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키운 콩으로 즐기는 두부 별미

밀양댁 엄마 손 밥상
글 이미라
사진 이미라, 손별

손수 키운 콩으로 즐기는 두부 별미
두부추어탕과 두부익선

‘손별’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내 친구는 농부다. 돌이켜보면 별이 농부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밀양여고 3학년 7반 반장이었던 별은 짧은 커트머리에 빼빼 마른 몸매의 소녀였다. 말도 그다지 많지 않고 친구들의 수다에 너털웃음을 웃어주던 별은 그 시절부터 그냥 믿음직스럽고 듬직했었다. 그 진솔한 모습들이 농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임을 농부가 된 그녀를 보면서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다.

부모님과 함께 별은 차를 만든다. 별이 사는 마을은 차나무밭이 있는 곳이라고 해서 ‘다원’이라 이름 붙어 있지만 현재 동네에서 차를 재배하는 곳은 손별의 <다암농원>이 유일하다. <다암농원> 근처 혜산서원에는 600년 수령의 차나무가 있는데 밀양에 이런 곳이 있는지 나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고향에서 사는 사람들도 외면하고 있던 차에 대한 역사를 되살려 별은 묵묵히 차나무를 키우고 해마다 봄이면 혼신의 힘을 다해 녹차와 홍차를 만든다.

여름에는 큰 물병에 차 티백을 둥둥 띄워 냉장고에 넣어두고 수시로 마신다. 날씨가 쌀쌀해 지면 아들 녀석들도 등교하기 전에 꼭 ‘별이 이모 홍차’를 한 잔씩 마신 뒤 몸을 따뜻하게 하고 집을 나선다. 별의 차를 마시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서두르지 않고 작은 부분까지 세심히 챙기는 그녀의 성품이 녹아들어 있어서다.

아이들이 어릴 적, 별의 농원은 녀석들의 놀이터였다. 봄이면 쑥 캐고 산나물 뜯고 둥글래 어린 순을 따러 가는 곳이었다. 새순이 올라오는 순간을 기다리다가 찻잎을 따고 덖는 과정을 지켜보고 그 수고의 결정체를 맛보는 호사를 누리던 곳이었다. 또한 걱정나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유난히 겁이 많고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큰 아들 형서는 아기였을 때부터 진지했다. 좋아하는 것에 유독 빠져들고 싫어하는 것에 소스라치는 성격 탓에 매일 사거리 주유소 옆에서 자동차만 쳐다보던 시절도 있었고, 그리스로마 신화를 달달 외우던 때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수학에 대한 거부감과 수학시간에 몰려오는 긴장감으로 몸까지 아팠다. 그 당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모든 학습적인 것들을 배제시키고 아이에게 자유롭고 즐거운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일단 선생님께 ‘수학시간에 형서에게 질문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린 후 학교가 끝나면 무조건 놀러 다니게 했다. 당시 우리가 가장 자주 찾은 곳이 별의 농장이었고, 그곳에 형서의 걱정나무가 있었다. 차나무가 심겨진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큰 나무 한 그루가 나타나는데 별은 형서에게 ‘그 나무가 형서의 걱정나무이니 나무에게 모든 걱정거리를 이야기하면 속이 후련해질 거다’라고 일러줬다. 형서는 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서 괴성도 지르고 가끔 욕지거리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폭발시키곤 했다.

그 힘겨웠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도와준 별이 새삼 고맙지만 정작 나는 별에게 해준 게 없고 여전히 받기만 하고 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데 그 따사로움이 진하게 느껴지네. 콩물도 더디 불어나는 걸 보니 새벽 기온이 많이 내려간 듯 허이. 두부 만들어 놓았으니 가져다 먹어.” 느긋하게 또박또박 말하는 별의 반가운 전화를 받고 <다암농원>을 찾았다. 손수 키운 콩으로만 두부를 만드는 별은 신안 염전까지 가서 직접 간수를 구해오는 유난을 떤다. 한 솥에 딱 40모가 나오는 두부는 그 고소함이 남달라서 주변 친구들 모두가 별의 두부를 기다린다. 특히 자연밥상을 고집하시는 별의 어머니 솜씨를 어깨 너머로 훔쳐보던 나는 별의 두부 4모를 챙겨 와서 어머니의 ‘두부추어탕’과 ‘두부익선’을 따라 만들어봤다.

