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식재료를 통해 완성한 예쁘고 건강한 한 끼

마이 홀릭 라이프
인터뷰 신영배
사진 안선근

제철 식재료를 통해 완성한 예쁘고 건강한 한 끼
팝업 식당 <재료의 산책> 요나

올봄에는 시종일관 미세먼지로 고생했고, 올여름에는 무도한 폭염의 공격으로 더위에 허덕이며 한 계절을 힘들게 보냈다. 다가올 올겨울은 엄청난 한파가 있을 예정이라는 뉴스를 접하니 앞이 캄캄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급격해지는 기후변화의 흉포함은 나를 자연스레 환경 문제에 관심 갖게 하기 충분했다.

팝업 식당 <재료의 산책> 요나를 인터뷰하고 온 나는, 왜 기후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온실가스 배출 문제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공장식 축산을 통해 발생하는 가축들의 메탄가스다. 이런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를 줄이기 위해 육식을 줄여야 하는 건 이제 필연 과제가 된 것 같다. 둘러보면 요 근래 채식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고 있고, 주변에 비건 레스토랑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데, 나 또한 내가 먹는 음식들 중, 고기 비중을 조금 줄여보려고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채식만이 정답’이라고 ‘윤리적 소비’라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공격적으로 채식을 강요하는 일부 맹렬한 채식주의자들을 만날 때마다 육식을 줄여보고자 하는 마음이 삽시간에 수그러들곤 한다. 이러한 그들의 행태는 오히려 채식에 관심을 두고 접근하려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채식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기나 할까.

그러던 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요나의 팝업 식당 <재료의 산책>이었다. 그녀는 땅에서 거둔 제철 재료를 사용해 월에 5~6회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채식은 밋밋하고 맛이 없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고, 넓고 둥근 접시에 자신이 만든 각양각색의 음식을 담아내는 원 플레이트 메뉴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녀의 메뉴에는 고기 재료가 없지만, <재료의 산책>을 소개하는 SNS 내용 어디에도 채식을 강요하거나 강력하게 표방하는 모습을 찾아볼 순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이 모두 채식주의가 될 순 없다. 다만 환경을 위해서든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든 육식을 점차 줄여야 한다면, 요나의 <재료의 산책>이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잠깐 이런 생각을 했다.

 

요리를 통해 살아내고 있는 사람

평소 ‘요리사’로 불리는 걸 저어한다고 알고 있어요.

많은 이유가 있는데, 사실 ‘요리사’로 불리는 게 부끄러워요.(웃음) 제가 생각하는 요리라는 건 직업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단순히 요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요리사라고 불리는 건 조금 민망해요. 아,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요리사들이 그 이름을 잘 못 쓰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다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수단을 통해 표현하는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사진과 글일 수 있고, 제게는 요리일 뿐이에요. 그간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요리를 공부하거나 요리를 통해 사회 혹은 사람들의 마음이 얽혀 있는 부분들을 찾아가는 게 재밌어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어쨌든 사람은 생계유지를 해야 하는데, 그 수단으로 요리로 선택한 게 정말 몇 년 안 돼서 더 부끄러운 거 같아요.(웃음)

 

그럼 보통 본인을 직접 소개할 때는 어떻게 표현하나요?

