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자의 오래된 골목과 사랑에 빠지다

김남희의 여행의 일상
글과 사진 김남희

페루자의 오래된 골목과 사랑에 빠지다

페루자로 향한 건 순전히 충동적이었다. 1년에 한 번 정도 사람들을 이끌고 여행을 다니는데 포르투갈 여행이 막 끝난 터였다. 사람들 속에서 계속 말을 하며 열흘을 지낸 후라 혼자서 침묵할 시간이 필요했다. 단체 일정이 끝나기 전날, 나는 이탈리아 지도를 들여다보며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문득 피렌체 아래로 산이 많은 움브리아 주가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끼지 않은 주라 이탈리아인들에겐 별로 인기가 없는 곳이라고 했다. 관광객이 적을 것 같았다. 움브리아 주의 주도인 페루자로의 짧은 여행은 그렇게 정해졌다.

페루자 역사 지구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작은 집에 짐을 풀었다. 역사 지구 내의 어지간한 건물들은 400~500년이 넘었다고 했다. 페루자는 딱 내 취향의 도시였다. 어디든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작고, 오랜 역사와 전통 문화가 강렬히 살아 있고, 도시는 산과 들판에 둘러싸여 있었다. 페루자는 고대 에트루리아부터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였다. 예술과 공예의 중심지이자 1308년에 세워진 페루자 대학 덕분에 대학 도시라 불렸다. 골목의 카페마다, 광장의 계단마다, 푸릇푸릇한 청춘들이 모여 읽고 쓰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쩐지 이곳의 대학생들은 내 나라의 젊은 친구들보다는 삶의 무게가 가벼울 것 같아 슬쩍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내키는 대로 도시의 골목을 기웃거렸다. 대학생들로 북적이는 피자 가게에서 그들처럼 선 채로 조각 피자를 먹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토론이 한창인 카페의 한 구석에서 일기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오후, 내 발길이 ‘수직(手織) 공방’이라고 쓰인 건물 앞에 멎었다. 문을 여니 짧은 머리의 체구가 자그마한 여성이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내부는 놀랄 만큼 멋진 공간이었다. 천고가 높은 건물의 유리창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통로에는 나무 베틀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그 베틀로 직조한 컬러풀한 천들이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수작업으로 천을 짜는 이 공방의 주인 마르타가 다가와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1801년에 이탈리아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된 컴퓨터 형식의 직조 기계가 있는데, 디자인을 그린 필름을 넣으면 기계가 그걸 읽어낸 후 사람이 틀을 움직여가며 직조를 하는 방식이다. 그 기계를 사용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천을 짜는 공방이었다. 이곳에 있는 가장 오래된 기계는 1836년 산. 이 공방의 모든 기계가 19세기 제품으로 이탈리아에서 이런 방식으로 천을 짜는 곳은 이곳 하나만 남았다고 했다. 세 명의 직조 장인과 함께 공방을 꾸려가는 마르타는 에너지가 넘쳤다. 1921년에 설립돼 페루자에서 가장 유명했던 직조 공방이 그녀의 고조할머니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대를 이어오던 공방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그녀의 어머니 대인 1993년 문을 닫았다.

1994년, 마르타의 아버지가 경매에 나온 교회 건물을 사들였고, 다음 해 마르타는 그 건물에 공방을 다시 열었다. “내가 철이 없고 어리석었지.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으니까. 12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의 테이블클로스 하나를 짜는데 최소 22일에서 30일이 걸려. 그런데 이탈리아에선 이런 제품의 세금이 68%야. 상상을 해 봐. 세금 내고, 장인들 월급 주고, 스튜디오 운영비용을 마련하려면 테이블클로스 하나에 최소 5,000유로(600만 원)는 받아야 하는 계산이 나오거든. 그걸 누가 살 수 있겠어?” 그럼 도대체 공방을 어떻게 꾸려가냐는 내 질문에 그녀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다행히도 남편이 치과의사야. 돈은 그가 벌어오고, 난 비즈니스와는 상관없이 꾸려가는 거야.” 국가의 보조금도 조금은 나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어쨌든 돈이 되지 않는 일을 긍지만으로 운영한다니 대단할 수밖에. 부자의 역할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지만 경제성이 떨어져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일을 지키는 데 돈을 쓰는 부자라니 얼마나 멋진가!

