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주는 하나의 거울

마이 홀릭 라이프
인터뷰 장보영
사진 주민욱

잡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주는 하나의 거울
<아무튼, 잡지> 저자프리랜스 작가 황효진

흔히 ‘잡지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온라인 매체와 SNS의 발달로 종이 잡지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하며 내로라하는 잡지들이 경영상의 이유로 오랜 역사를 접고 폐간했고, 많은 잡지들이 웹으로 매체 전환을 한 지 오래다. 실제로 큰 품이나 돈을 들이지 않고도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쉽고 빠르게 필요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며 자신의 콘텐츠나 상품을 PR할 수 있는 SNS를 보고 있자면 종이 매체의 유용함을 묻는 일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잡지들은 명맥을 이으며 꾸준히 발행되고 있고, 심지어 이전에 없던 참신한 기획과 콘셉트로 무장한 잡지들이 줄지어 창간되고 있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잡지들을 보고 있자면 과연 ‘잡지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해도 되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 어떤 잡지들은 세월과 함께 폐간이 된 반면 어떤 잡지들은 꾸준히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아직은 세상에 없지만 앞으로 만들어질지도 모를 새로운 잡지들도 무궁무진하다.

잡지를 보면서 10대를 보냈고, 잡지를 만들며 20대를 보냈으며, 30대에 이르러 프리랜스 작가 전환을 한 뒤 <아무튼, 잡지>라는 이색적인 책을 쓴 황효진 작가는 말한다. SNS에 너무 많은 정보들이 흘러넘치는 지금의 상황이 오히려 잡지가 힘을 얻고 살아남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예전의 잡지가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를 했다면, 오늘의 잡지는 ‘시간이 가도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와 나눈 삶과 쏙 빼닮은 잡지 이야기를 공개한다.

인생 키워드는 아무튼, 잡지

작가님의 단행본들을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단행본 <아무튼, 잡지>의 저자 황효진입니다. 프리랜스 작가로 활동하기 이전에는 엔터테인먼트 비평을 위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온라인매거진 <텐아시아>와 <아이즈(ize)>에서 7년 정도 기자 생활을 했구요. 작년 2월까지 회사를 다녔고, 현재는 원고를 청탁받아 쓰거나 ‘헤이 메이트’라는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동료 작가와 함께 단행본 작업을 하고 있어요. 최근 <둘이 같이 프리랜서>라는 에세이집을 독립 출판했습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매체를 그만둔 이유가 있나요?

제가 활동한 매체의 경우 에디터들의 자율도가 비교적 높은 편이라 기획회의를 하고, 취재를 한 후, 원고 마감하는 것까지 지키면 그 외의 영역은 서로가 거의 터치를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회사 시스템이나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는 편이었지만 궁극적으로 기자로 일하려면 아무래도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도 잘 나오는데 연차는 쌓이고, 나는 제자리인 것만 같고, 이렇게 계속 일을 하는 것이 자리보전하는 것밖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더라구요. 지금 정도에서 커리어를 끊어줘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퇴사하고도 계속 글을 쓰고 있네요?(웃음)

하하. 저도 그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긴 한데요. 막상 밖에 나와 보니 매체 생활하면서 배우고 해온 게 기획하고 취재하고 글 쓰는 일밖에 없잖아요. 현재 고정적으로는 한 인문 예술 사이트에서 인터뷰 원고를 쓰고 있구요. <텐아시아>나 <아이즈(ize)>를 제외한 다른 매체들의 경우 엔터테인먼트 비평을 전문으로 다루지 않기에 관련 글이 필요한 매체 피처 면에 종종 엔터테인먼트 비평 관련 글을 쓰고 있어요.