‘요리를 즐겨 하는 사람’ 혹은 ‘요리로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해요. 만약 저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제가 학창시절에 섭식장애를 겪은 적이 있는데, 요리를 제가 직접 하지 않았다면 아마 극복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저는 정말 미쳐 있는 게 하나 있을 때 살기가 편한 거 같아요. 살다 보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잖아요. 그런 삶 속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무언가가 하나 있으면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이 되는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사람들이 제 요리를 드시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씀해주실 때가 있는데, 저는 사실 이 요리를 하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아서, 그러니까 우선적으로는 오직 저를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요나 씨는 케이터링 작업도 하고, 일주일 중 3일 정도는 홍대에 있는 <수카라>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어요. 반면 개인 공간인 팝업 식당 <재료의 산책>은 한 달에 여섯 번 정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어요. 사람들의 반응도 좋고 예약이 늘 빠르게 완료되던데, 매일 식당 문을 열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전 지금 <재료의 산책>을 여는 횟수를 지금보다 더 줄이고 싶어요. 솔직히 한 달에 1~2회, 많으면 3회 정도 공간을 열고 싶은데, 아직은 사람들에게 저를 소개하는 시점인 것 같아서 월 5~6회 정도 오픈하고 있어요. 제가 20대 중반쯤 이태원에서 비건 레스토랑을 처음 시작했고, <재료의 산책> 공간을 열기 전까지 세 개의 가게를 했는데요, 그때 깨달은 점은 ‘서울에서 가게를 하면 안 된다’였어요.(웃음) 가게를 한다는 것 혹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건 많은 자원을 쓰는 일이잖아요. 굳이 세상에 없어도 될 테이블과 의자도 필요하고, 전기와 수도도 사용해야 하구요. 그러면서까지 굳이 가게를 해야 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배고픈 사람을 위해 밥을 만들어 팔거나, 변화하는 계절에 맞게 필요한 옷을 팔거나 하는 그런 이유요. 그런데 제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 할 때 서울에서는 그 조건이 너무 안 맞더라구요. 저는 식당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먹으면 좋은 음식을 만들며 이 공간을 유지해야 하는데, 재료의 수급 방법이나 이문 등을 고려할 때 좋은 재료를 사용할 수 없더라구요. 비싼 월세와 인건비 문제도 따라 붙구요. 식당 유지를 위해선 이익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말도 안 되는 음식을 팔아야 가능한데, 그 과정 자체가 너무 싫었어요. 또 그간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유행이 뭔지 너무 잘 알고 있는데 그게 너무 쉽다는 사실이 더욱 싫어요. 그렇기 때문에 수익을 위해 의미 없는 장사를 하면서 제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요.

 

그럼 혹 생각하고 있는 대안이 있나요?

남자 친구와 함께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갈 생각이에요. 그곳에 더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빨리 지방으로 내려가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은데 아직은 준비가 좀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어요. 또 도심에 있는 친구들에게 요리를 통해 조금 더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남은 것 같구요. 그래서 저는 <재료의 산책>을 서울에서 할 수 있는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프로젝트를 오래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있고, ‘이제 내려가도 된다’라는 순간이 분명 올 거라는 게 느껴져요.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재료의 산책>을 오픈하면서 어떤 기대 같은 것도 있었을 거 같아요.

사실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가려면 지혜나 기술을 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재료의 산책>을 통해 시간을 번 거예요. 그래서 이 공간을 열었고, 좀 더 내실을 다지고, 현명한 사람이 된 후에 내려가고 싶거든요. 왜냐하면 이미 내려가 있는 사람들이나 지방 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방 생활이란 게 녹록지 않아 보이더라구요. 아무 연고가 없는 땅에서 홀로 살아내야 하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긴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사람이니까요.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모습인지 지방으로 내려가고자 마음을 먹고 나니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게 필요한 것들을 익히고 습득하기엔 아직은 도시에 더 루트가 많고, 이 공간이 그런 배움과 교류의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며 이 공간을 열었어요.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고 있다

요나 씨 요리의 가장 큰 특징은 넓고 둥근 접시에 모든 음식을 담아내는 방식인 거 같아요.

사람들이 음식을 천천히 먹길 바랐어요. 성인 남성의 경우 보통 식사를 5~10분 안에 끝내잖아요. 그런데 가끔 저희 식당에 온 분들은 ‘왜 손님들이 안 나가지?’ 싶을 정도로 음식을 천천히 드세요. 접시 하나에 모든 음식의 형태와 색이 다 보이게 플레이팅 하기 때문에 손님들이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하나하나 궁금해하며 맛보는 모습이 저는 정말 너무 좋아요. 또 음식을 드릴 때 그날 접시에 담긴 요리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함께 드리는데, 각 요리 이름을 최대한 풀어서 길게 써요.(웃음) 손님들이 그 종이를 보면서 ‘아, 이 요리가 이거구나’ 하며 마치 그림 맞추듯이 먹느라 더 천천히 먹거든요. 제 요리가 비빔밥처럼 한 번에 다 비벼 먹을 수 있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음식 재료의 맛을 하나하나 다 음미하면서 식사를 하는 것도 오래 식사하는 하나의 이유인 것 같구요. 또 자신이 한 끼에 어느 정도 먹는지 볼 수 있어요. 저는 그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접시에 담고 있고, 매주 메뉴를 바꾸면서 재료의 밸런스 고민도 많이 해요. 그런 재료들의 조화를 손님들이 좀 더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렇게 한 접시에 요리를 담고 있어요.