마르타는 다음 주에 피렌체에서 열릴 전시회를 준비해야 하니 천천히 둘러보라는 말을 건네고 사라졌다. 공방에는 호세라는 남자가 베틀을 돌리고 있었다. 발로 페달을 밟고, 손으로 실이 걸린 부분을 계속 밀며 부지런히 몸을 써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하루에 얼마나 짤 수 있느냐 물으니 호세가 이미 짜놓은 부분을 가리켰다. 가로 150cm, 세로 30cm쯤 되는 크기였다. 하루 꼬박 일하면 이만큼 짤 수 있단다. 그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하다 나오는 길, 페루자가 조금 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다음 날은 모레티 카셀리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을 찾아갔다. 1858년에 화가이자 스테인드글라스 장인이었던 프란세스코 모레티가 설립한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이었다. 모레티의 외가 쪽 5대손인 아나와 남편 조르지가 공방을 꾸려간다. 아나의 딸도 스테인드글라스 페인팅을 하고 있으니 6대째 이어지는 셈이다. 아내가 한쪽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남편 조르지가 공방을 돌며 공방의 전통과 기술을 설명해줬다. 15세기에 지어진 건물이라 후기 고딕 양식의 인테리어가 남아 있는 건물에서 150년이 넘도록 대를 이어가는 스테인드글라스 페인팅이라니.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전날의 직조 공방처럼 이곳 역시 이탈리아의 정신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돈이 되지 않는 힘든 일이지만 묵묵히 가업을 잇고, 그 아름다운 전통을 외부인과 공유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이탈리아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인류 전체에게 보물 같은 나라라고, 그러니 득실거리는 소매치기나 정부의 부정부패 같은 건 그냥 눈감아주자고 마구 옹호하고 싶어지던 오후였다.

페루자에는 볼거리가 넘쳤다. 페루자가 낳은 위대한 화가이자 라파엘의 스승이었던 페루지노의 그림이 걸린 국립 미술관도, 개인 도서관이 근사한 소르벨로 저택도, 성 베드로 성당의 프레스코화도 좋았지만 페루자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좁고 가파른 골목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하염없이 거니는 것이었다. 페루자의 모든 골목과 건물은 역사의 증인이었다. 중심지로 들어서는 성문의 하나인 에트루스코 문은 200,300년 전에 세워졌고, 도시는 에트루스칸 시대에 지어진 내성벽과 중세에 쌓은 외성벽으로 이어져 있었다. 페루자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길은 13세기에 지어진 수도교로 이어진 길이었다. 700년 된 다리 옆으로 집들이 서 있고,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21세기의 시공간이 아닌, 중세의 시공간으로 넘어온 것 같은 풍경이었다.

   

   

아랫마을과 윗마을을 에스컬레이터로 연결하는 로카 파올리나 또한 놀라운 지하 도시였다. 한때 페루자의 군주였던 발리오니 가문의 본거지였던 중세 도시였다.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가 이 가문을 몰살하며 궁전과 7개의 교회, 백 채가 넘는 가옥을 모두 파괴했다. 내가 걷는 길 아래는 죽은 이들의 무덤인 셈이었다. 그 지하 도시에서 상영하던 페루자의 역사를 담은 비디오 아트가 너무나 근사해 나는 오갈 때마다 멈춰 서서 감상하곤 했다. 예술의 도시가 허명이 아님을 확인시켜주는 비디오아트였다.

   

페루자의 모든 길은 11월 4일 광장으로 통했다. 13세기에 조반니 피사노가 설계한 마조레 분수와 산 로렌조 대성당, 프리오리 궁전이 광장 주변에 모여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광장 앞을 오가거나 성당 계단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소일했다. 페루자에서 마음이 조급해질 때면 미국의 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글을 떠올렸다. “페루자에서는 무엇보다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모든 곳을 아주 천천히, 내키는 대로 걸어 다녀야 한다”던 조언을. 해 뜰 무렵과 해 질 무렵이면 카르두치 정원의 난간에 기대어 성벽 너머 움브리아의 자연을 바라보곤 했다.

올리브 나무들이 늘어선 구릉과 포도밭과 그 너머의 푸른 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딱히 무엇을 보거나 어디를 가야겠다는 의지가 없이 걸어 다닌 사흘은 그 자체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페루자의 전통은 얼마나 더 이어질 수 있을까. 헤이즐넛을 넣은 초콜릿 ‘바치(Baci)’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초콜릿 회사 페루지나는 이 도시에 있지만 이 유서 깊은 회사(1097년 설립)는 네슬레에 팔렸다. 다국적기업의 탐욕스러운 손길에서 페루자의 전통조차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도시가 지금의 모습을 오래 지켜갈 수 있기를 기원하며 페루자를 떠났다. 3박 4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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