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슬프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달려서 다시 만난 두 번째 백두산
글 장보영
사진 장보영, 2018 TNF 100 长白山国际越野跑挑战赛

백두산, 슬프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공항 밖으로 빠져나가니 완연한 가을이었다. 중국 장춘(長春), 긴 봄이라는 뜻을 가진 이 고장은 이름대로 청명한 하늘을 안고 있었다. 광활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삼 ‘대륙’에 왔음을 실감했다.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중국의 여러 성(省) 중 동북부 끄트머리에 위치한 장춘을 찾아오는 이유는 99.9% 이곳 때문이다. 바로 장백산(長白山). 중국에서는 ‘창바이산(Changbaishan)’으로 불리는 이 산의 절반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白頭山)이다. 중국 길림성과 북한 량강도 경계에 솟아 있어 바라보는 곳에 따라 달리 불린다. 이 글에서는 ‘백두산’으로 산의 이름을 통일한다.

하늘길로 향하는 백두산

나에게는 이번이 태어나 두 번째 찾는 백두산이었다. 3년 전 이맘때 북파 코스와 서파 코스를 통해 천지의 푸른 수원을 바라봤다. 내가 천지를 봤다고 말하면 다들 운이 좋다고 답했다. 3대가 덕을 쌓았다며 진실로 부러워 마지않았다. 며칠씩을 근방에서 체류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천지로 접근했지만 하늘이 열리지 않아 하릴없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수두룩하니까. 3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 백두산의 위용을 기대했다. 이번에도 천지가 허락될 수 있을까.

기내 모니터는 우리가 이동하는 하늘길의 경로를 위도와 경도, 시속과 남은 주행거리 숫자와 함께 실시간으로 알려왔다. 한반도를 한참 전에 벗어난 비행기는 구름 위에서 현재 북한을 넘고 있다. 백두산에 가려면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북한을 건너 중국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백두산에 가게 된 걸까? 내 인생에 처음으로 ‘백두산’이라는 단어가 가까이 다가온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인 1999년으로 기억한다. ‘삐라’를 주워 경찰서에 가져가 학용품 세트와 맞바꾸고, 6월이면 숙제로 ‘반공 포스터’를 그리며 유년시절을 보낸 나에게 부모님께서 ‘친구 부부들과 백두산에 간다’고 말씀하셨던 그날. 그 전까지 ‘백두산은 북한’이라고 알고 있던 나에게 그들의 여행은 실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의 나 또한 그들처럼 하늘길로 백두산을 향한다. 문득 ‘이것이 나에게 겨우 남아 있는 통일의 감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백두산의 일각이 보일까 기내의 작은 창을 하염없이 내다보는 마음 한편에 웅크린 아쉬움 말이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어떤 아쉬움. 이 감정은 지난 6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회담을 갖는 모습을 브라운관으로 바라볼 때의 감동보다 훨씬 더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내 안에서 움직였다.

때는 정오, 미리 예약한 8인 승합차를 타고 장춘공항에서 송강하(松江河)로 이동했다. 장춘공항에서 송강하까지는 차로 무려 4시간. 시원하게 뚫린 직선도로를 하염없이 달렸다. 양 옆으로 끝 모르게 이어지는 옥수수 밭이 진귀한 볼거리가 됐다. 이른 비행 일정에 아침부터 서두른 탓인지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 창밖 한 번 바라보고, 다시 졸다가 깨어 창밖 한 번 바라보는 과정이 끝없이 반복됐다. 흥이 많은 운전기사는 대륙의 최신가요를 쉴 새 없이 들려줬다.

압록강 너머로 바라본 북한땅

3년이 지나 다시 백두산에 온 이유는 ‘달리기 위해서’였다. 9월 8~9일 이틀 동안 열린 ‘백두산 산악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8명의 한국인들이 모였다. 올해로 2회째 개최되는 이 대회는 25km, 50km, 100km 부문으로 나눠 치러지며 나는 50km에 출전한다. 세계 유일무이의 분단국가인 남북한의 정수리, 백두산을 달리는 대회인 만큼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다. 작년에 단 한 명의 한국 선수가 참가한 것에 반해 올해 8명으로 그 수가 부쩍 늘었으니 아마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다.

일행이 이번 여정의 짐을 푼 곳은 송강하역 부근에 위치한 송강민박. 한국인 변동연 씨와 그의 중국인 아내 강평 씨가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한인민박으로, 일정한 비용을 받고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숙소와 조식 및 석식을 제공해주고 있다. 더불어 강평 씨는 길림성 지역 관광 가이드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백두산을 비롯한 이 지역 관광 안내도 병행하고 있다. 도착과 동시에 저녁으로 융숭한 한국식 밥상을 대접받은 우리는 해 질 녘 마을 인근을 산책하는 것으로 송강하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난 나와 일행은 이른 아침식사 후 백두산 남파 코스 트레킹을 위해 어제의 승합차에 다시 몸을 실었다. “송강하에서 남파 입구까지는 차로 2시간 이상 걸려요. 한 숨 푹 주무셔도 좋습니다.” 동행한 강평 씨가 말했다. 나의 경우 두 번째 찾아온 백두산이지만 남파 코스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파와 서파는 정상인 천지 부근까지 차가 다녀 트레킹의 의미가 크게 없지만, 자주 통제되는 남파의 경우 산길을 오르내릴 수 있으며 천지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어 나를 포함한 일행 모두 기대가 컸다. 하늘도 쾌청해서 우리의 발길을 돕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장백현으로 진입하는 검문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남파 코스에서 정상 부근까지 이르는 산길에 눈이 쌓여 있어 트레킹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달려왔는데! 모두의 낯빛에 실망의 기색이 가득했다. 돌아서야 하나. “장백조선자치현과 가까운데 그곳으로 가서 압록강을 보는 걸로 하지요. 북한 양강도 혜산시가 가까이 보여요.” 강평 씨가 가이드로서의 내공을 발휘했다.

