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샤와 연필 한 자루

김남희의 여행의 일상
글과 사진 김남희

아이샤와 연필 한 자루

에어아스타나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초원의 바람이 불어왔다. 기내에는 마유주 혹은 양젖 내음이 가득했다. ‘아, 이게 카자흐스탄의 냄새구나.’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살짝 삭은 듯 비릿한 냄새를 한껏 들이마셨다. 내가 디디게 될 낯선 땅과의 첫 만남이었다. 알마티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새벽, 나는 합승 택시 정거장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목적지인 사티 마을로 가는 합승 택시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사티에서 30km 떨어진 마을까지 가는 택시에 올랐다. 젊은 택시 기사는 중앙선을 넘나드는 자유롭고 호방한 운전 솜씨를 뽐내며 질주했다. 3시간 넘게 황야를 달린 후 기사는 나를 내려주고 떠났다. 그가 히치하이크는 어렵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 것과 달리 차는 오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보다 지나가는 양떼가 더 많은 마을이었다. 길모퉁이 바위에 걸터앉아 오지 않는 차를 기다리며 나는 민들레 꽃잎 수를 세어보다가, 들고 간 시집을 꺼내어 읽다가, 이 구역 대장 개와 눈을 맞추다가, 신발의 먼지를 털어보다가, 숙소에서 싸준 도시락을 까먹다가, 동네 할머니와 안 통하는 말을 주고받다가, 악기를 메고 가는 소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런 것들을 몽땅 일기장에 끼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꼬박 2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나는 사티 마을로 향하는 차를 얻어 탔다. 새벽의 택시 기사도 그러더니, 그 차의 운전사도 안전벨트를 하려는 나를 말렸다. 답답하게 뭐 이런 걸 하느냐면서. 기마민족의 호연지기인가. 그들은 말을 타고 거친 초원을 질주하듯 차를 몰았다. 곡예 같은 운전에 간이 쭈그러들 때마다 내 여행자보험의 상해보상금이 떠올랐다.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후 심카드를 갈아 끼웠지만 알마티를 벗어나니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당연히 사티 마을에서도 디지털 라이프를 기대하지 않았다. 가이드북에는 내가 예약한 집에 샤워시설이 없다고 쓰여 있어서 불편을 각오했다. 사흘 정도 샤워를 못 하면 냄새야 좀 나겠지만 나는 씻지도 못하고 15일을 버텼던 엄청난 기록의 소유자였다(에베레스트 겨울 트레킹을 하던 때의 일이었다). 막상 자나라의 집에 오니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서 와이파이가 터지고, 화장실에는 우리 집보다 더 좋은 샤워시설이 있었다. 걷다가 돌아와 따뜻한 물에 몸을 씻는 축복을 이 깊은 산골에서 누릴 수 있다니. 생각도 못한 기쁨이었다. 3년 전만 해도 이 마을 어디에도 샤워시설이 없었단다. 그 3년 사이에 산천이 뒤집혀 이제는 대부분의 집이 샤워시설을 갖췄다. 그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든, 가축보다도 더 큰 수입원이 된 관광객을 위해서든, 내 눈에는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저개발국의 주민들이 자연보호를 명목으로 불편한 삶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그런 삶을 살고 있을 때조차 폭력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게 중요한 건 문명의 혜택을 무조건 거부하는 게 아니라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었다.

사티 마을은 콜사이 호수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해발고도 1,500m에 자리한 작은 마을은 관광시즌이 끝난 후여서 고즈넉했다. 민박집의 창밖으로는 풀을 뜯는 말과 양이 보였다. 숙소를 나와 5분쯤 걸어가면 강변이었다. 해 질 무렵이면 마을 끝의 언덕에 올라 책을 읽었다. 그 시간은 너무 완벽해 슬퍼질 정도였다. 천산 산맥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따가운 햇살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거친 대지 위의 작은 집들이, 거기 깃든 소박한 사람들이, 들판에서 풀을 뜯는 가축들이,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위로했다. 이 작은 마을이 이토록 커다란 충만함을 주다니. 자연에 깃들어 겸손히 살아가는 이들의 곁에 잠시나마 머물 수 있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내 마음을 마구 흔든 사티는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알마티에서 사티로 오는 도로가 좋아져 6시간씩 걸리던 길이 4시간 미만이 되었다. 도로가 깔리면 한 마을의 삶은 확연히 달라진다. 도로를 따라 온갖 것이 외부에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거친 파고를 흔들림 없이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은 적을 것이다.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 마을에는 없던 빈부차도 커질 것이다. 우리가 그랬듯 그들 또한 편리함을 선택함으로써, 지구상 다른 이들과 똑같은 욕망을 갖게 됨으로써, 그들이 지녔던 많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 상실을 나는 안타까워하며 지켜보겠지만 그로 인한 고통은 온전히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겨우 며칠 머물다가 모든 편리함을 다 갖춘 도시의 삶으로 되돌아갈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으니. 그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내가 다녀감으로써 이들 삶에 끼치게 될 부정적인 영향이었다. 자나라의 딸 아이샤에게 나는 그런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아홉 살인 아이샤는 엄마를 도와 늘 식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만두를 빚는 아이였다(이 마을 아이들에게 일상의 자질구레한 노동은 예사로운 일이다).