 

플레이팅된 음식이 참 예뻐요. 음식뿐만 아니라 <재료의 산책> 공간을 보면 디자인 감각이 매우 뛰어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미술을 전공한 게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긴 한데요, 사실 이게 굉장히 고단한 일이에요. 그런데도 계속 이런 플레이팅 형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사실 ‘건강한 음식’이란 표현도 별로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보다도 ‘건강한 음식 = 맛없는 음식’이란 편견이 너무 싫었어요. 보기에 좋은 게 먹기에도 좋다고, 거기까지 들어가는 문을 깨고 싶었어요. 저는 손님들이 단순히 SNS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재료의 산책>을 와도 좋고 실제로 맛없다고 느껴도 괜찮아요. 그런 손님들 대부분이 SNS에 제 음식 사진을 올리면서 ‘건강한 음식’이란 표현을 사용하더라구요. 근데 제 요리가 플레이팅마저 별로였다면 일부러 품을 들여 이곳까지 오지 않을 거고, 솔직히 이런 외양적인 모습 같은 것, 무시 못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 끼 식사를 어떻게 먹느냐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엄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엄마가 어릴 적 제게 늘 말씀하셨던 게, ‘반찬통째 놓고 음식을 먹지 말고 접시에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으라’고 하셨어요. 이렇게 한 끼 식사라도 잘 차려 먹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어 더 플레이팅에 신경 쓰고 있어요.

 

SNS을 통해 제철 재료를 귀하게 잘 다루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중 유독 더 애정하는 재료가 있나요?

얼마 전에도 그런 질문은 받았는데, 결국 답을 못 했어요.(웃음) 그것보다 저는 채소 써는 일을 너무 좋아해요. 어제도 제가 몇 시간째 계속 채소를 썰고 있더라구요. 고기랑 다르게 채소는 전부 섬세하게 다듬고 썰어야 하잖아요. 채소 써는 일이 귀찮거나 싫었으면 아마 요리 못 했을 거 같아요. 그리고 여러 종류의 채소를 정말 많이 사용하거든요. 그래서 택배가 정말 많이 와요. 조리 전, 그 채소들이 다 쌓여 있을 때 그걸 바라보고 있는 게 정말 좋아요. <재료의 산책>이 제 놀이터 같은 느낌이에요. ‘식사비를 낼 테니, 어디 한 번 놀아봐’ 하는 느낌이요.(웃음) 전 이 놀이가 즐겁고 고마워요. 고마움 때문에 신선한 채소 재료를 더 쓸 수밖에 없어요.

 

택배로 신선한 재료를 수급하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닐 거 같아요. 이후에 혹시 지방에 내려가면 직접 농사를 지을 생각이 있나요?

한때 꿈을 꿨지만, 저는 농부 체질은 아닌 거 같아요.(웃음) 내려가서 농사를 짓고 싶은데,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할 수 있는 건 다른 영역인 거 같거든요. 그래서 그 시간에 동네 농부들과 친해지기로 마음먹었어요. 제가 아니어도 좋은 농부들이 농사를 짓고 있으니까요.(웃음) 농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농사를 짓는 이유가 다 달라요. 환경에 따라 기르는 작물도 다르구요. 다들 정말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농부들이 정성껏 열심히 기르고 수확한 작물들을 요리로 바꿔서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인 것 같아요.

 

요나 씨의 음식엔 육류가 배제돼 있어요. 요나 씨는 비건인가요? 아님 페스코?

