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추억이 나의 추억으로

밀양댁 엄마 손 밥상
글과 사진 이미라

어머니의 추억이 나의 추억으로
단팥죽

시골에서 자라는 것이 싫지 않았지만 항상 고향을 벗어나는 순간을 꿈꿨다. 대학생이 되어 난생처음 집을 떠나게 됐을 때의 설렘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유로움과 책임감 그리고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여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는데, 그런 나를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떠나는 엄마는 눈물바람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셨다. 주말이면 만날 딸과의 이별이 뭐가 그리도 슬프실까 생각하면서 나도 덩달아 울었는데 돌이켜보면 엄마의 눈물은 슬픔이라기보다 품 안의 자식을 떠나보내는 뿌듯함과 서운함의 교차점 정도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빠가 첫사랑이라 연애도 실컷 못 해보고 결혼했다. 그러니까 너는 연애도 많이 해보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지내라”고 농담처럼 얘기하시던 엄마의 말은 평생을 착실한 주부로 살아온 엄마의 진심이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딸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는 겉으로 표현은 안 하셨지만 마음속으론 딸을 보내기 싫었던 것 같다.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고향 집에서 함께 지내기를 원하셨다. “딸은 시집가면 영영 이별이데이. 내는 니가 결혼하기 전까지라도 같이 살아야 되겠다, 고마”라고 하시면서 대구까지 매일 통근을 시키셨다. 그때는 그런 아버지가 야속하고 빨리 고향을 벗어나는 길은 결혼밖에 없겠구나 싶어서 멀리 시집갈 궁리를 하곤 했다.

그러다가 남편을 만났다. 밀양에서 2대째 서점을 이어가고 있는 남자. 일단 밀양에 살고 있어서 남편감으로는 순위 밖이던 사람인데 운명처럼 두 번째 만나는 날 청혼을 했고 나는 덜컥 결혼을 결심했다. 딸이 가까이 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남편의 성실한 인상 때문인지, 아버지는 무조건 결혼을 찬성하셨고 아들의 결혼을 애타게 기다리시던 나의 예비 시부모님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셨다.

적극적인 양가 부모님 덕분에 우리는 다섯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부모님 품을 떠나서 온전히 나의 가정을 가지게 됐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부모님이 생겼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를 무척이나 예뻐하시던 아버님과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셨던 여성스러운 어머님. 그런데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오랫동안 힘들어하셨고 가까이 사는 아들 내외에게 많이 의지하셨다. 사실 처음부터 어머니가 편했던 건 아니지만 소녀처럼 감성적이고 아기자기하신 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시어머니와 친엄마 같고 친구 같은 사이로 발전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머니도 나와 똑같은 딸이었고, 며느리였고, 아내이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고향은 진주인데 멀리 밀양까지 시집을 오셨다. 옛이야기를 해주실 때마다 여고 시절의 낭만적인 추억이 빠지지 않는데 연세가 칠십이 넘은 어머니의 여고 시절도 나의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신기했다. 단짝 친구들에게 편지도 써주고, 좋아하는 음악도 같이 듣고, 하굣길에 맛있는 것도 사 먹으러 다니던 꿈 많은 여고 시절. 그중에서 ‘만복당 단팥죽’ 이야기는 단골 메뉴다. 팥 알갱이가 씹히게 만든 단팥죽과 팥물을 끼얹어 먹는 따끈따끈한 찐빵은, 꿈 많던 진주여고 소녀들의 추억 속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얼마 전 진주에 가는 길에 그때 그 맛을 느끼고 싶어 들렀더니 다 팔리고 없어서 아쉬웠노라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겨울이 시작될 즈음이면 항상 단팥죽을 만들어주신다. 올해는 때마침 미얀마에 살고 있는 하나밖에 없는 딸도 왔다고 하시면서 단팥죽을 넉넉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벼르고 계셨다.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을 외국에서 생활하고 계신지라 항상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형님에게도 단팥죽은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형님도 팥물 끼얹어 먹는 찐빵 이야기를 숱하게 들으셨고 어릴 적 진주 외가에 들를 때 어머니와 함께 만복당에 간 기억도 난다며 웃으셨다. 어머니는 이참에 단팥죽을 딸과 며느리에게 제대로 전수해주시기로 하고 함께 단팥죽을 만들었다.

단팥죽은 팥과 설탕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음식 같지만 생각보다 정성을 많이 쏟아야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팥을 물에 충분히 불리고 삶아야 딱딱한 팥이 부드럽게 삶아질 뿐만 아니라, 팥을 삶다가 처음 삶은 물은 버려야 특유의 알싸한 맛을 제거할 수 있다. 새롭게 물을 붓고 충분히 삶다가 팥이 수분을 머금어 통통해지고 부드러워졌을 때 적당량의 팥을 건져둔다. 이 팥은 알갱이가 씹히는 단팥죽을 만들기 위함인데, 알갱이가 없는 부드러운 단팥죽을 원하면 생략해도 무방하다. 나머지 팥은 잘 으깨어지도록 1시간 남짓 삶는다.

팥을 으깰 때 핸드 블랜더를 이용해 갈아준 후 채에 거르면 쉽게 팥 껍질을 제거한 부드러운 팥물을 얻을 수 있다. 이때 팥 삶은 물을 부어가면서 채에서 내린다. 내린 팥물을 냄비에 부어 끓이는데, 팥물이 너무 진할 경우 물을 추가하고 설탕을 넣어 당도를 조절한다. 한소끔 끓어오를 때 미리 건져둔 팥 알갱이를 넣고 전분으로 농도를 조절하면서 잘 저어주며 끓이면 완성이다.

단팥죽과 함께 먹을 찹쌀떡과 찐빵을 샀다. 찹쌀떡은 단팥죽의 고명으로 올려서 먹고, 밀양의 찐빵은 만복당처럼 작은 사이즈는 아니지만 잘라서 팥물을 끼얹어 먹었다. 달콤한 단팥죽에 달콤한 찐빵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그 달달함이 온몸으로 짜릿하게 전해진다. 몸서리치게 달기만 할 것 같은 단팥죽과 찐빵의 조합은 의외로 촉촉하고 쫀득한 찐빵으로 재탄생된다. 어머니에게는 여고 시절의 추억이, 형님과 남편에게는 외가에 갈 때마다 들르던 단팥죽집 추억이 소환됐다. 나에게 단팥죽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됐고 아이들에게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나눠 먹던 겨울 음식으로 추억될 것이다.

단팥죽을 먹는 손자들을 흐뭇하게 쳐다보시면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가 밥상을 차려주시면서 항상 하신 말씀이 있단다. ‘남의 눈에 잎이 되고 꽃이 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그 말이 얼마나 예쁘고 감사하던지….”

음식이 단순히 몸을 살찌우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그 옛날 할머니들은 모두 알고 계셨다. 기도하듯 음식을 만들던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딸과 손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모습을 나 또한 단팥죽을 먹으며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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