자나라의 집에 도착한 첫날, 방 침대 위에 책과 함께 올려놓은 연필을 잃어버렸다. 책을 읽을 때면 연필로 밑줄을 긋거나 감상을 적는 습관 때문에 연필은 내 여행의 필수품이었다. 한 자루밖에 안 가져온 데다가 연필 끝에는 아끼는 가죽 커버가 씌어져 있었다. 온 방 안을 뒤졌지만 연필은 없었다. 자나라와 아이샤에게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연필을 봤냐고 물어봤지만 고개를 저었다. 길이 잘 들어 반짝반짝 빛나는 가죽 커버가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고작 연필 한 자루를 포기하지 못하는 내가 우습기도 했다. 사흘째 되던 날, 아이샤를 불러 다시 구글 번역기를 돌렸다. 나한테 무척 소중한 연필인데 방에서 잃어버린 것 같다고, 찾는 걸 도와달라고. 함께 침대를 뒤집어가며 랜턴으로 구석구석 훑었다. 여전히 연필은 없었다. 도와줘서 고맙다고 한 후 부엌에서 차를 우렸다. 방으로 돌아가니 침대 위에 가죽 커버가 꽂힌 연필이 놓여 있었다. 나는 거실에 있던 아이샤에게 웃으며 연필을 내밀었다. “아이샤, 라흐멧(고마워)”이라고 말하며.

아마도 아이샤는 그 가죽 커버를 끼운 연필이 신기했을 터였다. 이곳에서는 본 적 없는 것, 주변의 누구도 가진 적이 없는 것. 그런 것을 아이샤는 자기 집에 오는 손님을 통해 끝없이 보게 될 터였다. 그것들을 갖고 싶다는 욕망도 더불어 자라날 터였다. 더 나아가 아무렇지 않았던 자신의 일상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도 찾아올 것이다. 세상의 전부였던 이 마을과 집이 더없이 답답하고 촌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는 날조차 찾아올지 모른다. 아이샤에게 내가 이런 여행을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한들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고작 사나흘을 머물다 가면서 아이샤에게 견물생심을 일으킨 외지인. 좋은 등산화와 등산복을 입고, 노트북과 디지털 카메라와 아이폰을 든 관광객(아이샤와 그녀의 친구 노라이는 내 아이폰을 들여다보며 아이폰 6인지 7인지 묻기도 했다). 그게 나라는 존재였다. ‘너희 마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냐고, 너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될지 아느냐고,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아이샤에게 말할 수 없었다. 소중한 것이라는 내 말에 다시 연필을 돌려준 저 순진함을 고스란히 잃어버리게 하고 말 존재가 바로 나이기에.

사흘 밤을 머물렀을 뿐이지만 나는 사티 마을과 자나라의 집을 사랑했다. 저녁이면 밥 짓는 연기가 굴뚝으로 솟아오르던 키 낮은 단층집들과, 나무를 그대로 켜서 세운 울타리 너머의 과일 나무 몇 그루 옆에 지붕보다 더 높이 쌓인 건초 더미와, 말을 타고 지나가는 마을 남자들의 사내다움과, 남자들보다 몇 배는 더 부지런히 일하는 여자들의 강인함과, 메마른 대지에서 쉼 없이 풀을 뜯던 말과 양떼와 소들과, 고개를 들면 보이는 설산의 이마와, 성벽처럼 마을을 두른 민둥산과, 밤이면 불빛 없는 마을을 밝히던 밤하늘의 무성한 별들과, 너무 투명하고 깨끗해 내 몸에 고스란히 채워 넣고 싶었던 공기와, 푸른 바닷물 한 바가지를 그대로 쏟아 부은 것 같은 하늘의 색과, 시냇가에 서서 노랗게 물들어가던 자작나무들과, 찾는 이 없이도 바라보는 이 없이도 저 홀로 아름다운 마을의 모든 것들이 나는 좋았다. 나는 도시로 돌아가지만 이들의 삶은 이곳에서 그대로 계속될 것이다. 내가 남기고 가는 흔적과 함께. 그날따라 그 사실이 더 마음에 사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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