아니요, 저 고기 먹어요.(웃음) 제가 스물여섯 살 때 처음 이태원에서 비건 레스토랑을 오픈했어요. 비건이란 게 어떤 건지 그 의미는 알았기 때문에 요리를 만들긴 했지만, 그들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고, 왜 비건 음식을 먹는가에 관한 깊은 이해가 전혀 없었던 상태였죠. 제 인생 최대 혼란 시기였던 거 같아요. 비건 레스토랑에 온 손님들끼리 ‘고기 먹어? 왜 먹어?’ 식의 공격적인 논쟁을 들을 때마다 ‘왜 먹다니?’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찌 됐건 그래서 1년을 채 못 채우고 가게를 그만뒀어요. 그 후 차린 가게가 바로 햄버거 가게였어요. 일본 유학 시절, 햄버거집에서 3년간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그때 햄버거에 미쳐서 정말 많이 먹었어요.(웃음) 햄버거집을 하면서 비건 레스토랑을 하는 동안 묵혀놨던 걸 다 해소했어요. 제가 직접 패티를 만들었고 그러기 위해선 정말 많은 고깃덩어리를 손질해야 했죠. 당시, 수입육을 다뤘는데요, 고기에서 쇳가루가 많이 나왔어요. 클레임을 걸어도 ‘먹어도 괜찮다’는 답뿐이었죠. 그래서 그때 초강력 자석을 사서 고기에 묻은 쇳가루를 다 제거하면서 패티를 만들었어요. 정말 그땐 패닉 상태였어요. ‘이렇게까지 해서 무슨 돈을 버나’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던 거 같아요. 제가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햄버거 가게 이후, 채식에 관해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면서 인상 깊게 들었던 말이 ‘안 좋은 조건에서 기른 동물을 먹으면 그 동물이 지닌 화(禍)도 함께 먹는다’는 이야기예요. 채소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마음으로 기른 채소와 그렇지 않은 채소는 식감, 색 모든 게 다르고, 그게 느껴져요. 또 우리 주변엔 무얼 먹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하물며 그로 인해 생긴 마음의 병으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제게 메시지를 보내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거리를 나서면 고깃집을 포함해 음식점이 포화 상태이지만, 그들이 한 끼 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너무도 부족한 거죠. 그런 곤란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고, 그게 자연스럽게 채소 요리가 된 거예요.

 

종종 ‘식사 배와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는 말을 할 때가 있어요. 물론 장난 섞인 말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리의 위가 불필요하게 비대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의 몸이 말해주잖아요. 우리는 정말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먹고 있어요. 그에 반해 활동량은 현저히 낮구요. 활동량이 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상관없지만, 운동하는 게 싫은 사람들은 지금처럼 많이 먹으면 절대 안 돼요. 만약 운동할 시간이 없다면 전 반대로 먹는 걸 줄이는 게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먹는 양의 반 정도만 먹어도 우리는 살 수 있거든요. 불필요하게 많이 먹는 게 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 사람들이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먹는 것 같아요. 일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은 거죠. 그리고 일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되겠어요. 먹는 그 잠깐의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인 거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와 행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점점 더 많이 먹는 거구요. 아마 그것조차 못 먹게 하면 사람들이 미칠 거예요. 마음이 허하지 않도록 더 행복하고,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저절로 식사량은 줄 거라고 생각해요.

일상에 변화를 주는 음식

학창시절, 요나 씨도 섭식장애를 겪은 적이 있고, 우리 주변에 먹는 것으로 인해 곤란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 고통은 어떤 고통일지 잘 가늠이 안 돼요.

보통 폭식증과 거식증으로 나뉘고, 대부분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와요. 이 두 가지 병 모두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생기는 마음의 병이에요. 그로 인해 자신을 학대하는 방법이 폭식증과 거식증의 형태로 나타나는 거구요. 자신의 존재가 또렷하지 않으니까 허한 마음을 먹는 것으로 채우는 거죠. ‘수저를 내려놔야 할 때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배부르면 그만 먹으면 되는데 그 상태를 못 느끼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구토, 소화불량, 비만 등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변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음식을 거부하거나 더 먹게 되고, 악순환의 반복이죠. 제가 섭식장애를 앓았을 때는 10여 년 전이라 섭식장애라는 말도 잘 사용하지 않을 때였어요. 그래서 제가 왜 그런지도 잘 몰랐고, 아픈 상태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부모님한테도 말을 못 했어요. 보통 이런 섭식장애는 여성들이 많이 겪어요. 매스컴을 통해 나오는 마르고 예쁜 여성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외모지상주의가 만들어낸 병이라고 생각해요. 매스컴에 나오는 마르고 예쁜 여성들처럼 되기 위해선 운동 혹은 케어를 받지 않는 이상 거의 먹지 않아야 그렇게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충족되지 않으니까 굴레에 빠지는 거죠. 또 취업이나 결혼 등을 강요하며 자기 자신에 충족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문화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어떻게 다 잘 살고, 잘할 수 있겠어요. 이런 사회 문화가 사람들의 자존감을 계속 떨어트리고 있다고 봐요.

 

요리는 언제 시작하게 됐나요?