 

매체에서의 경험이 현재는 무기가 된 셈이네요.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회사를 그만둘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나중에 뭘 해야 할지 고민도 걱정도 없었고,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들지 감도 없었죠. 오히려 엔터테인먼트 비평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건 회사를 나오고 한참 후에 알게 된 것 같아요. 정작 회사를 다닐 때는 ‘엔터테인먼트 비평을 요새 누가 읽을지, 이제는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더는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냥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직접 보거나, 유튜브 같은 데서 요약해주는 걸 본다든지, 아니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기사 줄거리를 읽으면 읽었지 과연 비평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회의적이었거든요. 제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매체 범위가 더 세분화되고 다양화될수록 엔터테인먼트 비평은 굉장히 중요한 분야이고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분야라는 거, 그래서 제대로 해야겠다는 거. 엔터테인먼트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매체에서 훈련했다는 것에 프라이드가 있고 ‘이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자신이 생겼어요.

 

<아무튼, 잡지>도 무척 재미있게 봤어요. 집필 계기가 궁금해요.

퇴사한 이후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코난북스 이정규 대표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아무튼 시리즈’ 집필을 먼저 제안 받은 필진이 저를 적극 추천해주셨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은 10여 권의 ‘아무튼 시리즈’가 발간됐지만 그때만 해도 아직 한 권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그렇게 우선 출판사와 미팅부터 했어요.

왜 하필 ‘잡지’였어요?

출판사에서 처음부터 ‘잡지’에 대해 써달라고 요청한 건 아니었어요. 먼저 저에게 어떤 주제에 대해 써볼 수 있겠느냐고 의사를 물어보셨고, 저는 ‘고양이’를 워낙 좋아하고 또 키우고 있으니까 그것에 대해 써보겠다고 제안했죠. 그런데 ‘고양이는 안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고양이’, ‘커피’, ‘카페’ 이 세 가지는 안 된다구요. 너무 범 대중적 키워드라는 게 이유였어요. ‘아무튼 시리즈’ 기획 의도가 어떤 한 사람이 뚜렷한 취향을 가지고 가꿔나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좀 더 저의 개성이 드러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랐죠. 불현듯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잡지’를 꾸준히 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책에서도 알 수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잡지를 즐겨보셨던데요. 저도 90년대 만화잡지를 거친 세대라 더 공감이 갔어요.

‘잡지’라 하면 어렸을 때 이야기뿐만 아니라 최근 재미있게 본 잡지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더불어 일했던 이야기도 할 수 있으니 자신이 있었죠. 출판사 대표님도 찬성하셨구요. 1인 출판을 하시는 분이라 더욱 주제에 관심을 보이시더라구요. 만약 제가 종이 잡지에서 일을 했다면 오히려 대표님께서 반대하셨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너무 ‘일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오, 그렇군요. 저도 사실 그 지점이 신기했거든요. ‘잡지’라는 종이 매체에 관한 책을 쓰는 저자가 온라인 매체 활동을 오래한 기자라는 사실이요. 그런데 의문이 풀렸어요.

어렸을 때부터 종이 잡지를 보면서 자랐지만 온라인 매체에서 일을 했고, 그럼에도 종이 잡지에 애착을 가지며 지금까지 즐겨 보고 있다는 점이 ‘잡지’에 대해 어느 정도 이야기해볼 만하다고 여기셨던 것 같아요. <아무튼, 잡지>는 그런 과정을 거쳐 쓰게 됐습니다.

 

기획을 하고 취재를 하고 마감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온라인 매체와 종이 잡지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온라인 매체와 달리 잡지는 ‘종이’라는 고유의 물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 점이 종이 잡지의 특별함일 텐데 종이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종이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했지만 당시는 온라인 매체에서 일하던 때라 워낙 바빠서 독립 출판을 하고 싶다거나, 종이 잡지로 이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어요. 무엇보다 엔터테인먼트 비평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텐아시아>와 <아이즈(ize)>라는 매체가 저에게 잘 맞았어요. 사실 기자가 되기 전에 오랫동안 PD 준비를 했거든요. 드라마, 예능을 많이 보고 즐겨 보는 사람이었기에 거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매체에 있는 게 더 어울렸던 것 같아요.

