히려 이런 제 강한 멘탈이 음악에 방해되는 것 같아요. 멘탈이 약하거나 우울한 사람들이 써내는 곡 중, 정말 반짝반짝하는 게 있고, 그런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위안을 받기도 하는 것 같은데, 저는 그런 공감력에 있어선 많이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이런 로봇 같은 느낌의 사람이 만드는 음악이 사람들에게 어떤 온도로 다가갈지 걱정도 되구요.

 

음악가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확신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혼자 다락방에서 음악을 듣고, 만들고, 부르는 게 너무 좋았어요. 특별한 세상에 저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때가 하이텔 통신 시절이었는데요,(웃음) 아는 언니가 제게 ‘모던록 소모임’이란 곳에 꼭 나가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그 언니가 제가 노래 부르는 걸 정말 좋아해 줬어요. 제 의지였다기보다 노래는 그 언니의 응원으로부터 시작됐던 거 같아요. 그때 그 모임엔 델리스파이스, 줄리아하트와 가을방학의 정바비 등 지금 인디씬이나 문화계에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처음 나간 자리에서 코스모스란 밴드의 멤버가 제게 객원 보컬을 요청해서 처음 노래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만난 지인이 저와 잘 어울리는 팀이 있다며 추천해준 밴드가 바로 ‘스웨터’였죠. 돌아보면 제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응원과 손에 이끌려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20년간 음악가로 활동했지만, 앨범 디자인에 직접 관여하고, 그 외 다른 디자인 작업도 병행하고 있잖아요. 본인의 정체성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 거 같나요?

저는 음악가죠. 많은 사람도 저를 스웨터의 이아립 그리고 음악가 이아립으로 알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보는 모습이 제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또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어렸을 때는 정의를 내리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그게 다 오해고 착각이더라구요. 그래서 사람들이 보는 모습이 ‘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웨터 시절의 음악과 현재 이아립의 음악은 그 차이가 커요. 둘 사이에 괴리감은 없었나요?

물론 있었죠. 스웨터 시절의 <별똥별> 같은 노래는 다시 태어나도 부르기 힘들 거예요.(웃음) 스웨터의 기억이 좋고 재밌었지만,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거 같아요. 그 후 스스로 곡을 쓰는 시간이 제 안에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까 ‘조용한 음악’, ‘악기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어요. 음악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게 많은 편이에요. 앞으로 음악이란 것에서 제가 더 깨닫고 받을 수 있는 게 뭘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이아립은 목소리로 기억되는 사람인 거 같아요. 그간 많은 음악적 변화와 시도도 있었는데 목소리가 유달리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게 아쉽진 않나요?

아니요. 저도 한 명의 청자로서 다른 음악가의 행보나 변화에 관해 쉽게 말할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아무리 준비를 많이 했고, 공을 들였다고 한들 사람들이 그걸 잘 몰라줘서 섭섭했던 적은 없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로 기억되는 게 좋아요. 이아립이란 총체적인 음악가로 기억하기보다 특별한 목소리로 기억해주신다면 오히려 더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제가 아립 님의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은 <베로니카>예요. 할머니의 세례명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립 님에게 할머니는 어떤 분이었나요?

할머니는 제 인생의 롤모델 같은 분이에요. 할머니께서 병풍을 만드시는 분이었는데요, 어린 시절 아직도 기억나는 게, 마루에 병풍을 쫙 펼쳐 놓고 한 땀 한 땀 비단실로 수를 놓으셨어요. 할머니가 만드신 병풍은 이 세상 물건이 아닌 것처럼 예쁘고 부드러웠어요. 그런 할머니께서 제 옷을 손수 다 만들어 입히셨어요. 예쁜 천이나 면으로 원피스부터 벨트, 속옷까지 전부 다 만들어주셨어요.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옷을 입고 나가면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했죠.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너무 잘하셔서 할머니께서 만드신 하나하나가 멋있고, 신기하고 동경 그 자체였어요. 그런 할머니와 좋은 데도 가고, 커피도 함께 마시고 싶었는데, 제가 자유롭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그게 너무 아쉬워요. 이 모든 걸 엄마랑 나누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난 이런 걸 다 할머니랑 하고 싶어’, ‘할머니가 엄마보다 센스가 더 좋아’라고 말하곤 해요.(웃음)

 

보통 영감은 어디서 받나요?