“한국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게 어디에서 유래한 건지 아시나요? 두만강 물길 1,000리, 압록강 물길 2,000리, 합쳐서 3,000리라 그런 거라요.” 힘마저 느껴지는 강평 씨의 해설이 무색하게 눈앞으로 흐르는 압록강의 물줄기는 무척 협소했다. 당장이라도 두 다리를 걷고 강 반대편으로 건너도 될 것 같았다. 장백 전망대에 서서 압록강을 바라봤다. 건너편 잿빛의 초라한 마을이 바로 북한이다. 관광객들의 관망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어제와 다르지 않을 오늘을 일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왔다.

1년에 단 한 번 백두산을 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장백시를 벗어나 압록강줄기를 따라 차를 타고 한참동안 달렸다. 창밖으로 둔 시선은 자꾸만 북한땅을 향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 강둑을 따라 길게 이어진 철책과 초소들,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텅 빈 길에서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다. 백두산을 사이에 두고 하루가 멀다 하고 리조트와 호텔, 공항 건설로 분주한 중국과 달리 북한의 시간은 수십 년 전에 그대로 멈춰버린 것 같았다. 강을 가로질러 당장이라도 나무 한 그루 없는 저 산들을,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저 길을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차올랐다.

여정 셋째 날인 9월 9일 일요일, 대망의 대회일이 다가왔다. 새벽 3시에 송강민박을 벗어나 택시를 타고 10분 거리의 백두산 서파 매표소에 도착했다. 나를 비롯한 50km 참가자들은 구매표소 안에 들어가 몸을 풀며 대회준비를 했다. 아직 어스름 짙은 매표소 밖으로 나가니 머리 위로 밝고 맑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이가 덜덜 부딪힐 정도로 추웠지만 우주의 별이 모두 쏟아지는 것만 같은 지금 이 순간의 하늘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또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벽 5시, 50km 대회가 시작됐다. 어느새 동이 텄는지 우리가 달리는 숲길 위로 햇살이 쏟아졌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도 앞으로 쏟아졌다. 눈앞으로 너르고 곧게 뻗은 임도가 길게 이어졌다. 이 대회의 장점 중 하나를 꼽는다면 ‘백두산 산림 내부를 달릴 수 있다’는 점이다. 본래 산림 내부는 중국 산림청 직원이나 관계자 외에는 일반인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지금 달리는 이 길이 일반 백두산 관광으로는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발끝에 걸리는 돌부리 하나, 나무에 걸린 바람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원시림, ‘짜요(加油)!’ 하고 웃으며 들려오는 응원의 한마디, 스쳐지나가는 모든 것이 너무나 소중했다. 산림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아스팔트 도로가 이어졌다. 골인 지점인 ‘천지’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10km. 구절양장의 아스팔트 도로가 이어졌다. 저 멀리 정상이 신기루처럼 보였다. 꿈인 듯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서파 코스를 달려 천지를 가슴에 품다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셔틀버스를 몇 대나 스쳐 보냈을까. 버스에 탄 사람들은 일제히 창가에 붙어 달리는 우리를 응원했다. 서파 가는 길. 3년 전 나 또한 이 길을 저 사람들처럼 버스를 타고 올랐다. 이 아스팔트 도로 또한 평소에는 버스만 다닐 수 있다. 사람이 내려 걷거나 달리는 일은 생각할 수 없다. 1년에 단 한 번뿐인 기회.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절호의 기회. 그러니까 ‘산을 달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것.

중국 동북공정에 대해 비난할 때 일부 중국인들은 ‘역사는 힘 있는 자에 의해 쓰인다’고 답한다. 중국은 현재 국력을 다해 백두산을 개발하고 있고, 이 개발의 목적은 ‘백두산은 중국의 산’이라는 인식을 세계의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위함일 것이다. ‘백두산 산림 내부를 달려 천지로 골인하는’ 이 아름답고 환상적인 대회 역시 목적은 같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곳을 달리고 있는 우리는 중국의 커다란 계획에 무심히 동조하고 공모하고 있는 걸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동요를 부르며 우리는 자랐다. 하지만 이제 그 노래를 불렀던 ‘우리’는 너무 많이 바뀌고 있다. ‘통일이 소원’인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그렇게 ‘통일의 감각’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도리어 ‘통일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라며 통일 후에 야기될 불안과 혼란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통일이 됐다면 이렇게 멀리까지 돌고 돌아 천지를 보러 오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것, 이렇게라도 백두산의 산하를 달릴 수 있어 감사하지만 이렇게까지 불편한 마음으로 달리지 않아도 됐을 거라는 것. 그리고 지금, 이 경로만이 우리가 백두산과 만나고 통일을 염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

시간이 흐르고 세상을 좀 더 살아갈수록, 그래서 이전에 비해 좀 더 보이고 들리는 것이 생길수록 순수하게 좋아하고 기꺼이 즐기는 일이 어려워진다. 이곳까지 오르기 위해, 완주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벌인 사투로 지치고 힘들었던 걸까. 마지막 힘을 다해 1,442계단을 꾸역꾸역 올라 이윽고 고대하던 정상에 섰을 때 왜 오래전처럼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을까. 결승선에 주저앉으며 질끈 감았던 두 눈을 떴을 때 비로소 천지가 보였다. 슬프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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