시대와 함께 변하는 잡지의 쓸모

본격적으로 ‘잡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네요. <아무튼, 잡지>를 쓰면서 재밌었던 부분, 그리고 어려웠던 부분이 궁금해요.

책을 보면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제가 즐겨본 잡지들에 대한 변천사가 대략 소개돼 있는데요. 어려웠던 부분은 아무래도 제가 기억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 유년시절의 잡지 이야기를 복기해내는 것이 힘들었다는 점? 재밌었던 부분은 이 책을 쓰는 동안 내가 오랫동안 잡지를 막연히 좋아하고 즐겨봤지만 ‘왜 좋아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는 점이랄까요. 제 내면의 욕구를 알게 됐다는 점이 좋았어요.

 

내면의 욕구라…, 왜 잡지를 좋아했던 거예요?

잡지를 통해 내 안에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꾸미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고나 할까요. 그걸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어도 잡지를 보면서 ‘아, 나는 ○○한 삶을 살고 싶어’라고 꿈꿀 수 있어 행복했던 것 같아요. 가성비 따지는 세상에서 나는 가성비와는 무관하게 ‘내가 좀 더 원하는 형태의 삶’을 찾고 싶어 하고,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잡지를 통해 알 수 있었으니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이를 테면, 저는 잡지에서 인테리어 보는 걸 참 좋아하는데요. 굳이 엄청 크고 으리으리한 집이 아니더라도 사소하게 어떤 물건을 어느 위치에 뒀을 때 이 방의 분위기가 좀 더 좋아지는지를 발견하고 적용해볼 때 정말 행복해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저처럼 지방에서 살다가 회사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하실 거예요. 그럴 경우 자연히 집을 꾸미고 정돈하는 데 소홀해지죠. ‘어차피 2년 있으면 이사 갈 텐데’ 하구요. 그런데 잡지를 보면서 1년이든 2년이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이라면 좀 더 내가 원하는 형태로 꾸미고 정돈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다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들여 제 방에 블라인드를 달았어요.(웃음)

 

책을 쓰면서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는 이야기로 들리네요. <아무튼, 잡지>에 궁극적으로 무엇을 담고 싶었고, 결과적으로 무엇을 담았나요?

원고 작업 중에 목차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저도 어릴 때부터 잡지를 보고 자랐고,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며 지금도 잡지 보는 사람으로서 잡지에 의해 형성되고 만들어진 부분들이 많잖아요. 그만큼 저도 이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조금 더 낫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단순히 제가 잡지를 얼마만큼 좋아하는지를 말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요. 이 책을 보는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잘 전달됐을지는 모르겠어요. 저도 첫 책이라 아쉬운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은 많아요.

 

한국의 종이 잡지 씬이 많이 무너진 상황인데요, 상당수 메이저 잡지가 폐간되기도 했구요. 종이 잡지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당황하며) 제가요? 종이 잡지에서 일해본 적 없는 제가 함부로 말하기는 힘든 부분 같은데요. 일하시는 분들께 예의도 아니구요.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잡지의 시대가 저물었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단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구요. 예전의 여성지나 남성지처럼, 쉽게 말해 범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부류의 잡지는 살아남기가 어려운 시대가 온 것 같기는 해요. 요즘은 SF문학에 관한 잡지나 도시 농부를 위한 잡지 등 대중들의 세밀한 취향을 공략하거나 좀 더 좁은 범위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잡지들이 작은 시장에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으니까요. 잡지의 시대가 끝났다기보다는, 패러다임이 바뀐 게 더 정확한 표현 아닐까요? 이러한 배경은 잡지뿐만 아니라 현재 모든 상업적 물건들에 해당한다고 봐요.

 

보통 종이 잡지가 예전에 비해 힘을 잃은 것의 원인으로 온라인 매체나 SNS를 많이 꼽는데요. 그 영향도 있다고 보세요?