‘두부추어탕’은 미꾸라지 대신 두부를 넣어 추어탕처럼 끓이는데 그 맛이 깔끔하고 구수해서 속이 든든할 뿐 아니라 소화도 잘된다. 날씨가 추워질 때 먹으면 제격인 음식이긴 하지만 ‘두부추어탕’의 핵심인 약초맛 물과 호박잎을 구하는 것이 관건이다. 다행이도 호박잎은 <다암농원>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여섯 장을 따고, 약초맛 물 대신 다시팩(멸치, 새우, 다시마, 디포리를 넣어 만들어 둠)을 이용하기로 했다. 사실 약초맛 물을 꼭 만들고 싶었는데 오가피, 감초, 황기, 당귀, 칡뿌리, 유근피, 둥글래 등의 약초를 구할 수 없어서 포기했다. 이들 약초 중 몇 가지가 빠져도 되고 없으면 결명자차나 보리차를 이용하면 된다는 어머님 말씀이 있었지만 다시팩으로 쉽게 맛 물을 만들었다. 물론 약초맛 물로 만든 추어탕의 맛이 훨씬 개운하고 깔끔하긴 하다.

고사리, 느타리버섯, 숙주, 호박잎을 손질하여 살짝 데친다. 두부를 칼등으로 으깬 후 데쳐둔 재료들과 함께 들깨가루, 집 간장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둔다. 여기에 맛 물을 부어 끓이는데 센 불에서 끓이다가 중불에서 20분 정도 더 끓여준다. 먹기 전에 채 썬 깻잎, 다진 청양고추, 들깨가루, 산초가루 등을 취향에 따라 곁들여 먹는데 특히 산초가루는 경상도식 추어탕에서 빠질 수 없다. 초피나무 열매를 갈아서 만드는 산초가루는 경상도에서는 제피가루 라고 부른다. 추어탕뿐만 아니라 매운탕, 열무김치에도 넣어 먹을 만큼 사랑받는 향신료다. 특유의 쨍한 맛을 내는 제피가루를 넣는 순간 ‘두부추어탕’의 맛과 향이 제대로 살아난다. ‘두부추어탕’은 만들기 수월할 뿐만 아니라 먹고 난 후에 속이 편안해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별미다.

‘두부추어탕’이 끓는 동안 ‘두부익선’을 후다닥 만들었다. 두부를 채 썰어서 냄비에 깔고 집 간장, 다진 마늘, 다진 쪽파, 고춧가루, 들기름, 멸치 맛국물로 만든 양념장을 쓰윽 뿌려서 1~2분만 살짝 끓인다. 김이 솔솔 나기 시작하고 양념장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끄고 그릇에 담아내는데, 별의 어머니께서 살짝 끓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다. 두부에 간이 배일 정도로, 쪽파의 색이 살아 있을 만큼만 끓여야 두부가 펴지지 않고 제대로 된 ‘두부익선’이 완성된다.

별다른 반찬이 없이 ‘두부추어탕’과 ‘두부익선’으로만 상차림을 했는데도 무척이나 풍성해 보인다. 아이들은 두부를 보자마자 “엄마 이거 별이 이모 두부예요?”라고 묻는다. 녀석들은 별이 얼마나 고생하면서 콩을 키우고 두부를 만들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냥 먹어만 봐도 마트에서 산 두부인지 별의 두부인지도 금세 알아챈다. 콩을 맷돌에 갈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 끓여 만드는 정성이 작은 두부 한모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표면이 덜 매끈하고 입자가 덜 부드럽지만 단단하고 고소한 그 뽀얀 두부는 내 친구 별을 꼭 닮았다.

언제나 묵묵하게 제자리에서 할 일을 꾸역꾸역 해나가는 가녀린 그녀는 사실 누구보다 단단하고 강인한 정신을 가진 농부다. 몸이 아파도, 날씨가 애를 먹여도, 씨를 뿌리고 차를 만들고 추수를 하고 두부를 만드는 별은 10년이 넘도록 자기의 자리를 지키면서 장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늘 힘들어도 요령 부리지 않고 정도를 걷는 그녀의 모습이 밤하늘의 별처럼, 혹은 ‘별’이라는 이름만큼 반짝반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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