저는 단어와 문장, 영화 속 어떤 대사,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자연이에요. 시시각각 변하는 나무, 비, 하늘이요. 그것들의 모양들이 매일 같았다면 저는 아무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자연은 지루하지 않게 계속 바뀌잖아요. 해의 영향을 받아 바다에서 소금이 생기기도, 꽃이 피기도 하고. 달 같은 경우엔 어느 날은 초승달이기도 하고, 보름달이기도 하구요. 이런 자연을 통해 매일 너무 큰 영감을 받는 거죠. 매일 변하는 친구의 생각, 마음, 감정도 재밌지만, 창문만 열면 바로 볼 수 있는 자연이 너무 좋아요.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은 종일 볼 수 있어요. 이런 장면을 흠뻑 보는 걸 좋아하고, 그때 마음이 비워지면서 동시에 무언가 차오르는데 이런 게 제게는 영감인 것 같아요.

‘나를 세우다’는 뜻의 이름

‘아립’이라는 이름의 뜻을 일일이 다 설명해야 하는 게 귀찮을 땐 없나요?(웃음)

저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으니까요.(웃음) 스스로 ‘아립’이라는 이름을 지었으니까 그 뜻을 궁금해하는 분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힘들지 않아요. ‘나 아(我)’ 자에 ‘세울 립(立)’. ‘나를 세우다’는 의미인데요, 처음엔 뜻보다 한자로 이 이름을 쓰고선 글씨 자체가 너무 예뻐서 이걸 필명으로 쓰기 시작했고, 앞에 성까지 붙여 이아립이란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하게 됐어요. 정말 웃긴 건 ‘이아립’이라는 이름을 짓기 전과 후의 인생이 마치 신분세탁 한 것처럼 완벽히 분리됐어요. 본명인 이영주로 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제가 이아립으로 활동하는 줄 잘 모르거든요.(웃음) 오랜 시간 이아립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다 보니 이제는 본명을 써야 할 때가 오히려 더 어색해요. 제가 좋아했고 만나고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이아립이라는 이름으로 살았으니까 본명보다 이 이름이 더 익숙한 느낌이에요.

 

지금 이 시점에 본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지 궁금해요.

운동이요! 언제든지 들고 나갈 수 있게 수영복이 늘 현관문 앞에 있는데, 디지털 싱글 준비하면서 현재까지 약 석 달 동안 수영을 못 했어요. 그리고 독서! 너무 읽고 싶어서 자주 책을 사는데 읽을 시간이 없어요.(웃음) 저는 제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 수영도 안 하고, 음악도 안 듣고 오롯이 책만 읽고 싶어요. 정말 텍스트를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책을 읽고 싶은데 요즘은 그게 쉽지 않네요.(웃음)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저는 한강 작가 너무 좋아해요. ‘리스펙한다’는 표현도 가볍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 쓰는 분들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사람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잖아요. 또 재미없는 주제도 재밌게 쓸 수 있는 그 능력에 대한 동경이 너무 커요. 그래서 평생 책만 읽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제 안에 늘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살기 위해선 밥도 먹어야 하고, 제가 좋아하는 커피도 마셔야 하니까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책만 읽고 살고 싶어요. 물론, 많은 작가가 계속 글을 써줘야 가능한 일이지만, 그들의 창작과 노력을 계속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웃음)

 

대인 관계가 조금 협소한 느낌인데, 어때요?

제가 조금 털털하고 남성적인 면이 있거든요. 여러 사람과 잘 지내면서도 또 한편 편협한 제 생각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이고, 혼자서도 제 안에 쌓인 것들을 잘 풀어내는 편이에요. 저는 정해진 시간에 친구들을 만나 정해진 양의 수다를 떨어야지만 행복한 스타일이 아니어서,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을 때 가끔 만나는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웃음) 남들이 봤을 때는 제 대인 관계가 좁아 보일 수 있지만, 저한테는 넘치도록 과분한 상태예요. 어릴 적엔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도 잘 지내는 편이었는데, 요즘엔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심심하다’란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보면 어찌할지 모를 정도로 혼자를 잘 누려요.(웃음)

 

여행은 좋아해요?