<아무튼, 잡지>를 쓸 때만 해도 상당 부분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온라인 매체와 SNS의 영향이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죠. 예전에는 정보에 빠른 잡지 에디터들이 트렌드를 이끌어가면서 무언가를 제시했다면, 요즘은 SNS 속도가 더 빨라서 거꾸로 SNS의 콘텐츠를 잡지 지면에 옮겨오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본질적으로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SNS에 너무 많은 정보들이 흘러넘치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 정보들을 어떤 잡지가 그 잡지만의 캐릭터와 필터를 가지고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편집해서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문득 <매거진B>가 떠오르네요. 매호마다 특정 브랜드를 정해 그 브랜드에 관한 A부터 Z까지 파고들며 여러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잖아요.

한 권의 잡지를 통해 관심 있고 좋아하는 특정 브랜드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단시간 동안 일목요연하게 얻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매거진B>라는 잡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매거진B>야말로 요즘처럼 SNS에 정보가 가득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잡지의 좋은 사례죠. 예전의 잡지가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요즘의 잡지는 시간이 가도 두고두고 볼 수 있어서 사람들이 잡지를 통해 뭔가를 더 보고 얻으려 하는 것 같아요. ‘잡지의 쓸모’라는 게 변화한 거죠.

 

잡지의 ‘잡(雜)’이 ‘잡스럽다’를 의미하잖아요, 예전에는 음식으로 치면 비빔밥처럼 한 권의 잡지에 다양한 볼거리들이 가득했는데 요즘은 그런 잡지를 보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잡지들마다 균일하게 톤 조절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류의 잡지가 아직 아예 없어진 건 아니죠. 요즘도 다양한 패션지나 종합지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분명한 건 사람들이 잡지 지면 사이에 끼어드는 광고 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는 거예요. 물론 광고 자체가 정보가 되기도 하지만요. 제가 한 독립 서점에서 ‘잡지 콘텐츠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상당수 분들이 잡지를 보는 데 있어 광고가 몰입을 방해한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요즘은 오히려 지면 광고가 대폭 줄었기 때문에 종이 잡지에서 광고주들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예전보다 더 커졌다고 할 수 있어요. 잡지 안에 맞춤형 PR 기사도 더 많이 들어가고 있다고 하구요.

나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프리랜스 작가로 살아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매체에 속해 있을 때와 지금이 그렇게 크게 달라지진 않았는데요. 좋은 점은 불필요하고 자잘한 잡무가 줄어들었다는 점이요. 기자라고 해서 기획만 하고 원고만 쓰는 건 아니잖아요. 그 외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또 제가 매체에 계속 있었으면 같이 일할 가능성 없는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돼서 좋아요. 힘든 점은 예상하시겠지만 외부에서 어쨌든 저에게 일을 줘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이 없을 때 불안하다는 점이죠. 그래서 저는 일이 없을 때 가능하다면 뭘 만들고 벌여서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요. 그런 일들이 돈이 돼서가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 제가 힘들어서요. ‘일이 없으면 내 다음 달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하고.(웃음)

 

그렇게 시도한 프로젝트가 <일하는 여자들>이라는 인터뷰집으로 나왔죠. 4인 공동 작업이었다는 것이 특이했어요.

저 같은 경우 일을 혼자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일 잘하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뭘 만들어서 하는 것도 좋아해요. 회사를 다니면서 좋았던 건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데요. 내가 어떤 사람과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일을 추진해버리는 것에 능하거든요. <일하는 여성들>은 좋아하는 일본 잡지 <뽀빠이>의 한 코너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출간된 인터뷰집이에요. <뽀빠이> 안에 ‘선배와 나’라는 연재 꼭지가 있는데 젊은 남자가 성공한 남자 선배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였죠.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저도 그럴 줄 알았죠. 그런데 재미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웃음) ‘이 좋은 기획이 왜 이리 재미없을까’ 생각해보니 성공한 남자 이야기는 이미 우리가 너무 많이 봐온 거죠. 그에 반해 30대에서 40대 초반 여자 선배의 이야기나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그 당시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동료들에게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공유했고, 그 콘텐츠가 ‘퍼블리(PUBLY)’라는 유료 콘텐츠 플랫폼을 거쳐 <일하는 여자들>이라는 인터뷰집으로 연결된 거예요.