학창시절에 섭식장애가 극심해서 제대로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어요. 사람은 환경에 따라 영향을 잘 받기 때문에 저를 새로운 환경에 휙 하고 데려다 놓으면 제가 바뀔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일본에 갔을 때 친구와 가족도 없는 새로운 환경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서 처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거기서 만난 친구들이 너무 친절하고 좋았어요. 그래도 그때는 감정 기복이 심할 때라 예를 들어 오후 다섯 시까지 출근이면 갑자기 오후 네 시에 기분이 우울해지고 그랬어요.(웃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저로 인해 고생할 테니까요. 그래서 억지로 나가서 일을 했어요. 그 이전에는 그런 노력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이런 생활을 반복하면서 섭식장애도 많이 극복했어요. 그런 후, 혼자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레 밥을 해 먹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함께 밥을 해 먹는 과정에서 치유가 많이 됐어요. 그 전에 제게 요리는 정말 무서운 거였어요. 냉장고 문을 여는 게 정말 무서웠거든요. 요리한다는 건 정말 상상도 못 할 일이었죠.(웃음) 그런데 일본에서 상황에 닥쳐 그렇게 요리를 하다 보니까 점차 요리가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지금처럼 요리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고, 요리를 곁에 두면 섭식장애를 다시 겪지 않을 것 같아서 요리와 미술이 어느 정도 섞인 푸드 스타일링을 할 생각에 3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번 돈을 푸드 스타일링 학원에 투자했어요.(웃음) 그 후, 일본에서 취업이 됐는데, 지진이 크게 낫고, 그 후유증으로 귀국하게 된 거예요.

그럼 지금 하고 있는 요리는 일식에 가까운 건가요?

세상의 말을 굳이 빌리자면 퓨전 요리 아닐까요?(웃음) 어떤 기준이 없는 것 같은데, <재료의 산책> 사업자 등록할 때 이 부분을 정해야 해서 한식이라고 했어요. 일본에서 요리를 시작했고, 간장 베이스로 요리를 많이 하는 걸 보면 일식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은 한식을 잘하고 싶어요. 제가 예전에는 외국 음식을 먹거나 여행하는 걸 너무 좋아했는데, 지금은 성향이 확 바뀌어서 그런 마음이 사라졌어요. 같은 맥락으로 요새 한국과 한식이 더 많이 궁금해졌어요. 지금 전 한국에 살고 있고 이 기후에 맞는 작물들이 제 주변에 자라나고 있잖아요. 이게 정말 우리 몸에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일본 유학 기간 중 접했던 음식 중에 기억에 남는 요리가 있나요?

‘고등어 미소 조림’이요. 입시를 위해 혼자 일본에 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미쳤던 것 같은데, 그 비싼 비행기 표를 끊어서 바보같이 제가 졸업한 학교 한 곳만 지원했어요.(웃음) 아무튼 가서 오전 시험을 치르고 학생식당에 갔는데, 그때 학생식당 진열대에 있는 생소한 음식 중 고등어가 있길래 고등어 미소 조림을 주문했어요. 근데 너무 맛있더라구요. 그 음식을 먹으면서 ‘이 학교에 꼭 붙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웃음) 그래서 점심을 먹고 오후 실기 시험을 정말 열심히 치렀던 기억이 나요.

 

마지막으로 놓고 싶지 않은 꿈이 있다면?

세월이 흘러 제가 먹을 밥 한 끼 정도 만들 힘만 겨우 남게 되더라도 평생 요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직 그 방법을 찾지 못해 못 하고 있지만, 제가 겪었던 섭식장애를 겪고 있거나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몰라 곤란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경험상 섣불리 제 생각을 그들에게 권한다고 해서 모든 게 다 좋은 영향이 되지 않을 거란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그들에게 <재료의 산책> 활동도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까지 굳이 찾아오지 않고 핸드폰을 통해 제 음식 사진만 봐도 좋아요. 사진을 통해서라도 일상에 변화가 생길 수 있고, 기분이 좋아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음식 사진을 SNS에 열심히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웃음)

요나
‘요리사’라는 호칭보다 ‘요리를 통해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불리길 원한다. 현재 홍은동에 위치한 팝업 식당 <재료의 산책>에서 한 달에 5~6회 제철 재료들로 메뉴를 꾸려 사람들과 만나고 있고, 홍대 카페 <수카라>에서도 음식을 만들며 간헐적으로 케이터링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Yona’s Kitchen>이 있고, 곧 <재료의 산책>이 발간 될 예정이다.

ⓒ(주)혜인식품-네네치킨.