글쎄요, 마음속으로 항상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웃음) 제게 있어 여행은 책이에요. 어제 <유어마인드>의 이로 씨에게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란 책을 선물 받았는데, ‘이건 저한테 여행 책일 거예요’라고 답을 했어요. 책을 통한 여행을 좋아해요. 물론 다른 세상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고, 낯선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마음도 제게 있는데, 제가 직접 그곳에 가서 보고 경험하는 것 이상으로 책을 통해 느끼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요새는 조금만 검색하면 여행지에 가서 ‘어떤 음식을 몇 시에 먹을 것이다’란 예상과 계획이 가능하잖아요. 그게 너무 재미없어요. 여행을 간다면 아무 정보 없이 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고, 그것도 잘 못하고 게을러서 책을 통해 여행을 하는 편이에요.(웃음)

 

그래도 유독 좋아하는 여행지가 있을 거 같아요.

우리 집이요!(웃음) 제가 봐도 너무 웃긴 게 저는 어떤 것에도 잘 안 익숙해지는 편이에요. 또 잘 길들여지지 않는 스타일이라, 자주 가는 공간도 항상 낯선 느낌이 들어요. 우리 집에 친구들이 놀러오면 편안함을 느끼기보다 모델 하우스 같다는 이야기를 해요.(웃음) 사람이 머무르는 자리가 아닌 느낌이 있거든요.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항상 여행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낯섦의 연장이에요. 그래도 굳이 좋아하는 여행지를 꼽자면 얼마 전에 다녀온 제주도 정도? 제주도는 일단 자연이 너무 예쁘고 공기도 맑잖아요. 강릉도 좋아하고, 군산도 좋았어요. 멀리 떨어진 여행지보단 가까운 여행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평소 운동을 즐겼다면 생활 패턴도 규칙적일 거 같아요.

요즘은 불규칙 그 자체예요. 아침에 자는 일도 많아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경우도 있구요. 또 식사 시간도 안 정해져 있고, 먹는 것도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가끔 제 지금 일상이 여행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루틴이 없거든요. 예전처럼 운동이라도 꾸준히 하면 루틴이 생기는데, 요즘은 운동을 못 하니까 여행지에 있는 거 같아요.(웃음) 밤낮이 바뀌어 있는 올빼미족도 그게 나름의 규칙이고 루틴이거든요? 저는 그런 게 없이 혼재돼 있는 상태예요.(웃음)

 

근래 가장 좋았던 경험이 있다면?

최근 했던 단독 공연이요. 공연에 오신 분들에게 너무 감사했어요. 오랜만의 단독 공연이어서 새롭고 낯선 ‘삼청로146’이란 공간에서 도전해봤는데요, 역시나 낯섦 때문에 조금 당황해 공연을 잘하진 못했어요. 그래도 와주신 분들 때문에 정말 행복했어요. 관객 중 한 분이 그날 제가 부를 노래들을 스케치북에 일러스트레이션을 다 해오셨어요. 노래 부를 때마다 그 스케치북을 한 장 한 장 넘겨주는데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2019년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나요?

계절마다 그 계절과 어울리는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는 거요. 그 이상의 일을 해내긴 어려울 거 같아요. 또 내년에는 앨범 준비와 더불어 저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어요. 계획한 지는 조금 됐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작은 공간이 있거든요. 그 공간에서 제 작업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좋을 거 같아요. 저만의 공간이면서 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요. 다 말할 순 없지만, 어떤 문장들을 갖고 할 수 있는 작업을 그 공간에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디지털 싱글 앨범처럼 ‘좋은 인스턴트’ 같은 작업이요.

 

이아립
이아립은 199년 모던록 밴드 스웨터의 보컬로 데뷔했다. 이후 ‘열두폭 병풍’이라는 개인 레이블을 설립해 독자적인 개인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지난가을, ‘꾸밈없는 쓸쓸함과 그리움의 얼굴’을 담은 디지털 싱글 <짙어만 갑니다>를 발매했고, 다가올 2019년도에 계절에 한 번씩 그 계절에 들으면 더없이 좋을 디지털 싱글을 발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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