 

미션 하나 드릴게요. 지금 이 순간, 잡다하게 좋아하는 걸 딱 열 개만 나열해보세요!

사소한 것도 상관없죠? 고양이 좋아하고, 잡지 좋아하고, 킷사텐(きっさてん)이라고 일본 옛날식 다방인데 일본 여행 가면 꼭 구글맵 찍어서 투어를 해요. 향 나는 인센스 스틱 피우는 것도 좋아하고, 그리고 전자책이요. 빈티지 그릇이나 소품 같은 것도 좋아해서 여행 가면 많이 사오는 편이구요, 아이스 카페라테 좋아하고, 슈크림빵은 제가 그 제과점의 실력을 가늠해볼 때 저만의 기준이 되는 빵이라 좋아해요. 별일이 없을 때 꽃 사는 것도 좋아하고. 지금 아홉 개 했나요? 열 개 꼽기가 의외로 힘드네요. 나머지 한 개는 천천히 생각해볼게요.(웃음)

 

사람들에게 ‘잡지’란 무엇일까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뭘 좋아하고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 의외로 잘 모르고 사는 것 같아요. 그걸 알 수 있는 시간이 없기도 하고요, 주변에서 ○○한 게 좋다고 하니까 자신도 그걸 좋아하는 줄 알고 따라 가게 되는 경우가 많죠. 저도 그런 사람이었구요. 그런데 내가 잡지의 어떤 면을 보는지를 알고, 내가 어떤 잡지를 좋아하는지를 보면, 내가 어떤 부분에 끌리고,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알기가 좋은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데 경험자로서 조언 부탁드려요.

사실 뭐든 혼자 하려고 하면 정말 힘들고 시작조차 쉽지 않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난다면 서로 긍정적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근간에 독립 출판한 <둘이 같이 프리랜서>의 경우, 저도 다른 사람과 함께 책을 써본 것 자체가 처음이었어요. 번갈아가면서 챕터를 쓰고 그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하나로 합쳐지면서 나중에는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하는 구성인데요. 온전히 자신의 책을 쓰려 하기 전에 그런 공동 작업을 한 번 하고 나면 좋은 기운을 많이 받는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출판 및 연재와 관련해서 향후 계획을 공유해주세요.

앞에서 제가 언급한 독립 서점 주최 ‘잡지 콘텐츠 만들기’ 워크숍을 내용으로 자기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내년 봄쯤 출간할 수 있을 것 같구요. <둘이 같이 프리랜서>를 함께 쓴 윤이나 작가와 예능, 드라마, 영화, 케이팝, 넷플릭스를 주제로 한국 엔터테인먼트에 관련된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다른 곳에 연재를 한다거나 외고를 많이 쓰는 것보다는 ‘우리가 우리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나가자’고 많이 결의하고 행동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외고나 연재 여부에 대한 고민은 덜하는 편이에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지금의 나로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양한 형태의 글을 통해 계속하고 싶어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시대잖아요. 저는 원래 여성작가들의 글을 읽는 걸 무척 좋아하지만 한국이 여성 혐오가 강한 사회라는 걸 깨달은 후에는 의식적으로 여성작가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할 때도 여성 동료들과 함께하려 하구요. 저도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 여성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하고 싶어요.

 

황효진
프리랜스 작가. 온라인매거진 <텐아시아>와 <아이즈(ize)>에서 기자로 일했다. 어렸을 때부터 잡지를 많이 보고 자랐고, 온라인매거진을 만들었으며, 지금도 잡지에 애착을 갖고 즐겨 보고 있다는 점을 살려 <아무튼, 잡지>를 썼다. 현재는 다양한 매체에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비평을 쓰고 있다. 프로젝트팀 ‘헤이 메이트’에서 활동하며 최근 <둘이 같이 프리랜서>라는 에세이를 독립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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