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의 지하 저장고

살아 있는 부엌
글과 사진 류지현

마리오의 지하 저장고

마리오를 만나러 가는 길. 두 뺨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햇살이 겨울을 잠시 잊게 한다. 봄 같은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이상기온으로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 계속된다며 걱정하는 목소리를 여기저기에서 듣고 있지만, 작년 겨울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한국의 겨울 날씨에 혼이 났었기에 토리노의 이 겨울이 어찌나 반가운지 모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함께 어느 길에 들어서든 그 끝으로 보이는 눈 쌓인 알프스에 그저 탄성만 나올 뿐이다.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토리노는 알프스의 산자락에 둘러싸인 곳이다. 1시간이면 알프스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하늘이 맑은 오늘 같은 날이면 도시 전체가 알프스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는다.

마리오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다. 오사카에 있는 한 호텔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고향이 그리워 돌아왔다. 커다란 눈이 인상적인 그는 수줍으면서도 따뜻한 미소로 낯선 우리를 반겼다. “그럼요, 이런 거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나요.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보여주고 싶은 곳이에요.” 마리오가 말하지 않았다면 눈치 채지 못했을 철문 하나가 레스토랑 한구석에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는 저 문 너머에 있다. 계단을 몇 개 내려가니 마리오가 운영하는 식당의 요리사들이 저녁 식사를 위해 식재료를 준비하고 있다. 다른 레스토랑의 식료품 저장고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걱정 말아요. 보여주려던 게 이건 아니에요. 조금 더 내려가야 해요.” 철망 문을 열고 계단을 한 번 더 내려간다. 깨끗하게 마감돼 있던 벽이 거친 회벽으로 바뀐다. 마리오를 따라 계단을 또 한 번 내려간다. 콧속을 가득 채우는 축축한 공기가 깊은 지하에 내려와 있다고 말해준다. 노란 백열등 하나가 지지직 소리를 내며 켜졌다. “와!”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단순한 하나의 방이 아니다. 마치 숨겨진 지하 도시 중앙에 서 있는 듯하다. 길이라고 불러야 할지, 복도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끝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 길 양쪽에 위치한 방에는 오래된 선반과 와인병들이 보인다.

원래는 강물이 흐르고 있던 곳에 물을 막고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17, 18세기에는 적의 침입을 막고 흑사병을 피하고자 귀족들이 쓰던 비밀통로였고,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전쟁 때마다 피신처로도 쓰였다고 한다. 토리노 도심 지하 전역에 퍼져 있는 이 비밀 통로는 50~60년대까지만 해도 와인이나 식재료 저장고로도 많이 쓰였다. 하지만 도둑들의 요긴한 출입구로 쓰이기도 했기에 시에서 길의 중간 중간에 벽을 세워 막았다. 특별히 허가를 맡은 곳이나 우연히 건물 지하에서 발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레스토랑을 인수하고 꼼꼼히 둘러보러 왔을 때 이 지하 저장고를 발견했어요. 오랫동안 잠겨 있던 곳이었죠. 지금이야 정리를 해서 저희 가게 와인 저장고로 쓰고 있지만, 예전엔 그냥 버려진 곳이었어요. 한쪽 구석에 와인병이랑 코르크 마개가 많이 쌓여 있어서 와인을 보관하던 곳이란 걸 짐작했죠. 아, 그리고 이거 보세요. 이 천장에 나와 있는 커다란 고리요. 이건 프로슈토나 살라미 같은 것들을 매달아서 보관하는 고리거든요. 이것까지 보고 나니 과거에 식료품 저장고였다는 걸 확신했죠.”

와인병들이 이름별로 정리된 방 너머로 벽돌, 돌, 흙 등이 뒤섞여 있는 벽이 하나 보인다. 서로 연결된 옆방으로 옮겼을 뿐인데 진한 물 냄새가 올라온다. 사람의 손이 오랫동안 닿지 않은 지하 통로의 다른 공간들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손을 대어 보니 벽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 강을 막은 곳이라 이렇게 벽에 습기가 올라온다고 한다. 이 물기가 증발하면서 이 지하 공간의 기온을 항상 적당히 유지한다. 마리오가 이 공간의 벽면을 정리하지 않고 놔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저기 보이죠? 저 창으로는 눈을 쓸어내리는 거예요. 그럼 이 아래로 떨어지고요.” 천장을 가리키는 마리오의 시선을 따라가니 높이 난 창문 밖으로 바쁜 발걸음들이 지나간다. 밖에서는 바닥과 같은 높이였던 낮은 창이 지하에 오니 높은 창이 됐다.

지금은 통풍의 용도로 더 쓰이고 있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길 높이의 창문을 통해 겨울철 내리는 눈을 지하 공간으로 쓸어내렸다고 한다. 모인 눈은 지하 공간의 온도를 낮추는 데 한몫을 했다. 이 창문들은 모인 눈이 조금이라도 천천히 녹으라고 햇빛이 직접 닿지 않는 방향으로 냈다. 겨울 동안 가능한 많은 눈을 모으기 위해 애를 쓰고는 했다. 그래야 날씨가 더워질 때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식재료들을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100년 전의 일이라는데 길거리의 눈을 모아 사용했다니 아주 오래전에나 있을 법한 무용담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에이, 요즘에는 귀찮아서라도 그렇게 하나요. 냉장고에 넣으면 되는데. 그리고 식당 음식 재료는 이렇게 보관하면 단속에 걸려요. 위생상 불법이거든요. 냉장고 한 칸에 달걀이랑 채소를 같이 넣어도 걸려요. 거리에서 쓸어 담은 눈이라뇨. 어림도 없죠.” 가까운 강에서 얼음을 채취해 와 보관하는 방식은 한국의 석빙고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눈을 직접 이용하는 방식은 낯설다. 토리노에서 이런 냉장법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알프스를 끼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의 지형적 특징 덕이다. 눈이 오는 대로 모아서 사용했거니와, 눈이 많이 오지 않은 겨울이면 산 위 네비에라(Neviera: 이탈리아어로 눈을 뜻하는 ‘Neve’에서 만들어진 말)라고 불리는 눈 저장고에 눈을 눌러 모아 얼음이 되면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 도시로 운반해오곤 했다. 도시 자체적으로는 마리오의 창고처럼 내리는 눈을 지하 공간에 모아서 얼음을 만들거나 눈 자체가 얼음과 함께 냉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폭설이 오면 이제 도시는 그 눈들을 어찌할지 몰라서 허둥지둥한다. 귀하디 귀했던 눈이 이제 천덕꾸러기가 됐다. 낭만적인 풍경을 만드는 것 외에는 도시인들에게 쓸모없는 존재가 돼버린 눈. 일상생활에 직접 필요하지 않기에 눈은 이제 우리와 먼 거리에 있다. 눈은 그 여느 때처럼 그대로 존재하나, 인간은 눈에서 너무나도 빠르게 멀어져간다. 인간은 자연이 소화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그러나 쉬지 않고 끝없이 먹다가 탈이 나고 마는 것처럼, 제대로 소화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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